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이 당선됐다. 소련 시절 예카테린부르크 시와 주에서 활동을 했던 그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많은 당원의 지지를 받았고, 공산당 안에서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너무 흐지부지하다고 비판하며, 보다 더 강하고 개혁적으로 나라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년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경쟁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옐친은 탱크를 앞세워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점령한 후 공산당을 해체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내렸다.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너무도 나약한 나머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고, 결국 그대로 물러나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는 1991년 12월 25일 스스로 하야했다. 옐친은 전국에 대통령 선거를 공포했고, 1992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하루아침에 새로운 러시아의 첫 대통령이 됐다.
소련의 흔적이 희미해질 무렵, 새로운 러시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들이 겹겹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생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불법 또는 탈법적인 방법으로 국가 재산을 사유화해서 하루아침에 많은 부를 갖게 된 옐친 대통령 측근들,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효과가 사라진 개혁들. 정치 세력들의 투쟁 때문에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하락한 사회 구조. 말로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실제로는 비리를 저지르고 국가 예산을 횡령하기 바쁜 정치인들. 러시아 국민들의 머릿속에 ‘민주주의’와 ‘비리와 부패’는 동의어였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