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외국 서적을 읽다 보면 저자뿐 아니라 자연스레 번역을 맡은 이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같은 이름이 자주 눈에 띠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들이 궁금했다. 책에 소개된 짧은 이력으로는 그들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 저자만큼이나 번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번역은 내 운명>이란 책을 읽고 나니 번역을 '제 2의 창조'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나는 한때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힐난했던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번역가들이 책 한 권을 번역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동안 얼마나 어린 생각에 머물렀는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강주헌,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 등 6인의 번역가가 들려주는 번역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정겹다.

번역은 쉬워야 한다! 내용은 어렵더라도 읽어 내려갈 수는 있어야 한다. … 전문 용어는 최대한 살리더라도 누구나 읽어 낼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약하면 어려운 책도 쉽게 번역하자는 것이다. 전공자들이야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 아닌가. 책을 번역하는 목적, 더구나 출판의 목적은 '대중화'에 있으니까 말이다. - 본문 중에서

번역가 강주헌씨가 말하고 있는 '대중화'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원서를 읽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사전을 옆에 두고 의미를 찾고, 또 생각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한 페이지 번역하다 하루가 다 가버릴 것 같다. 기실 번역가들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하기가 힘들다.

<번역은 내 운명>에서 저자들은 자신이 번역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고 있다. 또 생각 외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과 좋은 책임에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 책에 대한 안타까움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아까운 책'이라고 말할 만큼 좋은 책은 쉽게 만나지지 않는 법인데 이쯤에선 횡재한 기분도 든다.

송병선과 김춘미를 제외하면 다른 저자들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한결같은 번역의 애로 사항은 번역료에 있었다. 낮게 책정된 원고료도 문제지만, 원고는 넘겼는데 제때 입금되지 않는 번역료에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말이었다.

출판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이해하지만 번역으로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그들에게 출판사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가정 경제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또는 일부 출판사에서는 악의적인 마음으로 번역료를 제때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은 프리랜서 번역가에게는 큰 어려움일 것 같다. 다른 직업이 있어 번역료가 언제 입금되어도 상관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참 애 타는 경우가 아닌가.

'번역'의 최대 딜레마와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머리는 완벽하지가 않아 하나의 언어를 자주 쓰고 그 언어체계에 길이 들어버리면 다른 언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외국어에 치중하면 우리말이 울고, 우리말에 중점을 두면 외국어가 운다. 그러나 어쨌건 번역가는 외국어로 된 글을 제대로 읽어내어 우리말로 흠 없이 옮겨야 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물을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은 후 원저자가 의도한 대로 이해해야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 본문 중에서

이러한 사정으로 최정수씨는 "외국어와 우리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해당언어와 우리말에 대한 지식과 끊임없는 공부는 물론 치밀한 자료 조사 능력과 꼼꼼함, 성실성은 기본으로 요구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자신을 위해, 좋은 문장을 위해 어떤 식으로 재투자를 하느냐'는 물음에 "신문 꼼꼼히 읽기나 좋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사가 아름다운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최정수씨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또 권남희씨는 "더러 독서를 위한 독서를 하고 싶으나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로 모든 문장을 해체하며 읽는 버릇이 생겼다"며 "일어나면 해야 할 번역이 책상 앞에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번역은 내 운명>은 이처럼 번역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책을 통해 번역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면 책은 그 임무를 무사히 마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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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06-05-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 읽었는데, 리뷰가 부드럽고도 씹는 맛이 있네요.

연잎차 2006-05-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번역 환경이 좋아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행복한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