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판뚜껑 이론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 이론은 열병에 걸려 천천히 죽은 게 아니라 불시에 심장마비를 맞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20세기 말이 되자 다윈의 ‘이단자들‘과 싸워야 할 필요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데이터들이 처음엔 졸졸 흐르며 나타나다가 나중엔 강물이 되었다. 데이터들은 기존의 이론들을 파묻어버릴 만큼 놀라운 내용이었다. 나는 2001년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정서적인 개와 그개의 이성적인 꼬리 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라는 제목의 논문을 접했다. 그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도덕적 선택에 도달하며, 선택할 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68
하이트는 도덕적인 결정은 직관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정서가 먼저 결정하고 그 후에 이성이 최선을 다해 그것을 따라 잡는다. 논리의 우월성은 찌그러지고 흄의 도덕 ‘감정‘이 다시 돌아왔다. 인류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에겐 공정함의 감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제학자들은 인간에게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관점으로는 볼 수 없는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면을 찾아냈다. 아이들과 영장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보상 없이도 이타주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생후 6개월의 아기들도 ‘못된 행동‘과 ‘착한행동‘의 차이를 구별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타인의 고통을 느끼게끔 선천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11년에 이르러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간은 ‘초협력자supercooperators‘라는 사실이 공식 선언되었다. - P69
이런 반응들이 퍼져나가는 걸 보며 나는 궁금해졌다. 새롭게 나타난 증거들로인해 사람들이 이처럼 변한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새로운 시대정신이 등장했고, 과학은 단지 그것을 따라잡고 있는 것일까?
이타주의에 대한 관점은 역전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희생이란 관점에서 고유한 정서적 보상이 내재된 포유류의 양육이 그 기원이라는현대적 관점으로 말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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