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 3분의 1을 읽었을 즈음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어나갈 수 없었다. 그냥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해놓은 이 책의 다음 부분을 읽으려면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현실과 역사, 내면 깊숙이 맺힌 한과 억울함을 날카롭고 예리한 어조로 말하되 감정적이지 않게, 이성적으로 들려주어 어떤 반박도 무력화시키는 저자는 그 이전의 책보다 더 전투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이 아니면서 이토록 한국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 역사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직업상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착잡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마음이 일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면 책갈피를 마련해 기억해야 할 만한 부분에 끼워두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해야 하는 관계로 책장 사이로 어지럽게 튀어나온 갈피들이 사나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기실 하나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글만이 수록된 책, 그냥 스쳐지나가서는 안될 이야기들만이 빼곡하게 들어 찬 책을.

성형수술, 욕망의 노예화

"나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의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의식해서 성형을 한다는 것은, 성형이 단순히 ‘신체에 대한 결정권의 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체발부를 종교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자유’라 볼 수 없겠지만 남의 눈을 생각해서 얼굴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더욱 심한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가. … ‘예뻐지고 싶다’는 말을 사회과학 적으로 해석한다면 서구 중심의 세계 체제와 지역적인 대리인들이 ‘표준’으로 삼는 신체 모델에 내 몸을 무조건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 사회는 젊고 예쁜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회다. 면접시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의식화되어 있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바비 인형처럼 되지 못해 안달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은 암묵적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면접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외모를 바꾸려는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잡지책에서 성형외과 광고가 사라지는 날이 빨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강사와 알바생의 비애

"‘지식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소장 학자들이 교육 자본의 ‘먹이’가 되는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기도 하고 지식·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방해하기도 한다. 설령 세계적인 천재적 두뇌와 재능이 있다 해도 강의가 없는 방학 때 아이들의 비싼 양육비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창조적이며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기 쉽겠는가." - 본문 중에서

"그 누구라도 이름만 부르는 사회에서 ‘타이틀’ 위주의 사회로 옮겨와 ‘교수님’으로 지칭될 때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저자는 우리나라의 박사 인구가 거의 10만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따리 장사’로 비유되는 시간 강사들의 처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군데 보따리를 풀지 않아도 될 만큼 급여는 물론이고 연구비를 개인 자격으로 받을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생긴다면 ‘시간강사 시절을 학자적 훈련의 시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스민 저자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돈다.

‘엿장수 마음대로 해고’가 불가능해야 교수가 강사를 머슴으로 부리는 추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양심 있는 교수들의 각성과 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은 언제쯤 관철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원생과 강사의 착취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생애 처음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신입생이 되어 아르바이트 시장에 나간 우리 젊은이들의 경우도 위의 경우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시간당 겨우 2천원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앞에 설 때면 왠지 얼굴이 붉어진다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 겹겹이 쌓인 노동 착취의 현장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상위자는 하위자의 인격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수직 관계 위주 사회의 인간적 존엄성 무시의 관행,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으로 무력한 '알바'들을 등쳐먹는 업체가 흑자만 내면 '효율적 경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경제상식'" - 본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과당 경쟁에 허덕이는 상업과 외국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경박한 인종주의를 비롯하여 반전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 복무제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한국과 세계 곳곳을 비교해 우리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짚어주는 이 책은 쓸쓸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감없이 드러내어주고 미래를 설계할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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