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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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일 한국인이라는 저자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이름만 보았을 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지만 저자는 소설 속 주인공 스기하라에 투사된 자신의 모습을 면밀하게 그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이 재일 한국인의 슬픔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 것 같았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GO'의 주인공 스기하라는 고등학생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줄곧 사고뭉치였다.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탓인지 언제 어느 때나 피가 끓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민족학교에 다녔다. 거기서는 김일성의 업적에 대해 배우고 한국말과 글, 역사를 배웠다.

그러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고등학교만은 민족학교가 아닌 보통 일본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다. 성적도 바닥이었으므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서두에서 밝혀두고 있듯 스기하라는 재일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연애는 스기하라의 삶의 일부이고 전 생애에 걸쳐 은근하게 그를 내리 누르는 '정체성'이 바로 소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들은 조국이 분단되는 바람에 둘 중 하나의 국적을 택해야 했다. 일본에는 ‘조총련’과 ‘민단’이라는 두 기관이 있는데, 북조선과 한국을 각각 대표하는 것으로 재일 한국인은 두 기관 중 한 곳에 소속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면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되는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하더라도 국적은 한국이라니. 그들은 일본 당국에 세금을 내더라도 일본 국적은 취득할 수 없는 외국인이었다.

스기하라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어쩌면 드센 일본 아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무장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를 가볍게 넘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그만 반해버린 여자애가 있었다. 이름은 사쿠라이. 벚꽃을 닮은 예쁜 아이인지는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스기하라도 사쿠라이가 좋았다.

"나는 사쿠라이를 만지고 싶었다. 어떤 부분이라도 상관없었다. 만졌을 때, 사쿠라이가 내 손을 받아들여준다면, 이 가슴에 충만해 있는 초조감을 틀림없이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눈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여자를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만난 지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인지 거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인데, 놀랄 만큼 강렬하게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라면 내 손을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본문 중에서

사쿠라이 집에 놀러가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주말에 데이트도 즐겼다. 사쿠라이의 부모도 스기하라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마도 스기하라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스기하라는 자신이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사쿠라이의 아버지는 평소 딸에게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피가 더러워’라고 교육을 했던 것이다. 스기하라는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부정하기가 쉬웠지만 사쿠라이는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죽어버린 삼촌을 생각했다. 일본에서 북조선까지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두 시간? 세 시간? 나는 비슷한 시간에 한국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북조선에는 갈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깊은 바다가? 넓은 하늘이? 인간이다. 돼지 같은 놈들이 대지 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자기 영역을 주장하면서 나를 몰아내고 삼촌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테그놀로지의 발전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좁아진 이 시대에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장소에 갈 수 없다는 것을." - 본문 중에서

차별 받으며 일본에서 가난하게 사느니 차라리 북조선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던 삼촌은 북으로 갔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건 삼촌의 부고였다. 고혈압인가 영양실조인가 그런 것으로 병사했다는 것이다. 소설의 곳곳에는 이렇듯 재일 한국인의 상흔이 묻어나 있다. 처음에는 가볍고 경쾌하게 무거운 주제를 양지로 끌어내지만 시간이 더할수록 점점 그 무게는 어두움을 덧칠해 가고 있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유 없이 차별당하지만 그러나 그곳을 떠날 수도 없다. 그들이 할 줄 아는 언어는 일본어 밖에 없고 일본을 떠나서는 아는 사람도 없다. 온갖 차별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이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랑에 국적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에 이르자 스기하라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운명 같은 사랑은 스기하라와 사쿠라이를 그냥 헤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내 사랑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에 살지만 온전한 일본인으로 살 수 없고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을 할 수 없는 그들은 ‘한 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원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경쾌한 문체 속에 녹아있는 ‘재일 한국인의 삶’은 분명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제목 'GO'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딘가에 머물지 않겠다는 젊음의 표상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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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icians of Bremen (브레멘 음악대) 영어로 읽는 명작동화 14
계림닷컴 편집부 엮음 / 계림닷컴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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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지만 어린 동생을 위해 구입한 책이었다. 책과 함께 영어테이프가 들어 있어서 좋았다. 우선 그림책이라 초등 저학년 어린이에게도 거부감없이 읽힐 것 같다. 동화 속 내용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문장 구조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영어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읽히면 좋을 것 같다.

몇 번을 읽으면 식상해지기 쉬우나 그때는 테이프를 들어가며 문장을 읽어나가면 또다른 재미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선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골라주고 점차 수를 늘려가면 좋을 것 같다.

영어공부를 따로 하는 것보다는 동화를 통해 자연스레 단어와 문장, 문법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놀이가 공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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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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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었을 때 예상외로 선전을 보이던 세네갈을 기억한다. 그때 처음 들어본 세네갈은 아프리카의 어디쯤 있는 나라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아프리카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관광명소로 유명한 도시와 도시를 대표할 만한 상징물 가령 파리의 에펠탑, 런던하면 근위병이 선명히 떠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깊이 배운 바가 없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아프리카보다는 선진 유럽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큰 까닭에 자연히 관심이 기울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날 때 유럽행이 많은 것은 그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겉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아프리카 대륙이 생성된 태고의 옛날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그림들은 아프리카 출신의 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시각적인 효과는 책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다양한 색감으로 정성 들여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세네갈은 물론이고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나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인 수단, 지중해와 닿아있는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등의 나라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그려진다.

가장 오래된 대륙이며 모든 것이 시작된 아프리카에서 원시 인류가 나타나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아프리카에 문명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땅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500여 년 전이다. 유럽 열강들이 다투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짧은 시간만에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약탈자와 압제자 노릇을 하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륙 전체를 제멋대로 나누어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곳 주민들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았다. 마치 범죄자들이 훔친 물건을 놓고 분배하는 것과 같았다.

… 유럽의 많은 역사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식민지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내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유럽 사람들의 전투를 상세히 보고한다. 자신의 땅에서 도둑을 맞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방어 행위가 대부분 '학살'이라는 말로 서술되고, 정작 죽임을 당한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 말도 없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세상에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어도 좋을 나라는 없다. 야만의 시대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들은 풍부한 천연자원만 약탈해간 것이 아니라 '검둥이' 라고 부르며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노예는 '지위가 낮은, 또는 권리가 줄어들거나 없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남북아메리카로 강제 이주되어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도중 탈출은 곧 죽음을 의미했는데 단 하나의 성공 사례는 실화를 바탕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아미스타드>에 담았다고 한다.

아프리카는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역사의 발전이 500년 이상이나 억지로 중단되었다. 언어만 해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슬람의 북부 아프리카만 빼고,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유일하게 공통된 언어는 옛날 압제자의 말뿐이라고 한다. 그만큼 뿌리 깊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유럽 열강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지배한 그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미래를 꿈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음을 환기하게 되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한 지도자들의 업적은 유럽의 역사처럼 자세히 기록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제 유럽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프리카 자신이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역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균형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새롭게 눈 뜰 수 있게 될 것 같다.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 동안 잘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역사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며 나아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로 연결된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공존의 메시지'로서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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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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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 3분의 1을 읽었을 즈음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어나갈 수 없었다. 그냥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해놓은 이 책의 다음 부분을 읽으려면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현실과 역사, 내면 깊숙이 맺힌 한과 억울함을 날카롭고 예리한 어조로 말하되 감정적이지 않게, 이성적으로 들려주어 어떤 반박도 무력화시키는 저자는 그 이전의 책보다 더 전투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이 아니면서 이토록 한국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 역사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직업상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착잡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마음이 일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면 책갈피를 마련해 기억해야 할 만한 부분에 끼워두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해야 하는 관계로 책장 사이로 어지럽게 튀어나온 갈피들이 사나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기실 하나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글만이 수록된 책, 그냥 스쳐지나가서는 안될 이야기들만이 빼곡하게 들어 찬 책을.

성형수술, 욕망의 노예화

"나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의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의식해서 성형을 한다는 것은, 성형이 단순히 ‘신체에 대한 결정권의 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체발부를 종교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자유’라 볼 수 없겠지만 남의 눈을 생각해서 얼굴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더욱 심한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가. … ‘예뻐지고 싶다’는 말을 사회과학 적으로 해석한다면 서구 중심의 세계 체제와 지역적인 대리인들이 ‘표준’으로 삼는 신체 모델에 내 몸을 무조건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 사회는 젊고 예쁜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회다. 면접시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의식화되어 있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바비 인형처럼 되지 못해 안달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은 암묵적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면접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외모를 바꾸려는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잡지책에서 성형외과 광고가 사라지는 날이 빨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강사와 알바생의 비애

"‘지식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소장 학자들이 교육 자본의 ‘먹이’가 되는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기도 하고 지식·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방해하기도 한다. 설령 세계적인 천재적 두뇌와 재능이 있다 해도 강의가 없는 방학 때 아이들의 비싼 양육비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창조적이며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기 쉽겠는가." - 본문 중에서

"그 누구라도 이름만 부르는 사회에서 ‘타이틀’ 위주의 사회로 옮겨와 ‘교수님’으로 지칭될 때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저자는 우리나라의 박사 인구가 거의 10만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따리 장사’로 비유되는 시간 강사들의 처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군데 보따리를 풀지 않아도 될 만큼 급여는 물론이고 연구비를 개인 자격으로 받을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생긴다면 ‘시간강사 시절을 학자적 훈련의 시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스민 저자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돈다.

‘엿장수 마음대로 해고’가 불가능해야 교수가 강사를 머슴으로 부리는 추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양심 있는 교수들의 각성과 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은 언제쯤 관철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원생과 강사의 착취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생애 처음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신입생이 되어 아르바이트 시장에 나간 우리 젊은이들의 경우도 위의 경우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간당 겨우 2천원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앞에 설 때면 왠지 얼굴이 붉어진다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 겹겹이 쌓인 노동 착취의 현장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상위자는 하위자의 인격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수직 관계 위주 사회의 인간적 존엄성 무시의 관행,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으로 무력한 '알바'들을 등쳐먹는 업체가 흑자만 내면 '효율적 경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경제상식'" - 본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과당 경쟁에 허덕이는 상업과 외국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경박한 인종주의를 비롯하여 반전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 복무제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한국과 세계 곳곳을 비교해 우리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짚어주는 이 책은 쓸쓸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감없이 드러내어주고 미래를 설계할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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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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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는 번역의 역사부터 출판계의 동향, 대학과 책 소비에 대한 이야기까지 번역과 책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나는 다만 번역의 세계가 궁금했을 뿐인데 덤으로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수확을 올린 농부의 마음이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돈을 내고 책을 사서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책은 화장품 같은 것과는 달리 소비되어 없어지는 게 아니니 빌려볼 수 있지만, 언제 어느 때 다시 그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두어야 한다.

또한 문화후진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었다.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 저자는 물론이고 출판사는 얼마나 상처를 입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안쓰러운 일이다. 인문 출판의 경우에는 '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행위'라 할 만큼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언어 체계 속에 녹여내지 못하고 일본들이 노력해 한자어로 번역한 서양 문화를 손쉽게 빌려 쓰는 길을 걸었다'며 저자는 우리 번역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번역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번역에 매진한 것에 비해 우리가 번역에 기울인 노력은 너무 미미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번역 문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번역을 맡은 일부 교수들은 대학원생에게 번역을 하청 맡기고 대학원생들은 돌아가며 번역을 하고 검토도 마치지 않은 채 출판 편집자에게 넘겨지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편집자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을 밤을 새워가며 매끄럽게 만들지만 1차적으로 제대로 되지 않은 번역을 아무리 매끄럽게 한들 독자들에게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될 것인가. 교수 연구 실적에 번역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교수들이 번역을 꺼리는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번역자의 조건

아무나 번역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참다운 번역은 원작의 가치에 대한 이해에서 생겨난 존경과 감동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한 번역은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노동일뿐이다. - 본문 중에서

해당 언어에 능숙하다고 해서 번역가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나 보다. 언어가 녹아있는 사회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이는 오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오역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해당 분야에 전문 지식을 쌓는 일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모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윤기나 안정효 같은 소설가들이 번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번역이란 결국 '문자의 옮김'이 아니라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척박한 번역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일 년에 몇 권을 번역해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인가. 일 년에 많은 번역서를 만들어낸다고 하면 한 권에 기울어지는 노력에 의문이 갈 것이고 한권에만 매달리기에 그 대가는 너무 미미하고. 가장 좋은 것은 번역료가 높이 책정되어 책 한 권에 혼신의 힘을 기울일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는 것이 아닐까.

책에 관한 한 과소비는 무죄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이 너무 달콤한 것이어서 노령이 겁나기는커녕 정년이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일본 조치대학 교수 와타나베 쇼이치는 그의 저서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 지적 생활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주고 책을 조금씩 사들여 자기 주위에 책을 쌓아가는 것이 지적 생활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책에 관한 한 과소비는 무죄'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백 권이 넘는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저자는 무리를 해서라도 책은 사고 보는 사람에 속하고 책값만은 아끼지 않으려 한 까닭에 오 천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집을 넓혀 이사할 수밖에 없는 남모를 이유가 계속 쌓여가는 책에 있다는 저자의 말은 책을 빌려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안겨 주기도 했다.

대학이 자기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는 데 비해 출판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출판사 사장은 대학 총장에 필적하는 중요성을 지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출판사가 떠맡은 사회적 책임이 대학 못지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출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번역가를 꿈꾸는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부치는 글도 인상적이었는데, 후배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으로 따뜻함이 전해졌다. '번역 사업은 막연히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두어서는 결단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했다.

<번역은 반역인가>를 통해 우리는 번역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번역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미 조금은 알고 있던 이야기에 살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듣는 이야기는 한 장 한 장을 되넘겨 보게 만들 것이다. 이런 책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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