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소설가를 위해 쓰여진 책 같지만 소설가를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도 좋을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승우, 마음산책)는 좁은 지면에 기실 정석만을 담아 놓았다. 입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손으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글이 아닌가. 어머니가 아이의 도시락을 싸주면서 쓰는 짧은 메모부터 편지나 일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글쓰기와 무관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작은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듯, 삶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가 모이면 그것이 곧 소설이 되지 않을까.

'잘 쓰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읽어야 한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이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소설로 쓴다면 대하소설 10권 분량이 될지 몰라도 그것은 단지 경험에 머물 뿐,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경험이 없어도 쓸 수 있는 것은 그가 '읽어온 행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읽기'는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느리게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속독의 유용성이 적용되는 책들도 있지만 특히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권할 만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천천히 읽을 때 문장들은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추동한다. 소설 문장들은 독자인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나는 대들거나 반문하거나 수용한다. 나의 대듦이나 반문이나 수용에 대한 소설 문장들의 대듦이나 반문이나 수용이 이어지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거기에 하나의 유연하고 둥글고 탄력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그 공간에서 소설이 태어난다. 그럴 때 새로 태어나는 소설은 그 책의 잠재의식에서 불러내어진, 기억되어진 소설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책들은 미래의 책들을 기억 속에 품고 있는 셈이다. - 책 속에서

하루에 책을 여러 권 읽는 사람은 존경스럽지만,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한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문장을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곱씹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설가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할 말이 있는 사람만 마이크를 잡아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일 것이다. '누군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기 때문에, 남들이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할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실에 지극히 만족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지상에 견고한 집이 있기에 상상 속에 굳이 집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할 말이 있다고 아무 이야기나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고 '적어도 누군가 들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요청이 결례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신에게도 절실하지 않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별화된 시선에 의해 '있는' 현실의 어떤 것은 배제되고 어떤 것은 선택된다. 가을에 대해 쓸 때, 가을의 모든 재료들을 다 동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에 따라, 주제에 따라, 필요한 것만 취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다 쓰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써야 한다. 어차피 다 쓸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을 '있는 대로' 베끼지 말고 '보는 대로' 가공하라고 하는 것은 그런 뜻이다. - 책 속에서

현실을 '있는 대로'가 아니라 '보는 대로' 가공하라고 강조하는 저자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낯익은 일상을 낯설은 일상'으로 바꾸는 것이 소설가의 몫이라고.

덧붙여 저자는 소설을 쓰기 전에 먼저 밑그림을 다 그려 놓고 써야지 쓰다 보면 어찌 되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했다. 일단 판을 먼저 짜놓고 나서 그 판에 알맞은 이야기를 메꾸어 나가듯 써야 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문장으로 써야하는데 여기서 좋은 문장이란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억지로 꾸며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소설가는 자기만의 문체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진실은 없고 수식어만 남발하는 형태의 문장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의미 전달이 잘 되도록 문법적으로 맞고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없는 문장이어야 하며,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문장, 내포가 지나치게 넓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문장은 피해야 한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고 표현의 효과를 높이는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때 자기만의 문장을 가지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자기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자기가 쓴 문장이 상투적이고 고루하지 않은지 평가해보자. 저자의 말처럼 '진실하고 멋있는데다가 개성까지 갖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글'이 될 것이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수록해 놓은 책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을지라도 소설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