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한정판 - [할인행사]
닉 카사베츠 감독, 리안 고슬링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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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처음 10분간 이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 중요하듯 영화에도 그런 게 있는 모양이다.

수평선이 펼쳐져 있는 해질녘 강가가 보인다. 검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배경에서 한 사람이 여유롭게 노를 저어가고 있다. 누구에게 다가가기 위한 몸짓일까. 그 풍경을 어느 할머니가 다정스레 바라보고 있다. 비록 이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자신의 남편도 알아 보지 못하지만, 그녀를 향한 남편의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여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목재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시골 청년 노아와 여름 방학 동안 잠시 쉬러 한적한 이 고장에 놀러온 부유층 아가씨 엘리가 등장한다. 노아는 놀이공원에서 엘리를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든다. 그렇게 열일곱 노아와 엘리는 첫사랑을 시작하고,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만남과 이별의 수순을 밟아 간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알게된 엘리의 부모는 마냥 이 둘을 지켜볼 수 없어 헤어지기를 강요하고,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를 돌려 보내고 만다. 노아는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엘리에게 편지했지만, 엘리의 어머니에 의해 그 편지들은 수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7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

가슴 속에 한 사람을 품고 오랜 세월 침묵할 수 있다는 건 불행이다. 노아는 타인에 의해 마감되어 버린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더라도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노아와는 달리 엘리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고 결혼도 임박해 온다. 웨딩드레스를 미리 입어 보던 날, 신문에서 우연히 노아를 보게 되는 엘리는 그 길로 노아를 찾아가게 된다. 노아는 엘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별장을 새로이 단장해 두고,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가 노아를 찾아간 것은 그와 못다한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결혼 전에 확실히 마음 정리를 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물론, 얼마간 세월이 흐른 후 첫사랑의 안부가 궁금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편지가 전달되지 못했던 경위를 알게 되고, 엘리에 대한 노아의 사랑이 여전함을 깨닫는 순간, 엘리의 마음은 흔들린다. 도대체 엘리가 누구를 택할 것인지 나는 조바심이 났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새로운 연인 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진 것은 없지만 첫사랑인 노아를 택할 것인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염두에 둔다면, 새로운 연인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심 첫사랑 청년과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윽고 영화는 내 편을 들어 주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어 놓은 영화 <노트북>.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했지만,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와 아름다운 풍경에 힘입어 새롭게 빛나고 있었다. 또, 영화 중반부 엘리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도 영화를 감상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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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 [할인행사]
박찬옥 감독, 문성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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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감상에 빠지기 쉬운 오후다. 이런 날이면 으레 김치 부침개나 짬뽕 국물, 비디오 한 편이 머릿속을 맴돌곤 한다. 이런 날은 신발 적셔 가며 다니기 싫지만, 오로지 DVD 한 편 보고 싶다는 마음에 집 근처의 비디오 가게로 향했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막상 비디오 가게에 들어서면, 보지 못한 많은 영화들은 다 어디 가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영화들 뿐이다. 이를테면 공포 영화, 액션 영화, 보기에도 민망한 성인 영화가 그러하다. 코믹 영화도 내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저 웃고 즐기고 나면 남는 것은 공허함 그뿐이다.

영화를 보는 것에도 취향이란 게 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보고 난 후에도 한 1주일 정도는 가슴 속에 남아 미소 지을 수 있는 감동이 있는 그런 영화다. 영화도 양서처럼 메시지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DVD를 발견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 제목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많이 보아 왔는데, 이 영화의 제목은 나에게 조금 생소했다. 비슷한 어감의 이 영화가 왠지 내 머리 뒤통수를 자꾸만 잡아당겼다.

젊은 대학원생 이원상(박해일)은 친구가 일하는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사랑하는 유부남이 그 잡지사의 편집장임을 알게 되어 무작정 그곳에 취직한다. 수의사 박성연(배종옥)은 대학시절 학보사의 사진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역시 이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원상은 변심한 여자 친구를 잊는 과정에서 박성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박성연은 편집장 한윤식(문성근)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이 사랑한 두 여자를 편집장에게 빼앗긴(?) 이원상은 그에게 적개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박식함과 인간적인 면에 이끌리게 되기도 한다.

한윤식은 이원상의 여자 친구가 자신이 한 때 만났던 여자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도 이원상에게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여성편력을 이렇게 정당화했다. "바람도 못 피면서 아내에게 잘 못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훨씬 낫다"고. 자신처럼 인생을 즐기면서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도 더욱 잘하는 게 살아가는 지혜라고.

감정이 흐른다는 게 한윤식처럼 간단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에게 미련이라는 것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단어처럼 보였다. 그처럼 모든 사람들이 감정 조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세상의 치정(痴情)극은 존재하지 않을 듯 했다.

사랑과 일을 평범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잡지사라는 배경을 두고 편집장이라는 직업에 대해 묘한 매력을 부여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이원상과 한윤식의 대립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질투는 사랑하며 사는 일에 있어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독이 되기 전에 이 영화는 자막을 올려보내고 있었다. 그 뒤의 일들은 관객에게 맡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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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2disc 디지팩) - 할인행사 국화꽃 향기 (2disc) 2
이정욱 감독, 장진영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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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날 약속을 했었는데,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우리의 약속은 며칠 미루어지게 되었고, 그 대신 각자의 집에서 DVD 한 편씩을 보기로 했다. 친구는 자신의 선배가 괜찮은 영화로 <국화꽃 향기>를 추천했다며 내게도 권했다.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는 뻔한 스토리임을 알기에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선배의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어정쩡한 엔딩도 괜찮다. 해피엔딩이면 말할 것도 없이 좋고, 새드엔딩은 내가 영화를 택함에 있어 제외대상 1위다. 도무지 슬픈 결말은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이미 슬픈 영혼을 닮아있기에 그런 류의 영화는 의식적으로 피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꿉친구 하나는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은 슬픈 노래가 좋다고. 그런데 이렇게 슬픈 노래를 좋아하다 보면 자신의 인생 또한 슬퍼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가끔씩은 그렇게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감상에 젖어 보는 것도 공학도에게는 필요한 일이라며 타일렀던 기억이 난다.

사랑은 영화에 있어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소재다. 매번 비슷한 스토리라고 힐난하면서도 우리는 사랑에 관한 영화를 끝없이 갈구한다. 그로 인해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리만족을 얻기도 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랑에 신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관객의 요청으로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끝없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리라.

인하(박해일)는 지하철에서 운명처럼 희재(장진영)를 만나게 된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 희재의 머리카락을 스쳤고, 그 바람에는 국화꽃 향기가 묻어있었다. 그것은 인하의 마음 속에 잊지 못할 향기로 각인되고, 동아리에서 다시 희재를 만나게 되어 수줍은 고백도 하게 되지만, 스무살 청년의 어설픈 고백이 연상의 희재에게 받아들여 지기엔 처음부터 억지였나 보다. 짧은 첫키스와 함께 사랑 이야기는 시작이 아닌 이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인하는 일종의 도피로 입대한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게 그렇게 접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희재를 잊지 못하는 인하를 애처롭게 여기던 선배 정란(송선미)이 있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7년 만에 어렵게 사랑을 이루게 되지만, 이들의 사랑을 질투한 하늘은 그 둘을 갈라 놓고 만다.

별로 울일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런 영화 한 편이 눈물로써 마음의 때를 벗어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린 주말 슬픈 영화 한 편으로 자칫 우울해 질 수도 있으나,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이 영화의 전반부는 대학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고,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마저 찾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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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disc) - 할인행사
허진호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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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꺼야
아마도

김윤아의 노래 <봄날은 간다> 중에서

<봄날은 간다>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1년이었다. 누구랑 봤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영화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아릿한 온기를 거두어 가지 않고 있다.

라디오 방송국 프로듀서와 음향기사와의 만남. 세상의 많고 많은 만남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부각시킨다.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 사이로 드높고 푸르른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을 눈부시게 쳐다보는 상우와 은수.

둘은 자연의 소리를 담아 방송을 만든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자연을 들려주기 위한 작업들. 게다가 열병 같은 사랑까지 안겨주고 있다.

지역 방송에서는 프로듀서가 진행까지 한다는데 상우는 은수의 목소리에 반한 걸까. 어찌되었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깊은 밤 산사의 풍경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눈이 내리고 있는, 칠흑 같은 밤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되면 없던 사랑마저 생기는 것일까.

한밤중 술을 마시다 문득 은수가 보고 싶어져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은수를 찾아가는 상우. 은수는 캄캄한 밤 도로 위에서 웅크린 채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이한다. 사랑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열병 같았던 사랑도 어느 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사랑하면 결혼하고 싶은 어린 남자를 여자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애당초 결혼을 위해 사랑한 게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으리라.

상우는 술에 취해 괴로운 마음을 달래 보기도 하고, 오지도 않는 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일들을 반복하다 은수를 찾아간다. 그렇게 와서 울음을 터뜨리는 남자에게 은수는 급기야 헤어지자고 이야기한다.

"내가 잘할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상우가 가여운 것은 관객뿐이었다. 은수의 마음에는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았고, 갑자기 찾아온 사랑은 그렇게 갑자기 가버렸다.

살아있다는 것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때가 사랑할 때 아닐까.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가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직장마저 팽개쳐버린 너무 순수해서 바보 같은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상우와 은수는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다시 만난다. 은수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우리 같이 지낼까?" 하고 상우에게 말을 건넨다. 상우는 그런 은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상우에게 열병 같았던 사랑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플 만큼 아파서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인데, 다시 상처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과 다시라면 더더욱.

영화의 마지막 장면, 들녘의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상우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다시는 어리석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아니면 이제 웃을 수 있을 만큼 사랑의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일까. 지금도 그 들녘의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건, 우리가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봄날은 간다>는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좋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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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 [할인행사]
홍기선 감독 / 유니버설픽쳐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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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영화관을 찾게 될 뻔했다. 휴일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약속이 있기도 했고, 다소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함께 보자고 말했다가 그 영화 말고 다른 것을 보자고 할 것 같아 아예 연락을 해보지 못한 친구도 있다.

다행히도 한 친구가 뜻을 같이 하게 되어 우리는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여느 영화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영화 속 장면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극장에서 내려간 뒤 단 이틀동안 2회만 재상영되는 영화라 애틋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던 나는 금세 <선택>에 매료됐다.

실제 인물인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생애를 담은 <선택>은 애초부터 상업성이 배제된 영화다. 인권이 유린된 감옥 내의 삶을 조명해 줌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세상과는 다른 삶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영화에 대한 눈물을 흘리는 일조차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두 부분 중 하나는 한 비전향 장기수의 딸이 결혼할 나이 즈음 아버지 면회를 온 부분이다. 사회주의자 아버지 때문에 '빨갱이 딸'이라며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다리에서 떨어져 등이 굽게 된 딸의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는 절규하는 모습이었다.

딸의 어린 모습만을 추억하며 꿈속에서만 만나왔던 딸이 이제 어엿한 결혼적령기의 숙녀가 되어 찾아왔는데, 등이 굽어 있는 모습이었을 때의 충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머지 하나는 45년간의 감옥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815특별사면'이란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인간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반가왔을 것이다.

김선명의 94세 노모는 아마도 아들을 보기 위한 일념 하나로 살아오셨을 것 같았다. 아들을 보고서 하신 말씀,

"네가 선명이냐. 어른 말을 안 들어서 네가 그렇게 되었어…. 올해는 안 죽을게. "

그렇게 말씀하시던 김선명의 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서 나오고 두 달이 지난 후 세상을 버리셨다고 한다. 70이 넘어 머리가 백발이 된 아들에게 '어른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감동으로 다가왔다.

민족의 비극이었다. 두 동강 난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이 죄라면 죄인 것이었고, 그들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이 죄였다.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끈질긴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잊고 지냈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환기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모든 좌석에서 일제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가 끝난 후 더욱 밀려오는 감동의 회오리 속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화를 못 본 이들에게, 다시 한번 보고픈 이들에게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은 DVD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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