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의 외주화 협약
- 2000년 현대 노사 협약

문제는 이러한 고용 불안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공포가 다른 한편에서는 ‘외부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적극 전환됐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2000년 고용 보장 협약을 체결하면서 16.9퍼센트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으로 정했다. 

협약의 핵심은 물량이 늘어날 때 정규직을 신규 채용할 수 없을 경우 그 인원만큼 사내 하청을 뽑는 건 노동조합이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측이 생산직 정규직 인원을 채용할 계획이 별로 없으므로, 위의 협약은 사내 하청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노사합의나 마찬가지였다. 노동조합의 사내 하청 허용은 생산 물량이 줄어들었을때 조합원을 해고하는 대신 사내 하청 노동자를 해고해도 된다는 동의였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애초 협약에서 정한 비율인 16.9퍼센트를 넘기며 2004년에는 33퍼센트, 2010년에도 25퍼센트 수준으로 하청노동자를 활용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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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시채용 전환의 지리적 효과
- 연구 대상

5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인사 담당자는 수시 채용이 직원의 정착률을 높였으므로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거제의 한화오션 같은 경우에도 생산관리나 설계직의 많은 엔지니어가 동남권의 조선해양공학과나 전기전자나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들의 이탈은 많지 않다. 거제도의 두 조선소가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가장 괜찮은 직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5~2016년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퇴사보다는 그대로 회사에 머물기를 택했다. 현대자동차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산 부문 담당자는 다른 한편으로 우려를 표했다. 인문사회계열이나 상경계열과는 달리 UNIST가 아닌 울산대나 동남권 대학을 나온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의 경우 기본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전한다. 예컨대 역학(물리학)과 수학역량이 그 기본기다. 어느정도 정형화된 일을 빠르게, 싹싹하게, 열심히, 노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지역의 인재가 더 우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궁리하고 해결해야하는 일에서는 현업의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울산의 제조 업체는 고용 안정성이 있는 지역 대학 출신 엔지니어와 잠재력이 크고 기본기가 좋은 수도권 출신 엔지니어를 놓고 매번 갈팡질팡하고 있다. - P121

1960~1970년대를 이끌었던 엔지니어의 모습은 기계공고 출신의 ‘작업장 엔지니어 workplace engineer‘였다. 엔지니어의 자질 중 잠재력보다 성실성이 더 중요했던 시기다. 주로 공고나 좀 더 공부했다면 전문대에서 설계나 가공(공작) 등을 배운 후 기술직으로 회사에 입사해 도면을 그리고 자재 관련 기술을 선배 어깨너머로 배우고 숙련을 익혔던 이들이 바로 작업장 엔지니어다. 

이들은 1980~1990년대에 애매한 직군에 있다가 적지 않은 수가 사무직이나 사무기술직으로 전환하게 된다. 

작업장 엔지니어가 일을 하고 또 일을 배우는 방식은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상을 파악하는 ‘삼현주의‘(현장, 현물, 현상)였다. 엔지니어들은 손과 몸으로 일했다. 또 선배의 작업과 앞선 나라의 현장을 보며 눈썰미로 많은 노하우를 터득했다. 앞서 언급했던 해외의 경쟁사 제품을 가져와서 분해한 후 재조립하면서 그것을 도면에 기록하는 역설계가 전형적이었다. 이것이 현장에서의 암묵지를 통한 엔지니어들의 숙련 축적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조선 산업에서는 꽤 오래 유지됐고, 자동차 산업에서도 많은 부분 필수적이었다.  - P122

그런데 이제는 엔지니어링의 잠재력과 기본기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도제 방식만 가지고 울산 3대산업의 엔지니어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이제 조선소에서는 줄자와 모눈종이로 설계를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제품설계를 CAD(Computer Aided Design) 프로그램으로 수행하고, 생산관리의 많은 것은 센서를 거쳐 생산실행시스템인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와 전사자원계획시스템인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으로 진행된다. 더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는 지금 IoT 나 디지털 트윈 등 스마트팩토리로 통칭되는 데이터 기반 공정 운영과 자동화, 로봇의 활용, 현장의 3D/4D 구현은 훨씬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 P123

많은 일이 기초적인 공학 지식과 자연과학 지식에 기대게 됐다는 것이다. 공과대학 출신 대졸사원을 뽑았던 것도 과학적 관리와 최적화, 공학적 사고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공학 지식, 자연과학 지식, 공학적 사고의 수준이 인문사회 계열과는 결이 다르게 대학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것이다. - P124

각지역 공과대학은 입학생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또 성적 처리도 취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학점‘(학점인플레)을 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적절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 지식을 대학에서 쌓지 않은 채 현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그러한 차이를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울산 3대산업 대기업의 채용시스템이 허술하지는 않다. 

적절한 역량을 갖추어야 채용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관점에서 ‘탁월한‘ 혹은 ‘우수한‘ 인재만 채용해 왔다는 믿음에 균열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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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산업단지에서 생산기지로
- 연구역량의 빈곤화


울산에는 제조업의 위상을 고려할 때 산업체와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간 분업 과정을 통해 3대 산업의 대기업 연구소가 2000년대 초반부터 대거 수도권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원청뿐 아니라 부품이나 소재 회사조차 원청과의 실시간 협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향했다.

 2004년 사업이 승인되어 2005년 문을 연 울산 테크노파크는 기업의 연구를 지원하고 산학연 연계를 돕는 기관이지만, 자체로 연구를 수행할 역량은 거의 없다. 2015년 준공되어 운영 중인 울산테크노파크, 그린카 기술센터 정도가 제한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화학연구원이 울산에 연구본부를 내려보냈지만 아직 시너지를 말하기에는 미미한 상태다. 최근 전기차 전장 장비의 발전에 따른 정밀화학 분야 수요가 있지만 아직은 구상단계다. - P118

지역혁신을 언급할 때 ‘산‘업계와 ‘학‘계와 정부나 지자체 ‘연‘구소가 이른바 트리플힐릭스Triple Helix (대학, 기업, 지자체의 삼중 나선) 협업을 하면서 혁신을 이끌어 낸다고 하는데, 울산에는 산업계와 정부 지자체의 연구소 역량이 미비하다. 따라서 새로운 창업과 기존 산업의 중흥 혹은 혁신이 벌어지기 어렵다. 

정책 지원을 통해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떠올리자면 자동차와 관련된 기계연구원이나 석유화학 및소재 분야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재료연구원 등의 입주를 생각할 수있다. 조선 산업과 연관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입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계연구원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박정희 정권시절 대덕단지에 입주했다. 그나마 재료연구원이 창원에 있는 게 도움이 되는 정도다.

기업의 연구소가 떠나고 설계센터가 떠나고 공장도 떠나게 됐다.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 줄 지역혁신체제도 산업체 연구소의 이전과 정부 연구소의 미비 속에서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대학의 교원과 학생은 모두 이직과 취업을 통해 울산을 떠나려 한다. 대학에 대한 질문은 결국 지역의 근원적 모순을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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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이전

기업 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전한 후 연구소와 밀접한 설계 부문등이 수도권으로 따라 올라가는 경향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20여 년에 걸쳐 강화됐다. 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있던 연구소를 1990년대 경기도 용인마북연구소를 거쳐 기아자동차 연구소까지 통합해 2003년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로 이전했다. 마북연구소는 엔진 연구 위주였고 울산연구소는 설계·시작. 시험평가 위주의 연구소로 각각은 분업 관계에 있었다. 각 단계의 연구개발에 참여해야 할 부품사도 전국의 다양한 장소에 산개해 있었다. 그러나 남양연구소의 확대 이전으로 대다수 부품사가 원청과의 연구개발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P105

년대 경기도 용인마북연구소를 거쳐 기아자동차 연구소까지 통합해2003년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로 이전했다. 마북연구소는 엔진 연구 위주였고 울산연구소는 설계·시작. 시험평가 위주의 연구소로 각각은 분업 관계에 있었다. 각 단계의 연구개발에 참여해야 할 부품사도 전국의 다양한 장소에 산개해 있었다. 그러나 남양연구소의 확대이전으로 대다수 부품사가 원청과의 연구개발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수도권으로 향할수밖에 없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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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공간분업과 울산의 그것이 유사하다
- 도린 매시, 공간, 장소, 젠더

근대 방직 산업과 기계 산업의 메카였던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는 원래 공장과 설계실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본사와 설계실이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금융과 정치의 중심인 런던으로 향하고 노동자가 일하는 생산공장은 맨체스터에 남았다. 

1970~1980년대의 불황과 마거릿 대처 시절의 강경한 대회 노조 정책 앞에서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공장은 점차 쇠퇴했다. 제조 업체 본사에서는 생산 거점을 인건비가 싼 아시아나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옮긴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도시 런던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오직 최적의 이윤과 전사적으로 설정하는 ‘지속가능한 경영‘만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구상을 세웠다. 모공장인 맨체스터 공장은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엔지니어가 생산 현장 노동자의 관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98

중화학 공업화 이후 좀 더 멀게는 울산공업센터지정 이후 50년간 한국은 공간분업의 확대와 전환이라는 과정을 겪고 있다. ‘공간 분업‘은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지리적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영국의 경제지리학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영국의 사례 연구를 통해 공간분업 개념을 보여 주며 스타가 됐다. 매시는 설계사무실과 공장의 구분을 좀 더 넓게 봐서 구상 기능을 하는 지역과 생산 지역이 분리된다고 말했다.  - P97

16 피터 메익신스 외, 《현대 엔지니어와 산업자본주의》, 이내주 외 옮김, 에코리브르, 2017,
172.3.5.7.
Doreen Massey, Spatial Divisions of Labour, Red Globe Press, 1995; 도린 매시, 《공간,
장소, 젠더》, 정현주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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