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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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긴장감의 필요가 같거나 그 진도가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긴장감에의 압박이 큰 사람들은 중독자처럼 새롤운 자극을 찾아다닌다. 상대를 계속 바꾸거나 연애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존재의 긴장감은 연애의 초기에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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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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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제목만 보았을 때 내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소설은 이렇다 할 주인공도,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여느 소설처럼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설정된 것이 아니라 딱히 주인공이라 내세우기 어려운 여러 명의 인물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먼저 몰락한 지식인 '마'가 등장한다. 자세한 기술은 없지만 마는 사고로 몸과 마음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에게 미래는 없어 보이고 단지 찬란했던 과거만이 현재의 불행을 더 처량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는 국립대학 교수에서 쉴 새 없이 침을 흘리는 불쌍한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번의 사고는 무참하게도 그를 다른 인생의 행로로 데려다 놓았고, 그의 단란했던 가정까지 빼앗아버렸다.

마와 함께 살고 있는 두 번째 부인 돈경숙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인물의 전형으로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재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의 전처 박혜전의 방문으로 잠시 돈경숙의 집은 소란스러워지는데 박혜전과 인물 대비는 극을 이루고 있었다.

돈경숙의 아들 세원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계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돈경숙에게 용돈을 받으며 직업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거기서 배운 기술로 취직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세원이 사랑하는 부혜린은 무보수로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 부혜린의 어머니 표현정 역시 돈경숙처럼 지상 최대의 과제는 돈 모으기다. 부혜린은 드물게 아름다운 처녀지만 70킬로그램이 넘는 인물로 계속 몸무게는 늘어가는 중이다. 부혜린이 그렇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커보인다. "부혜린을 키운 건 8할이 죄의식이고 2할이 초콜릿과자"라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표현정은 딸이 어렸을 때부터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함께 갚도록 교육했고, 부혜린은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도록 키워졌다. 세원은 부혜린을 어머니에게서 탈출시키고 싶었지만 무능한 자신이, 가난한 집안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의 전처인 박혜전은 부유한 가정은 아니나 궁핍하게 자라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마와 결혼했으므로 노동으로 직접 돈을 벌어본 일이 없다. 집안 살림을 돌보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다였는데, 이혼 후 경제활동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가난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더는 아이를 스키강습에 보낼 수도 없고, 한번 입고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할 옷은 있지만 세탁소에 자주 맡길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박혜전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 진주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진주의 신랑이 될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령 집을 구할 경제적 능력이나 지속적으로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하려는 두 사람을 친구 배유은과 김요한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돼 결혼이 망설여지지만 진주는 단호하다. 함께라면 가난 정도는 헤쳐나갈 수 있는 난관이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배유은은 냉담한 척했지만 진주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가난한 청춘이란 낭만도 뭣도 아니다. 게다가 진주는 지금도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지 않은가. 성도는 근본적으로 한량의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적이었고 돈이든 사람이든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진주에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는 싫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타인답게 굴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니 말이다." (147쪽)

가난과 빈곤, 결핍에 대한 '배수아식 보고서'

어쩔 수 없이 가난과 대면해야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자발적 가난으로 뛰어난 인물도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남은 음식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구해 먹고자 하는,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남아도는 음식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말이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가난이나 빈곤은 지향하고 싶은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가난을 경험하게 된다. 가난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난이 때로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난이 동력이 되어 자아실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성공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질로 재단하는 가난이 정신적 풍요를 가늠하는 절대적 단위가 아닌 만큼, 어쩌면 물질적 가난보다 정신의 가난이 더 큰 문제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연작 소설 형식으로 다양한 인물의 가난과 빈곤, 결핍과 소외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성장과 분배를 비롯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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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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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상진이 밤에 보았던 은빛 여우는 환영이었을까? 그것이 가공의 산물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여우를 처음으로 본 날은 첫눈이 내린 날이고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지만 여우는 좀처럼 상진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여우는 아마도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금은 힘들지만 꿈꾸는 자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왠지 쓸쓸해 보이는 눈빛으로 여우는 상진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상진은 동네에서 가장 허름한 청운연립, 그것도 옥탑방에 산다. 201호나 301호처럼 호수도 없어 '하늘호'라 스스로 이름 지은 옥탑방에 상진의 가족이 살고 있다.

상진에게는 형이 한 명 있다. 형은 덩치가 상진보다 크지만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아이다. 그런 형을 둔 덕분에 늘 말썽이 생기면 상진은 가해자, 형은 피해자 처지에 놓이기 일쑤다.

그래서 상진은 언제나 불만이다. 다친 아버지나 모자란 형 대신 이 집의 희망인 상진은 어깨가 무겁다. 기둥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창문을 열면 노란 물탱크가 보인다. 상진은 거기에다 지난 밤 보았던 은빛 여우도 그리고 1층에 사는 동갑내기 소연의 모습도 그린다. 상진은 무언가 다시 보고 싶은 것을 주문처럼 거기다 그렸다.

만만치 않은 세상과 마주하는 열세 살 소년의 성장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세월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집안 분위기는 바뀌어갔다. 건물 폭파작업을 하는 아버지가 부상으로 다리 수술을 하게 돼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어머니가 집의 기둥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트럭을 타고 장사하다가 여의치 않아 포장마차로 전업했다.

"어머니는 밤늦게 들어와서 씻지도 못하고 돈주머니만 겨우 방 한구석에 끌러놓고 곯아떨어졌다. 아버지가 돈주머니를 들고 절룩거리며 마루로 나왔다. 아버지는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마룻바닥에 편편하게 깔았다. 흐린 불빛 아래 내복 바람으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옷 위에 대고 돈 주머니를 거꾸로 흔들었다.

(중략) 만 원짜리를 간추린 다음 오천 원, 천 원 순으로 차곡차곡 분리해나갔다. 간추린 지폐를 한 편에 쌓아두고 동전을 분류했다. 아버지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행복해보였다. 한편으로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진지'와 '행복'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그 밤 풍경을 나는 오줌을 누러가다가 목격했다."
(117쪽)

장사가 잘되면서 점점 어머니의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어머니의 유일한 화장품이었던 존슨즈베이비 로션은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게 되었고, 더 향이 진한 화장품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빨간색이나 진분홍색 립스틱도 화장대 위에 등장했다. 상진은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온가족이 모여 앉아 꼬치 재료를 손질해 꿰고 어머니를 도와주면서 차츰 집안 분위기가 밝아오는가 했더니, 집주인이 바뀌면서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다른 집들은 임대차계약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법의 보호라도 받을 수 있는 모양인데, 상진이 사는 옥탑방은 무허가여서 일이 어렵게 된 것이다.

곧 중학생이 될 꿈 많은 소년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여러 상황들이 현재를 힘들게 하지만 상진은 '전인슈타인' 같은 인물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안식을 찾았다. 얼마 후 '전인슈타인' 할아버지마저 떠나버렸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나타나 줄 것이라고 상진은 믿는다.

"전인슈타인이 색소폰을 집어 들었다. 숨을 고르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색소폰 소리가 내 가슴을 살살 흔들었다. 색소폰 소리에는 서글픔이 배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괜히 울음이 나왔다.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방구석에서 64빌딩 도면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주꾸미를 입 안 한가득 밀어 넣던 모호면(기자 주 - 상진이 형의 별명)이 머릿속으로 스쳐갔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던 엄마, 그 품에서 풍기던 비릿한 꽁치구이 냄새가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소연이의 하얀 가르마가 어른거렸다. 색소폰은 이 모든 것을 달래주었다."
(156쪽)

열세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을 재치 있는 어조로 풀어나가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성장 소설이다. 어려운 상황이 연이어 찾아오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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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 몇 시인가?
유재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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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읽고픈 마음이 없었다. 일본문학을 전공했다거나 아니면, 일본 사회에 관심이 많다거나, 어느 것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전 잠시 다녀온 일본여행이 일본에 대한 시각을 확 바꾸어 놓았다면, 과장이 심한 걸까. 어쨌든 그냥 스쳐지나가도 될 일본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 해 전 귀동냥을 했던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온지 몇 해가 흘러서 지금 읽기에 부적절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왠걸 몇 해가 지나긴 했지만, 지금 읽어도 그다지 철지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출산장려금이며 동경의 집세 등등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한국인의 눈으로 일본을 일본인을 바라보는 것,, 어떨까? 여행을 하며 나는 잠시 외국에서 많이도 말고 한 1년 정도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이 유학생의 자격이든 여행자의 자격이든 무엇이든 간에,,

책을 읽고 나면, 일본 사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낳듯,, 궁금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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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과 황태자 아메리카 영자의 전성시대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29
송영.조해일.조선작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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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조해일 조선작,,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이름이다. 더 정확히는 한번쯤은 들어봤겠지만 그의 작품들을 알지 못하는 관계로 금세 잊혀졌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전공자라 할지라도 현대소설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역시 마찬가지 결과일 것 같다.

작가보다는 오히려 작품이 더 귀에 익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영자의 전성시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세 사람의 작가는 모두 70년대 두드러지게 활동한 소설가들이다. 70년 이후 출생한 우리 세대에게 생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해일의 <아메리카>나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는 우리 사회의 가장 빈민에 속하는 직업 여성들이 등장한다. 물론 영화든 소설이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는 점만 빼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저 가슴 아프게 줄곧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조선작의 <성벽>도 마찬가지, 전후 가난한 우리 삶의 모습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소설이 그 시대 현실을 얼마나 절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 옛날에도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소설가들이 많았고, 눈물나게 슬픈 장면에서도 문장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에 또한번 놀라게 되었다. 특히 조해일의 작품이 나의 문장호흡과 잘 맞는 것 같았다.

요즘 나오는 소설을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하지만, 20세기 우리 소설 29편을 통해서 우리는 근현대사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아울러 잘 알지 못하던 작가와의 만남도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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