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포켓몬 그리고 움벨트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 특히 아직 너무 어려서 생명의 세계에서 인간이 만든 것들의 세계로 주의를 완전히 빼앗기기 전의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 자연스럽고 억누를 수 없이 매혹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움벨트의 세계에 깊이 그리고 한결같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 아들 에릭이 집중적인 공룡 시기(무수한 아이들이 거쳐 가는 바로 그 시기)를 지나고 있던 당시 나는, 에릭의 어린이 버전 움벨트가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광경을 내가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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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시기를 지나는 어린이라고 해서 이를테면 공룡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꼭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아이들은 공룡의 형태와 행동, 이름을 공부하는 일에 집중하는데 그 목적은 공룡들을 분류하고 공룡의 특정 종이나 속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만약 에릭이 더 야생적인 세계에서 수렵채집인의 아이로 태어났더라면, 그런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에릭 역시 주변 모든 생물의 분류법과 명명법을 능숙하게 익혔을 것이다. 하지만 에릭은 미국의 도시 아이로 태어나고 자랐으므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움벨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수많은 아이가 그렇듯, 에릭 역시 주기적으로 마주치는, 가장 폭넓은 다양함을 자랑하는 일련의 생물들, 바로 공룡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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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 상품들 대부분의 진짜 목적이 아이들이 한눈에 포켓몬들을 알아보고 분류하고 이름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포켓몬 트레이딩 카드는 본질적으로 포켓몬들과 그 특징을 공부하기 위한 암기용 카드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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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아기들이 무엇을 얼마나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무엇을 즉각 무시해버리는지 관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연구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아기들이 생물의 세계에 즉각적이고도 강력하게 매료된다는 것이다. 생후 3개월 된 아기들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 어린 아기들이 생명이 있는 것들을 감지해내는 일에 너무나 주파수가 맞춰져 있어서 실제로 살아 있는 생물의 움직임과 예컨대 태엽을 감는 장난감 같은 기계의 움직임도 구별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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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의 차이 나는 식별법

사자를 식별하려 한다고 상상해보자. 이건 쉬운 일일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크고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당당한 갈기가 있고 크고 뾰족한 이빨이 있으며 주둥이에도 털이 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사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다시 말해 크기와 형태와 색깔만으로, 기본적으로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아는 것이다. 가령 이 동물에게 거위의 머리가 있다면 당신은 그게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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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보다는 무엇을 하는 물건인지를 보고서 아는 것이다. 여기서는 기능과 용도가 핵심이다. 스크루드라이버는 한쪽 끝은 손잡이이고 다른 끝은 나사를 박도록 만들어진 부분이다. 픽업트럭은 이동을 위한 바퀴 네 개가 있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운전석이 있으며 뒤쪽에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짐칸이 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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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뇌에는 모양과 크기, 색깔, 전체적인 외양을 보고서 생물을 알아보고 물건을 알아보는 기능이 별도로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음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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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벨트와 과학

움벨트의 시각이 항상, 모든 경우에, 어떤 사람의 눈을 거치든 과학적이고 진화적인 시각과 상충한다는 말은 아니다. 움벨트의 시각도 때로는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되는 대상 생물의 종류에 따라) 생명에 대한 합리적이고 진화적인 분류와 상당히 잘 일치할 때도 있다. 문제는 움벨트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큰 문제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움벨트가 모든 사람에게 정확히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다. 로봇 같은, 고무도장을 찍는 것 같은 생명에 대한 똑같은 인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움벨트는 철저히 감각적인 것이라 여러 면에서 대단히 주관적일 수 있다. 병합파와 세분파의 경우처럼 감각뿐 아니라 기질에 따라서도 움벨트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모두가 탄산음료라는 똑같은 유형의 현실을 보고 관찰할 때도 어떤 사람은 차이점들이 가득한 것으로 인식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똑같게 보는데, 이런 현상이 과학에 대한 움벨트의 또 다른 큰 문제로 이어진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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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6

마이어는 아직 젊었던 시절 극락조의 모든 종을 수집하려고 뉴기니에 갔을 때 이미 종은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유럽인도 가본 적 없는 장소들을 헤매고 다니며, 자기가 “내 생각에 아주 원시적인 유형의 인류로, 다른 어떤 인종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22라고 묘사한 적대적인 부족민들 사이에서 지내는 동안, 마이어는 놀랍게도 이 이른바 원시인들이 과학자인 자신과 거의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종들을 분류하고 이름 짓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새 분류에 관해 마이어는 이렇게 썼다. “거의 모든 종이 이름을 갖고 있었고, 워낙 비슷해서 일부 계통학자들(분류학자들)마저 다른 종과 헷갈리는 일부 종들까지 구분해두었다.” 마이어는 137가지 다른 새 종을 구분했고, 부족민들은 136가지 종을 구분했다. “서구의 과학자가 종으로 부르는 것과 원주민들이 종으로 부르는 것이 이토록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보고 나는 종이란 자연에서 매우 실질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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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학의 추락

병합파는 겨우 27개의 목을 알아본 반면, 세분파는 무려 48개의 목을 식별했다(다시 말하지만 두 무리 모두 같은 새들을, 즉 세상의 모든 새를 보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초병합파 분류학자들은 모든 새가 사실은 훨씬 작은 무리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새들은 자기들만의 강은 고사하고 목도 이룰 자격도 없으며, 대신 모든 새를 한 과에 다 몰아넣어 파충류 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실상은 어느 쪽인 것일까? 새들은 자기들만의 목을 갖출 자격도 없는 걸까, 아니면 스물일곱 가지 혹은 마흔여덟 가지 목으로 이루어진 걸까?
분류학자들이 세계의 여러 새 종들을 속으로 묶으려 했을 때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았다. 병합파는 전부 2,600가지 속을 제시했다. 한편 이른바 초세분파는 바로 그 똑같은 종들을 1만 개가 넘는 속으로 분류했다. 생명의 세계는 분명 그중 하나를 명백히 옳거나 틀린 것으로 만들 방식으로 조직되었을 것이다. 새가 그렇게 분류하기 어려운 것일까? 그러나 특별히 새가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일은 분류학의 지도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병합파–세분파 다툼의 본성이었고, 이 불행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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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논문(마이어의 논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질문(하필 이렇게 배치하고 이렇게 이름 지은 이유는 무엇입니까?)에 답하기 위해, 마이어가 그 근거가 된 어떠한 도해나 데이터나 수치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자연의 질서에 대해 갖는 자신의 감각, 자신의 인지를 수량화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뻐꾸기들을 보고 또 보고, 종다리들을 보고 또 보고, 그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무수한 특징에 관해 생각해본 뒤 형성되는 그 강력한 질서의 감각, 자신만의 전문적 견해에 도달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숙고의 과정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분류학자가 말할 수 없는 것, 어쩌면 말하기를 시도해서도 안 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분명히 의견을 밝히는 분류학자들도 일부 있다. 심슨이 분류학자에 관해 쓴 글을 봐도 그렇다. “어쩌면 테니스 선수나 연주자처럼, 분류학자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해 내적으로 너무 깊은 성찰에 빠져들지 않을 때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다.”15
이 말은 분류학자가 테니스 시합에 나가거나 음악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면 괜찮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마이어와 애머던은 과학자임을 자처하고 있었으니, 바로 이런 모호한 직관,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무의식적인 질서의 감각, 린나이우스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수단이 되어주었던 이 모든 것은 점점 더 그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점점 더 과학적으로 엄격해지는 생물학자들의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분류학자들의 시도에 계속해서 큰 짐이 되고 있었다. 분류학은 나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중이었고 그 무엇도 그 추락을 멈출 수 없어 보였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 정지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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