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호동은 봄날 4월에 멀리 나라의 남쪽 끝까지 여행을 떠났다. 호동이 간 곳은 지금의 함경남도 인근이 될 텐데, 그 시절에는 옥저 지방이라 불렀다. 호동은 이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낙랑왕 최리를 만난 것이다.
낙랑은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세운 군현의 이름이기 때문에 ‘낙랑의 왕’이라는 존재는 이상하다. 낙랑에는 태수가 있을 뿐 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낙랑왕은 낙랑군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어쩌면 낙랑국이란 낙랑군이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으로 가로 막힌 그 동쪽의 영동7현(옥저 지방과 인접한 곳이다) 중 어떤 곳이 독립하여 왕국 행세를 한 것일 수 있다. 또는 그 현 중의 하나를 고구려가 점령한 이야기가 후대에 과장되어 왕국으로 전해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호동이 낙랑국을 멸망시키는 데 일등공신이었으니 그 위세가 많이 올라갔을 것이다. 그것은 왕실의 세력 균형에 큰 불안을 조성했다. 당연히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가 가장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이 왕비의 아들이 후일 고구려왕이 되는데 악행을 일삼다가 시종에게 살해당하는 모본왕(재위 48~53)이다. 자식의 행태로 보아 평소 왕비의 성품을 알 만하다. 첫째 왕비는 대무신왕에게 호동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어서 음란한 짓을 하려고 한다고 일러바쳤다. 하고 많은 모함 중에 이런 저급한
모함을 한 것을 보면 어쩌면 왕비 자신이 호동의 미모에 반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린 호동은 자살을 선택했다. 주변에서 그걸 알고 만류했다.

“이렇게 누명을 쓰고 죽어서는 안 됩니다. 해명을 하십시오.”

호동은 고개를 저었다. 이때는 11월. 호동이 4월에 낙랑공주와 결혼을 했다면 낙랑국 함락, 즉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반 년 남짓한 세월이 지났을 뿐이다. 기간은 이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 호동이 낙랑공주와의 슬픈 사랑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지음 >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