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뉴런


맞다. 우리는 어떤 신체적인 단서가 없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소설 속의 인물들에 빠져들 때처럼). 하지만 이것이 공감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핵심을 찾으려면 공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봐야 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보라. 친구가 넘어져 울면같이 운다. 어른들이 나누는 그들만 이해하는 진한 농담에 아이가 웃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과학자들은 공감의 기원을 신체적 동조와 기분의 확산에서 찾는다. 여기서부터 상상과 투사를 통해 더 복잡한 형태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이다.

이 획기적인 연구가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의 과학자들이 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s‘ 을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는 우리가 컵에 팔을 뻗는 것 같은 동작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데, 다른 사람이 컵에 손을 뻗는 걸 볼때도 마찬가지로 활성화된다.

얼마 전까지도 과학이 철저히 무시했던 것, 즉 공감 능력 때문이다. 나는 공감이란 단어를 동정심과 다르게 쓰고 있다. 동정심은 타인을 돕도록 하는 충동이다. 내가 말하는 공감은 보다 중립적이고 근본적인 감각, 타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다른 사람의 기침 소리를 듣자마자자기 목이 간질간질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공감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몇 세기 전에 공감의 본질을 이야기한 것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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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구자들은 볼커가 에이미의 새끼를 위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볼커는 침팬지 수컷이 자주 그러듯 새끼를 채가려 했던 걸까? 그랬다면 볼커는 공동체의 방어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새끼에게 손을 대려 하는 수컷은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이런 갑작스런 폭력은 보노보 사회의 축제판 같은 겉모습 저 안쪽에 존재하는 보호막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는 가장 약한 존재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덕적 관습과 유사하다. 누군가가 그것을 위반하면 집단 전체가 관습을 복구하려 든다. 사회의 가장 높은 서열, 가령 우두머리 암컷이라도 감히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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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주는 이타주의
-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어떤 과학자들은 가족과 가까운 이들을 도울 때 돌아오는 고유한 보상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보상이 돌아온다는 것은 최소한 정서 차원에서는 ‘이기적인‘ 동기를 뜻한다고 딱지를 붙인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의 전반적인 구별을 아예 허물어뜨린다. 내 식탁의 음식을 내가 먹는 것과 그것을 배고픈 다른 사람과 나눠먹는 것이 똑같은 이기심이라면 언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어떻게 한 개의 단어로 서로 다른 동기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더욱이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며 내가 느끼는 만족감과 나 자신을 챙길 때의 만족감이 혼동될 수 있을까? 왜 이타주의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인간의 다른 본성과 달리 취급되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자기 가족과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걸 즐긴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려면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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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의 논쟁의 역사 요약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판뚜껑 이론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 이론은 열병에 걸려 천천히 죽은 게 아니라 불시에 심장마비를 맞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20세기 말이 되자 다윈의 ‘이단자들‘과 싸워야 할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데이터들이 처음엔 졸졸 흐르며 나타나다가 나중엔 강물이 되었다. 데이터들은 기존의 이론들을 파묻어버릴 만큼 놀라운 내용이었다. 나는 2001년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정서적인 개와 그개의 이성적인 꼬리 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라는 제목의 논문을 접했다. 그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도덕적 선택에 도달하며, 선택할 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68

하이트는 도덕적인 결정은 직관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정서가 먼저 결정하고 그 후에 이성이 최선을 다해 그것을 따라 잡는다. 논리의 우월성은 찌그러지고 흄의 도덕 ‘감정‘이 다시 돌아왔다. 인류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에겐 공정함의 감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제학자들은 인간에게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관점으로는 볼 수 없는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면을 찾아냈다. 아이들과 영장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보상 없이도 이타주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생후 6개월의 아기들도 ‘못된 행동‘과 ‘착한행동‘의 차이를 구별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타인의 고통을 느끼게끔 선천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11년에 이르러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간은 ‘초협력자supercooperators‘라는 사실이 공식 선언되었다. - P69

이런 반응들이 퍼져나가는 걸 보며 나는 궁금해졌다. 새롭게 나타난 증거들로인해 사람들이 이처럼 변한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새로운 시대정신이 등장했고, 과학은 단지 그것을 따라잡고 있는 것일까?

이타주의에 대한 관점은 역전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희생이란 관점에서 고유한 정서적 보상이 내재된 포유류의 양육이 그 기원이라는현대적 관점으로 말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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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생물학

크로폿킨도 초창기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 진화생물학은 우파 과학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타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 우파보다는 좌파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예전에 트리버스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이론이 함의하는 바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의 대답 가운데 일부이다.

드 발: 당신의 논문을 꼼꼼히 읽다보면 당신이 크로폿킨의 사상을 발전시키려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트리버스: 맞아요. 내 정치적 관점은 당신이 본 대롭니다. 수학을 그만 - P55

두고 다른 전공을 찾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어요(약간 과장 섞인 투로). "그래, 변호사가 되어 시민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빈곤에 맞서워야겠어!" 어떤 이는 내게 미국 역사를 전공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러나 1960년대 초의 미국사 책들은 자화자찬 일색이었죠. 나는 결국 생물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에,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마‘라는 이타주의를 탐구하면 정의와 공정성의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죠. 왜냐하면 그 이론은 강자의 권리를 정당화해온 생물학의 끔찍한 전통의 반대편에 있는 이론이었으니까요"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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