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1930년 1970년

1853년에서 1868년....기간을 ‘바쿠후마쓰‘ 또는 ‘바쿠후 말기‘라고 한다. 바쿠후마쓰는 경박하고다소 외설적인 ‘세기말‘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로서, 부패한 가부키 연극과 훨씬 뒤에 수많은 검투 영화에서 표현되는 음침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바쿠후 말기는 반란과 진압, 도쿠가와 충성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남서쪽의 봉건 영주들의 폭력적인 계략, 살인 음모들이 횡행하던시대였다. 그리고 대중적인 광란 상태와 천년왕국이 득세하는 시대였다. 폭도들이 에도를 비롯한 대도시에 모여 신토의 상징들을 갖고 신사를찾아다니며 반라로 거리에서 춤추고 공공연히 성행위를 하고 부잣집을습격하였다. 그러면서 거의 종교적 흥분 상태에 빠져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하는 것은 뭐든 괜찮아!"하고 소리치며 다녔다. 1930년대와 1970년대 초처럼 1869년에도 젊은 극단주의자들이 많이 양산되었다. 나라를 구한다는 방편으로 극단적 폭력을 사용했다. 이것은 안정된 시대에 억눌린통제가 분출된 결과였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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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화가 모두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으며 모든 것이 정치적 계산에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메이지 지식인 몇몇은 일본을 보다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바꾸고자 서양사상을 흡수했다. 후쿠자와 유키치 역시 자만하는 경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삶은 최고의 메이지 문화를 대표하였다. 스스로가 말하기를 그의 역할은 오로지 "서구 학문을 소개하는기능을 하는 대리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도쿄에 학교를 세웠으며 이 학교는 게이오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서양의 관습과 도덕관을소개하는 그의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였고, 그의 여러 출판물은 ‘후쿠자와 문고‘로 알려졌다. - P56

일본 지식인들은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하였다. 독일의 지식인층처럼 일본의 인텔리겐치아도 뒤로 물러나 학문이나 조경을 음미하며 지냈다.
후쿠자와는 기대했던 자유가 종말을 고하는 것에 낙담하였으나, 공개적인 저항은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 상황을 진지하게 관찰하여 자서전을썼으나 그것을 개인 소장 문고에 묻어 두었다. 한 친구가 그것을 발표하라고 그를 재촉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넘었고 당신도 그렇다. 우리가 다른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다음 세대의 일본 지식인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된 듯하다. 1870년대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이러한 중요한 관심들이 사라지게되었고, 1945년이 될 때까지 그것의 회생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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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개화‘의 형태나 외양은 정치적 슬로건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슬로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양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잘 드러내는 메이지 시대의 풍자적인 속담이 하나 있다. "상투 틀지 않은사람의 머리를 건드리면 ‘분메이카이카‘라고 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유럽식 머리가 고등교육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 몇몇 메이지 지도자들은유럽식 예절을 준수하는 것을 보여주면 서구 열강들이 불평등조약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메이지 개화에는 귀족적이면서 우스꽝스럽고 융통성 없는 면이 있었다. 근대화에 맞춰 토착적인 복장에 고대나 유사 고대의 관습들이 고안되거나 재현되기도 했지만, 그 시대에는 과거를 일소하거나 거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서양인들에게는 오히려 경박하거나 천박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 P52

거의 한 세기 후에 20세기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받았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메이지 시대의 피상적인 고상함에 대해 격분하였다. 공공연히 옷을 벗는 것, 남녀 혼욕, 이밖에 ‘저속함과 상스러움‘을 나타내는 민망한 행태들을 금지시킨 것은 본성에서 나오는 고상함을 향한 욕구에서발현된 것이 아니라, 서양 외국이 그런 풍속을 인정해주지 않으리라는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미시마는 메이지 일본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불안한 주부‘에 비유했다. 손님에게 먼지 하나 없이 흠잡을 데 없는 깨끗하고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일상생활 용품들을 옷장 속에 감춰 놓고 편한 일상복을 안 보이도록 치우는 주부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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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적 교환 대 순수증여

우리가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이지, 나중에 보상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게다가 협력적 관계의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는 결혼 관계에서 즉각적인 상호적 교환 지향은 대개 결혼에 대한 불만과 관계가 있으며, 결혼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낳는다(Hatfield & Rapson, 1993; Shackelford & Buss, 1996).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실은 상호적 보상을 원하지만, 순전히 선의로 친구를 돕는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까? 투비와 코스미데스(1996)는 이 문제에서는 사람들의 직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우정이 실제로 순전히 상호적 교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 진화심리학, 데이비드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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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 적합도 이론에서 나오는 예측은 명백하다: 나머지 조건이 똑같다면, 손자의 관점에서 어머니의 어머니(외할머니)가 투자를 가장 많이 할 것이고, 아버지의 아버지(친할아버지)가 투자를 가장 적게 할 것이다. - < 진화심리학, 데이비드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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