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근사한 자기만의 서재를 꿈꿀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쏟아질 듯 많은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 같다. 아름다운 서재를 가꾸는 일,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책을 모으기란 쉽지 않고,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책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도 힘든 까닭이다.

<작가의 방>에는 여섯 명의 문인들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다.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서재 사진과 그림이 글 못지않게 참 좋다. 언제부터 이런 그림들이 좋아지게 되었을까. 손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안희원의 그림은 자꾸만 책을 펼쳐보게 만들었다.

먼저 이문열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진이 전면에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재가 아니라 도서관 같은 분위기로 이문열에게 이곳은 '머리를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문열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재를 모아 새로운 문학 수업의 틀을 세우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있던 영국의 블룸즈베리 그룹 같은 하나의 문학적 그룹을 형성하려는 야심'을 지닌 작가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문학 지망생을 위한 서원건설'이라는 야심을 실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김영하는 집에 있는 서재 대신 교수 연구실을 공개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곳이 '고래 뱃속' 같단다. 그 까닭은 고래 뱃속처럼 어두컴컴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의 소설에 그림과 관련된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지만, 자폐아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그의 방이라고 덧붙인다. 서재에는 3백 권쯤 돼 보이는 책이 있는데 좁은 연구실로서는 적은 편이 아니며 자연 과학 서적은 집에 대부분 집에 두었다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꽃집에 들러 꽃을 사 온다는 강은교의 서재는 어떨까. 저자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는 하얀 글라디올러스와 보라색 여름국화가 조화로워 보였다고 한다.

그는 북쪽 서재의 창가로 데리고 가더니 창턱에 걸터앉는다. 바깥 창과 안쪽 창 사이에 반달 모양의 공간이 있다. 한 사람이 올라가 다리를 펴고 앉으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남을 정도다. …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도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 하찮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다. 또한 시상과 소재를 불러 모아 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귀엽기조차 한 공간이다. 삶의 쓸쓸함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퉁이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이곳을 시인은 '은포'라 불렀다.

딸과 둘이 생활하는 시인은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도 천식기가 있어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두지 않고 부채로 여름을 난다. 베란다에 있는 동양란과 여러 화초들,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으로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지방에 있다 보니 문학 강연회에 자주 초청을 받게 된다는 시인은 아마추어 시인들과 호흡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자신의 서재를 '오락실'이라고 표현하는 공지영의 서재는 우아했다. 유럽풍 가구들이 이채로웠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준 후 집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잘 안 써지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이 책 저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도 하다가, 문득 필요한 책이 생각나면 인터넷을 검색해 주문을 하고, 근처 마트나 백화점으로 시장도 보러 가는 공지영의 일상을 저자는 자상하게 들려준다.

예전에는 한 달에 책을 100만원 어치나 사기도 했다는 공지영의 서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방이었다. 고풍스런 유럽가구의 역할이 컸던 걸까. 책과 잘 어우러진 모습은 여성 취향에 딱 알맞아 보였다.

김용택 그의 서재는 세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섬진강가의 고향 집, 전주의 아파트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그를 탁월한 시인으로 키워 낸 가장 원형적 공간은 섬진강과 고향 집이라고 했다. '끊이지 않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빛과 물소리, 강에 드리워진 산그늘은 그를 키워준 시적 자양'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향집과 아파트의 서재를 한 면에 대조적으로 배치해 둔 사진이 인상적이다. 하나는 고전적이고 나머지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앉은뱅이책상과 의자가 있는 책상이 각각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섬진강가의 조약돌은 오랜 세월 물결에 떠밀려 서로 부딪치며 둥글게 마모돼 간다.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도 젊은 날의 강퍅함보다 마음 좋은 시골 시인의 풍모가 넉넉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변치 않는 것은, 그 속에서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의지인 듯싶다.
-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신경숙의 서재다. 책에 소개된 여섯 개의 서재 가운데 나는 신경숙의 서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서재를 꾸미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부터 큰 거실이 하나의 서재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와 겹치는 책이 많아 자신의 책은 부모님 집으로 내려 보냈다는 데도 책이 무척 많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대형 책장 세 개가 있어 책이 빼곡한데 이채로운 공간이었다.

옅은 색 원목 책장에서 스며 나오는 밝음과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책을 구입할 때 함께 주었던 엽서 속에도 나오는 이 모습을 나는 책상 벽에 붙여 두었다.

새벽잠이 없는 편이라 새벽에 쓰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신경숙은 그 시간은 전화도 안 와서 방해도 안 받고, 그래서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매일 글을 쓰지는 않고 하루 몇 시간씩 정해두고 작업하지도 않으며, 자정 무렵 쓰기 시작하는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에 소개된 문인들 서재의 공통점은 책이 참 많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독특한 모습의 서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소박하지만 소중하고 가치있는 나만의 서재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몰려왔다. 그것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꾸게 될 행복한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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