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책제목만 보았을 때 내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소설은 이렇다 할 주인공도,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여느 소설처럼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설정된 것이 아니라 딱히 주인공이라 내세우기 어려운 여러 명의 인물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먼저 몰락한 지식인 '마'가 등장한다. 자세한 기술은 없지만 마는 사고로 몸과 마음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에게 미래는 없어 보이고 단지 찬란했던 과거만이 현재의 불행을 더 처량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는 국립대학 교수에서 쉴 새 없이 침을 흘리는 불쌍한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번의 사고는 무참하게도 그를 다른 인생의 행로로 데려다 놓았고, 그의 단란했던 가정까지 빼앗아버렸다.

마와 함께 살고 있는 두 번째 부인 돈경숙은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인물의 전형으로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재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의 전처 박혜전의 방문으로 잠시 돈경숙의 집은 소란스러워지는데 박혜전과 인물 대비는 극을 이루고 있었다.

돈경숙의 아들 세원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계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돈경숙에게 용돈을 받으며 직업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거기서 배운 기술로 취직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세원이 사랑하는 부혜린은 무보수로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다. 부혜린의 어머니 표현정 역시 돈경숙처럼 지상 최대의 과제는 돈 모으기다. 부혜린은 드물게 아름다운 처녀지만 70킬로그램이 넘는 인물로 계속 몸무게는 늘어가는 중이다. 부혜린이 그렇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커보인다. "부혜린을 키운 건 8할이 죄의식이고 2할이 초콜릿과자"라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표현정은 딸이 어렸을 때부터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함께 갚도록 교육했고, 부혜린은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도록 키워졌다. 세원은 부혜린을 어머니에게서 탈출시키고 싶었지만 무능한 자신이, 가난한 집안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의 전처인 박혜전은 부유한 가정은 아니나 궁핍하게 자라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마와 결혼했으므로 노동으로 직접 돈을 벌어본 일이 없다. 집안 살림을 돌보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다였는데, 이혼 후 경제활동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가난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더는 아이를 스키강습에 보낼 수도 없고, 한번 입고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할 옷은 있지만 세탁소에 자주 맡길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박혜전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 진주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진주의 신랑이 될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령 집을 구할 경제적 능력이나 지속적으로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하려는 두 사람을 친구 배유은과 김요한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도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돼 결혼이 망설여지지만 진주는 단호하다. 함께라면 가난 정도는 헤쳐나갈 수 있는 난관이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배유은은 냉담한 척했지만 진주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가난한 청춘이란 낭만도 뭣도 아니다. 게다가 진주는 지금도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지 않은가. 성도는 근본적으로 한량의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적이었고 돈이든 사람이든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진주에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는 싫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타인답게 굴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니 말이다." (147쪽)

가난과 빈곤, 결핍에 대한 '배수아식 보고서'

어쩔 수 없이 가난과 대면해야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자발적 가난으로 뛰어난 인물도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남은 음식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구해 먹고자 하는,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남아도는 음식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말이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가난이나 빈곤은 지향하고 싶은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가난을 경험하게 된다. 가난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난이 때로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난이 동력이 되어 자아실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성공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질로 재단하는 가난이 정신적 풍요를 가늠하는 절대적 단위가 아닌 만큼, 어쩌면 물질적 가난보다 정신의 가난이 더 큰 문제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연작 소설 형식으로 다양한 인물의 가난과 빈곤, 결핍과 소외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성장과 분배를 비롯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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