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 할인행사
롭 라이너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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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한 카터 체임버스(모건 프리먼)와 자수성가한 사업가 에드워드 콜(잭 니컬슨)은 비슷한 시기에 암에 걸려 같은 병실에 묵게 된다. 병과 항암제로 고통의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버킷리스트라는 합의점에 이르게 되고 세계를 돌며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스카이다이빙을 시작으로 머스탱 몰며 레이싱,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사파리, 피라미드 등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여행을 한다. 카터는 콜의 가정사에 대해 알게 되고 콜은 카터의 아내의 전화를 받고 적절한 계기를 만들어 각자 집으로 돌아온다.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카터가 먼저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수개월 뒤 콜도 같은 길을 가게 되는 여정을 보여준다.

 

병원에서 만난 그들이 마음을 통하게 되는 모습을 보며 사회에서 부여받은 각자의 마스크를 쓰고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병마 앞에 나약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거기서 거긴데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기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 쿠프 왕의 피라미드 앞에서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카터가 콜에게 묻는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 문 앞에서 신이 인간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인지 아느냐. 콜은 모른다고 한다. 카터가 답했다. 하나는 삶에서 기쁨을 발견했냐는 것, 다른 하나는 남에게도 기쁨을 주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이 자신이 아버지로서 기쁨이 되지 못했다며 딸 에밀리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엔 결국 카터의 도움으로 에밀리와 재회하게 되는데 자녀에게 부정당하는 부모의 마음을 참 아픈 표정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삶의 기쁨을 찾았느냐,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었느냐,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아픈 몸’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둘은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며 의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고 평생을 함께 한 가족의 품에서 일생을 마감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메타인지적 관점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들이 해나가는 버킷리스트 항목이란 게 세계를 많이 돌아다녀야 하고 그만큼 돈이 많이 드는 일들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고 쓸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리고 또 하나, 가족에 대한 좀 불편한 이해이다.

 

2인 1실의 병실에 누워 있는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평생 수리공으로 일한 흑인 카터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사랑하고 단정한 아내가 있고, 아버지를 신뢰하고 따르는 아들 둘, 바이올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막내딸,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등 전형적으로 화목한 가정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반면 자수성가하여 막대한 부를 이루었으나 성격이 괴팍한 콜은 네 번이나 결혼했지만 찾아오는 가족이 없고, 인간미 없이 느껴지는 비서가 고급 커피 제조 기구를 들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기는 하나 누구에게라도 사랑은 받지 못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런 프레임식 대비는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가난한 사람은 성격도 좋고 가정도 화목하고 아이들도 잘되고, 한 마디로 웃음꽃이 넘치고, 부자는 성격이 나빠서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없고 그저 돈만 밝히는 비서 정도만 남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가족들이 찾아오는데 부자는 병문안객이 하나도 없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은 병에 걸려도 이렇게 행복한데 부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다 소용이 없이 저렇게 외롭고 불행하구나.. 뭐 이런 걸 느끼라는 식이다.

 

하지만 병원 이후 장면에서는 카터의 재력 덕분이 둘이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며 여행을 하는 것을 통해 둘이 서로 적절한 역할을 하며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왜 꼭 가족이어야 할까. 열심히 일하는 남자,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여자, 그리고 어딘가 좀 기특한 구석이 있는 아이들, 현실은 별로 그렇지도 않으면서 매체에서는 왜 이런 가족들을 보여줄까. 가족이 없으면 엄청난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실제로는 돈이 없으면 엄청난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말이다. 돈, 물질만능주의가 타파되어야 할 우상인 것처럼 가족이데올로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4인 가족이 화목하게 수십 년을 살아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치명적인 상처와 억압이 생성되는 곳이 가족이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의 경계에서 소외된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가정의 순기능이야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러니 봐.. 가족이 소중하잖아, 가족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식의 어투는 왠지 강요로 느껴진다.

 

가족은 생존에 필요한 물, 자연, 공기와 같은 기본적인 존재로 여기고 -기본적이므로 상호 존중이 되어야 함은 물론- 그걸 그렇게 드높이지 않으면 안되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절대적으로 여길수록 다양한 관계로 인한 유익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예수님이 가족을 미워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가족을 해체하여 재구성하신 모습은 이런 불필요한 울타리와 경계를 경계하신 말씀은 아니었을까,,,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더듬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드높이고 싶은 가족이 유지되려면 여자의 희생이 절대적이다. 가정은 관계의 요소가 핵심이므로 관계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지 않은 남자와 가정을 이루면 여자의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문화적 기반으로 하는 모든 종교에서 여자를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생물학적 존재로만 머물게 하며 가족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신적 권위를 가지고)이것 보라구, 가정이 이렇게 소중하니 여자가 희생하고 좀 참아야지 어쩌겠어. 사실 이건 참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출산과 양육, 인격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무엇보다 숭고한 일이거든, 무엇보다 생명이 가장 귀한 거 아니야, 식의 가족주의 역시 타파되어야 할 우상이 아닌가 말이다.

 

어쩌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지만 이런 가족주의 프레임 구조만 빼면 자신의 삶에 대해 각성해 보고 마음을 열고 스몰 액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따뜻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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