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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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역사는 강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여진다. 중요한 사람, 정말로 역사에 길이 남아 두고두고 이름이 불려야 할 사람……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닦아준 사람들의 이름은 역사를 기록하는 후세들을 통해 분류된다. 누구나 어릴 때 위인전 한 권씩은 읽었을 것이다. 한국을 벗어나 세계의 많은 위인들을 만나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이 있다. 여성 위인들의 이름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인생의 모토로 삼는 여성 위인을 찾고 싶지만, 워낙 손에 꼽을 만큼 한정되어 있어서 남성 위인을 고르거나 겹치는 인물들을 고르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로 외우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가사에는 여자의 이름이 단 네 명뿐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아, 그때는 진짜 모르고 즐겁게도 불렀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으나, 여성이 뭔가 해보려고 하면 행동 제약을 걸어버리는 시대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걸크러시>는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웹툰이다. 남성 우선적인 사회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사회에 반항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여자들의 삶을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뤘다. 1권과 2권을 합하여 총 30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국적도, 직업도, 나이도 다른 여자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갔다는 점이다. 왕, 전사와 탐험가, 부인과 의사, 독재정권에 맞선 운동가, 화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자신의 위치에서 다양한 일을 했던 여자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전부터 걸림돌로 작용하는 많은 사회적 제약뿐만 아니라 끔찍한 폭력과 억압 또한 존재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떠올려보자면 여성 수영복을 최초로 만들어낸 '애넷 캘러먼'이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주의는 호주에도 영향을 끼쳤고, 여자들은 대낮에 수영도 하지 못할뿐더러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불편한 옷을 입고 물속에서 헤엄을 쳐야 했다. 애넷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수영복을 만들었고, 뒤이어 올 누드 수중 연기로 영화계에 위대한 도전을, 여성들의 몸과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권유하고 노력했다. 또한 강력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끌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  아테네 여성들이 의술을 배울 수 있는 첫걸음을 뗀 부인과 의사 '아그노디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을 한 여자들도, 뚜렷한 정점을 찍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걸었던 여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주목할 점은 아마도 업적의 중요도보다는 자신의 일과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갔던 그들의 삶의 양식일 것이다.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 대항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 책 속의 여자들의 행동과 언어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용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단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모습들을 여자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덧, 한국이란 작은 땅에서 여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들도 더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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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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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님들에 대해선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크게 없다. 늘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지만 크게 거슬리는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꽤나 무감각하게 타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있는데, 늦은 밤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를 탔던 날이었다. 어둑하게 조명을 최소한으로 한 버스가 고속도로를 지나고 정류장이 있는 시내로 들어오니 벨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각각 다른 사람들이 한 정거장에 두 번 울리는 일도 반복되었다. 버스 기사님은 하소연이 섞인 짜증을 내다가 ‘벨 좀 한 번씩 누르라’고 호통을 쳤다. 기사님의 업무 환경을 생각하면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는 말도 수긍이 가는데,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승객들이 정류장을 지나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누르는 것도 나쁜 마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상황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고요 속에서 불편한 냉기가 감돌았다.

 

이전에 알고 있던 책이지만 이 사건 때문에 다시금 급하게 책을 찾아보았다. 버스 기사님들의 업무와 생활 반경, 감정들이 궁금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실제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입사 5년 차 기사님이 쓴 에세이다. 전주는 특히 버스 대수에 비해 노선이 많고, 승객들의 불편함 호소도 많은 지역이라 한다. 물론 지역에 상관없이 버스기사들의 악명 높은 업무 환경은 여기도 비슷한 수준인 듯 보인다.

 

저자는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착한 기사와 비열한 기사의 마음을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참을 수 없고, 표정 관리가 격하게 힘들어진다. 끼니와 생리적 욕구 또한 신경 쓰기 힘들고, 연료 충전과 버스 청소 등 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업무를 넘어, 일상까지 버스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 셈이다. 고작해야 한 시간 이하로 이동하는 일이 대다수인 시내버스 승객들은 수시로 일어나는 도로 위의 아찔한 상황과 기사들의 고충을 알 턱이 없다. 악의가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왜 내가 탑승한 시간에 기사가 불쾌감을 표출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짜증 나고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꺼내놓고, 가끔은 툴툴거리며 당부하는 저자의 글은 재미있고 통쾌하다. 제대로 솔직해서 좋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보는 느낌도 비슷하다. 읽다 보면 어느새 덜컹거리는 우리 동네 시내버스에 올라 있는 듯하다.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는 것을 살피고 티가 나는 수신호를 주고, 조금 더 세심하게 주변과 운전석을 살피고, 대답이 없어도 눈치 보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심코 지나치던 누군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상황을 모르니까 그냥 지나치고, 이유를 모르니까 억울하다 (서로 시비를 걸고 싸우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이 배려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또한 승객과 기사 사이의 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해결돼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육체와 감정을 넘나드는 노동 현실의 개선을 넘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삶 전반의 속도가 조금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다.

 

● 22쪽,
윤리적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바로 운전대 놔야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라도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운전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인지라 서서히 화는 쌓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던 길이 막히면 화가 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운전할 때 유독 짜증이 심해지는 것이 인격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76쪽,
외진 도청 앞에서 목이 빠져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가난한 승객들에게는 양심이 준 선물이다.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잔뜩 열이 받아 있는 승객이 화를 풀 길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사밖에 없다. "어이 기사, 이 버스 몇 시 차여. 여기서 얼마를 기다렸는지 알어?" 눈물 나서 대꾸도 하기 싫다. 대꾸도 않는다고 또 시비다. 앞차를 빼먹은 동료도, 항의하는 승객도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 79쪽,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이다. 그 리듬으로 한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상버스가 휠체어 탄 승객을 싣기 위해 리프트를 펴는 잠시 동안에도 ‘빵빵‘ 거리며 도로가 난리가 난다. 버스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낮아져야 한다.



● 116쪽,
시간에 대한 삶의 태도가 제각각인 시내버스에는 운행 정시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실은 간단치 않다. 적폐기사와 공정기사, 적폐승객과 공정승객이 마구 뒤섞여 있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항상 타는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기사의 운전습관이나 도로 사정에 따라 운행 중간지점부터는 10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버스가 많은 노선은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버스가 귀한 노선은 한 번 놓치면 몇 시간이라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 160쪽,
버스기사는 운전원이면서 동시에 승무원이고 청소원이다. 운전은 기본이고 승무원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다. 운전하려고 취업했지 스튜어디스 하려고 온 것 아니다. 당신 같으면 하루 세 번 이상 혼자 사무실 청소 다 하고 수시로 민원인들 상대하가며 생명을 담보한 주 업무는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친절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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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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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먹은 보랏빛의 표지 그림을 보자마자 어떤 정보도 없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흔하디흔한 첫사랑의 추억을 다룬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따로 책 소개를 찾아보지 않은 채 책을 펼쳐 보았다. 의외로 분량은 적었다. 아이들의 그림책이 생각날 정도로 글밥도 많지 않았다. 여백이 많다는 건 무수한 설명과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독자라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책의 분량만큼이나 짧은 시간 동안 마지막까지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정말 묘- 했다. 어, 도대체 이게 뭘까. 신기하고 이상하다.

 

다양한 행동과 사건에 ‘첫’이 붙으면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설렘과 두려움, 황홀함, 두근거리는 다양한 감정이 함께 들러붙어서 느낌은 오묘해진다. 책 속에는 두 명의 소녀가 등장하고, 사춘기 소녀들이 으레 주고받을만한 얘깃거리로 대뜸 첫 장면이 시작된다. 다소 충동적이거나 불안하고, 신중하고 세심한 소녀들의 마음이 한 장의 그림들로 표현된다. 둘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도, 어떤 큰 사건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대신에 아주 일상적인 대화와 장면들만 뜨문뜨문 등장한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확실치 않은 그들의 마음들과 걱정과 두려움, 감정들을 조각조각 하나씩 보여줄 뿐이다.

 

순서도 없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 뜨문뜨문한 이야기가 꽤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는데, 나에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수한 '처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깊게 빠져들었던 상황을,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던졌던 말들을, 때로는 그냥 같이 앉아 있던 일들을 무심코 떠올리듯이. 정말 내가 언젠가 겪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연상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짧은 책이 불러오는 긴 여운과 남다른 분위기는, 단순히 ‘첫’이라는 단어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아마도, 흐르지 않는데 책 속에서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음악'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 감정 그대로를 담은 듯한 음악 한 곡을 감상하는 것 같다. 그림과 음악과 대사, 그리고 따뜻하고 서툴고 공감되는 감정들.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조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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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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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 대였을 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었을 때 했던 말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자살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그거 너무 무섭지 않아?" 누군가에게 툭 던졌던 그 말은, 생각해보면 생이 무척이나 행복해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반대도 아니었으며, 단지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었던 어리숙함 때문이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의 고통이나 두려움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살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 곁엔 없지만 어딘가에 무수히 있는 그들. 그들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 곁에 있던 사람들을 왜 남겨두고 떠났냐고 무책임을 질책하는 말들은 얼마나 날카롭고 무의미한가.

 

'자살'하면 흔히 이유를 찾는다. 실제 상황에서도 그렇고, 픽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의 폭력, 병 혹은 가난, 온갖 이유를 대어 설명한다. 그래야만 말이 된다. 관계없는 사람에겐 일종의 편의로 작용하고, 관계 깊은 사람에겐 오직 그 방법 밖에는 없기에 이유를 찾는 것에 매달린다. 소설 <비상문>에서 자살한 ‘신우’의 형인 화자도 그러한 이유에 대하여 끊임없이 되묻는다.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짐작이 되는 일도 없는데, 왜 동생은 삶을 끊어내길 선택했을까. 비상구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에서 잠깐 멈춘 9분 57초의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떨어지기 전에는, 그 순간에는, 아니 그전의 모든 순간들 속에서는.

 

"빛난다는 건 손실된다는 것(24쪽)" 물리 문제집에 쓰여 있던 법칙에 의미 부여를 하듯이, 화자는 수많은 단서들을 찾는다. 언젠가 '말했을지도 모를' 이유와 겉으로 드러나던 모든 사실들을 되짚어본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불화 같은 것들과 유독 예민하던 신우의 시선들과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유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 아닐까. 삶도, 죽음도, 이유 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떠올랐다면 너무 식상한 것일까. 이 짧은 소설에서도 최진영 작가는 그동안의 소설들로 오랫동안 천착해 온 소설의 중심점을 드러낸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소설 끝에 실린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그토록 어지러운 삶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말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 속에서 설명하고 매달릴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보자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화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서두진'씨와 '이재영'씨와 그다음의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는 것처럼. 죽은 동생을 투영하며 끊임없이 '생'을 확인하는 것처럼.

 

표지와 내지를 온통 감싸고 있는 따뜻한 파란색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잔상처럼 남는다. 어두컴컴한 계단에 머무르는 비상구의 푸른빛처럼, 순간적으로 쨍하게 시리고 아프다가도 눈부시게 아름다워지는, 그런 소설이다.

 

 

 

 

● 16쪽,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듯 존재의 어둡고 습한 부분을 유독 잘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찾지도 못하는 얼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남들은 듣고도 들은 줄 모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감각이 그쪽으로 유별나게 발달한 사람들. 나는 신우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 17쪽,
신우가 죽어서 내 인생이 달라졌는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모르겠다. 신우가 죽지 않은 삶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우습게도, 그리고 끔찍하게도 나는 동생이 자살하지 않은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동생이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어떤 식으로 상상해도 동생은 죽는다. 내가 화를 내거나 울거나 사정하면 동생은 죽지 않겠다고 나를 안심시키고 결국 죽는다. <최신우가 살아 있다면>이란 가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우의 죽음은 단단한 뼈처럼 내 삶에 고정되어 버렸다.

● 38쪽,
아니다. 신우는 너무 믿었다. 그 정의와 가치를 신뢰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공평하지 않은 것에 공평함이란 단어를 쓰는 것, 기회도 아니면서 기회라는 팻말을 내거는 뻔뻔함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는 원래 그렇다고 체념하는 것들을 신우는 따지고 들었다.
그 누구도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어. 똑같은 원을 그리는 사람도 있을 수 없고. 하나하나 다르다고.
나는 신우의 불만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 68쪽,
빛 같은 것? 빗물 같은 것? 신우는 다른 것이 되고 싶었나? 빛과 빗물은 무수하고 최신우는 하나뿐인데 어째서? 태양과 달은 낮과 밤에 보이지만 한 공간에 있다. 행복도 불행도 한 공간에 있고 그것이 유난히 잘 보이더라도, 우리는 굳이 그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것 아니라도 별은 무수히 많다. 세상은 점점 더러워지고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네가 어디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도록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니까. 그런 세상을 같이 살면 좋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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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 우리가 몰랐던 출산 이야기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7
전가일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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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기 전 출산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얄팍한 성교육으로만 접했던 간단한 사실들뿐이었다. 되돌려 생각해보니 우리는 학교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세세하고 정확하게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세포가 어떻게 아기가 되고,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지에 관해서는 열심히 배운 기억이 있는데 출산의 과정에 관련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미비했다. 아기가 엄마의 몸속에서 거의 빠져나올 때쯤 의사가 회음부 절개를 한다는 것도, 출산 후 한 달까지도 ‘오로’라 불리는 분비물을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제왕절개 출산도 엄청난 고통이 있다는 사실도 성인이 돼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무지한 비경험자인 나로서는 이 제목을 보고 의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출산은 분명히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소외받는다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또 어떤 식으로 여성의 인권이 뭉개지고 있는 것인가.

 

알고 보니 책은 의료화된 출산의 문제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자는 세 아이를 출산할 당시 모두 조산 ― 요즘 흔히들 이른둥이라 부르는 ― 이 되었고, 날짜를 꽉 채운 일반적인 출산보다 더욱 긴장되고 다급한 순간들 속에서 의료화된 출산의 폐해를 경험했다. 그는 출산 당시 생생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화적 내러티브’ 형식으로 책을 기술했고, 다양한 방식을 비교하기 위하여 지인과의 인터뷰도 수록했다.

 

저자는 처치실에서 홀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던 두려움의 시간을 회고하며, 지극히 의료화된 출산의 과정에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출산을 하는 산모의 ‘주도권’은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당연하고 일반적이고 정상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현대의 출산 과정에서, 산모는 아기를 품고 있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빠르게 아이를 빼내야 하는 ‘환자’가 된다. 아기가 나오기 좋은 자세보다는 의사가 처치하기 좋은 자세로 오랜 진통을 견뎌야 한다. 의학적인 지식 앞에서 어떠한 질문과 협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빠르고 신속한 출산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의료적 처치를 감내해야 하고, 때로는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도 의료진 입장에서 ‘비교적 간편한’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이러한 문제점 속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산모의 두려움을 볼모로 하고 있다(67쪽)’는 것이다.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자기 몸의 주인이자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비로소 “분만을 당하는 delivery” 것이 아니라 “출산을 하는 give birth to” 것이 될 수 있다. (106쪽)”

 

아울러 각자의 상황 속에서 다른 방식의 출산을 경험한 세 여자의 대담이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도 굉장히 흥미롭다. 외국의 출산’과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다양한 출산 경험을 전해줌과 동시에, 성숙한 토론을 통해 한국의 출산 의료화와 임산부의 소외 문제에 관하여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의학이라는 학문의 지향점과 의료계의 현실,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의료 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며, 무엇보다 ‘출산’ 자체를 받아들이는 임산부의 자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감정적인 배려가 어려운 의료 시스템 하에서도, 인간적으로 배려해주던 의료진도 있었다며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책의 분량 내에서 미처 다 다루지 못한 생각들을 꺼내놓으며, 의료화 출산을 무작정 피하기보다는 조금 더 실질적인 시스템을 위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이 단번에 바뀌긴 힘들지라도 다양한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 자체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을 앞둔 여성들이 이 책을 포함하여 많은 정보를 접하고 대비하며, 어떠한 두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 52쪽,
그들 모두에게 나는 지극히 도구화된 대상이었다. 활짝 깬 의식으로 떨고 누워 있는 나를 직접 소독하면서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내 배에 대해 묻고 있는 그 인턴에게 나는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 여성, 인간, 현존재가 아니라 아기를 담고 있는 배 그 자체였다. 나의 신체는 그들에게 배로 환원되고 있었다.

● 90쪽,
출산 시의 여러 가지 변수와 복잡한 분만 상황에서 제왕절개술이란 의료진에게 통제가 용이한 방법이다. 즉, 의료화 출산 과정에서는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편리’하고 ‘깔끔’한 분만을 위해 수술이 선호될 수 있다. 특히, 류정미는 대부분의 제왕절개 수술은 산모나 아기에게 위험하고 꼭 필요해서 행해진 의료적 처치이기보다는, 기다리면 자연 출산을 할 수 있었던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102쪽,
그러나 그러한 배경과 구조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협의 가능성이 희박한 한국의 병원 출산 문화는 출산권을 위협하는 매우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료진이 산모인 여성들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터부시하는 것은 일종의 전문가적 폭력이다. 이러한 의료진의 태도는 훈련받은 의료적 지식만을 과학적이고 ‘귀한’ 유산이라고 여기는 지식의 배타적 권력화의 산물이다.

● 109쪽, (면담 중에서)
안타가운 게, 우리는 보통 의사를 사람으로 잘 안 봐요. 한국 사람들 인식에 의사는 신이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바라는 의사는 모든 걸 해결해 주고 포용해야 하는 존재인 건데, 의사도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길 원하면서, 과연 의사는 인간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지점은 좀 의문이에요. 의사의 근무 환경은 되게 비인간적이에요. 그리고 그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정작 우리가 내는 비용은 그에 비하면 되게 적죠. 저는 이 부분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131쪽,
의료화 출산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이 곧바로 탈의료화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의료화 출산의 문제는 곧 의료 권력화에 대한 문제 제기인데, 이것을 곧바로 탈의료화로 귀결하는 것은 비약이다. 탈의료화가 여성에게 더 큰 자유를 줄 것이라는 전제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자칫하면 탈의료화가 의료적 시선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더 많이 침투시키면서 기존에는 의료 시스템이 고려하지 않았던 더 많은 영역을 의료화하는 역습을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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