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우리는 어떤 신체적인 단서가 없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소설 속의 인물들에 빠져들 때처럼). 하지만 이것이 공감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핵심을 찾으려면 공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봐야 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보라. 친구가 넘어져 울면같이 운다. 어른들이 나누는 그들만 이해하는 진한 농담에 아이가 웃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과학자들은 공감의 기원을 신체적 동조와 기분의 확산에서 찾는다. 여기서부터 상상과 투사를 통해 더 복잡한 형태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이다.
이 획기적인 연구가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의 과학자들이 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s‘ 을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는 우리가 컵에 팔을 뻗는 것 같은 동작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데, 다른 사람이 컵에 손을 뻗는 걸 볼때도 마찬가지로 활성화된다.
얼마 전까지도 과학이 철저히 무시했던 것, 즉 공감 능력 때문이다. 나는 공감이란 단어를 동정심과 다르게 쓰고 있다. 동정심은 타인을 돕도록 하는 충동이다. 내가 말하는 공감은 보다 중립적이고 근본적인 감각, 타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다른 사람의 기침 소리를 듣자마자자기 목이 간질간질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공감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몇 세기 전에 공감의 본질을 이야기한 것이다.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