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로드무비 -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란 적이 있어? 아무튼 시리즈 13
김호영 지음 / 위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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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무비.

영화를 좋아하지만 많이 볼 기회가 없어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영화 이야기 몇 개를 구독하고 일단 기사만이라도 즐겨 읽는다. 글은 몇 분 만에 읽을 수 있고, 언젠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좋은 기대감을 품게 해 준다.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서 이런 저런 취향을 따지기 어렵지만 로드 무비란 왠지 여행을 연상시켜서 끌린다. 얼마 전 평일 한낮, 고속도로를 지나다 휴게소를 들렀다. 쨍한 햇살 아래 탁 트인 자연에 있는 단층건물 휴게소를 만나니 미국 서부 어느 곳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풍겨왔다. 그동안 여행한 몇 개 안 되는 곳 중의 하나가 미국 서부 도시 몇 군데이다. 어쩌면 그렇게 날마다 햇살이 좋고, 태평양이 와서 부딪치는 해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을 선물로 알고 오렌지를 재배하든 포도나무를 심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는 저자가 중학교 시절에 이사를 하게 되서 버스를 갈아타며 학교를 다니던 때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기의 강렬한 경험이 이끄는 대로 로드무비에 꽂히고, 파리에서 공부도 하며 길 위의 음악,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로드 무비계의 몇 가지 중요한 영화나 감독, 그리고 저자의 유학시절 에피소드 등이 어우러져 있는데 글솜씨가 좋아서 로드 무비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로드 무비만큼 글이 매력적이다. 영화에 문외한이지만 이 분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가끔 내가 본 영화 제목을 여기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아리송한 영화가 있었는데 읽다 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영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의 한 대목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연예인과 스탭 몇 명이 파리에서부터 로마까지 가는 히치하이킹에 도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스탭을 태우고 로마까지 운전을 한 후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p109

나는 살아서 무사히 로마까지 갔다. 몇 번 더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결론적으로는 큰 탈 없이 계획대로 일을 끝냈다. 거기서 약속된 돈도 받았고, 파리로 올라오는 길에 선배와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이름 모를 시골 여인숙에서 선배와 잠들며, 나는 내 청춘이 거의 다 접혔다는 생각에 한참을 뒤척였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모르겠지만 결코 이전 같지는 않을 거라는, 이전의 나와 내 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조금은 서글픈 생각에 잠을 설쳤다

 

내가 왜 여기서 울컥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정이 힘들고 체력이 이전 같지 않음을 느껴서 서글펐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길 위에서 변하는 걸까. 청춘은 무엇이길래 청춘이 지나갔음을 알면 슬퍼지는 걸까. 길 위에 있을 때, 살아있음도 나이가 들었음도 신념이 예전 같지 않음도 느끼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 이야기 말고 이렇게 저자가 길 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조금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영화 이야기도 물론 너무 좋다. 나중에 꼭 찾아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다. 삶에 몇 가지 기대감을 더 품게 만든다. 영화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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