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갈색빛이 도는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니 지적인 이마가 드러났다. 넓은 이마 밑의 정열적인 눈동자는 온 세상의 빛을 빨아들였다가는 다시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같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한 번 더 저 눈동자에 그날과 같은 눈부신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시선을 비키며 걷기 시작한 홍이는 과거를 완전히 잘라 내버린 사람 같다. 그날의 눈동자에 어렸던 빛은 거기에 없다. 그녀는 이미 다른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