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 -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와 나눔 이야기
김완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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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나의 바운더리가 생깁니다. 사람마다 좁고 넓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바깥의 상황을 접해보지 않는다면 전혀 모른다는 것이지요. 내가 사는 세상은 참 좁은 것 같으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보지 못한 이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고요. 알게 모르게 도움을 얻고 있는 사람들도,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꼼꼼한 사회복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저자인 김완필 님은 제주에서 사회복지전담으로 일하고 있는 7급 공무원입니다. 제주의 5개 읍, 동에서 근무하며 이제는 만 11년이 넘는 경력으로 일하고 있지요. 요즘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나날이 평가절하되어가는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사회복지 전담으로는 많은 노고가 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저자 실제로도 근무 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읍 면 동 기관이라는 지역주민과의 최접점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의 희망을 전하고 있는 저자입니다.

<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 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되기까지 저자의 일생부터 시작됩니다. 인생의 의미와 정체성에 고민하던 청년이 갑작스럽게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다행히 개흉술이 아닌 시술을 통해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었어요. 삶의 희망을 품었던 그날을 기억하며, 누군가의 희망이 되겠다는 꿈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게 부푼 마음을 품고 도전했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삶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는 조사 업무의 혼란, 업무의 가중, 악성 민원 등의 소진적인 일상 속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때를 상기하며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당시엔 굳은 마음으로 사직을 생각했지만, 다시 일어난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일상 속에서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터라 그 내용이 궁금했는데요. 에세이 속에서 담담히 적어내려가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노고가 있더라고요. 존경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에서 저자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실제적으로 하는 일과 어려움을 설명하며 보여주고 있고요. 뒤이어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복지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복지의 사각지대 속에서 외면을 당하고 사회구성원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도 했던 저자입니다. 사회적 괴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조그마한 관심과 격려, 안정감을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요. 책 속에서 사회복지전담으로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감사와 응원이 진하게 드러나있기도 해요.


저자가 존경하는 분의 고견을 듣고, 공감하여 비전으로 삼은 세발자전거 이론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복지 체감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이론의 해석을 보고 다시금 여러 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물론 한 개인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큰 희망을 전해주는 너무도 감사한 일꾼이라고 느껴집니다. 수필추천 에세이추천 <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 속에는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여러 자리에서 애쓰고 있는 동료나 선배들에 대한 감사와 응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빛이 비치지 않는 이면을 바라보고, 도움을 주고, 희망의 빛과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앞날을 저도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햇볕이 비치지 않는 그늘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햇볕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소명이라는 소신을 현재까지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 P30

박수와 나눔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한 명에서 시작되어 점점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명의 시작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렵지만, 시작만 하면 전달이 쉽다는 점도 있습니다. - P114

사회복지의 완성은 정치, 행정(공공사회복지),

현장의 사회복지라는 세발자전거의 축,

세 개 바퀴의 결합과 균형이라는 것 - P161

여러분들이 힘들 때, 제 책을 한번 읽어봐 주세요. 그리고 갈대의 씨앗, 희망을 소중하게 품으세요. 폭풍이 지나가면 소중하게 품었던 갈대의 씨앗 희망이 뭉게뭉게 올라, 갈대라는 희망과 꿈의 실현이 되어 여러분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여러분들의 희망, 여러분들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꼭 꺼내서 소중히 안아 주고 품어 주세요.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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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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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합니다.

여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

책 속에서 표현되는 여름의

찬란한 배경을 볼 때면 훅 빠져듭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아마도 찌는 듯한 뜨거움을 잠시 잊어서겠지요.

최지은 시인의 첫 산문집이 나왔습니다.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봄의 싱그러움을 한껏 담은 시집을 냈던,

시인의 신간은 이번엔 여름입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이라

두근대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시인의 진솔한 고백


한 권의 시집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했던

최지은 시인의 첫 에세이가 정말 반가웠어요.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땐 놀라웠습니다.

그 시집에 담긴 시를 오래도록 곱씹고,

이런 시를 써내는 시인을

계속해서 동경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꿈결과도 같이 아름답고 슬펐던

시집을 잠깐 놓아두고, 이제는 새롭게 나온

에세이를 계속해서 매만질 수 있게 됐어요.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는 시인의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손녀가 좋아하던 오이지를

더욱 아삭하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소금물을 끓이다 뒤집어쓴,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작되어요.

시인은 할머니의 몸에 남은 상처를

'그 여름의 물방울'이라 칭하면서 말합니다.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18p)

슬프고 고약한 기억들을 사랑으로 덮어낸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드러냅니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다고,

시인은 특유의 언어로 아름답게 전해줍니다.


지금도 종종 불안에 시달리곤 하는

시인은 "나의 공기를 찾자(37p)" 되뇌며

천천히 숨을 고르곤 한다고요.

가끔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을 통해

안전함을 확인하는 시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보게 됩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나의 불안도 떠올리게 되었어요.

두려워하는 것을 만나지 않기 위한

잠깐의 멈칫함, 나의 벽들을 생각했어요.

글을 읽으면서 나를 겹쳐보면서,

시인이 언급하는 '햇빛 냄새(62p)'

천천히 기다려주는 주변인들의

마음과 같은 것들이 나를 밝고

환하게 만들어준다고 다시금 믿게 되었고 -

단번에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그래도 나에게도 틈틈이 찾아오고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85p)'라는

시인이 풀어놓은 내밀한 기억과,

시를 쓰는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 에세이에 실려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를 쓰는 사람이지만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필연은

어두운 기억에서부터 였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하는

이유에 대한 문장들이 가득했어요.

"누군가는 너무 바빠서 지나쳐야

하는 순간을, 꼭 해야 할 일처럼

붙들고 앉아 오래 응시하는"

그런 게 시인이 할 일이라고 믿는.

속도감 넘치는 세상과 다른

이 산문집의 맑고 찬란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시인은 묻습니다.

"당신의 여름 과일은 무엇인가요?"

참을 수 없이 뜨거우면서도

잊을 수 없는 여름의 맛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아마도 그건 저에게는

시큼하고 아삭한 오이지 같은 맛보다는

뜨겁고 짭조름한 맛이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시인의 할머니가 좋아했다던

은은하고 달달한 맛이 참을 수 없이 당겨서

호두맛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먹었답니다.


내 마음속 작은 어린이의 기억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다정다감한 언어로

치유와 위로를 건네주는

최지은 시인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

한여름에 딱 어울리는 이 산문집을 만나면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 P18

때때로 어떤 편지를 읽고 있으면 느리게 눈송이가 내려앉는 것 같다. 홀가분하고 가볍게. 넓고 환하게.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서부터 내게 온 눈송이를 상상해본다. 단번에, 사랑을 떠올리는 것이다. - P94

오래 품고 있던 시가 나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멀리 나아갈 것 같다.
시를 쓰는 삶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오간 데 없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호혜다. - P136

한번 해보는 거죠. 시작은 매번 어렵지만.
마음껏 기쁘고 기쁘게 돌아오기로.
문득 그렇게 시를 쓰고 싶고요.
돌아온 그 자리에는 처음 문을 열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쁨이 기다릴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나의 첫 여름 과일 이야기입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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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8
프란츠 카프카 지음, 편영수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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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의미가 깊은 이름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소설 <변신>으로 그를 떠올릴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 소설 말이지요. <변신>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 외에 남긴 작품들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직도 먼 거리에 있지만 너무나도 알고 싶은 그 이름, 카프카입니다.


세계시인선 시리즈는 이렇게 원문과 함께 페이지가 구성되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독일어 원문과 함께 만나보는 프란츠 카프카의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은 국내 최초로 출간된 시집인데요. 한독문학번역상 수상과 한국카프카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편영수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무한 신뢰를 갖게 하는 신간도서입니다.

문학 쪽에선 카프카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인용되며 불리는, 범접할 수 없는 고유명사와도 같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카프카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보긴 했으나 잘 알지 못하는 축에 속하는데요.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시전집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책의 중간중간 프란츠 카프카의 드로잉이 수록되어 있고요. 개수를 세보자면 60점 정도로, 그야말로 소장 가치 넘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자체도 왠지 묘한 인상을 주거든요. 쓱쓱 그린 드로잉은 얼핏 보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느낌 있고 감각적이어서 자꾸만 펼쳐보게 됩니다.


카프카의 시를 처음으로 만나보았습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이나 다른 시인선 등을 통해 외국시를 만나보면, 한국시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 있는데요. 그런 차이를 두고 봐도 카프카의 시는 독특하며 뭐라 표방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을 읽어보면 그의 시는 마치 아포리즘처럼 짧게 짧게 구성이 되어 있는 모습인데요. 은유적 표현이 정말 많아서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카프카의 시는 산문과 시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시전집은 마치 시나 아포리즘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면서도, 행갈이가 없다면 마치 산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일부만 발췌를 하긴 했지만 인생에 대한 어떤 물음과 카프카의 내면이 만나 특별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고독과 권태, 실존,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허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들이 많았습니다.





사후 100주년 기념 시전집이기에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구성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세계시인선 시리즈 속에 작가의 소개와 사진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특히나 이번 책 속에서는 풍성한 부록이 있었어요. 작가 연보와 각종 사진들을 통해 완독을 한 후에도 진한 여운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특히나 해설이 꼼꼼하게 잘 되어 있어서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카프카의 시는 의외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호평과 혹평을 번갈아 받기도 했다는 사실. '여기에서 떠나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 깊어서 계속 궁금했는데, 교수님의 해설 속에서 '지금 여기'란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특정한 장소, 모든 장소, 외견상 정상적인 인간 집단) (238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카프카의 시는 '파편의 시'라는 번역가님의 표현이 제대로라고 느껴집니다. 약간 어렵기는 했으나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었어요.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움직임의 행복,
협소함의 절망. - P53

악이 놀라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악은 갑자기 몸을 돌려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오해했어."
그런데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 P61

꿈들이 도착했다, /꿈들은 강을 따라서 내려왔다, /꿈들은 사다리를 타고 /부두의 벽을 오른다. /사람들은 서 있다, /꿈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꿈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오직, /어디에서 왔는지를 / 모른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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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 경조증과 우울 사이에서, 의사가 직접 겪은 조울증의 세계
경조울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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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혹은 불안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요즘의 생각.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감추고 있는 이면이 있고, 겉모습과는 다르게 곪아가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질환에 대해 언급하기를 기피하고 쉬쉬하던 예전보다 자유로워진 현재의 상황이다. 정신질환을 겪은 에피소드나 경험담을 꺼내놓은 에세이 책도 많이 늘었고, 정신의학과를 주기적으로 찾는 사람들도 늘었으니.

 에세이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은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책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질환인 우울증, ADHD, 조현병 등을 제외하고, 흔히 그 경험담을 많이 듣지 못했던 '2형 양극성 장애'를 겪은 실제 의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리학, 정신의학 관련 도서가 아닌 개인의 에세이에 국한해선 흔히 볼 수 없던 책이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나도 '2형 양극성 장애'라 하니 뚜렷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양극성 장애나 조울증에 대해선 들어봤지만 '2형'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기분장애의 일종인 양극성 장애에선 우울증과 다르게 조증이나 (정도가 더 약한) 경조증이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었다.



1형 양극성 장애 : 조증이 더 심한 경우

2형 양극성 장애 : 경조증과 우울 삽화가 두드러짐



주로 우울한 기간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초기엔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이후 오랜 시간이 걸려 2형 양극성 장애로 판단이 된다고 한다. 책의 초반, 증상의 정의부터 무척 흥미로웠다.



 에세이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은 저자가 2형 양극성 장애를 경험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낸 책이다. 평소보다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며 충동적 행동을 하는 경조증 상태와, 심각한 우울 삽화의 기간을 오갔던 기록을 전한다.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들 중에선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며 치료를 소홀히 하거나 거부를 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저자는 특히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의 증상을 믿고 싶은 대로 판단하는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경조증 상태가 돌아오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 '좋아졌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약을 먹지 않고 버티기도 했고, 가짜 자존감을 높이는데 매달리기도 했다.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은 채로 증상은 반복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병을 수용하기까지의 시간들이 책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자신의 병을 제대로 자각하고 꾸준히 약을 먹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안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저자.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만성질환에 해당되기에, 에세이 책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은 완치의 기록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직접 겪은 신랄한 경험들 속에서 부딪혔던 수용과 용기의 과정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겠다.




나는 도대체 왜 우울한 걸까.

(...) 나는 우울할 자격이 있을까? - P45

핑계는 다양했다. 사실은 그들에게

정신질환자로 각인되고 싶지 않았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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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연인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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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연인이기만 했던 사람은 이제 배우자가 되어 나의 공간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다채롭고 많은 장소를 거쳐 왔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여러 목적을 가진 집을 공유한다. 우리 둘 다의 소유이자 모든 욕구가 충족된 장소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우리가 나다닌 장소를 생각하곤 한다. 주말에 다시 그곳을 거닐며 기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저 사랑뿐인 젊은 연인들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시금 느끼기도 한다.

 

연애 초기, 일이 너무 바빠 개인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연인과 자동차 안에서 무한하고 끈질긴 대화로 사랑을 키워나갔다. 주말엔 시끌벅적한 거리로 나가기도 하고, 우리만의 장소를 찾아 끝없이 헤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은 가림막도 비를 피할만한 지붕도 없었고,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싼 막이 존재했다고 여긴다. 사랑의 작동으로 이루어진, 우리만 아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되었다.

「장소의 연인들」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을 '수행했던' 모든 장소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장소가 연인들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 수행성의 문제이다 (169쪽)"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연인들의 장소는 일반적인 사회적 규정과 분류, 장소들의 위계를 무의미하게 한다. 연인들은 장소를 탄생시키고 발명한다. 연인들은 그들만의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고.

 

저자는 다양한 장소와 예시가 될만한 문헌들을 통해 연인들의 사랑과 장소의 속성을 발견한다. (픽션인지 모를) 저자와 그의 연인이 만들어낸 특별한 장소도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연인이었던 우리의 장소와 경로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의 장소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장소의 속성을 꿰뚫어보기도, 뒤집어보기도, 다시 낯설게 보기도 한다. 이 특별한 시선과 사유가 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 + 중간중간 책과 글에 대한 사유의 문장도 근사했다.


연인들이 몸을 담는 순간 이륙하는 우주선이 된다는 욕조 (57쪽), 두 사람의 최소 공간이 만들어지는 우산 속 (69쪽),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정차한다면 방이 되기를 바라게 되는 자동차 (92쪽) 등, 연인들의 매력적인 장소는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로 더욱 남다른 장소가 된다. 저자의 경험을 통한 장소와 그가 관찰한 연인들의 장소들, 그리고 나와 연인의 장소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이는 같으면서도 다를 것이다. 사랑하다-의 감각 또한 다를 것이니까.


인문 에세이, 라고 되어 있지만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한 책이다. 연인과 사랑에 관한 특별한 사유를 만나보고 색다른 시선을 살펴보고 싶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책을 찾거나 고른다는 것은 자기만의 종교를 찾기 위한 영혼의 편력이기도 하다. 자기만을 위한 일생일대의 단 한 권의 책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갈증을 이곳에서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점은 바깥 세계의 번잡함과 계산들을 피해 숨어드는 동굴과 같다. 그 동굴에서 연인을 만난다면 서점의 영적인 뉘앙스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 P81

기차역의 시간성은 가독성이 없다. 하나의 장소에는 하나의 시간이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장소는 무수한 시간의 주름을 품고 있다. 기억 너머의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은 캄캄한 침묵에 둘러싸여 있다. 기차역의 시간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현기증 나는 개발의 속도감은 시간의 입을 다물게 한다. - P112

떠나기 위해서만 잠깐 머무르는 환승 공항의 이미지는 연인들의 시간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다. 스크린에 명멸하는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공항 내부의 시간을 추상적으로 분절한다. (…) 공항에서는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아무도 정체성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익명성이 공항을 무중력의 공간으로 만든다. - P115

어떤 슬픔은 수영장의 물처럼 귓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흘러나오지 않고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가끔은 그 물들이 몸 안에서 출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지금 사는 방에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검은 방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방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 입구를 영원히 찾지 못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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