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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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국 서적을 읽다 보면 저자뿐 아니라 자연스레 번역을 맡은 이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같은 이름이 자주 눈에 띠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들이 궁금했다. 책에 소개된 짧은 이력으로는 그들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 저자만큼이나 번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번역은 내 운명>이란 책을 읽고 나니 번역을 '제 2의 창조'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나는 한때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힐난했던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번역가들이 책 한 권을 번역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동안 얼마나 어린 생각에 머물렀는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강주헌,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 등 6인의 번역가가 들려주는 번역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정겹다.

번역은 쉬워야 한다! 내용은 어렵더라도 읽어 내려갈 수는 있어야 한다. … 전문 용어는 최대한 살리더라도 누구나 읽어 낼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약하면 어려운 책도 쉽게 번역하자는 것이다. 전공자들이야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 아닌가. 책을 번역하는 목적, 더구나 출판의 목적은 '대중화'에 있으니까 말이다. - 본문 중에서

번역가 강주헌씨가 말하고 있는 '대중화'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원서를 읽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사전을 옆에 두고 의미를 찾고, 또 생각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한 페이지 번역하다 하루가 다 가버릴 것 같다. 기실 번역가들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하기가 힘들다.

<번역은 내 운명>에서 저자들은 자신이 번역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고 있다. 또 생각 외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과 좋은 책임에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 책에 대한 안타까움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아까운 책'이라고 말할 만큼 좋은 책은 쉽게 만나지지 않는 법인데 이쯤에선 횡재한 기분도 든다.

송병선과 김춘미를 제외하면 다른 저자들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한결같은 번역의 애로 사항은 번역료에 있었다. 낮게 책정된 원고료도 문제지만, 원고는 넘겼는데 제때 입금되지 않는 번역료에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말이었다.

출판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이해하지만 번역으로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그들에게 출판사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가정 경제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또는 일부 출판사에서는 악의적인 마음으로 번역료를 제때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은 프리랜서 번역가에게는 큰 어려움일 것 같다. 다른 직업이 있어 번역료가 언제 입금되어도 상관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참 애 타는 경우가 아닌가.

'번역'의 최대 딜레마와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머리는 완벽하지가 않아 하나의 언어를 자주 쓰고 그 언어체계에 길이 들어버리면 다른 언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외국어에 치중하면 우리말이 울고, 우리말에 중점을 두면 외국어가 운다. 그러나 어쨌건 번역가는 외국어로 된 글을 제대로 읽어내어 우리말로 흠 없이 옮겨야 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물을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은 후 원저자가 의도한 대로 이해해야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 본문 중에서

이러한 사정으로 최정수씨는 "외국어와 우리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해당언어와 우리말에 대한 지식과 끊임없는 공부는 물론 치밀한 자료 조사 능력과 꼼꼼함, 성실성은 기본으로 요구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신을 위해, 좋은 문장을 위해 어떤 식으로 재투자를 하느냐'는 물음에 "신문 꼼꼼히 읽기나 좋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사가 아름다운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최정수씨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또 권남희씨는 "더러 독서를 위한 독서를 하고 싶으나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로 모든 문장을 해체하며 읽는 버릇이 생겼다"며 "일어나면 해야 할 번역이 책상 앞에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번역은 내 운명>은 이처럼 번역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책을 통해 번역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면 책은 그 임무를 무사히 마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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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06-05-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 읽었는데, 리뷰가 부드럽고도 씹는 맛이 있네요.

연잎차 2006-05-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번역 환경이 좋아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행복한 봄날 되세요!
 
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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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기도 하고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는 일들. 책장에 꽂혀있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란 책을 무심코 다시 펼쳐 들게 되었다. 몇 해 전과 비교해보니 그때보다 더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그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이 책에는 5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다 걸출한 작품들이었다.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일들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80년대를 관통하는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살아보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가슴 깊이 무언가를 안겨 줄 것이다. 곧 아픈 역사의 커다란 소용돌이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삶의 편린들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3개의 단편 : <진짜 사나이> <용천뱅이> <운명에 관하여>

첫 번째 단편 '진짜 사나이'에는 시위를 하다 알게 된 장병만씨에 대한 회상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저자는 일용 노무자로 일하는 장병만 씨를 통해 아무리 몸부림쳐도 헤어날 수 없는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시위하는 무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장병만씨는 사회정의를 위해서 큰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생계도 돌보지 않고 그 일에 열심이다 보니 가정은 파경을 맞게 되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장병만씨를 보게 되는 것도 온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는 농성장을 떠날 줄 몰랐던 것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통해 소설을 쓰는 화자는 어떤 상념에 젖게 되었을까.

두 번째 단편 '용천뱅이'는 경계인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의 아버지는 북에서 내려왔고 평생 고향을 잊지 못한다. 남쪽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허무하다. 이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북으로도 갈 수없는 가엾은 아버지는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라도 어느 한 쪽에 귀속되고 싶은 마음에 간첩을 자처하게 된다.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민족의 분단은 반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에 아로 새겨져 그 후손들에게도 그 아픔을 생생하게 전해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단편 '운명에 관하여'는 고아 소년의 성장기다. 소년은 세상의 슬픔을 너무 이른 나이에 다 알아버린다. 소년은 일어서려고 노력하지만 그 때마다 세상이 주는 가혹하리만큼의 쓴맛을 경험하게 될 뿐이다. 어느 날 고아원 시절 친구의 소개로 부잣집 영감의 잃어버린 아들 행세를 위해 그를 만나러 갔다가 자신이 진짜 그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운이 없게도 그 충격으로 영감은 그날 밤 세상을 등지게 되고 그의 많은 재산은 그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에겐 생전에 얼굴도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찾고 어머니가 전쟁 중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평생을 살아갈 재산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엇갈린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작품이었다.

2개의 중편 : <녹천에는 똥이 많다> <하늘등>

네 번째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배 다른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선생님인 아버지는 배운 게 없는 어머니와 유교적 관습에 의해 결혼하게 되었다. 그 결혼이 행복할 리 없었고, 아버지는 동료 여교사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게 되고 그런 연유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 동료 여교사는 아들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떠나고 가엾은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게 된다.

어머니는 능력 없는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서 노점상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간다. 둘째 아들은 바른 말만 하는 아이라 어머니를 난감하게 만들 때가 많았고, 큰 아들은 동생이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손님들도 언제나 동생은 어미가 버리고 간 불쌍한 아이라며 그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나이가 들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주인공은 그 후 십 년이 넘도록 동생의 소식을 모르고 살아가다가 갑작스레 동생이 찾아오면서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형은 학교에서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녀 급기야 기술 교사가 된 억척같은 사람이다. 동생은 무언가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내는 그런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며 주인공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똥이 많은 녹천역'은 아마도 타락한 세상에 대한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다섯 번째 중편 '하늘등'의 주인공 신혜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탄광촌 다방에 취업했다가 경찰에 신고 되어 고문을 받고 풀려난다. 신혜는 이른바 운동권 대학생이긴 했지만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어머니의 꿈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끊임없이 회의하는 학생으로 그려진다. 단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형사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심한 고문을 가한다. 슬픈 탄광촌의 단면, 운동권 대학생, 가난, 혼자 자식을 키우는 힘겨운 어머니의 이야기가 '하늘등'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다섯 편의 중단편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가령 소설에 등장하는 멜라니 샤프카의 'The Saddest Thing'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슬픈 노래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아픔을 지니고 있다.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환기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라서 당할 수밖에 없는 설움, 기를 쓰고 노력해 안정된 삶의 테두리 안에 들어섰으나 고뇌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개인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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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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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지금쯤 어딘가에서 기자를 하고 있을지도,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그 친구가 왜 고종석을 좋아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펼치자 이내 소설에 빠져 들었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알 수 없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와 주위 사람들에게 '기분이 좋은가 보군'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엘리아의 제야>에는 6편의 중단편들이 묶여있다. 대개는 표제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은데, 이번의 경우 맨 마지막에 실린 소설 <카렌>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워낙 로맨스를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봄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비루한 외로움 같은 것이 촉매로 작용하여 더 눈부시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왜 '카렌'일까. 궁금했는데 소설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의미가 밝혀져 있었다. 여주인공 '화련'의 이름을 일본 한자음으로 읽으면 '카렌'이란다. 소설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초등학교 시절에 대구에서 전학 온 여학생에게 1등자리를 빼앗긴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질투 보다는 그냥 그 여학생이 좋더라는 것이다. 전학 온 여학생은 몇 해가 흘러 다시 전학을 가버린다. 그리고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다 세월이 훌쩍 흘러 대학 졸업 6개월을 남겨두고 운명처럼 재회하게 된다.

마지막 학기 분석철학과 일본문학사 두 과목을 신청한 진우는 일본문학사 수업에서 화련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화련이 먼저 진우를 알아보고서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 옛날 특이하게도 연애계약서라는 것을 만들어서 누군가 마음이 변했다고 통고하면 깨끗하게 헤어질 것을 다짐하는 글을 써서 각자 보관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을 흉내낸 것이었다.

그들은 매일 만나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보통의 연인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화련이 계약을 해지하자고 일방적으로 통고해온다. 진우는 느닷없는 이야기에 당황하지만 약속대로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애초에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계약서까지 써 놓고는 배신감이 몰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노력하며 물었다. 상대가 누구인가 하고. 헤어지더라도 상대는 알아야했다.

뜻밖에도 상대는 자신이었다. 다시 만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자는 것이었다. 사귄 지 3개월이 되었지만 진우는 한 번도 화련의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랑한다면 마땅히 일어났을 법한 일들이 없었던 것이다. 진우는 순수했다. 아니 순진해서 그런 것들은 머리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진우의 마음을 알 길 없는 화련은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거나 정리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었기에. 진우와 만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지만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웠다. 일생을 결정할 1분이 흐른 후 진우는 결혼에 승낙하게 되고 그들은 결혼하게 된다.

애초에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보다 훨씬 일찍 결혼하게 되었다. 이유는 속도 위반이었다. 아이를 낳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아서 더욱 빨리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속전속결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화련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진우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존재가 궁금했다. 마음만 먹으면 진우를 찾을 수도 있었을텐데 진우의 마음도 모른 채 먼저 그를 찾아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화련은 집안 형편으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상업학교에 진학해 일찍 사회에 나가야했고 그런 이유로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야간에는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는 등 되는 대로 삶을 살지 않았다. 타성처럼 일하지 않았다. 돈을 조금 모은 후에는 대학입시를 위해 새벽반과 야간반 수업을 들으며 대학에 들어갔다. 기실 인생은 개척하는 자의 몫인가 보다.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사랑도 찾아왔다. 그것도 화련이 그토록 잊지 못했던 진우라는 사랑이. 그들의 만남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결혼 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진우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첫사랑과 결혼해서 딸을 넷이나 낳고 과거를 회상하는 진우의 모습이 그저 좋았다. 남편은 프리랜서 기자로 아내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직장이라는 끈에 묶이고 싶지 않은 성격까지 꼭 빼닮은 부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살 것 같다.

저자의 문체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간결했다. 그래서 속도감 있게 읽히고 거부감 없이 독자들의 가슴 속에 스며들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누이가 많이 등장한다. 끈끈한 가족애를 생각하게도 되고, 교수 사회의 일면도 보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틀에 매인 우리의 모습과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의 모습도 함께 조명하고 있다.

소설가의 역할이란 게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정신적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역할. 해설을 맡은 김병익의 말처럼 '인문주의자에서 소설가로서의 운명을 이루어낸' 저자를 새로운 소설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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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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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카잘스. 아침에 일어나면 그는 피아노로 가서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 두 곡을 쳤다. 그것은 '집에 내리는 일종의 축복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카잘스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생애에 은퇴라는 말은 없다'고 단언했다. 가치 있는 일에 흥미를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늙음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이라고 강조하며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카잘스는 음악 속을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다녔다.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일은 어린 카잘스에게도 황홀한 경험이었고 그에게 음표는 글자처럼 친숙한 것이었다. 네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카잘스는 모든 악기가 궁금했고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다고 한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당연히 그 결과가 다를 수밖에. 카잘스는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그 다음엔 오르간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첼로와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세 개의 플랫'이라는 떠돌이 그룹의 연주를 광장에서 들은 후 아버지에게 그 빗자루 같은 악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그때부터 첼로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다.

열한 살 때 연주회에서 첼로 소리를 처음 들은 카잘스는 첫 음절을 듣는 순간부터 압도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음악은 동서고금 노소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인가 보다. 그 후 카잘스는 그의 말처럼 첼로와 결혼했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등 다른 악기도 좋았지만 카잘스에게 첼로는 다른 어떤 악기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카잘스의 어머니는 첼로에 열심인 아들을 바르셀로나의 시립음악학교에 입학시켰고 카잘스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첼로 선생님은 밴드렐에서 그를 깊이 감동시킨 호세프 가르시아였는데 그는 훌륭한 첼리스트이자 교사였다. 카잘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런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카잘스는 고악보 서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래되고 변색된 악보 다발이 바로 그것이었다. 첼로만을 위한 곡이라는 점에 놀란 카잘스는 첼로 독주를 위한 여섯 개의 모음곡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전에 그런 모음곡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세 살 때 만난 그 악보 뭉치만 보면 '희미하게 바다 냄새가 몰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먼지투성이의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던 카잘스는 그 모음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흥분' 속에서 12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 곡을 연습하고 연구하고 모음곡 가운데 하나를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그 후 그는 마드리드로 가 두 번째 아버지와도 같은 길레르모 데 모르피 백작에게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는 카잘스의 개인교수이자 후원자 조언자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음악에 관한 것뿐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교육하려고 애썼다. 그 후에도 여러 스승에게 착실한 음악 수업을 받았고 그도 마침내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내 관점에서 볼 때 드레퓌스 사건의 가장 무서운 측면은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수의 사람이 그를 반대했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파리, 그 모든 교양과 인권의 고귀한 전통이 있는 그곳, 빛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서 반유대주의가 흉악한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질병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병이 나중에는 결국 한 나라 전체에 전염되어 '유대인의 피'가 혈관에 흐른다는 이유로 수백만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을 학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게 되는 거지요. - 본문 중에서

카잘스가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 터진 '드레퓌스 사건'은 그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예술과 배움의 영역에서 찬란한 빛을 발했지만 그와 동시에 무지와 사회 부정의의 증거'를 함께 지니고 있는 파리의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여러 차례 전쟁은 그를 조국에만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은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카잘스는 음악회를 열면서도 음악을 듣는 청중의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 있음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청중들은 대부분 여유롭고 잘 사는 사람들로 노동자들은 입장권을 살 형편이 못되었을 뿐 아니라 간신히 비용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제일 싼 복도좌석을 차지할 따름이었다. 말하자면, 카잘스는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음악회를 열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희망은 현실로 나타났다. 카잘스는 1928년 바르셀로나 올림피아 극장에서 제1회 노동자 음악회를 열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모였고 소박한 옷차림의 관객들을 보며 카잘스는 벅찬 감정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떤 박수갈채보다도 그들이 보내주는 것에 의미가 컸다고 전했다. 음악가로서 그는 훌륭한 일을 해내었던 것이다. 부자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빈자들도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다했다.

카잘스는 스스로 '육체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독자들은 오만하지 않은 음악가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카탈루냐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삶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어냈는지, 그럼에도 그의 예술혼은 별빛처럼 빛이 났다. 단순한 연습곡 정도로밖에 인정받지 못하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발굴은 그의 생애 가장 주목받을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카잘스는 1차 세계 대전,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을 오로지 첼로라는 무기로 견뎌온 '첼로의 성자'였다. 평생을 첼로와 함께 한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생애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줄 것이다. 허공을 넘나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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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주의자의 꿈 -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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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한 사람쯤 좋아하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생각에만 머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작가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라면 모를까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라면 그가 남긴 작품을 모두 구하는 데도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절판되거나 하는 이유로).

저자는 이윤기와 안정효를 특히 좋아해서 그들의 책은 거의 다 소장하고 있었다. 창작물은 물론이고 번역서까지 저자의 노력은 대단해 보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주례를 부탁할 정도로 넉살 좋은 저자는 한 통의 편지로 이윤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자가 지금껏 읽어 온 선생의 방대한 책을 거의 소장하고 있고 애독하고 있다는 내용의 맛깔스런 글과 책을 담은 사진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홀로 스승으로 모신 분을 결혼식 주례로 모시게 되다니 저자에게는 매우 큰 기쁨이었으리라.

저자는 두 사람의 작가를 통해 전작주의자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자칫 한 사람의 글만 읽는다는 것은 좁아지고 편협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늘 새로운 논객들의 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의도와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의도는 또한 글쓴이 자신의 내면 세계와 깊은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즉 누군가의 글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개별적인 작품만이 아니라 그 작가의 전체적인 내면 세계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 한 작가와 일생을 같이 걸어가겠다는 각오 같은 것이 전작주의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는 책이 자신의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헌책방을 다니며 제법 많은 책을 모았다. 절판되어 만나기 힘든 옛 책은 물론이고 베스트셀러인 최근작까지 헌책방에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많은 책들이 두서없이 공존하고 있다. 책의 소장만으로도 행복한 이들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에 많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그곳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헌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기보다 새 책을 사 봐야하는 이유가 더 많을지 모른다. 침체된 출판 경기 부흥을 위해서, 애써 책을 만든 수많은 작가들과 출판사 직원들을 위해서 제값을 내고 책을 사 봐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밖에 없거나 도서관에도 없는 책이라면 갈 곳은 헌책방뿐이다. 헌책방이 아직 건재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비해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나는 책은 마치 어린 시절 즐겨했던 보물찾기놀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책에는 사진이 몇 점씩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저자의 책장 사진이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책장을 구입해 책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벽돌을 사이사이에 쌓아두고, 판자를 구입해 벽돌위에 쌓아 책장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서재는 자투리 공간 하나 남는 곳 없이 정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제 손으로 만든 책장‘이 그에게는 얼마나 더 소중히 여겨질까. 이쯤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은근한 부러움을 사게 될 것 같다. 아이디어를 하나 얻은 것 같으니 개런티라도 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에 실린 헌책방 순례기에서는 헌책방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헌책을 새 책처럼 반듯하게 만드는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헌책방과 온오프라인 모두 이용 가능한 헌책방을 실어 두었다. 고정관념 때문이었는지 헌책을 온라인으로 구입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헌책과도 친해질 수 있는 물꼬가 트인 것 같아 기뻤다.

사실 나는 헌책을 반기는 사람이 못된다. 도서관을 이용할 때도 오래되어 빛바랜 서적들은 차마 시선을 마주하기가 애처롭기도 하고 빛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책의 외양에 따라 가치가 평가절하 되곤 했다. 그래서 더욱 헌책방과는 인연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책을 다듬고 고쳐 온전한 내 책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 책의 운명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분명할 텐데. 좋은 주인을 만나는 것은 애완동물 뿐 아니라 책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조희봉의 <전작주의자의 꿈>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유별난 책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시종 따뜻한 어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새 책장을 덮는 순간에 이르게 된다. 독자들은 저자의 유별난 책사랑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편으로는 전작주의자가 되려는 노력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환기하게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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