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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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정 스님의 책이 연말까지 팔린다고 하니 일단 독자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그 뉴스가 나기전 우연히 동네 서점에 가니 법정스님의 책이  

종류별로 한권씩'만' 다 있어 내가 가지지 않은 책들을 몽땅 쓸어오면서  

뒷골이 땡겼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때 대부분 쓸어오면서 '유이'하게 없던 것이 '무소유'와 '홀로사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다시 판매가 되길 소망하다가  

우연히 책 꽃이에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발견하고는  

얼마가 기뻤던지...  

'어머 이책도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 그 무렵이었던것 같다. 

두아이의 육아가 너무 힘들고 지루하여, 언제 크나, 언제 다 키우고 

홀로사는 즐거움을 누려볼까 하며 제목만으로도 대리만족 하며 샀던....^^  

 

이책 또한 스님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맑고 향기로운 책이다. 

은은한 녹차와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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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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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에 비해 서간체에다 별 수식도 없는 문체라  뜨아~했는데  

다 읽고 보니 모두 작가의 의도였었고나. 

카스트, 카스트 .. 세계사시간에 몇줄 배운 그 제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인도. 

 

평소 영어로 말하는 인도 영화 몇몇을 보면 신뢰감이 안 들었는데 그 이유는 

영화속 인도의 주인공들은 너무 잘먹고 잘 살기 때문이었다. 

인도의 빈민가는 썩어가는데 영화속 성공한 인도인의 집은 너무 으리으리해서 

속이 다 울렁거렸다. 

  

옛날 우리네 민중들이 살다살다 못살면 민란을 일으켰듯이  

인도 빈민들도 쪽수로 밀어붙여 한바탕 들고 일어났으면 속이 후련하겠건만...ㅉ ㅉ... 

말도 안되는 노예와 같은 현실을 체념도 아니고 당연한듯   

몸으로 받아내며 사는 사람들 속에서  

'발람'같은 화이트 타이거(세상 잘 만났으면 개천의 용이 될..벋뜨, 재주는 있으나 끈이 없는 빈민? 흰 호랑이는 한세대에 한번 세끼를 낳기에 귀한데... )는   

승천도 못해, 

예속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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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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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나 홀로선 나무>에서 이미 한차례 선생의 글감옥 인생을 

피력한바 있어 별 기대 안했는데 비슷한듯 하면서도  

첨가된 내용들이 있어 또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인간이 만든것 중 최고의 3대 발명품을 일러 선생은 

' 정치 , 종교, 언어'라 하였다. 과연!  

 

일견 합리적인 발명품들이지만 파고들면 그것들 때문에,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물어뜯고 싸우고 폭탄투하하고.... 

그냥 새들처럼 지지배배만 하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종교없이 그냥 살었으면.. 

정치없이 중구난방으로 되는데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 

아무튼 이책엔 노년을 살고있는 작가의 안목과 지혜가 보인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 지금은 뉴라이트 대표(인가? 였나?)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것. 

질문들을 안했나. 

 

박태준 포철 전회장에 대한 얘기는 조정래 선생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한강>에서 김진홍 목사에 대해 아주 좋은 면이 부각되어서  

나름 감동받았는데... 지금의 김목사는 <한강>이후의 모습이라 어쩔수 없는 것인가. 

 

나는 지금의 김진홍 목사에 대해서 선생이 어떤 감회를 갖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누가 내 대신 질문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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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벌써 사월도 중순이네. 사진은 지난 삼월 법정스님 입적후 다녀온 운문사 솔숲길이다.

법정스님이 <일기 일회>에서  운문사 승가대 학승들에게 한 법문이
인상적이어서 오랜만에 겸사겸사 운문사도 한번 찾아 본 것이었다. 운문사는 평일이라 조용했으나
그래도 쉴새없이 차들이 오고갔다.

'차'라고 쓰고 나니 지난 3월 느꼈던 갑갑증이 지대로 밀려온다. 
오랜만에 가보니  운문사는 매표소에서 운문사 절 바로 앞가지 솔숲길을 따로 정비해 놓았었다.
하므로, 오랜만에 절에 왔으면 차는 주차장에 좀 두고 그 솔숲길을 걸어도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다들 차로를 쌩쌩 달렸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10여년 전엔 이 물에 내려가 발도 담그고 그랬는데 요샌 입수 금지다.
규칙은 처음에 정하기가 어렵지 막상 정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는터..
절 바로 밑에서 삼결살 냄새 피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안난다.^^ 아마 저 물도
바위도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처진 소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렀다. 진시황이 못다이룬 불로의 삶을 처진 소나무는 가뿐하게
구가하고 있었다. 시골 동네 어귀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보면 나무둥치에 벌레먹은 부분도 있고
때로는 텅빈 부분에다 깁스를 하여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는데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몸통이 발그레하니 앞으로 천년도 끄덕없어 보였다.

천년전에는 사람몸만했을까. 오랜세월 한자리에 서서 온갖시대 다 겪으면서도
상처하나 없이 저런 미끈한 자태를 뽐내다니.... 멋. 있. 었. 다.

........

이렇듯 자연은 변함없이 황홀한데 .... 인간사에는 너무도 가슴아픈 일들의 연속이라
꽃을 보고 웃기도 죄송스럽다. 법정스님이 '업의 파장' 이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 그 업의 파장 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업'자의 앞에 '선'자를 붙히면 그 업의 파장이 클수록 좋겠지만
그 앞에 '악'자를 붙히면 그 업의 파장은 내만 괴로운게 아니라 파장의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니 실로 삼가고 삼가고 또 삼가서 악업의 파장일랑은
되도록 적게 해얄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악업의 파장이 끝도 없이 번져 나가고 휘져어 지는 것 같다.

성형수술이 아무리 일상화 되었다지만 국토 성형수술이 웬말이며
군함은 무삼일로 두 동강이 났으며,
꽃다운 지연씨는 한번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 젊은 나이게 가고,
북한과 소말리아 해적들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시퍼 보였으면.......

어느날 갑자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상을 빼앗기고 삶 전체를 빼앗기면
도대체 억울해서 어떻게........

.......

악업의 사슬은, 그것을 짓는 사람은 좀처럼 스스로 끊지 못할 것이니
평범한 우리네가 끊어주어야 할것이다.
.
.
.
권정생 선생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씻을수 있었고
법정스님 가시고 나서야 역시 부처님에 대한 오해를 씻을 수 있었는데
요샌 불교의 진리가
내 가슴을 친다.

틀린말 하나도 없고 세상사 모든일을 2천년전에 어찌그리
현미경으로 본듯이
망원경으로 본듯이 콕 찝어 주는지....



(둘째가 수두에 걸려 일주일째 학교를 쉬었는데 앞으로도 일주일 더 쉬어야 원상복귀 될것같다.
정작 본인은 학교를 안간다는 사실에 룰루랄라 인데 보는 내가 지겨워 생병 나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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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머리 깎고 승복을 하나 얻어 입고 갔더니 깜짝 놀라시며 구참(묵은 중) 같다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깎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로 거리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 본문 198쪽 

스님 되는 일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그 좋던 스님 생활을 그만두고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일기일회.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뿐.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듯해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 다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하시며 스님은 갔다. 

이 책 <일기일회>(문학의 숲 펴냄)를 사놓고 오늘내일 읽어야지 하는데 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마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우리가 본대로다. 법정 스님은 만인의 가슴을 향기롭게 물들이고 소박하게 떠났다. 
    

책 절판하라는 말씀에 부랴부랴 책꽂이를 뒤져보니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와 <버리고 떠나기> 그리고 이 <일기 일회>뿐이네. 흐린 보랏빛의 <물소리 바람소리>도 분명 있었는데 누굴 주었는지 못 찾겠다.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를 말하지만 나는 20대 시절 <텅빈 충만>으로 처음 법정 스님을 만났다. 텅 빈 충만. 그 형용모순이 주는 감동과 따뜻하고 정갈한 글에서 한없는 충만감을 느꼈다. 

그러나 당시는 20대라 당장은 나 자신을 그렇게 비우고, 또, 그렇게 충만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이 다음 언젠가는 그 비움의 미학을 다시 꺼내어 내 삶의 등불로 삶아야지 하며 '텅, 빈, 충, 만' 네 글자만은 가슴에 새겼다.

그러다 내 나이 30대는 가톨릭 사람들에 아름다움을 느끼느라 잠시 불교도 잊고 스님도 잊었다.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00년 무렵부터 우리나라 절들은 대형 금불상, 석불상 건립에 앞을 다투었다. 대형 불상이 돈 되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면 부처님이 꿈에라도 스님들에게 나타나 '내 이름 팔지 말라' 죽비를 내리쳐야 되는데, 왜 바라만 보시나 원망스러웠다. 때문에 한국식 불교가 싫어 부처님의 가르침도 매력 없었다.

얼마나 베풀고 나누었는가만 재산으로 남을 뿐, 다른 것은 다 무상

그랬는데, 이렇게 바야흐로 봄인데, 꽃이 채 피기도 전에 법정 스님이 돌아가니 새삼 사무친다. 스님도 사무치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무치고. 스님을 모르고 산 지난 십여 년이 헛헛하다.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뒤늦게 스님의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마디마디 향기로 가득 차 있고나. 

특히나 이 책은 내가 불교에 관심 '없던' 지난날들(2003년~2009년)이자 스님이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던 시절에 한 말씀들이라 더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글의 내용은 물론 문장의 형식, 법문을 하시는 숨결까지 걸림 없이 아름답다. 

물이 흐르고 꽃피는 것이 보이는 '수류화개실'에서 고요하고, 소박하고 정갈하게 사는 것이 스님이 제일로 추구하는 삶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님은 나눔을 통한 깨달음을 가장 강조하였다. 사람은 늙을수록 '성숙'해져야 되는데 그 성숙은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또 사람은 성숙해질수록 '젊어'진다고 하였다. 

때문인지 스님은 세속 나이 78세에 입적하였지만 나눔을 통해 성숙해지고 젊어져서 내 느낌에는 스물넷 머리 깎았던 그 파리한 젊은 나이로 돌아가서 입적하신 듯하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과 진실을 말하고, 향기로움은 그 청정과 진실의 사회적인 영향력, 메아리입니다. 도량에서 익히고 닦은 기도와 정진의 힘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가정이나 이웃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시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니 절이나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지 마십시오. - 본문 21쪽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삶 자체가 수행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거듭거듭 성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와 용기가 생겨서 휩쓸리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 본문74쪽

내안의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남과 나누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수시로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을 읽는 것은 자신을 가꾸는 추상적인 일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내안에 들어있는 자비심이 샘솟듯 생겨납니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 본문 96쪽 

자비심에서 지혜가 싹틉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지극히 메마른 것입니다. 한국 불교는 깨달음을 우선시하면서도 깨달음의 행을 할 줄 모릅니다. 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지, 깨달음의 행 없이 정상에 이를 수 없습니다. 끝없는 자비의 행을 통해 지혜가 싹트고, 지혜와 자비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길입니다. - 본문 194쪽 

결국 한 생애에서 무엇이 남습니까? 얼마만큼 사랑했는가, 얼마만큼 베풀고 나누었는가, 그것만이 재산으로 남습니다. 그 밖의 것은 다 허무하고 무상합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 본문 228쪽

사람은 살아온 세월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할수록 젊어집니다. 성숙해져야 모든 것이 제대로 보입니다. 전에는 결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를 먹고 안으로 여물기 시작하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산마루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자기가 한 걸음 한걸음 밟고 올라온 길이 한눈에 내다보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 본문295쪽

이처럼 스님은 매 법회 때마다 관념적으로 수행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선행'과 '나눔'을 실천하길 거듭거듭 강조하셨다. 때로는 같은 말로, 또, 때로는 다른 비유로 복을 짓고 마음을 써서 깨달음에 이를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승복 입은 채 다비해주고

사리 찾으려 하지 말라

탑도 세우지 말라

책은 절판해라.....' 

마지막 가는 길에서까지 스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셨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집이든 물건이든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고 그날그날을 감사하면서 순례자처럼 살라'고도 하였는데 그래도 책마저 절판하라 함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아직은 안 되는군요. 그 소중한 잠언들을 절판하라 하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란 말인지요. 흐려진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좀 더 맑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절판의 때를 미뤄주면 안될는지요.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뜨거운 장작불에서 한줌 재로 말끔히 소진 되신 그 '텅 빔'만큼 또 다른 세상에서도 그 '비어있음'만큼 '충만'으로 영원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스님의 맑은 향기는 두고두고 우리네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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