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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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위해 쓰여진 책 같지만 소설가를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도 좋을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승우, 마음산책)는 좁은 지면에 기실 정석만을 담아 놓았다. 입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손으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글이 아닌가. 어머니가 아이의 도시락을 싸주면서 쓰는 짧은 메모부터 편지나 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글쓰기와 무관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작은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듯, 삶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가 모이면 그것이 곧 소설이 되지 않을까.

'잘 쓰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읽어야 한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이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소설로 쓴다면 대하소설 10권 분량이 될지 몰라도 그것은 단지 경험에 머물 뿐,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경험이 없어도 쓸 수 있는 것은 그가 '읽어온 행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읽기'는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느리게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속독의 유용성이 적용되는 책들도 있지만 특히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권할 만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천천히 읽을 때 문장들은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추동한다. 소설 문장들은 독자인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나는 대들거나 반문하거나 수용한다. 나의 대듦이나 반문이나 수용에 대한 소설 문장들의 대듦이나 반문이나 수용이 이어지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거기에 하나의 유연하고 둥글고 탄력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그 공간에서 소설이 태어난다. 그럴 때 새로 태어나는 소설은 그 책의 잠재의식에서 불러내어진, 기억되어진 소설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책들은 미래의 책들을 기억 속에 품고 있는 셈이다. - 책 속에서

하루에 책을 여러 권 읽는 사람은 존경스럽지만,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한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문장을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곱씹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설가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할 말이 있는 사람만 마이크를 잡아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일 것이다. '누군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기 때문에, 남들이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할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에 지극히 만족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지상에 견고한 집이 있기에 상상 속에 굳이 집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할 말이 있다고 아무 이야기나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고 '적어도 누군가 들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요청이 결례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신에게도 절실하지 않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별화된 시선에 의해 '있는' 현실의 어떤 것은 배제되고 어떤 것은 선택된다. 가을에 대해 쓸 때, 가을의 모든 재료들을 다 동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에 따라, 주제에 따라, 필요한 것만 취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다 쓰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써야 한다. 어차피 다 쓸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을 '있는 대로' 베끼지 말고 '보는 대로' 가공하라고 하는 것은 그런 뜻이다. - 책 속에서

현실을 '있는 대로'가 아니라 '보는 대로' 가공하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낯익은 일상을 낯설은 일상'으로 바꾸는 것이 소설가의 몫이라고.

덧붙여 저자는 소설을 쓰기 전에 먼저 밑그림을 다 그려 놓고 써야지 쓰다 보면 어찌 되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했다. 일단 판을 먼저 짜놓고 나서 그 판에 알맞은 이야기를 메꾸어 나가듯 써야 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문장으로 써야하는데 여기서 좋은 문장이란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억지로 꾸며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소설가는 자기만의 문체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진실은 없고 수식어만 남발하는 형태의 문장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의미 전달이 잘 되도록 문법적으로 맞고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없는 문장이어야 하며,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문장, 내포가 지나치게 넓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문장은 피해야 한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고 표현의 효과를 높이는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때 자기만의 문장을 가지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자기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자기가 쓴 문장이 상투적이고 고루하지 않은지 평가해보자. 저자의 말처럼 '진실하고 멋있는데다가 개성까지 갖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글'이 될 것이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수록해 놓은 책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을지라도 소설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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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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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DNA 진단 등 유전자 정보를 다루는 회사에 다니는 이즈미와 스스로를 낙서 제거 전문가로 일컫는 하루는 형제다. 인물들은 졸업 후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사원, 공무원을 꿈꾸는 평범한 우리들에 비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직업은 이채롭다. 이즈미와 하루는 똑같이 ‘봄’이라는 뜻으로 둘을 묶어 두려는 부모의 마음이 내포된 이름이다.


아름다운 어머니가 가츠라기라는 인물에게 몹쓸 짓을 당해 하루를 잉태하게 되고, 부모는 하루를 낳기로 결심한다. 차라리 하루를 포기해버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낳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루의 자살로 시작하는 소설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병으로 돌아가신 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듯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뭔가 남과는 다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하루,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고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생부를 찾아내 살해하게 된다. 


일련의 내용들이 무겁다. 무거운 화제를 정크 푸드를 먹듯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의 입담은 그래서 대단해보이기까지 했다. 유쾌한 어조로 묘한 대비를 이루며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되었다.


중력은 무엇인가. 불가항력이다. 하루가 그토록 부인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듯 자신의 몸속에 더러운 생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한사코 거부하고 싶지만 몸부림칠수록 생채기만 깊게 남을 뿐이다.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뉴스에서나 볼 법한 사건이 나의 일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 가족과 본인의 상처를 섬세하고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사회 비판 기능이 가미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감정에 호소하는 연애 소설이나, 역사에 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역사 소설에 비해 추리 소설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독자들에게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증폭시켜주고 예측불허의 결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중력 삐에로>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삐에로의 모습을 하루에 투사시켜 놓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출생의 비밀, 그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고난은 시작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유전자는 유전자일 뿐. 인간은 유전자보다는 환경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희망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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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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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마이켈슨의 <나무 소녀>는 과테말라 내전 때 학살 현장에 있었던 한 소녀의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소설이다. 과테말라 내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내전으로, 미국이 지원하는 과테말라의 반민주적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의 투쟁으로 시작되었고, 1996년 반군 세력인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과 과테말라 정부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36년간의 내전은 끝이 났다고 한다.

캄캄한 밤 불빛이 나방을 끌어들이듯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무들은 일제히 자기 가지 위로 올라오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고 가브리엘라는 생각했다. 열다섯 꿈 많은 소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웬만한 나무에는 가뿐히 오를 수 있었는데 그런 가브리엘라를 두고 사람들은 ‘나무 소녀’라 불렀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키체어로는 ‘라 알리 레하윱’ 이라고.

가브리엘라의 열다섯 번째 생일 파티가 열려 마을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던 그날, 총을 멘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순식간에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더욱 나쁜 일은 가브리엘라의 오빠 호르헤가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마을은 어느새 긴장감이 감도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나는 아침을 사랑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은 꼭 찾아오기 때문이다. 군대와 반군이 아무리 들이닥쳐도 매일 아침 우리 마을이 장난기 넘치는 게으른 동물들처럼 기지개켜고 웃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강아지는 멍멍 짖고 수탉은 꼬끼오 울고 엄마들은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이웃들은 서로 인사하며 새날을 맞이한다. - 책 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정치나 권력은 평범한 농부들에게는 관심 밖의 것이었다. 오로지 가족을 돌보고 먹고살기 위해 식량을 생산하는 것 말고는 쏟을 관심이 없는 그들에게 왜 이런 비극이 찾아오게 된 걸까. 호르헤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정부군 쪽에서는 반군의 짓이라고 하고, 반군 쪽에서는 정부군의 짓이라 했다.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던 가족들은 군인들의 말이라면 이제 신용할 수가 없었다.

이후 총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더니 결국 군인들은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가브리엘라는 군인들의 손에 가족을 잃고 여동생과 함께 힘겨운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인들은 면도를 하고 교대로 몸과 군복에서 피를 씻어 냈다. 깔끔한 모습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달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결코 깨끗하게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이들이 모두 지옥에 떨어지길 나는 빌었다. - 책 속에서

참혹한 학살을 자행한 군인들에게는 이념이 있었던 걸까. 어떤 이념을 쟁취하기 위해 수반되는 일련의 만행들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부군도 반군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이다. 단지 과테말라에 태어나서 지금 그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가혹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 군인들도 처음에는 호르헤나 가브리엘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을텐데 어쩌면 그리 잔인한 인간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절박하게 바라는 것은 희망이다.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 가족들이 고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희망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고 스러져 간다. - 책 속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도착한 가브리엘라는 산미겔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더 이상 군인들을 피해 도망하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도 가브리엘라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간답게 생활하기에 그곳 시설은 너무나 열악했다.

가브리엘라는 매일 눈 뜨자마자 무언가에 빠져듦으로써 추억이나 생각이 떠오를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지난 날 단란했던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 될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할머니들과 도망 중에 만났던 아기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인 동생 알리시아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내전은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평화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긴 역사를 되돌아보며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여졌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 청소년들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일인지 알기 힘들 것이다. 세상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전쟁을 넘어서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나 쉽게 이해시켜주는 <나무소녀>는 기실 좋은 책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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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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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면 모처럼 푹 쉰다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잠만 쿨쿨 자고. 그러니 어디서 음악회가 있다 해도, 외국에서 정상급 음악가가 온다 해도 들으러 갈 기회가 없을 수밖에. 결국 음악이라는 어떤 아름다운 세계에는 전혀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이만큼 불쌍한 무경험은 없다고 생각해. 빵과 관련된 경험은 절실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저열한 거지. 빵을 떠나고, 물을 떠난 고상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지. 자네는 나를 아직도 철부지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살고 있는 고상한 세계에서는 자네보다 내가 훨씬 연장자라고 생각하네. -27쪽

개미가 방으로 기어드는 계절이 되었다. 다이스케는 커다란 수반에 물을 붓고 그 안에 새하얀 은방울꽃을 줄기째 담갔다. 떼지어 핀 작은 꽃들이 짙은 무늬가 있는 수반 가장자리를 뒤덮었다. 수반을 움직이면 꽃이 넘실거렸다. 다이스케는 그것을 큰 사전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 옆에 베개를 놓고 벌렁 누웠다. 검은 머리가 수반의 그림자에 포개지니 꽃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기분 좋게 코에 스몄다. 다이스케는 그 향기를 맡으면서 선잠을 잤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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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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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근사한 자기만의 서재를 꿈꿀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쏟아질 듯 많은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 같다. 아름다운 서재를 가꾸는 일,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책을 모으기란 쉽지 않고,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책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도 힘든 까닭이다.

<작가의 방>에는 여섯 명의 문인들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다.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서재 사진과 그림이 글 못지않게 참 좋다. 언제부터 이런 그림들이 좋아지게 되었을까. 손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안희원의 그림은 자꾸만 책을 펼쳐보게 만들었다.

먼저 이문열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진이 전면에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재가 아니라 도서관 같은 분위기로 이문열에게 이곳은 '머리를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문열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재를 모아 새로운 문학 수업의 틀을 세우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있던 영국의 블룸즈베리 그룹 같은 하나의 문학적 그룹을 형성하려는 야심'을 지닌 작가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문학 지망생을 위한 서원건설'이라는 야심을 실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김영하는 집에 있는 서재 대신 교수 연구실을 공개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곳이 '고래 뱃속' 같단다. 그 까닭은 고래 뱃속처럼 어두컴컴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의 소설에 그림과 관련된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지만, 자폐아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그의 방이라고 덧붙인다. 서재에는 3백 권쯤 돼 보이는 책이 있는데 좁은 연구실로서는 적은 편이 아니며 자연 과학 서적은 집에 대부분 집에 두었다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꽃집에 들러 꽃을 사 온다는 강은교의 서재는 어떨까. 저자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는 하얀 글라디올러스와 보라색 여름국화가 조화로워 보였다고 한다.

그는 북쪽 서재의 창가로 데리고 가더니 창턱에 걸터앉는다. 바깥 창과 안쪽 창 사이에 반달 모양의 공간이 있다. 한 사람이 올라가 다리를 펴고 앉으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남을 정도다. …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도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 하찮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다. 또한 시상과 소재를 불러 모아 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귀엽기조차 한 공간이다. 삶의 쓸쓸함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퉁이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이곳을 시인은 '은포'라 불렀다.

딸과 둘이 생활하는 시인은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도 천식기가 있어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두지 않고 부채로 여름을 난다. 베란다에 있는 동양란과 여러 화초들,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으로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지방에 있다 보니 문학 강연회에 자주 초청을 받게 된다는 시인은 아마추어 시인들과 호흡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자신의 서재를 '오락실'이라고 표현하는 공지영의 서재는 우아했다. 유럽풍 가구들이 이채로웠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준 후 집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잘 안 써지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이 책 저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도 하다가, 문득 필요한 책이 생각나면 인터넷을 검색해 주문을 하고, 근처 마트나 백화점으로 시장도 보러 가는 공지영의 일상을 저자는 자상하게 들려준다.

예전에는 한 달에 책을 100만원 어치나 사기도 했다는 공지영의 서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방이었다. 고풍스런 유럽가구의 역할이 컸던 걸까. 책과 잘 어우러진 모습은 여성 취향에 딱 알맞아 보였다.

김용택 그의 서재는 세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섬진강가의 고향 집, 전주의 아파트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그를 탁월한 시인으로 키워 낸 가장 원형적 공간은 섬진강과 고향 집이라고 했다. '끊이지 않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빛과 물소리, 강에 드리워진 산그늘은 그를 키워준 시적 자양'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향집과 아파트의 서재를 한 면에 대조적으로 배치해 둔 사진이 인상적이다. 하나는 고전적이고 나머지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앉은뱅이책상과 의자가 있는 책상이 각각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섬진강가의 조약돌은 오랜 세월 물결에 떠밀려 서로 부딪치며 둥글게 마모돼 간다.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도 젊은 날의 강퍅함보다 마음 좋은 시골 시인의 풍모가 넉넉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변치 않는 것은, 그 속에서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의지인 듯싶다.
-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신경숙의 서재다. 책에 소개된 여섯 개의 서재 가운데 나는 신경숙의 서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서재를 꾸미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부터 큰 거실이 하나의 서재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와 겹치는 책이 많아 자신의 책은 부모님 집으로 내려 보냈다는 데도 책이 무척 많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대형 책장 세 개가 있어 책이 빼곡한데 이채로운 공간이었다.

옅은 색 원목 책장에서 스며 나오는 밝음과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책을 구입할 때 함께 주었던 엽서 속에도 나오는 이 모습을 나는 책상 벽에 붙여 두었다.

새벽잠이 없는 편이라 새벽에 쓰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신경숙은 그 시간은 전화도 안 와서 방해도 안 받고, 그래서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매일 글을 쓰지는 않고 하루 몇 시간씩 정해두고 작업하지도 않으며, 자정 무렵 쓰기 시작하는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에 소개된 문인들 서재의 공통점은 책이 참 많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독특한 모습의 서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소박하지만 소중하고 가치있는 나만의 서재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몰려왔다. 그것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꾸게 될 행복한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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