누가 오늘 밖에 나갔다 갑자기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났다면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한 거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의 시각에서 보면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고 그의 선조가 하느님에게 거역해 쫓겨나는 바람에 죄인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도 결코 무고한 게 아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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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가 세상에 내려와 길을 가다 바위에 깔렸는데 그것을 눈치 챈 사람도 구해 주는 사람도 없어 고통 속에 죽었다면, 그것도 죄 없이 수난당한 것이지만 어떻게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예수가 수난당한 것의 포인트는 ‘민중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죄 없이 수난당한’ 데 있지 그저 ‘죄 없이 수난당한’ 데 있지 않다.

해방신학의 이론적 출발점은 예수가 죄 없이 수난당한 일을 ‘역사화’한 것이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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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의 신앙은 예수가 죄 없이 수난당한 것에 집중하는 동시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미래에 구원을 얻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어떤 증명의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예수가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했다. 인류의 경험에서 인간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경험은 바로 죽음이며, 예수는 부활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결코 같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야기할 게 뭐가 있겠는가? 부활은 예수가 확실히 하느님이 보낸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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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의 새로운 서술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은 세상에 대한 그의 사랑과 아쉬움을 선명하게 드러낸 데에 의의가 있다. 예수는 다른 방식으로, 예컨대 하늘을 날거나 큰불로 성을 불태우는 식으로 자신의 초월적인 정체성을 증명하는 대신 자신을 불의하게 대하고 못 박아 죽인 이 세상에서 부활하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예수는 분명 이 세상에서 대단히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는데! 그는 충분히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이 세상은 그가 결코 재림하고 싶지 않은 곳이 돼야 마땅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인데도 여기에서 오해받고 고통받고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도둑 사이에서 못 박혀 죽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사무치게 증오할 수도 있었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박애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에서 그가 해방을 추구했음을 보여 준다. 그 해방은 머나먼 하느님 나라의 행복보다 인간의 나라에서 행하는 실천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가 이 세상에서 부활할 이유가 없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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