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언어를 학습하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없다. 언어 자체보다 두 언어 사이의 좁은 공간이 중요하다.
나는 A어로도 B어로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A어와 B어 사이에서 시적 계곡을 발견해 떨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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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에 요즘들어 유독 자주 방문하게 된다. 책방 주인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책 진열 구성을 바꾸는 것 같은데 그 때마다 책 구경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만 내놓는게 아니라서 출간된 지는 좀 됐지만 참 좋아서 세상의 빛을 더 받기에 마땅한 책들을 그때 그때 선택하는 것 같다. 종종 책방 주인이나 점원의 자필 추천 문구가 표지에 끼워진 책들이 있는데 그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에는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 책이 나란히 메인 매대에 올라와 있었다. 



외람된 얘기지만... 유독 프랑스의 동아시아 소설 번역책 표지가 좀....구리다. 뭐랄까 그... 좀 촌스러운게... 다 결이 통일된 그런 촌스러움이다.... 그들은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표지로 구현한 것 같은데, 그들이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애초에 죄다 구리기 때문에...결과물도 결국 구리게 되는.... 저 표지의 뒷통수... 박상영 작가님의 뒷통수 아니냐구ㅎㅎ 친구가 말하길 저 뒤에 보이는 배경 풍경이 어딜봐서 대도시냐며ㅋㅋㅋㅋ 한국의 대도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극대노 ㅋㅋㅋㅋㅋ 


저저번주에는 그 단골 서점에서 파트너에게 줄 선물로 (겸 나도 좀 읽을까 하고) <세계 끝의 버섯>을 샀다. 서점에 있진 않았어서 주문해서 입고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사러 갔었다. 책을 주문했을 당시 출판사가 파업을 해서 입고가 언제 될 지 모른다고 서점 직원이 말해주었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나? 생각보다는 빨리 받았다. 마침 책을 찾으러 간 날이 할로윈이었는데, 선물용이라고 말하니 직원이 사부작 사부작 거리면서 꽤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종이 포장을 해 주었다. 짜잔! 박쥐 모양이 참 귀엽다. 조금이라도 사진이나 그림이 포함되어 있는 책은 이북 말고 종이책으로 읽고 싶은데, 저번에 한국에 가서 사 오려 했으나 무게 이슈로... 사 오지 못했고 그렇게...쭉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이었는데 문득 프랑스에 찾아보니 프랑스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어서, 파트너도 아주 좋아할 것 같은 주제와 소재여서 여차저차 선물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랑스어판 표지가 훨 귀여운 것 같다!




그리고 그저께 산 책 또 소개. 한국 출판계 뿐 아니라 이제 프랑스 출판계의 큰 손이 되어가고 있다 (아님)

Alice McDermott (앨리스 맥델못? 한국어로 뭐라고 발음하나요?)의 <Absolution>과 Mariama Bâ의 <Un chant écarlate>.


<Absolution>은 알라딘에서 찾아 보니 원서로는 나온다. 알라딘 기준으로는 출판일이 2024년 10월이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원서가 나오자마자 한달 만에 불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건가..? 빠르군... 나는 일단 커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책을 집었다. 그리고 보통은 줄거리 요약이 나와있는 책 뒷면을 봤는데 아무런 요약이 안써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펼쳤더니 책 날개 안쪽 왼편에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었다. 프랑스어 번역본의 요약 줄거리는 이러하다 (번역은 제가 한 것으로 오역이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


1963년, 사이공에 막 도착한 젊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파트리시아는 그녀의 첫번째 가든파티에서 세 아이의 엄마인 샤를렌을 만나게 된다. 샤를렌의 막내딸인 레이니는 자신이 갖고 있는 바비 인형의 모든 옷 컬렉션을 뿌듯하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딱 하나가 부족하다. 그것은 바로 'áo dài'. 이에 가정부이자 훌륭한 재단사인 릴리가 즉석에서 아오자이를 만들어준다. 이에 영감을 받은 샤를렌은 이름하여 '사이공 바비'라는 이름의 자원 모금 행사를 열기로 한다. 이 행사는 파트리시아에게, 이국적인 접대와 자선사업의 위선적인 경묘함이 다스리는 미국인 부인 사교 모임의 기둥인,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과 친목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60년 후, 남편과 사별하고 과부가 된 파트리시아는 그녀의 인생에서 이토록 특별했던 시기에 대해 레이니에게 이야기 해 준다. 당시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녀의 친구가 가진 것과 같은 이미지의 가족을 꾸리는 것에 불과했던, 전쟁 당시 해외로 나가게된 기혼자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백과 성찰의 형식으로 쓴 긴 편지를 통해서 이야기를 건넨다.


60년 후, 이제는 과부가 된 패트리시아는 레이니에게 당시 자신의 삶의 특별한 시기를 긴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하며, 당시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가 친구의 가족처럼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음을 떠올린다. 이 편지는 전쟁 중 해외로 파견된 남자들의 부인 역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형식으로, 동시에 그들의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국, 앨리스 맥더못은 여성 내면의 섬세한 통찰을 통해 기억의 오류를 포착하고 주인공이 구속을 향한 여정을 떠나는 과정을 함께 그려낸다.


아... 사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페미니즘. 제국주의. 인종주의. 계급. 이 모든 키워드가 잘 버무려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지 않나요? 이 주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소설의 소재로 '베트남 전쟁 중 베트남에 파견된 미국 외교관 부인들의 그사세'를 생각해냈다니 일단 처음 이름 듣는 작가님에게 박수!

개인적으로도 프랑스판 표지가 더 예쁘다고 생각.. 이 책이 칵테일파티로 시작이 되는데 뭔가 표지가 이야기의 첫 장면을 잘 담은 것 같다. 그리고 그링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은 색감도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책이 좀 긴데 아무튼 화이팅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 책은 Mariama Bâ의 <un chant écarlate>. 

1929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태어난 세네갈 흑인 무슬림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인 마리아마 바는 평생 두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는 <이토록 긴 편지(Une si longue lettre)>와 바로 이 책, <Un chant écarlate >. 한국말로 직역하면 <다홍색 노래> 정도가 되겠다. 작가는 평생 3번의 결혼과 9명의 자녀를 슬하에 두고 홀로 키웠다는데...... 

절판이 된 이 도서를 검색하니 딱 한 사람이 리뷰를 썼는데 바로 그 분은 잠자냥님... 역시...... 잠자냥님의 후기는 여기에 들어가면 보실 수 있다. ( https://blog.aladin.co.kr/socker/9297984   )














아무튼, 이 책 뒷면에 쓰인 줄거리 요약을 번역하자면 이러하다.

1980년대. 다카르에 정착한 귀족 특권층의 딸 미레이와, 세네갈 저소득층 가정의 아들인 우스만. 이 두 대학생은 대학교 강의실에서 만나게 된다. 이 어린 커플은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한다. 그들의 사랑은 전통, 사회적 압박, 그리고 가족의 반대에 저항할 수 있을까? 1929년 세네갈에서 태어난 마리아마 바는 여성 해방을 위한 수많은 싸움을 벌였으며, 그녀의 소설 <이토록 긴 편지>는 1980년, 그녀가 사망하기 1년 전 그녀에게 노마상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1/3 정도 읽었는데 문체가 굉장히 시적이고 모르는 단어들도 많이 나와서 속도감있게 읽히지는 않는다.

미레이는 세네갈로 파견된 외교관의 딸인데, 이 외교관이 (그러니까 미레이의 아빠) 완전 겉과 속이 다른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고지식하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딸을 완전 구속한다. 겉으로는 세네갈인들을 존중하는 척 하지만 겉으로는 흑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경멸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다. 미레이가 바칼로레아(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시험) 이후에 본국, 그러니까 프랑스로 돌아가 대학을 가게 하지 않고 세네갈에 계속 남아 다카르 대학교에 다니게 한 것도, 외교관인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딸을 이용한 것에 불과한...새끼이다. 이에 미레이는 아빠의 구속에 날뛰듯 반대하고 68혁명에도 참가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뿌리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같은 부잣집 공주님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구간이 많다. 부정부패, 평등,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뜨거운 학생이지만 너무나 부잣집에 대대로 귀족 집안 출신이라 현실과 괴리감이 너무 크고, 세상을 글로 배운 느낌이 없지 않은 미레이. 반대로 우스만은 다카르 외곽의 조그마한 비스킷 공장을 운영하는 독실한 이슬람교 집안의 아들이다. 우스만의 아버지는 과거 *세네갈 티라이외르, 세계대전 때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항상 절뚝거리며 걷는다. 엄마 야예 카디는 언제나 다정하고 상냥하고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뜻을 잘 따르는 현모양처이다. 우스만의 부모님 가족은 '여느 가족들과는 다르게' 일부일처제이다. 어릴 적부터 동네 사내아이들의 시시껄렁한 장난이나 남성성을 뽐내는 허풍에 관심이 없고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없다. 알라와 뜻,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신에게 충성하는 신실한 삶을 꿈꾸던 감수성 뛰어난 모범생 우스만은 처음으로 미레이의 새하얀 목덜미를 보고 입을 마추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아무래도 소설이라는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등장인물 중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거나 동일시를 하게 되는데 이 소설만큼은 잘 모르겠다. 나는 가난하지도 (우스만의 집은 제대로된 욕실도 없고 차가운 구리 판자로 만들어진 간이 샤워실에서 아침에 몸을 씻는다), 부잣집 딸도 아니고, 우리 아빠는 외교관도 아니고, 과거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이자 동시에 오늘날 선진국(....할말하않)인 곳에서 나고 자랐다. 가부장제에서 자랐으나 아버지가 나의 꿈을 정해주지도, 종교의 신념이 강제된 적도, 아니, 무교 집안에서 자랐다. 나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다. 나는 내 인종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주류인 사회에서 나고 자랐지만 현재 있는 곳에서는 소수 인종으로 지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재미있다. 내가 결코 체험할 수도, 생각할 기회도 없을 그런 다양한 얽히고 설키는,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정체성들의 교차점들을 등장인물들이 나 대신 얽히고 설키고 꼬이고 풀고 자르고 해 주기 때문이다. 이래서 책을 읽는거지...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납작한 사람이었겠지.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런 책을 읽고 살지 않는 삶.


아무튼,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밀린 책이 너무 많아서....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도 영 진도가 안나가고 있는데...(공쟝쟝님, 제가 중도 포기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ㅠㅠㅠㅠ ) 그것도 불어로 언제 다 읽냐.. 내가 저번에도 읽어보겠다고 하고 후기 안 남긴 책들이 꽤 되는데 이번에는 꼭 귀찮...음을 무릅쓰고라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아니, 그 전에...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이만 총총..


(Tirailleurs sénégalais; 프랑스의 식민지인 부대 중 가장 잘 알려진 식민 부대로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토착민들로 구성었으며 1857년에 창설되었다. 초창기엔 프랑스의 아프리카 남사하라 지방의 정복과 마다가스카르의 정복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였다. 당시 병력 충당이 어려웠던 프랑스는 자국 식민지 흑인들을 강제, 반강제로 징병하여 프랑스 국기 아래 싸우게 하였다.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라는 명목하에 주로 이들은 최전선의 총받이로 '쓰였'다. 공식적 집계로만 약 20만명의 세네갈 티라이외르 병사들이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 달자의 역주, 위키피디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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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11-14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자님 프랑스 사시는군요! 부럽네용. 박상영 책 표지는 너무 웃기네요. 한국 대도시를 뭘로 생각하는건지ㅎㅎㅎ 극대노할만 합니다.

달자 2024-11-14 18:56   좋아요 1 | URL
그쵸ㅋㅋㅋ 아니 제목부터가 대도시인데 대체 ㅋㅋㅋㅋ..... 프랑스는 추워요 연말이 되니 한국에 너무 돌아가고 싶어지네요

공쟝쟝 2024-11-14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미 중도 포기(는 아니고, 저는 좋아하는 책은 애껴 읽어요 ㅋㅋㅋ)한 사람이라 할 말은 없지만 ㅋㅋㅋ 달자님 가계시면 따라 갈게요… 일단 이거 900페이지좀 치우고 갈게요!!
사라 아메드 넘 아름답쥬?

건수하 2024-11-14 10:43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좋아하는 책을 애끼나봅니다. 전 심지어 읽지도 않고 애끼고 있습니다 ...

공쟝쟝 2024-11-14 11:2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만나긴 하는데 헤어지기 싫어하는 거라구욧!! ㅋㅋㅋ 수하님은 안만난 거 ㅋㅋㅋ 😤

달자 2024-11-14 18:57   좋아요 1 | URL
수하님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읽지도 않고 애끼는 책들 있습니다 많구요^^.... 좋아하는 책은 아껴있는 그 마음 넘 알죠. 근데 사라 아메드 이 책은 특히 초반이 (서문이) 너무 안읽혀서 책 펼치자마자 고비가 찾아왔지만... 그거 넘기니까 괜찮더라구요 역시 ㄴㅓ무 좋고 아름답습니다

2024-11-14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1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14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14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4-11-14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도시의 사랑법 배경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에 저런 표지 ㄷㄷ 한국의 대도시... 서울은 너무나 대도시인데 말입니다 ^^

아래 올려주신 두 책 다 재미있어 보이네요. 요즘 소설은 거의 못 읽고 있는데...

달자 2024-11-14 18:54   좋아요 0 | URL
그쵸 아니 서울을 뭘로 보고^^ 대황당^^...... 전 반대로 요즘 소설만 자꾸 읽고 싶어요~

2024-11-15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이 페이퍼 진짜 대박이네요. 감정의 문화정치 포기하지 않으시도록 저도 읽어볼까요? 일단 시작한 책이 많긴 한데.. 흠흠.

다락방 2024-11-15 07:49   좋아요 1 | URL
앗 이 댓글 제가 쓴건데 왜 비로그인으로 되어있을까요?
[이토록 긴편지]를 읽어볼까 싶은데 잠자냥 님 별 셋..이네요?
하여간 이 페이퍼 너무나 아름답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프랑스에서 서점 가고 책 사고 책 읽는 달자 님, 진짜 흥하세요. 꽃길만 걸으세요!!

달자 2024-11-15 21:37   좋아요 0 | URL
누구신가 했네요 다락방님 ㅎㅎㅎㅎ 잠자냥님 왜 별 세개일까.. 잠자냥님이 그렇다 하면 생각보다 별로일지도...? 근데 잠자냥님 별점 기준 은근 빡세시잖아요 (아닌가?)
 

알라딘 사이트를 둘러보다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4월의 유혹>.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출간하는 책들은 구성이 좋아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편이다.

특히 각 시즌 별로 컨셉을 달리 해서 출간하는 세계 문학 시리즈가 흥미롭다.

<4월의 유혹>은 알라딘 서재 팔로워 분들이 왕왕 읽고 후기를 남겨주셨던 책, <불쌍한 캐럴라인>과도 함께, 휴머니스트 세계 문학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

















일단 표지에 눈길이 갔다.테이블 뒤로 펼쳐진 눈부신 푸른빛의 바다 해안선을 바라보는 한 여자.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복숭아, 자두로 보이는 제철 과일. 아침으로 먹는 과일인지, 아니면 점심 식사 후 후식으로 먹는 과일인지 햇빛과 그늘의 각도만으로는 바다를 모르는 나는 알 수 없다. 표지를 보자마자 작년 여름에 놀러갔던 이태리의 바닷가가 떠올랐고 그 즉시 사무실을 벅차고 바닷가로 떠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으므로 미리읽기를 눌러 처음 앞 페이지 열장을 읽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버스넛 부인이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뭔가를 묻듯 바라보는 바람에 윌킨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일이 되려면 그런 식이어야 했다. 혼자서는, 윌킨스 부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설사 감당할 수 있다 해도 혼자 그곳에 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라면...

윌킨스 부인이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우리 가서 알아보기나 할까요?"

아버스넛 부인의 눈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알아

-미리보기 완료-


알아?? 그 다음에 뭐요??? 아니 적어도 뱉기 시작한 문장은 끝마치게 해 주시고 끊어야 하지 않나요???ㅠㅠㅠㅠㅠ


하아.... 그 뒤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이렇게 써 있다.


'이탈리아의 중세식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기회를 준다는 신문광고에 속수무책으로 붙들려버린, 그러니까 가정, 남편, 지나친 관심, 늙음이란 질척대는 현실을 떠나 천국에 당도해버린 네 여자의 마법 같은 이야기.'


보아하니 윌킨스 부인이 잘 알지도 모르는 아버스넛 부인에게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용기로 뜬금없이 이탈리아 중세식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수 있다는 이 공고에 연락해 보자고 말을 꺼낸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아버스넛 부인의 대답이 너무 궁금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10장의 미리보기만으로도 아버스넛 부인이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런던의 중상류층 부르주아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로필을 가진 그녀는 고고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사람을 10초 내에 첫인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몇개의 카테고리로 상대를 분류한 다음 계산된 언행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스넛 부인이, 소위 자신보다 가난하고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시혜적인 태도로 (본인의 사회적 평판을 생각하며, 그와 동시에 자연적인 일종의 연민 의식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는) 윌킨스 부인을 처음엔 대하다가 윌킨스 부인이 자꾸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 오자 '어 이 여자 뭐지 이 여자는 어떤 카테고리에 분류를 해야 하지' 하면서 출력값에 오류를 보일 찰라 윌킨스 부인이 같이 알아보러 가자고 마지막 어퍼컷을 날리고...!! 아버스넛 부인의 대답 "알아 .......

알아, 다음에 뭐요 뭐???!!!


사무실에서 몰래 미리보기를 읽다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속이 탄 나는 화장실 가서 볼일 보다 도중에 끊고 나온 사람처럼 (더러운 비유 죄송합니다) 찜찜하게 있었다. 전자책으로는 출간이 안됐고.. 한국에 다음주에 가긴 하지만 다음주까지 기다리기엔 뭔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인데... 이곳 서점에선 한국책을 구할 수도 없고... 하다가 든 생각.

프랑스어 번역본이 있다면???


구글에 이 책의 영어원서 제목인 'The Enchanted April'을 쳐보았다. 빙고. 불어판 제목은 원서 제목을 그대로 불어로 번역한 'Avril Enchanté'. FNAC (프랑스의 교보문고, 라고 보시면 되겠다)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니, 회사 근처에 있는 FNAC매장에 문고본 재고가 1권이 있다고 뜨는 것이다!! 좋았어!! 점심 시간에 FNAC에 가서 불어판을 사 오는 거야!!


https://www.fnac.com/a17817581/Inga-Vesper-Un-long-si-long-apres-midi


그렇게 점심 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길을 나섰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서점에 갈 수 있다니.. 감격.. 예전 직장에선 꿈도 못꿀 일이었지..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2시간 걸리던 저 멀리 산업 물류단지 외딴 곳에 있었던 전 직장 다녔을 때를 떠올려보면 도심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큰 복지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프낙에 도착, 영미소설 코너에서 작가 이니셜 별로 꽂힌 서가를 하나씩 살펴보는데도 도저히 내가 찾는 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서점 직원에게 물어봐서 둘이서 같이 찾았는데도, 혹시 몰라 다른 서가를 뒤졌는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작가의 이름은 Elizabeth Von Arnim. 엘리자베스는 이름이니까 성씨의 알파벳 순으로 보통 정렬을 하는 프랑스 서가의  V 책장을 직원가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점원이 원하면 지금 주문하고 다음주에 찾으로 오면 된다고 했는데, 사실 나에겐 지금 이 점심시간에 이 책을 사서 바로 뒷장을 펼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고맙지만 내가 혼자서 더 찾아보고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점원에게 말하고 아쉬운 마음에 V로 시작하는 작가의 서가를 다시 한번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어떤 이유로 한 책을 집어 들었다.

Inga Vesper,<Un long, si long après-midi>

(영어 원서 제목은 The Long, Long Afternoon)
















사무실에 다시 돌아가 보내야 할, 보나마나 길게 느껴질 그 날의 오후 때문에 제목이 끌렸던건지, 아니면 책등의 옥색과 노란색의 색감, 그리고 그 위에 새빨간 색으로 쓰인 책제목의 색감이 끌렸던 건지, 아니면 그 둘다에 끌렸던건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어찌해서 난 이 책을 꺼내 뽑아 들었고 책 표지는 옥색 주방 붙박이장, 그리고 창밖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는 샛노란 주방이었다. 옥색 주방 붙박이장 가구를 보자마자 아주 옛날 어릴적 외할머니댁의 공사 전 주방이 떠올랐다. 딱 이런 옥색의 주방이었는데. 엄마가 없는 어느날 오후에 할머니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면서 그 옥색 주방에서 간식으로 만들어주던 프렌치 토스트가 떠올랐다. 할머니를 돕는답시고 할머니 옆에서 깨금발로 간신히 주방 상판에 손을 올려 야무진 손으로 달걀을 깨서 볼에 넣으면, 할머니는 식빵이 흐물해져 부서질 정도로 계란물에 푹 담갔다가 마가린을 듬뿍 넣어 녹인 후라이팬에 식빵을 올려 마치 전처럼 식빵을 부쳤다. 노릇노릇 익은 식빵을 접시에 담고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고 윙크를 하며 손가락을 입술 위로 가져가고선 '쉿' 하며 흰설탕을 수저로 듬뿍 퍼서 식빵 위에 솔솔솔 뿌려 주셨다.


책표지만 봤을 뿐인데 벌써 입에선 뜨겁고 폭신하고 달큰한, 이제는 먹을 수 없는 할머니의 프렌치토스트의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책표지 밑에 써 있는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Hier, j'ai embrassé mon mari pour la dernière fois.. Il ne le sait pas, bien sûr. Pas encore."

(어제, 나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물론, 아직은.)


뭐지? 가정스릴러물인가? 하고 책의 첫번째 페이지를 펼쳤는데 다시 이 문장이 써 있었다. 그러니까 책 표지에 쓰여진 이 문장은 이 책의 첫문장이기도 한 것이다. 책을 뒤집어 뒷면에 쓰여진 책 설명을 읽었다.


캘리포니아의 햇빛이 쏟아지는 주방, 조이스는 창밖에 서서 꿈을 꾼다. 그녀는 백인이고 부자이다. 가정주부인 그녀의 시야는 그러나 곧, 잘 다듬어진 정원의 덤불에 막히고 만다.

루비, 조이스의 집에서 가정주부로 일하는 그녀는 인생을 바꿀 꿈을 꾼다. 하지만 때는 1959, 미국 사회는 가난하고 젊은 흑인 여성에겐 내어줄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조이스의 실종과 함께 가식과 위선으로 덧칠된 미국의 꿈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다.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평등을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이지만, 이 멋진 두 여주인공은 이미 자신들의 외침을 들려주고 있다. 자유에 불타는 희망의 외침을.


부자 백인 가정주부? 그리고 흑인 가정부? 1959년 미국?

이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이 추리소설에서 어떻게 풀어질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차피 찾지 못한 <4월의 유혹> 불어판 대신 이 책을 구입하고 서점을 나섰다. 서점에선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네 그렇습니다... 아직도 프랑스에선... 실내 매장에 들어가면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답니다.....) 이 책이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사무실로 돌아와 검색을 해 보니 아직 한국에선 소개가 되지 않은 작가라고 한다.  

구체적인 상황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언행이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곤 하는 추리소설 장르 특성상 이를 외국어로 읽으면 아무래도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모국어로 읽는 것보다 읽을 때의 긴박감이 떨어져서 재미가 줄진 않을까 생각해서 추리소설을 불어로 읽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근데 오호라 이 책, 엄청 잘 읽히는데? 책이 쉬운 것인가 (맞음) 아니면 내 불어 실력이 늘은 것인가(아님)


다 읽고 나면 후기를 남기겠음!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출간해도 좋을만큼 재밌는 책인가, 아닌가..! 내 마음에 든다면 내가 번역 제안서를 함 출판사에 보내봐...? (어떻게 하는지 모름...)


그나저나... <4월의 유혹> 불어판은 그래서 며칠전 중고책방에서 샀다.

작가 이름이 Elizabeth Von Arnim이라서 저번에 Fnac 서점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여지없이 V 서가에서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또 없는거야... 그래서 중고책방의 서점 직원에게 결국 또 도움을 요청했는데, Von 의 V 말고 Arnim의 A로 정리되어 있으니까 A서가에 가야한다며 손가락으로 책장으 쓱 훑더니 단박에 책을 찾아주셨다. 암튼, 원래 읽고 싶었던 <4월의 유혹> 불어 문고본을 사긴 했는데 저 <Un long, si long après-midi>(긴긴 어느 오후날) 을 먼저 다 읽고 싶어서 미루고 있다. 그래서 아마 시간상 <4월의 유혹>은 한국에 가서 한국어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낄낄. 아 얼른 한국어로 쓰인 종이책 읽고 싶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에 한국 도착이니 슬슬 알라딘 장바구니를 훑어서 책을 주문해 놔야겠다. 도착했을 때 이미 내가 주문했던 책이 나를 기다릴 수 있도록~~ 요즘 알라딘 사은품 뭐가 있나 함 봐야겠다.


그나저나 혹시 아시는 분 질문, 번역제안서라는 건 어떻게 써서 어떻게 출판사에 보내나요...? 그 관례라는 게 궁금함.


그럼 이만 총총..


어제, 나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물론, 아직은.(불어판 원문을 내가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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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23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달자 님의 팬이 되렵니다. 아무쪼록 독서 마친 후 감상 꼭 적어주시고요, 번역 제안서도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음, 사실 형식 같은 거 따로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출판사의 이메일로 책 링크 보내주고 이거 엄청 재미있는데 번역해서 출간 좀 해주면 어떻겠니? 해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

달자 2023-08-23 21:24   좋아요 3 | URL
옴마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밥 먹고 왔더니, 알라딘 서재라는 곳을 알게 해준 다락방님의 이런 황송 댓글이..! 제가 팬입니다 아이구 아이구.. 근데 저 또 이렇게 잘한다 잘한다 자란~~다~~ 우쭈쭈 해주시면 또 좋다고 신나서 경솔해 진답니다. 책 거의 다 읽어가요 읽고 나서 귀찮아도 감상문 꼭 쓰기 약속..할게여ㅎㅎㅎㅎ

청아 2023-08-23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달자님 프로필 사진 제가 애정하는 영화예요. 글도 어쩜 이렇게 잘쓰시는지요.
내일은 오랜만에 프렌치토스트를 해먹어야겠어요! (저는 이모가 해줌ㅋ)

달자 2023-08-23 21:25   좋아요 2 | URL
어머나 미미님...! 이렇게 댓글도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ㅠㅠ 미미님이 비교도 안되게 훨 잘쓰심...영화 <가장 따뜻한 색,블루>의 아델 배우죠!! 저도 참 애정하는 영화예요 캬 이렇게 저 혼자서 내적친밀...!!! 프렌치토스트 계란물이랑 우유 아주 푹~~적셔서 만들어 주세요 설탕은 눈 딱 감고 팍팍!!

은하수 2023-08-24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4월의 유혹 보고 들어왔는데 글이 재밌어서 끝까지 신나게 달렸어요
저 오뎅탕도 제 취향입니다~~~
4월의 유혹도 재미있었어요. 정말 제목대로 멋져요!
저 시리즈도 좋고... 전 비타 색빌웨스트 책 읽었거든요?
진짜 넘 좋아요.... 좋아요만 계속 말할 수 있어서 좋네요^^
4월의 유혹도 재밌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달자 2023-08-24 17:54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은하수님 !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4월의 유혹 책을 저도 같이 이태리의 고성 속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저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훑어봐야겠어요!
 

아직 안 읽은 책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바구니에 잠자고 있던 책들을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6권의 책을 구입했다.






<콜카타의 세 사람> : 제 2의 줌파 라히리라는 책소개를 본 이상 어떻게 이 책을 안 읽고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인도에서 벌어진 기차 테러 사건으로 휘말리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 하는데, 나는 또 이런 굵직한 사건이 개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변화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별 수 있겠습니까 ? 사야죠...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 정희진 선생님의 오디오북에서 다뤄진 적이 있었던 책. 예전에도 이름은 들어봤던 책인데 그 당시에는 전자책으로 출간이 안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한번 검색하니 전자책으로 출간이 되었길래 얼른 구매했다. 나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든다.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지를 꿰뚫는 책 제목.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약자가, 소수자가 죽어야만 사랑한다.









원래의 나라면 관심 갖고 않고 지나칠만한,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는 지침서같은 류일 거라 생각했는데, 애독하는 알라디너님들께서 읽고 좋은 리뷰를 많이 남겨주셔서 믿고 구입해 보았다.

그나저나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는데 땡스투라는 시스템이 있다면서요? 진작 할걸.... 제게 책 지름을 사하신 분들께 땡스투 앞으로 까먹지 않고 누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간혹 쓰는 말 중엔 이런 표현이 있다. "야 그건 돈 줘도 안해" "그건 돈 줘도 안먹어"

돈을 주면 한다.

모두가 꺼리는 노동을 돈을 주고 시킨다.

돈으로 외주할 수 있는 오늘날의 모든 것들의 어두운 실상을, 사실 대충은 알겠지만 자세힌 알고 싶지 않는 바로 그 어두운 면을 큰맘먹고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작가가 독일로 이주하여 독어와 일어로 글을 쓰며 활동한다?

유럽으로 이민을 온 아시안 여성이 쓴 소설이라니, 놓칠 수 없다.













저는 탈것에 아주 취약한 사람... 그 말은 즉슨, '탈것'이 소재나 매개가 되는 이야기에 나는 일단 매료되고 본다. 거기다가 책 소개에 의하면 아침 7시 45분, 두 아들의 엄마이자 아내인 주인공이 맞은편에 앉은 한 여자에게 하소연을 하고 이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이미 머릿 속에 그 장면이 그려지는듯 하다. 읽고 싶어!!









그리고 요즘 읽고 있는 <행복의 약속>.


읽는 문장마다 명문이라 곱씹어 넘기느라 도대체 독서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이건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 건데...

이북리더기의 하이라이트 기능으로 밑줄을 쳐 보지만 내가 밑줄친 부분을 다시 한번 훑어 보고 싶은데, 내가 밑줄 친 문장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기능은 없나봐. 그래서 밑줄 치면서 읽고 나중에 내가 밑줄을 그었던 문장을 서재에 기록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전자책을 일일히 하나씩 다 넘겨봐야 하는 그런 불편함이...


종이책 접근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바다 건너 해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나마 전자책이 있는 건 축복이지만 그래도 종이책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종이의 냄새, 질감, 책등을 손으로 쓱 훑을 때의 느낌, 겉표지의 코팅, 색, 무게. 책이란 사물이 주는 모든 질감이 주는 만족감은 전자책에 비할 수 없다. 거기에다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면 종이책으로 독서를 할 때 보다 머릿 속에 내용이 덜 남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그냥 느낌 뿐 만은 아니다.

책을 읽을 떄, 책을 들고 책장을 펼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북리더기의 전원만 켜면 어제 읽다 만 페이지가 바로 펼쳐지니까, 책 겉표지를 읽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니까 책 제목과 글쓴이, 역자의 이름에 노출이 안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저자나 역자의 이름이 도통 기억에 나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었는데 책 제목도 정확히 기억이 안나고 저자도 기억이 가물가물 특히 내가 잘 모르는 외국 저자일 경우에는 더더욱...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사유의 확장을 가져다준다고들 한다. 사유의 확장, 세계의 확장.

그런데 반대로, 해외에서 모국어와의 접점 없이 사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모국어를 쓰고 말하고 읽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그럴 수록 내가 가진 기존의 내 세계가 축소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모국어도 외국어도 잃고.. 이렇게 0개국어로 수렴하는...

그러지 않으려면 꾸준히 읽고 훈련해야 한다.


오늘 산 책 리스트 자랑하려다가 독서와 공부를 게을리 하는 자기 반성으로 끝나는... 그런 오늘의 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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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8 08: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콜카타의 세사람 샀는데, 네? 제2의 줌파 라히리 라고요? 오.. 잘샀네요!! 기대가 됩니다, 저도. 후훗.
달자 님도 글 엄청 정리 잘되고 차분하게 잘 쓰시네요. 자주 써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자주 오지요!!

달자 2023-07-18 20:54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도 줌파 라히리 좋아하시나요 희희 아 또 바지런히 책 읽어야겠네요 그래야 다락방님께 제 조촐한 서재도 영업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