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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disc) - 할인행사
허진호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꺼야
아마도
김윤아의 노래 <봄날은 간다> 중에서
<봄날은 간다>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1년이었다. 누구랑 봤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영화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아릿한 온기를 거두어 가지 않고 있다.
라디오 방송국 프로듀서와 음향기사와의 만남. 세상의 많고 많은 만남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부각시킨다.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 사이로 드높고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을 눈부시게 쳐다보는 상우와 은수.
둘은 자연의 소리를 담아 방송을 만든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자연을 들려주기 위한 작업들. 게다가 열병 같은 사랑까지 안겨주고 있다.
지역 방송에서는 프로듀서가 진행까지 한다는데 상우는 은수의 목소리에 반한 걸까. 어찌되었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깊은 밤 산사의 풍경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눈이 내리고 있는, 칠흑 같은 밤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되면 없던 사랑마저 생기는 것일까.
한밤중 술을 마시다 문득 은수가 보고 싶어져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은수를 찾아가는 상우. 은수는 캄캄한 밤 도로 위에서 웅크린 채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이한다. 사랑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열병 같았던 사랑도 어느 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사랑하면 결혼하고 싶은 어린 남자를 여자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애당초 결혼을 위해 사랑한 게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으리라.
상우는 술에 취해 괴로운 마음을 달래 보기도 하고, 오지도 않는 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일들을 반복하다 은수를 찾아간다. 그렇게 와서 울음을 터뜨리는 남자에게 은수는 급기야 헤어지자고 이야기한다.
"내가 잘할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상우가 가여운 것은 관객뿐이었다. 은수의 마음에는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았고, 갑자기 찾아온 사랑은 그렇게 갑자기 가버렸다.
살아있다는 것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때가 사랑할 때 아닐까.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가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직장마저 팽개쳐버린 너무 순수해서 바보 같은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상우와 은수는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다시 만난다. 은수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우리 같이 지낼까?" 하고 상우에게 말을 건넨다. 상우는 그런 은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상우에게 열병 같았던 사랑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플 만큼 아파서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인데, 다시 상처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과 다시라면 더더욱.
영화의 마지막 장면, 들녘의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상우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다시는 어리석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아니면 이제 웃을 수 있을 만큼 사랑의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일까. 지금도 그 들녘의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건, 우리가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봄날은 간다>는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좋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