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학의 보편화, 사서동례

예학이 발달하면서 사서동례士庶同禮라 하여 서민들도 선비들과 같은 예법을 따르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평민들조차 4대 봉사, 곧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를 제사 지냈다. 심지어 선비들의 예법을 왕실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법은 본래 차별의 상징이었으나, 그것이 누그러져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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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 사회가 예학을 새로운 이념으로 선택한 것은 그들 나름의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 세기 전만 해도 형이상학이 선비들의 총아였으나 그것으로는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구현할 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때문에 선비들은 새로운 희망을 예학에서 찾고자 했다.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이 크게 발달했다. 그의 제자들과 손제자들이 대대로 예학에 종사함으로써 17세기 조선의 예학적 이해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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