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의 빛과 같이 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 하여 ‘수색여압록水色如鴨綠’ 즉 압록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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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휘발유, 무연휘발유와 범죄율
- 괴짜경제의 레빗은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췄다고 진단했음.
- 레빗은 가설은 범죄율을 감소는 설명하지만 범죄율의 증가은 설명하지 못함.

여러 연구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나타난 범죄율의 엄청난 급증은 납 오염의 증가 추세를 거의 비슷하게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비행 청소년, 도심 우범지대, 90년대 유행어인 ‘초포식자 (super-predators, 90년대 초 미국의 충동적이고 흉악한 10대 강력 범죄자들을 가리키던 말─옮긴이)’ 등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높은 범죄율은, 사실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짝한 후 이제는(아마도) 지나간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런데 사회적·정치적 상황이 각기 다른 수많은 나라에서, 범죄율이 치솟기 시작한 시점이 어째 다 유연 휘발유가 그곳에 도입되고 약 20년 후부터다. 다시 말해 최초로 유연 휘발유에 다량 노출된 아이들이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그리고 상관관계는 반대 방향으로도 나타난다. 최근 수십 년간은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그 나라의 사회 정책에 관계 없이 강력 범죄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범죄율이 하락세로 접어든 시점은, 그 지역에서 유연 휘발유를 금지하고 나서 하나같이 약 20년 후인 듯하다. 더 일찍 금지한 곳일수록 더 일찍 범죄율이 하락했고, 갑작스럽게 금지한 곳은 서서히 퇴출한 곳보다 더 급속히 하락했다.

거듭 말하지만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는 결코 아니며, 이 이야기는 아직 정보에 근거한 추측에 불과하다. 아마 인과관계 유무는 앞으로도 증명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납을 주사하고 20년 후에 범죄를 얼마나 저질렀나 보는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마도 수백만 명이 사망했고, 확실히 지구 구석구석이 남김없이 오염되었고, 분명히 수세대의 아이들이 혈중 독소로 지능이 저하된 것도 모자라(참고로 그 수세대의 아이들이 바로 최근 40년간 세상을 주도했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수십 년간 세계적으로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그 결과 사회적 편견이 더 강하게 고착된 .....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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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휘발유의 전사 : 돈의 부작용

사실 미즐리의 연구팀은 엔진 노킹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으로 에탄올을 수년 동안 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에탄올을 버리고 엄청나게 유독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 물질을 택했느냐고? 너무 충격받지 말길 바란다. 돈 때문이었다.

에탄올의 문제는 생산하기가 너무 쉽고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특허를 낼 수 없었다. 찰스 케터링의 회사 델코는 거대기업 제너럴모터스에 1918년에 인수된 상태였고, 그의 연구팀은 자기들이 돈 안 되는 연구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제조가 너무 쉬워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전매 상품화할 수 없는 에탄올은 그런 면에서 쓸모가 없었다. 연구팀은 납으로 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토머스 미즐리가 ‘비열한 기업 논리에 악용당한 착한 발명가’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 납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강하게 주장했던 것은 미즐리였다. 자기가 직접 계산까지 해봤다. TEL 연료는 갤런당 3센트를 더 붙여 팔 수 있으리라는 계산 결과를 얻었고, 광고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벌이면 휘발유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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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주의와 유전학 : 이념의 부작용

리센코의 이론들은 맞기는커녕 엉터리에 불과했지만, 권력자들의 편향된 이념에 잘 맞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1930년대에는 이미 유전학이 학문 분야로 정착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센코는 유전학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부인했는데, 그 이유는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유전학은 생물체의 특성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음을 시사했지만, 리센코는 환경을 바꾸면 생물체의 형질이 개선되며 그 개선된 형질을 자손에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환경만 맞으면 농작물의 종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농작물을 심을 때는 더 촘촘하게 심어야 한다고 농부들에게 지도했는데, 이유는 같은 ‘계급’의 식물인 경우 절대 서로 자원을 놓고 다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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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표준의 혼란

조사를 한 뒤 원인이 밝혀졌는데, 궤도선은 충격량, 즉 자세 조정에 필요한 추진기 분사량을 표준 미터법 단위인 ‘뉴턴 초(N·s)’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부 업체에서 납품받은 지상 컴퓨터 상의 소프트웨어는 야드파운드법 단위인 ‘파운드 초’를 쓰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 추진기를 분사할 때마다 그 효과가 예상보다 네 배 크게 나타났고, 우주선은 목표로 했던 고도보다 약 100킬로미터 더 화성 표면에 가깝게 접근하고 말았다. 이어서 궤도에 진입하려는 순간 화성 대기에 강하게 충돌했고, 3억 2,700만 달러짜리 최첨단 우주선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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