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내가 아이를 두고 온 거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혼자 가는 거라 뭔가 짠할 거 같은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가 깜짝 놀랐다. 시큐리티 체크 줄이 공항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니 땡스기빙 연휴 마지막 날. 가족들을 만나러 왔던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테니 당연한 일이다.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기는 했지만 긴 줄에 당황한 나머지 눈물 글썽 허그 뭐 이런 건 다 까먹고 들여보냈다.
엠군의 복장은 집에 올 때 그대로. 반팔티에 후디. 이 동네에서야 그걸로 되지만 거기서 출발할 때는 영하였을텐데? 물어보니 평소 그렇게 입고 다닌단다. 그 동네는 벌써 영하던데? 두꺼운 잠바도 보냈고 긴 팔, 스웨터도 보냈는데 왜?? 별로 안 추워요. 라는 엠군의 답변. 도착하면 추울 테니 안에 털이 달린 후디를 압축팩에 넣어 백팩에 넣어주며 도착하면 이거 꺼내 입어라 했는데 기숙사 도착했다는 카톡에 엄마가 준 옷 꺼내입었니? 라고 물었더니 읽씹. 안 입었군 녀석. 18년을 모르고 살았는데 추위에 강한 체질이었나 봐.
아침에 아들을 보내고 달려간 곳은!
바로바로 SoFi 스태디움!!!
나는 코로나로 콘서트가 취소될 때까지 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티켓팅에 우선권이 있었으나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계속된 오류와 시스템 다운으로 표를 구입하지 못했다. 코로나 시대에 무슨 콘서트. 안 가도 괜찮아! 하고 큰 소리를 쳤지만 속은 어찌나 쓰리던지. 혹시해서 등록해 둔 verified fan 뺑뺑이에서도 떨어져서 진짜 표를 살 수 없구나 했는데 엔양이 그 엄청난 피케팅을 뚫고 표를 구했다. 물론 좋은 자리는 다 나가서 방탄 소년단이 면봉 소년단으로 보인다는 하늘석으로. 그게 어디야.
제이양을 데리고 SoFi 스태디움에 도착했다. 로즈볼은 가는 길이 하나라 고속도로 출구에서부터 밀렸는데 SoFi 는 사방팔방으로 길이 나 있어 근처까지는 가뿐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갔더니 줄이 줄이!!! 세상에!!! 정말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워낙 외국인 (아 여기는 미국이니까 외국인이라는 말이 틀리는구나) 온갖 인종이 다 있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연령대도 정말 다양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최소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들끼리 온 그룹도 보여서 놀랐다.
콘서트장에 들어가기 전에 백신 카드를 제시하거나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은 음성 확인서를 내야 한다. 일일이 백신 카드나 음성확인서를 신분증과 대조하고 가방 검사하고 (스태디움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과 물품에 대한 규정이 있다) 티켓 검사하고 이렇게 단계가 많다보니 콘서트 첫날에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미처 다 입장을 못 했다고 한다. 줄 서 있던 팬들이 울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그냥 다 통과를 시키는 바람에 티켓이 없이 밖에서 구경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막 들어갔다고 하네.
나는 둘째 날 공연에 갔는데 스태디움에서 전날의 경험으로 요령이 좀 생겼는지 줄이 긴 엔트리의 사람들을 다른 쪽으로 이동시키고 백신카드 검사, 가방 검사, 티켓 검사하는 걸 나눠서 하면서 조금 체계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는 전날 사람들이 쓴 리뷰를 열심히 연구한 뒤 들어갈 엔트리를 정했지만, 줄 잘못 서는 바람에 엄청 오래 기다렸고 결국 다른 엔트리까지 막 뛰어가야 했다. 헉헉 나, 뛰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 아닌가. 뛰다가 에잇 앞에 좀 못 보면 어때 싶었는데 제이양의 째려봄 때문에 다시 뛰어 무사히, 여유 있게 자리에 도착했다.
표를 살 때 하늘석이라도 좋다, 대신 중앙으로 해서 스크린을 보면 되지 했는데 막상 가보니 구조물 때문에 스크린의 반이 가려져서 너무 아쉬웠다. 다음 번에는 꼭 좋은 자리를 쟁취하고야 말리라!!!
BTS 콘서트에 가면 나도 모르게 국뽕이 차오른다. 넓디넓은 콘서트장을 꽉 채운 관객들, 콘서트장에 울려 퍼지는 한국어 가사. 중,고등학교 시절 팝송 가사를 받아적으며 따라 불렀던 우리 세대라면 더더욱 가슴 뻐근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로즈볼 때는 정말 국뽕으로 가득 찼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넘어서서 차원이 다른 레벨이 되었구나 싶었다. 다양한 인종과 세대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라니!
혹시해서 가져간 망원경을 딸이랑 번갈아 들여다보고, 신형 아미밤이 아니라서 자꾸만 블루투스 연결이 끊어지는 바람에 다시 연결하랴, 노래 따라부르랴 그러다 보니 두시간 반이 그냥 휙 날아갔다. 아이고 벌써 끝나다니 아쉬워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나오다가 들어갈 때는 구경할 엄두도 못 냈던 굿즈 샵에서 제이양이 티셔츠를 하나 사주었다. 이제 딸이 직장인이 되니 이런 게 좋구먼. 다음 번에는 엔양까지 셋이서 다시 올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아침 일찍 공항에 아들 데려다주고, 낮에 엘에이 가서 나랑 제이양 콘서트장 내려주고 제이양 아파트 가서 강아지랑 있다가 엄청난 트래픽을 뚫고 우리를 데리러 온 남편에게 감사를. 고마움의 표시로 다음번 BTS 콘서트에 같이 가자고 하면 싫어하려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