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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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프랑스의 한 소도시,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벽에 어느 가정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의 신고로 소방차가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고 보니 부부와 두 자녀가 있었는데 아내와 두 자녀는 목숨을 읽었고 남편은 살아있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조사를 하고 보니 아내와 두 자녀는 화재 발생 전에 이미 총으로 살해가 된 것으로 밝혀졌다. 총상이 없던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졌다. 거기다가 이 사건과 동시에 다른 지역에 살던 남편의 친부모가 총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남자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다니는 의사 연구원으로 알려졌던 이 남자는 WHO의 직원이 아니며 의대를 졸업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진실은 18년 전 남자가 의대 2학년을 마쳤을 무렵에서 멈춰 있었다. 의대 2학년 말, 3학년 진급시험에 실패한 이 남자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3학년에 진급한 것처럼 위장을 했고 이후로 의대 재학, 졸업, 그리고 병원 수련 등의 모든 과정을 위장을 하여 진짜 의사인 것처럼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남자는 실제로는 2학년에서 멈춰 있었지만, 친구들과 같이 의대를 계속 다녔고 병원 수련 과정에서도 친구들과 병원이 겹치지 않도록 둘러 대었고, 병원 근무 경력과 세계보건기구에서의 연구원 생활을 모두 위장한 채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의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며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고 국제기구들이 모여 있는 제네바 근처에서 학교 일에도 참여하는 모범적인 지역사회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거짓된 신분으로 내연의 여자와 사랑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위장된 신분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사실은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총으로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삶도 마감하려 했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다.

 

소설이었어도 끔찍했을 이 모든 일이 사실이라는 것에 당시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남자는 3학년 진급시험에 실패한 후 12년간이나 의대 2학년으로 계속 등록을 했었다. 이미 빨간불이 켜졌어야 할 이 대목에서 프랑스 대학 행정의 후진성에 지적되기도 했었다.

 

남자와 대학을 같이 다녔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까지도 절친이었으며 가족들도 모두 서로 알고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의 가족은 헤아리기 힘든 패닉 상태에 빠졌고 그를 알던 모든 이들과 지역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났을까? 남자는 국제기구의 직원으로서 유리한 투자 위치에 있다고 속여 지인들의 돈을 위탁받았고 부모, 처가 부모, 친지들의 돈을 가로채어 생활비로 감당해 왔다. 남자의 가족은 지역의 다른 가족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니고 연구원 신분에 맞게 해외 출장도 종종 다녔으며 내연의 여자와 화려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내연의 여자는 사건 발생 바로 전에 남자를 만나 목숨의 위협을 느낄 사건을 경험했지만 다행히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가족이나 부모들은 남자에게 돈을 맡기고 투자한 것으로 생각하여 돈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부모처럼 노년에 있는 사람들의 돈이었기에 목돈이 당장 필요하기보다 안정적인 투자처에 있으면 적당한 돈이었으므로 그의 위장행각을 뒷받침하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내연녀의 목돈을 맡아서 사용했는데 그녀가 돈을 찾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클리닉을 처분한 돈이었는데 일부를 찾아서 차를 산다고 한 것이다. 남자는 가족들이 맡긴 돈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그녀의 돈을 건드리고 있었고 이미 그녀가 원하는 돈을 줄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잔고란 얼마나 정직한 것인가. 비닥난 잔고에서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사태의 끝을 직감했고 가족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 책은 보도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된 프랑스의 작가 엠마뉘엘 까레르가, 도대체 무엇이 남자로 하여금 이런 거짓된 삶을 살고 지탱하게 했을까하는 궁금증에 남자의 일생과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보고자 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쓰고자 했을 때 감옥에 있던 남자에게 편지를 보냈었고 조사 자료와 주변인들을 탐색하며 집필을 하던 중 도저히 글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글쓰기를 2년 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작업을 재개하여 완성을 한 책이다. 원작은 프랑스에서 2000년에 출판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5년 변역본이 출간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장클로드 로망이다. 그는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프랑스의 형집행에 관한 법에 의해 그동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22년형으로 감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2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해가 바로 올해 2015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뉴스가 되지는 않았지만 알려진다면 그의 출소 시점에 프랑스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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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18년간 거짓된 또다른 자신과 함께 살아왔을 것이다. 거짓된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왔던 행보가 이제 진실에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달았을 때.. 어떨까. 정신병도 없고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 이 남자, 장클로드 로망같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니...

 

책의 여러 대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현장검증을 할 때, 남자는 사랑과 친밀의 대상이었던 자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위로와 절망을 동시에 느껴 기절을 한다. 작가는 남자의 정서적 지지 대상이 가족들이었으며 이들과 관련된 증거를 접할 때 안정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것이 그의 범행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에 분열하는 남자의 모습을 직선적으로 그려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또다른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위장하고 싶은 어떤 모습에는 나 자신도 속아 넘어갈 것 같다. 남자가 출근한 것처럼 어딘가로 차를 몰고 가서 주차를 하고 신문을 보는 그 때에, 외면하고 싶은 것을 외면하며 나도 딴청을 한다. 신문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판단을 한다. 인간 존재의 심연에 깊은 거짓의 늪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가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적이고 우리 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

이 책을 읽던 중 며칠 전에도 비슷한 놀라운 뉴스가 국제면에 등장했다.

 

브라질에서 어느 날 십대 두 자녀를 차에 태워 등교를 시켜 주고 돌아오던 어떤 남자가 검문에서 잘못된 신분증을 보여줘 문제가 되었다. 지문 검사를 하고 보니 30년전 이탈라이에서 체포되었던 유명한 마피아 두목임이 밝혀졌다. 30년전 이탈리아에서 26명의 살인 사건과 함께 불법 무기 소지 등의 혐의로 체포된 그는 병원 치료 도중에 탈출을 했다. 이후 브라질에서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28년 전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낳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이번에 붙잡힌 그는 큰 저항이 없었으며 살해당할까봐 브라질로 오게 되었고 과거를 잊고 싶어 성형수술도 하였다고 한다.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력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2005년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붙잡힌 남자는 90일 이내에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한다고 한다.

28년 같이 살았던 남편이 이탈리아 마피아의 두목이었다는 사실, 13세, 15세된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30년전에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마피아였다는 사실이 어떻게 전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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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둘 -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 더 클래식 시리즈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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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하나》에 이어서 《더 클래식 둘》.

《더 클래식 셋》까지 집필할 계획이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에 관해 시대적인 흐름과 명연주 음반을 소개하는 이야기이다.

 

클래식 음악을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나에게는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된 책이었다.

책만 읽어도 어디선가 음악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이 음악에 관해 최선을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마음 같아서는 한 곡, 한 곡,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선정한 음반들을 다 사서 듣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이 작가 글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글만 읽어도 머리가 즐거워지고 감성이 깨어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중간 중간 음악가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무척 재미있었다.

잠시 쉬면서 음악을 한번쯤 들어봐야겠는데 책이 손에서 놓아지지가 않는다.

 

곡마다 같은 음악을 연주한 여러 개의 음반을 비교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매번 감탄과 경이로움이 더해진다.

같은 음악을 가지고 연주자 각자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개별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음악에 문외한이며 희박한 감성을 가진 나로서는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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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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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연약하기 그지없다.

 

백석은 일제시대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다녔고,

독지가의 후원으로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그후 경성에서 조선일보 등을 중심으로 편집, 창작을 했고

20대 중반에 함경남도에서 교사로 잠시 근무하다 곧 만주로 향했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거주하면서 분단과 함께 북녘의 시인으로 남았다.

 

천재적인 문학성을 타고 났지만 일제 치하의 불운한 시대였다.

해방, 분단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한국사가 걸쳐진 삶이 안타깝고 애틋하다.

 

나는 평전을 읽는 가운데 나타난 시이어서 그랬는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첫 시집 <사슴>에 대한 당대의 반응과

뒤늦게 발견된 보석같은 시인이라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찬사를 보면 천재적인 시인이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천재적인 시인이 불운한 시대를 타고 나서 부득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생을 보냈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말이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한의 정치적노선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면서 어느새 그의 시에도 당에 대한 찬양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당이 원하는 작품을 써나간다.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슬프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분단이 되어 행방을 알 수 없는 초연한 시인의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기야 인간은 원래 이처럼 말라버린 꽃 같고 시드는 풀같은 존재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연약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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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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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연 다큐멘터리 PD를 하던 남자가 있다.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로 생명에 따뜻한 시선을 더해 세상에 알려주던 이가

백두산 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영상으로 기록했다.

1000시간이면,,, 41.7일 분량인데,

이전에는 한 시간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의 기록이란다.

 

430쪽에 달하는 책의 무게감만큼 시베리아 호랑이의 위엄과

이를 기록한 사람의 집념과 헌신이 느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호랑이는 이름이 있고 족보가 있다.

족보라기보다 가계도. 어떤 호랑이의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엄마는 그렇다쳐도 동물의 세계에서 아빠까지 알 수 있다니...

호랑이들의 이름도 참 창의적이다.

블러디 메리, 왕대, 하쟈인 이들은 어른 호랑이,

월백, 설백, 천지백 이들은 어린이 호랑이 형제 자매들 이름이다.

어린이 호랑이 중에서 헨젤과 그레텔도 있다.

 

호랑이가 지나간 자리, 발자국을 관찰하며 무게를 알아내고

그 자리에서 애정표현이 있었는지 싸움이 있었는지도 알아낸다.

땅속에 굴을 파고 위를 감쪽같이 덮은 뒤, 카메라를 설치하고 며칠 동안 호랑이를 찍는다.

굴 속에서 쥐죽은 듯이 먹고 자고 숨만 쉬고 지내는거다.

숨소리 내지 않고 어떻게 자는지.. 그러다 카메라 렌즈가 들켜서 집 뚜껑이 반 날아간 적도 있었다.

호랑이 앞발에 맞아도 죽는다는데 다행히 살아남아 이 책이 우리의 손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었구나 싶다.

 

호랑이 세상의 애정, 가족, 갈등, 그리고 죽이고 죽기까지

사람들의 사회와 비교하며 애환을 그려낸다.

의외로 호랑이들이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

맹수라서 그런가 환경의 변화로 인한 적응의 일환인가

암튼 위엄있는 포스와 다른 충격적인 모습이다.

 

읽는 내내 어디선가 시베리아의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세밀한 관찰과 영혼이 깃들인 해석이 실감이 난다.

안타깝지만 시베리아 호랑이는 너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곳에서 밀렵을 위해 엄청 큰 덫을 설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운 자연의 모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모든 것 가운데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에

따뜻한 눈밭 위를 거니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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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 우리 시대 공부의 일그러진 초상
이원석 지음 / 책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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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출세, 정확히 말하면 돈과 권력을 위한 도구가 된 현재에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아가 진정한 삶에 대해 묻고 있는 책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제목답게 역사 속에서 공부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공부가 몸의 수련과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 영적 수련이 중요한 맥락이었다.

중세 카톨릭 시대에서는 묵상을 통한 수련이 공부였다.

 

그러나 지금 공부는 어떤가.

진정한 공부를 하면 출세와 거리가 멀어지는 모순적 상황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머리로 들어온 것을 몸이 익히도록 음독, 암송, 묵상을 해야 한다.

진정한 공부는 나눔을 통해 결실한다. 우정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다.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는 도구로서의 공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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