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딸
태혜숙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3년 5월
품절


지금 내 앞에는 북해가 차가운 잿빛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평선은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바다와 잿빛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있을 뿐이다. 그 위로 한 마리 새가 ㄴ라개를 활짝 ㅇ려고 심연을 뚫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여러 달 동안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고 한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쓰며 이 곳에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그저 한 시간 정도 즐거운 기분으로 잃도록 창조된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황량한 현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정신을 고양시키는 그런 교향악도 아니다. 내 이야기는 절망과 불행 속에서 쓴 인생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묘한 인연으로 우연히 발붙이고 살게 된 대지에 관해 쓰려 한다. 그 중에서도 비천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슬픔,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사랑에 관해 쓰려고 한다. -11-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품절


조금은 갈색빛이 도는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니 지적인 이마가 드러났다. 넓은 이마 밑의 정열적인 눈동자는 온 세상의 빛을 빨아들였다가는 다시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같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한 번 더 저 눈동자에 그날과 같은 눈부신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시선을 비키며 걷기 시작한 홍이는 과거를 완전히 잘라 내버린 사람 같다. 그날의 눈동자에 어렸던 빛은 거기에 없다. 그녀는 이미 다른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14쪽

눈동자 깊은 곳에서 기억의 빛이 겹겹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빛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 순간 나는 최홍의 웃는 얼굴을 떠올린다. 그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1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라시스 손상집중 클리닉 트리트먼트 - 200ml
애경
평점 :
단종


이것 저것 트리트먼트제를 사용해봤는데 역시 케라시스 향이 좋더군요..

샴푸 후 물기를 거의 제거하고 발라서 몇 분 뒤 씻어내면 되지요.

방법도 간단하고.. 하는 동안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네요~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아요.. 묽은 것보다는 묽지 않은 게 좋다는 데.. 그런 점에서도 맘에 들어요~

머릿결이 신경 쓰이는 분들은 린스 대신 사용해 보세요! 좋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에 등장하는 사진 한 장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해주고 있는 듯 인상적이다. 비가 오는 것 같지만 비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진 영상은 소설처럼 묘한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있었다.

소설은 평온한 일상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간다. 주인공 다이스케, 그는 부잣집 아들로 한량이다. 물론 이 정도로 그를 말하기는 뭔가 부족하지만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그는 이렇다 할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열정적이거나 조급하거나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인물로 비춰진다. 말하자면, 생활을 위한 노동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노동을 위한 노동만이 신성한 것이라며 주위 사람들을 냉소하고 있다.

전에 읽다가 만 양서를 집어 들어 책갈피가 꽂혀 있는 곳을 펴보니 전후 관계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다이스케의 기억력에 비추어 그런 현상은 드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상당한 독서가였다. 졸업 후에도 의식주의 구애를 받지 않고 책을 사봄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하루를 보내게 되면 습관상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대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되도록 틈을 내서 활자와 가까이했다. 어떤 때는 독서 그 자체가 자기의 유일한 본령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다이스케는 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결혼할 것을 강요당하지만 그는 몇 차례 거절했고 이번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아버지에게 그녀를 소개할 수는 없다. 이미 친구와 결혼해버린 미치요를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랑했던 여자를 잊을 수 없었고 아버지를 위해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었다. 이번 혼처는 놓치기 아까울 만큼 재력 있는 가문이라 어쩌면 아버지의 경제적 원조는 끊어질 지도 모른다.

다이스케는 그 점이 두려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사랑 없이 결혼하기는 싫었다. 이쯤 되면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왜 친구에게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학생 때부터 다이스케는 미치요의 오빠인 스가누마와 미치요의 현재 남편인 히라오카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장티푸스로 스가누마가 병사하게 되자 둘은 미치요를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갖게 된다.

히라오카보다 먼저 미치요를 사랑한 건 다이스케였지만 맹탕 같은 다이스케는 표현에 서툴렀고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에게 미치요와 다리를 놓아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 둘은 다이스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큰 번뇌 없이 둘을 맺어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랑이 계속 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게 뭐람.

사랑이라면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비록 남의 아내가 되었지만, 병들고 아이를 잃었으며 남편의 사랑을 잃어 가고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미치요에게 예전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은 이렇다 할 극적인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백합이나 은방울꽃 같은 것에 투사되어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되고 있다.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큰 줄기는 세 주인공의 구도를 통한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근대 지식인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다이스케는 예술에 탐닉하면서 사회 속에 녹아들지 않는 인물로 그려놓고 있다. 그에 비해 다이스케의 아버지나 형, 히라오카는 속물적 인간으로 치부하여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다.

미치요는 갑자기 뭔가에 짓눌린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다이스케는 미치요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팔꿈치를 짚고 이마를 다섯 손가락으로 가렸다. 두 사람은 그런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마치 사랑하는 남녀의 조각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렇게 꼼짝 않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오십 년이란 세월을 눈앞에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정신적 긴장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긴장과 함께 두 사람이 서로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의 형벌과 축복을 함께 받으며 동시에 그 두 가지를 깊이 음미했다.
-본문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묘사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1909년에 발표된 소설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 세월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현재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한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는 좋은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책방에서 보낸 1년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지음 / 그물코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책이 꽤 두껍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내가 가진 단행본 중 가장 두껍지만 술술 잘 읽힌다. 불필요한 한자어나 외래어 없이 쉽고 정감 있는 우리말로 가득 채워져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누구보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자를 떠올리면 우선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강연자로 나는 청중 속에 묻혀있었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붉은 색 티셔츠 차림에 긴 머리였다. 사석에서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그의 순수한 속내를 읽어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글을 볼 수 있었으니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연예인과 다름없었다.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 이어 두 번째 책이 나왔다는 것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정관념은 좀처럼 깨기 힘든 것이지만 그의 글을 읽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 나는 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봐야할 책은 너무 많고 주머니는 얇아 책을 사보지 못하고 다리품 팔아 도서관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다.

이 책은 ‘먼지 쌓인 책’이라 생각하여 헌책을 홀대했던 내게 개안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책방 앞에 설 때마다 ‘오늘 이곳에서는 어떤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설레임과 반가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저자의 유별난 헌책방 사랑은 책을 읽는 이에게도 가감없이 전해졌다.

"더 좋은 헌책방에서 더 반가운 책을 만나는 일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헌책이든 새책이든 마찬가지로, 책이기 때문에 좋습니다. 책이 좀 낡았다고 해서 줄거리가 낡지는 않으니까요. 책이 좀더 깨끗하다고 줄거리가 더 깨끗하거나 훌륭하지도 않아요. 더구나 책방이 좀더 작거나 장서 숫자가 적다고 해서 반갑게 만날 책까지 적거나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 본문 중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한테 깊은 울림과 깨우침을 주는 속살을 지닌 알맹이’가 헌책 속에 있으니 책이 좀 낡았다고 한들 우리가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데는 어려움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저는 헌책방에서 세상을 읽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보기에는 먼지 많고 구질구질한 그런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싶을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 헌책방은 보물 곳간입니다. 이 보물 곳간에서 만난 보물은 제 마음을 살찌우고 머리를 일깨웁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지식을 다루는 마음과 몸가짐을 가르쳐 주고 일깨워요. 더구나 보물 같은 책 하나를 캐내고 갖추려고 애쓰는 헌책방 임자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가짐까지 단출하게 가꿀 수 있어 좋습니다.

뭐 이름나거나 잘나가는 그런 모습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풋풋하면서 살갑고, 알뜰한 마음을 느끼면서 가꿀 수 있으니 좋아요. 세상을 보는 눈도 잘난 사람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좀 ‘못나 보이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듯한 대접을 받는 사람’, ‘보통으로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 눈으로 봅니다. 그 보는 눈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올바르고 떳떳하고 제대로 보는 눈이라고 생각해요." - 본문 중에서


책 한 권이 나오도록 제 한 몸을 바친 나무와 물, 바람, 기계를 돌리는 온갖 자원, 기계를 움직인 노동자, 다 만든 책을 나르는 사람들, 자원이나 재료가 되는 것을 공장으로 옮긴 또 다른 노동자가 있다.

책 한 권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저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책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헌책방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겉은 비록 낡고 후줄근하지만, 속에 담긴 소중하고 알뜰한 것을 꿰뚫어볼 줄 아는 마음, 헌 것이지만 거리낌없이 즐겨서 쓸 줄 아는 마음, 다시 쓰는(재활용)하는 마음으로 헌책 하나 소중히 여기면서 환경을 생각할 줄도 아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배우고 얻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 책이 100만 권 팔리는 세상보다 천 가지 책이 천 권씩 팔리는 세상이 훨씬 훌륭하고 아름답다’는 저자는 헌책방 나들이가 우리한테 선사하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천 가지 책을 천 사람한테 파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잘 팔리는 책 하나를 100만 명한테 팔려는 마음이 아닌, ‘천 사람한테 쓸모가 있을 천 가지 책’을 두루 갖추는 마음‘이 바로 헌책방 책꽂이를 가꾸는 헌책방 임자들 마음이라고.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낮은 자리에서 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깨끗한 새책도 좋지만 낡고 후줄근해도 이미 누군가 온돈을 주고 산 그 책을 다른 주인에게 잘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 깃들어 있는 헌책을 어찌 ‘먼지 쌓인 헌책’으로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보고 싶은 책만 골라 주문할 수 있는 인터넷 헌책방도 좋지만, 헌책방 구석구석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먼지 쌓인 헌책’을 만나러 가고 싶다.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헌책이 있는 보물 곳간으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9-13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헌책방에 다녔어요.강연도 들으셨군요. 저자의 진정성이 보이는 책이죠.

연잎차 2006-10-1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강연은 한글날 기념으로 오신 거였는데 벌써 오래 전 일이네요! 좋은 책인데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