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걸작선
오스카 와일드 지음, 심은경 옮김 / 상상과표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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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읽었을 때, 우아한 제목 뒤의 비극적인 이야기였다는 걸로 기억된다.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달라지는 걸 느껴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그대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피부가 지성이라 주름이 상대적으로 늦게 생기고, 머리는 염색을 했고, 옷차림과 체형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그대로라고 보이는 것 같다. 한 때 젊었을 때는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기를 바랬던 적도 있다. 어려서 말이 안 먹힌다 혹은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헤어스타일에 항상 웨이브를 넣고 성숙해 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천천히 변화를 겪고 싶다는 바램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다가 정확히 5년 만에 같은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바쁘고 인기 많은 의사지만 , 이 분에게도 세월이 지나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이 책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젊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데 서론이 길어졌다. 아무튼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도리언 그레이가 떠올랐다.

 

책 속에서 화가 바질이 젊은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초상화가 나이를 먹고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계속 유지한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초상화는 나이가 들 뿐만 아니라 도리언의 타락과 방탕에 빠진 영혼의 추악한 모습까지 담고 있다. 도리언을 향락과 타락의 길로 안내한 것은 바질의 친구 헨리이다. 결국 바질은 도리언의 손에 죽고 도리언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쾌락과 아름다움의 극한이 도리언에서 만나는 것 같다. 하지만 도를 넘는 극한은 파멸을 맞는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에 속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파멸마저 초상화를 찢는 것으로 그려져 극한의 미가 느껴진다. 소설 속의 묘사와 대사도 아름답고 현란하다. 초상화가 늙고 추해가는 과정을 보며 처음에는 사람의 영혼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음미하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니 한편의 비극미를 간직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쾌락과 미의 추구, 예술의 숭고함, 인간의 굴레가 얽혀 있는 한 편의 예술이다.

 

p241

그를 파멸시킨 것은 바로 자신의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이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아름다움과 젊음이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젊음만 없었다면 그는 인생을 오점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젊음은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다. 젊음이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새파란, 미숙한 시기이고 얄팍한 심사를 가진 때이며 병약한 사고를 지닌 기간일 뿐이었다. 왜 자신은 젊음이란 제복을 입고 있단 말인가? 그 젊음이 자신을 망쳐 놓았다.

 

아름다움과 젊음의 자리에 많은 것을 대신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식, 재능, 학벌, 권력, 명예, ...... 유미주의에서 얻은 깨달음인가. 유미주의자로서 경계해야 할 것을 알리는 건가. <행복한 왕자>의 저자라는 걸 떠올려 보면 어쨌든 아름답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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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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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미니즘 소설이어야 하는가?

문학에서조차 페미니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 표지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처한 불편한 지점이 느껴진다. 사진도 그렇고. 날씬하고 하얀 피부의 젊은 여자라니.

페미니즘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설에서조차 페미니즘이 필요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민주주의 소설, 사회주의 소설이 가능한가?

주제를 드러내서 이렇게 적어 놓으면 주제의식이 읽혀질까?

왠지 문학 전문 출판사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페미니즘조차 밥그릇의 이슈로 소비되는 걸 보니 이 책은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자본주의 소설이다.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이라는 타이틀도 이런 면에서 왠지 어울린다.

 

강현남의 애인이었던 주인공의 변화는 너무 극적이다. 마치 종영을 앞둔 드라마에서 악인이 갑자기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처럼 극적인 변화는 뭔가 어색하고 소설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명백하게 위계적인 관계를 끝내는 걸 굳이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될까.

유진의 엄마 정순은 차라리 심한 갑갑함과 먹먹함을 느끼게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집안은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이 워낙 소설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법도 하겠다.

 

지난 한 해 미투‘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무수히 논의되던 페미니즘이 어쩌다 길을 잃고 잠시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반가우나 출판에 대해서는 좀 더 예리함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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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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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지진이 나도 버티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삶에서 매일 일어나는 진동을 피할 수는 없다. 살아 있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경험이 일종의 선물이라 믿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중력의 새로운 중심점을 찾아 여기저기 발을 디뎌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가 흔들릴 때 뻣뻣하게 버티며 저항하는 대신, 그러한 경험을 우리의 위치를 바꿀 기회로 여기고 받아들이자.

 

p60

내가 마음과 감정, 교감이 중요한 순간이나 많은 청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임을 알았더라면 말이야. 그럴 때면 나와 상대방 사이에 무언가가 피어난다. 나는 그들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이 나와 공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일을 겪어왔고 어떤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들도 그와 비슷한 경험, 아니 아마도 더한 경험을 했을 거라는 걸 확실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느끼는 교감은 우리가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우리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데서 비홋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 기쁨, 인정받기를 원한다. ...... 삶이라는 캔버스는 매일 우리가 겪는 경험과 행동, 반응과 감정으로 채워지며 그 붓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우리가 모두 자신의 인생을 그리는 예술가이며 원하는 만큼 다채로운 색깔로 한껏 붓질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것은 내 삶의 크나큰 발견이 되었을 것이다.

 

p67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실은 우주가 내게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기 위해서 준비한 거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배운 가장 위대한 교훈 중 하나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 만약 1977년에 볼티모어의 6시 뉴스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오프라 쇼를 시작할 기회는 제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장애물을 가치판단 없이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다면, 당신은 소망의 장소로 당신을 인도해줄 길에 대해 결코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확실히 안다. 미래의 당신, 즉 당신이 되어야 할 그 운명적인 존재는 지금 당신이 있는 바로 이곳으로부터 진화한다.

 

p77

이제는 확실히 안다. 깊은 관계의 부재란 내가 다른 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밀한다는 걸. 물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탱해주는 관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하지만 나를 치유해주고 완전하게 해 줄 사람, ‘너는 아무 가치도 없다며 항상 내 안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잠재워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친구나 가족이 나서서 그렇지 않다고 완전히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나 자신이 중요한 삶의 의미를 가지고 태언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어렵지 않다. 그냥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겠다고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부모에게서 마땅히 받아야 했을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1초도 더 집착할 필요가 없다. ...... 더는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아라고 남편이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걸 멈추자. ...... 이젠 그 기다림을 멈추고 나의 내면을 보자. 사랑은 나와 함꼐 시작하는 것이다.

 

p100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인생의 주제로 삼는 한, 내 삶이란 책에 마지막 장이란 절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유산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 확신하건대, 우리의 인생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 지난 삶을 돌아보며 유일하게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다른 이들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사랑했는가일 것이다.

 

p105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면, 만약 당신이 당신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긴다면 당신의 세계가 완전히 변할 거라는 점이다. 가지지 못한 것 대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신은 자신을 위해 더 좋은 에너지를 내뿜고 만들어낼 수 있다.

 

p126

내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를 인정해야만 삶의 충만함 속에 깃들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젊은 시절의 나로 머물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은 가엾은 존재들이다.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 내게 가장 좋은 삶으로 향하는 길을 걸을 수는 없다. 그 길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인지하고 지금 머무르고 있는 이곳, 이 순간이 바로 내 것임을 주장함으로써만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p226

나는 짧은 고요함의 순간을 일정표에 넣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면 적어도 10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그저 반려견의 배를 문지르거나 공 던지기 놀이를 짧게 한다. 산책하러 나가거나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한다. 효과는 실로 놀랍다. 자신에게 짧은 휴식을 줄 때마다 에너지가 더 샘솟는 것이 느껴진다. 그다음에 해야 할 모든 일에 더 나은 기분으로 대처하게 된다. 약간의 휴식만으로도 오랫동안 생생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그래서 내게 시간을 주는 것에 대해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p264

내가 진정한 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 사람의 사람됨과 더 큰 선을 위한 목적이 궤를 같이할 때 생기는 그런 힘이 떠오른다. 나에게 진정한 힘이란 내가 이루어야 할 나의 모든 모습이 반영된 그런 힘이다. 이러 종류의 힘이 진실함과 확신의 형태를 띄고 그 힘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빛을 내며 뿜어나오는 모습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것은 영감을 불러 일으키며 기분을 고양한다.

 

p267

나는 신이 왜 내게 이런 일을 일어나게 했느냐며 고통스러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과연 그들 말대로 모든 게 신의 탓일까? 인간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는 신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 때문이다. 그것이 참사가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p276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당신의 행동은 당신 주위를 돌고 돈다.

...... 사람들이 행복을 찾고 있다는 말을 하면 나는 그들에게 "당신은 세상에 무엇을 주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느끼는 행ㅂ고은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랑에 정비례한다. ...... 인생을 이끄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인생이 당신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인종 차별이 극심했을 때 태어나 십 대에 이미 출산까지 한 그녀가 아픔을 딛고 지금처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굴곡진 인생이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통해서 본 그녀의 생의 궤적은 이 책의 각 장의 주제처럼 기쁨, 회생력, 교감, 감사, 가능성, 경외, 명확함, 힘이라는 주제로 꿰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생의 주체임을 깨닫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 자신의 강점을 발견했을 때 물러서지 않는 것, 영성을 추구하는 것,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을 찾으며 틀 감사한 태도로 사는 것. 이런 것들을 자신의 경험과 엮어 내어, 제목처럼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자기계발서랑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나는 자기계발서도 가끔은 너무 힘이 없을 때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안다. 세속적인 자기계발서에서라도 용기를 얻어 일어설 수 있다면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공감되는 곳에 밑줄을 긋고 가끔 좌표를 잃을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픈 과거를 딛고 성공하여 개인비행기까지 가질 정도로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자신의 일정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것 모두 부럽지만 자신의 강점을 발견한 것이 가장 부럽다.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서 승부를 겨뤘을 짜릿한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좋은 친구와 마음이 통하는 애인이 있는 것도 부럽다. 나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의 정원에 있는 관계들을 잘 가꾸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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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 - 인류학 박사 진주현의
진주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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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한국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미군 전사자 55구의 유해가 북한에서 하와이로 송환되는 일이 큰 뉴스가 되었다. 유해 송환은 앞선 6월 김정은과 트럼프의 싱가폴 회담에서 나온 결과로 비핵화 이전에 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주목을 받았던 또다른 이유는 유해를 대하는 미국의 의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타국에 묻힌 전사자의 유해 송환에 무척 공을 들이는 걸로 알려져 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 산하의 이 연구소는 하와이에 있는데 전 세계 어디서든 미군의 유해라면 이곳 연구소로 보내져 신원을 확인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고 있다. 신원 확인을 위해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군 가족 중 89%의 유전자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니 노력과 의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번에 돌아온 55구의 유해를 송환하는 의전은 국가 원수급이라고도 하고 부통령까지 참석해 전 세계에 미국의 자국민을 찾아오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8080302102269640001&ref=naver)

 

이 책의 저자 진주현 박사가 바로 이 유해가 도착한 하와이의 연구소에 근무한다. 유해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뼈가 갖고 있는 많은 정보와 이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뒷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뼈는 인간을 가장 깊숙이 이해하는 열쇠다.’ 읽고 나니 정말 뼈만으로 어떻게 많은 것을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선입견과 무식에 불과했다. 마치 사람의 정보를 기록한 블랙박스처럼 인종에서부터 성별, 사망당시 나이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뼈 속에 있는 세포로 DNA를 이용해 유전자 검사도 할 수 있단다. 물론 시간이 오래 지나 세포가 다 썩어 없어지면 DNA를 이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위의 미군 유해는 세포가 다 썩어 없겠지만 어쨌든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 신원 감식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 같다.

 

뼈에 관한 예상 못한 이야기와 정보들이 재미있고 쉽게 쓰여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여러 가지 놀라운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지적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산후조리를 안 하면 뼈에 바람이 들어가 고생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라도 출산을 하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목욕을 하지 말고 찬 것을 피하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반대로 출산을 하고 바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고 샤워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골반이 작고 아기 머리가 커서 상대적으로 골반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도 출산 당시 온 몸의 뼈가 모두 벌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저자도 이 의견의 신빙성을 의심하여 연구 자료를 뒤졌는데 골반뼈에 나타나는 인종 간 차이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산후 회복 단계에서 보이는 인종적 차이를 연구한 자료들도 결론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신생아의 머리 둘레에 관해서는 아시아인이 미국인보다 평균치가 작았다고 발표한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골반은 작고 아기 머리는 커서 출산할 때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도 모두 출산할 때 고통이 있는데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기초 체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아뭏튼 산후 조리의 효과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미진하고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크게 공감한다. 여름에 출산을 해 본 나로서는 무조건 시원하면 안 되고 에어컨을 켜면 안 되고 샤워도 하지 말라고 했던 내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답답함을 느꼈었다. 출산을 하면 출혈이 많아 체력 회복이 필요하니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체력 회복을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몇 십 년 전이라면 욕실과 방 사이의 온도 차가 크고 목욕 할 때 체력이 많이 소모되니 금지했던 것이고 요즘같이 방에 화장실이 붙어 있는 환경에서 무조건 샤워도 하지 못 하게 하는 건 불쾌감이 급증해 체력 관리나 신생아 돌봄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외에 산후 조리에 관해서는 열변을 토할 내용이 많지만 이 책의 주제와 많이 벗어나므로 여기서 줄이는 게 낫겠다.

 

역시 놀랍고 유익한 이야기 중에서 뒷부분에 창조과학이라 불리는 이슈에 대해 정리한 부분도 무척 유익했다.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므로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배치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종교와 과학이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간략하게 확인해 볼 수 있었다.

 

p270

생물의 진화 이론은 생물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적 도구다.

p278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고 종교는 과학을 대신할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175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해낼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와 알라의 은총을 왜 굳이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것일까.

......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종교를 무시하며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도 창조론자들의 노력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우리나라에 창조과학 열풍이 휩쓸었던 적이 있어 나도 그게 맞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분과 같이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노력 덕분에 바로잡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때 학습된 것들은 참․거짓을 분별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좀 더 비판적으로 보고 건강한 영성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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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로드무비 -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란 적이 있어? 아무튼 시리즈 13
김호영 지음 / 위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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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무비.

영화를 좋아하지만 많이 볼 기회가 없어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영화 이야기 몇 개를 구독하고 일단 기사만이라도 즐겨 읽는다. 글은 몇 분 만에 읽을 수 있고, 언젠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좋은 기대감을 품게 해 준다.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서 이런 저런 취향을 따지기 어렵지만 로드 무비란 왠지 여행을 연상시켜서 끌린다. 얼마 전 평일 한낮, 고속도로를 지나다 휴게소를 들렀다. 쨍한 햇살 아래 탁 트인 자연에 있는 단층건물 휴게소를 만나니 미국 서부 어느 곳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풍겨왔다. 그동안 여행한 몇 개 안 되는 곳 중의 하나가 미국 서부 도시 몇 군데이다. 어쩌면 그렇게 날마다 햇살이 좋고, 태평양이 와서 부딪치는 해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을 선물로 알고 오렌지를 재배하든 포도나무를 심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는 저자가 중학교 시절에 이사를 하게 되서 버스를 갈아타며 학교를 다니던 때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기의 강렬한 경험이 이끄는 대로 로드무비에 꽂히고, 파리에서 공부도 하며 길 위의 음악,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로드 무비계의 몇 가지 중요한 영화나 감독, 그리고 저자의 유학시절 에피소드 등이 어우러져 있는데 글솜씨가 좋아서 로드 무비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로드 무비만큼 글이 매력적이다. 영화에 문외한이지만 이 분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가끔 내가 본 영화 제목을 여기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아리송한 영화가 있었는데 읽다 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영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의 한 대목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연예인과 스탭 몇 명이 파리에서부터 로마까지 가는 히치하이킹에 도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스탭을 태우고 로마까지 운전을 한 후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p109

나는 살아서 무사히 로마까지 갔다. 몇 번 더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결론적으로는 큰 탈 없이 계획대로 일을 끝냈다. 거기서 약속된 돈도 받았고, 파리로 올라오는 길에 선배와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이름 모를 시골 여인숙에서 선배와 잠들며, 나는 내 청춘이 거의 다 접혔다는 생각에 한참을 뒤척였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모르겠지만 결코 이전 같지는 않을 거라는, 이전의 나와 내 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에 잠을 설쳤다

 

내가 왜 여기서 울컥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정이 힘들고 체력이 이전 같지 않음을 느껴서 서글펐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길 위에서 변하는 걸까. 청춘은 무엇이길래 청춘이 지나갔음을 알면 슬퍼지는 걸까. 길 위에 있을 때, 살아있음도 나이가 들었음도 신념이 예전 같지 않음도 느끼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 이야기 말고 이렇게 저자가 길 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조금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영화 이야기도 물론 너무 좋다. 나중에 꼭 찾아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다. 삶에 몇 가지 기대감을 더 품게 만든다. 영화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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