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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단편소설인 '대성당' 12편을 다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김연수 작가의 마지막 후기가 제일 좋았단다.
이 소설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작년 세월호 사건때, 빨간책방 이동진씨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소설 전문을 낭독해 주어서 알게 되었어. 그리고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 사두었다가 이제서야 출퇴근시에 오고가면서 완독을 하게 되었어.
레이먼드 카버를 기리는 듯한 영화 '버드맨'은 올해 아카데미상 4관왕(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영화 처음에 레이먼드 카버의 시로 시작하고 있고, 영화에서 나오는 연극은 이 작가의 소설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란 작품이다.
한번의 끊김도 없이 화면을 계속 따라가는 롱테이크 카메라 수법이 매우 특징적이었다.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등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깊었다. 내면의 버드맨과의 자신과의 내적인 갈등들, 그리고 연극과 현실을 구분없이 연기해내는 배우 등... 마지막 장면에서 리건 톰슨이 창문으로 나가서 버드맨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 것인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더군. 딸의 시각으로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한편 영화의 배우 삶은 마치 레이먼드 카버가 가난, 알콜중독, 가정불화, 이혼 등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45세 이후 전미도서상 후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재기하는 삶을 살다가 재혼을 하고, 그해 50세에 폐암으로 죽는 것과 많이 오버랩이 되더군.
소설집에서 작가는 소통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위안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신경써서'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역할로 등장하는 인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빵집 주인, [열]에서는 웹스터 부인, [대성당]에서는 맹인인 로버트이다.
귀를 달고 있지만, 듣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이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이다. 그것이 집의 부부관계이건, 타인과의 관계이건 말이다.
알콜 중독으로 인해 보호시설에도 들락거린 경험을 살려서 작가는 아내와 떨어져서 살거나(신경써서, 내가 전화를 거는 곳), 때로는 잠시 남의 집을 빌려서 살거나(셰프의 집) 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설속 남편들은 실직하여 소파에서 뭉개면서 TV만 보고 있거나(보존, 비타민, 굴레) 한다.
떨어진 자식이 보고파서 찾아가지만, 만나기 부담스런 맘에 돌아서기도 한다(칸막이 객실). 아내와는 소통이 잘 안되고, 아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경계한다(굴레, 대성장).
그러나 그들에게 닥치는 작은 사건이건 작은 만남이건간에 깃털과 같은 가벼운 것일지라도, 인생 자체를 반대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되곤 한다(깃털들).
본다고 하는 자가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보지 못하는 자가 보는 자를 새로운 자리로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을 [대성당] 소설은 보여주면서, 우리 삶에서 소통이 가져오는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귀지로 인해 듣지 못하는 고통에서 아내의 도움으로 듣게 되었지만,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처럼 우리는 내 말만 쏟아놓을 뿐, 타인의 말에 신경써서 들어주는 걸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다.
8살된 아들을 뺑소니 차사고로 잃게 된 부모의 슬픔과 허탈감과 분노를 녹여주었던 뚱뚱보 빵집 아저씨의 금방구운 계피빵과 들어주는 마음이 이 사회의 해답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