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
/ 함성호
나는 내 발걸음에 취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다──,
그러나 내가 두고 온 그 백사장에서는
빈 구덩이만이 무성하여
내 귀는 지하를 듣고 있다
누군가 나를 낮은 포복으로 건너고 있다
이 물소리,
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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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 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 , 2001, 문학과지성사
:: 함성호
<POEMER&NO=>1963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 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