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 [할인행사]
홍기선 감독 / 유니버설픽쳐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영화관을 찾게 될 뻔했다. 휴일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약속이 있기도 했고, 다소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함께 보자고 말했다가 그 영화 말고 다른 것을 보자고 할 것 같아 아예 연락을 해보지 못한 친구도 있다.

다행히도 한 친구가 뜻을 같이 하게 되어 우리는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른 여느 영화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영화 속 장면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극장에서 내려간 뒤 단 이틀동안 2회만 재상영되는 영화라 애틋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던 나는 금세 <선택>에 매료됐다.

실제 인물인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생애를 담은 <선택>은 애초부터 상업성이 배제된 영화다. 인권이 유린된 감옥 내의 삶을 조명해 줌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세상과는 다른 삶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영화에 대한 눈물을 흘리는 일조차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두 부분 중 하나는 한 비전향 장기수의 딸이 결혼할 나이 즈음 아버지 면회를 온 부분이다. 사회주의자 아버지 때문에 '빨갱이 딸'이라며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다리에서 떨어져 등이 굽게 된 딸의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는 절규하는 모습이었다.

딸의 어린 모습만을 추억하며 꿈속에서만 만나왔던 딸이 이제 어엿한 결혼적령기의 숙녀가 되어 찾아왔는데, 등이 굽어 있는 모습이었을 때의 충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머지 하나는 45년간의 감옥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815특별사면'이란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인간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반가왔을 것이다.

김선명의 94세 노모는 아마도 아들을 보기 위한 일념 하나로 살아오셨을 것 같았다. 아들을 보고서 하신 말씀,

"네가 선명이냐. 어른 말을 안 들어서 네가 그렇게 되었어…. 올해는 안 죽을게. "

그렇게 말씀하시던 김선명의 어머니는 아들이 감옥에서 나오고 두 달이 지난 후 세상을 버리셨다고 한다. 70이 넘어 머리가 백발이 된 아들에게 '어른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감동으로 다가왔다.

민족의 비극이었다. 두 동강 난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이 죄라면 죄인 것이었고, 그들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이 죄였다.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끈질긴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잊고 지냈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환기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모든 좌석에서 일제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가 끝난 후 더욱 밀려오는 감동의 회오리 속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화를 못 본 이들에게, 다시 한번 보고픈 이들에게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은 DVD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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