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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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마이켈슨의 <나무 소녀>는 과테말라 내전 때 학살 현장에 있었던 한 소녀의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소설이다. 과테말라 내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내전으로, 미국이 지원하는 과테말라의 반민주적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의 투쟁으로 시작되었고, 1996년 반군 세력인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과 과테말라 정부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36년간의 내전은 끝이 났다고 한다.

캄캄한 밤 불빛이 나방을 끌어들이듯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무들은 일제히 자기 가지 위로 올라오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고 가브리엘라는 생각했다. 열다섯 꿈 많은 소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웬만한 나무에는 가뿐히 오를 수 있었는데 그런 가브리엘라를 두고 사람들은 ‘나무 소녀’라 불렀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키체어로는 ‘라 알리 레하윱’ 이라고.

가브리엘라의 열다섯 번째 생일 파티가 열려 마을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던 그날, 총을 멘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순식간에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더욱 나쁜 일은 가브리엘라의 오빠 호르헤가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마을은 어느새 긴장감이 감도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나는 아침을 사랑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은 꼭 찾아오기 때문이다. 군대와 반군이 아무리 들이닥쳐도 매일 아침 우리 마을이 장난기 넘치는 게으른 동물들처럼 기지개켜고 웃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푹 자고 일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강아지는 멍멍 짖고 수탉은 꼬끼오 울고 엄마들은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이웃들은 서로 인사하며 새날을 맞이한다. - 책 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정치나 권력은 평범한 농부들에게는 관심 밖의 것이었다. 오로지 가족을 돌보고 먹고살기 위해 식량을 생산하는 것 말고는 쏟을 관심이 없는 그들에게 왜 이런 비극이 찾아오게 된 걸까. 호르헤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정부군 쪽에서는 반군의 짓이라고 하고, 반군 쪽에서는 정부군의 짓이라 했다.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던 가족들은 군인들의 말이라면 이제 신용할 수가 없었다.

이후 총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더니 결국 군인들은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가브리엘라는 군인들의 손에 가족을 잃고 여동생과 함께 힘겨운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인들은 면도를 하고 교대로 몸과 군복에서 피를 씻어 냈다. 깔끔한 모습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달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결코 깨끗하게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이들이 모두 지옥에 떨어지길 나는 빌었다. - 책 속에서

참혹한 학살을 자행한 군인들에게는 이념이 있었던 걸까. 어떤 이념을 쟁취하기 위해 수반되는 일련의 만행들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부군도 반군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이다. 단지 과테말라에 태어나서 지금 그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가혹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 군인들도 처음에는 호르헤나 가브리엘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을텐데 어쩌면 그리 잔인한 인간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절박하게 바라는 것은 희망이다.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 가족들이 고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희망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고 스러져 간다. - 책 속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도착한 가브리엘라는 산미겔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더 이상 군인들을 피해 도망하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도 가브리엘라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간답게 생활하기에 그곳 시설은 너무나 열악했다.

가브리엘라는 매일 눈 뜨자마자 무언가에 빠져듦으로써 추억이나 생각이 떠오를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지난 날 단란했던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 될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할머니들과 도망 중에 만났던 아기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인 동생 알리시아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내전은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평화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긴 역사를 되돌아보며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여졌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 청소년들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일인지 알기 힘들 것이다. 세상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전쟁을 넘어서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나 쉽게 이해시켜주는 <나무소녀>는 기실 좋은 책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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