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야 하니 달팽이 과학동화 1
심조원 글, 김용철 그림 / 보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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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독서'라는 게 뭔지 모르다가 6학년 2학기 겨울방학을 앞두고 겨우 동화책을 손에 들 수 있었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내 짝과 주변의 친구들이 동화책을 빌려서 공부 시간에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선생님 눈치를 보며 읽곤 하였다.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했는데, 그때 난생 처음 읽게 된 동화책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지금도 책제목과 읽었을 때의 느낌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는데 그것은 '대도둑 호첸 풀르츠'였다. 그 다음 소공자, 소공녀, 하이디 등을 읽었는데 다 합치니 그래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남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적은 양이었지만 내 내면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별로 '약이 되는 동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불행한 현실을 의지로서 개척해나갈 생각보다 동화같은 황당한 꿈만 꾸며 우연이나 요행을 바란 적도 많았으니.)

이런 유년을 가졌다면 아이만큼은 엄마의 유년처럼 황량하게 만들지 않겠다며 책으로 아이방을 도배할 법도 한데 어쩌다 보니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책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책을 보며 가만히 있는 것 보다 저지레하며 움직이는 것이 (서너 살 아이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전집으로 사는 (그림)동화책은 적게는 3,4십만 원에서 많게는 1백만 원을 호가하는 줄로 알고 지레 겁을 먹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아이 책을 사느니 내가 책을 사서 보고 저력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큰애가 네 살 때까지 갖게 된 책은 내 책 사러 서점 따라가서 어쩌다 하나씩 사게 된 동·식물 그림이나 비행기 자동차 따위가 그려진 책이 전부였다. 물론 내심 다섯 살이 되면 동화책을 사주어야지 하는 생각은 했다.

▲ 달팽이과학동화 1권 - 곤충의 신호 나랑 같이 놀자
그러나 막상 다섯 살이 되자 사주긴 사주어야 되는데 무엇을 사줄까 찾아보려니 귀찮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운명'의 <달팽이 과학동화> 전집을 보게 되었다.

"어머나, 이거는 못 보던 책인데 새로 샀나봐요?"
"네, 새로 샀어요. 나는 이 책을 보면 글도 글이지만, 글 쓴 사람보다 그림그린 사람이 더 우러러 보여요."

뭣이라고라? 그림에 대해서 많이 모르지만 그림을 좋아하던 나였던 지라 "그래요?"하며 그림을 살펴보았다. 어머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작가마다 개성이 있어 다들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네를 통해 처음 수련을 알았지만 지금은 내 결혼기념으로 그려준 친구의 양수리 수련이 더 멋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구 유명 명작동화들의 그림도 보기에 좋았지만, 우리나라의 동식물과 곤충 그리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달팽이 과학동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좋은 책을 보면, "도대체 누가 이 책을?"하며 펴낸 곳을 보게 되는데 재생지를 사용하는 '보리 출판사'가 아닌가. 기획 윤구병이라. 허걱! 눈동자가 커지면서 "심봤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윤구병 선생에 대해서는, <잡초는 없다>를 통해 선생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의 한량 없음을 쩌릿쩌릿하게 느꼈던 바, 그런 분이 기획을 했다면 더 이상 따져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몇 권 즉석에서 읽어보니 그림이고 내용이고 다 좋았다.

"그러면 이 좋은 책을 다 얼마에 샀죠?"
"40권에 17만원이에요."

가격까지 만족이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그 가격에 팔아도 출판사는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오지랖 넓은 생각은 그만 하고 주변에 이 책의 좋음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답하기로 했다.

달팽이 과학동화는 이름 그대로 과학 동화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속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동물과 식물 곤충들의 세계를 재미와 감동으로 엮은 책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과학과 자연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는' 요술같은 책이다.

더욱 유익한 것은, 맨 뒷장의 '엄마 아빠와 함께 보세요'라는 페이지는 부모인 우리들의 눈까지 틔워 준다. 예를 들어 여러 곤충들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볼 때면 그저 작은 미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리 야무질 수가!"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아이 공부 이전에 내 공부까지 된다.

쇠뿔도 단김에? 나는 당장 전화번호를 물어서 주문을 하였다. 서점도 급하기는. 다음 날로 바로 택배가 왔다. 방에 40권을 풀어헤쳐 놓으니 부자가 된 느낌에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아이의 책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 동화책을 보지 못하고 자란 안타까움을 가진 나의 책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린이집에 간 아이가 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책들을 번호가 많은 것부터 차곡차곡 다시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1,2권만 내놓고 나머지는 베란다 창고에 넣었다. 그것을 아이에게 한 주가 마무리되는 매주 금요일마다 두 권씩 내주기로 하였다.

지난 5월부터 그렇게 했는데 지금 20권까지 나왔다. 새 책을 꺼낼 때마다 나는 매번 꿀단지에서 맛있는 엿을 꺼낼 때처럼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사뭇 설레인다. 물론 매번 감동한다. 한 스무 권쯤 읽다보니 개중에 특별히 좋은 것이 생기는데 아이와 나의 기호가 조금씩 다르다는 게 재미있다.

아이는 장난스럽거나 도깨비, 늑대, 여우 등 성격파 배우들이 나오는 책을 좋아하였다. 반면 나는 곤충들의 부성애 모성애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오거나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시원하고 고운 그림이 있는 책이 좋았다.

달팽이 과학동화 덕분에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좋은 엄마가 된다. 아이는 금요일마다 두 권의 책을 받아들고 만족 그 이상의 만족을 느끼며 자신의 책꽂이에 책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다.

이번 장마기간에는 "엄마, 비오는 데도 내 책 사러 갔나?"하며 고마워 하였다. 부디 마지막 권을 꺼낼 때까지 꿀단지가 발각되지 않아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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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 2 -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유시민 옮겨 엮음 / 푸른나무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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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때론 '생심'이 '견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요 근래 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공상을 하다보니 자연히 여행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자주 가는 이웃 대학의 한 서점에서 평소 늘 지나치기만 했던 여행서 서가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1, 2> 도서출판 푸른나무.

제목을 뽑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암튼 제목 때문에 이 책에 눈이 갔다. 그냥 유럽 문화 이야기였다면 지나쳤을 텐데 '유시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 국회의원이 여행서를? 하지만 출판 연도를 보니 의원이 되기 훨씬 전인 지난 99년에 출판된 책이었다. 그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생각이 나서 구경이나 하자 싶어 펼쳐 보니 건성으로 읽어 내려가는데도 무척 재미있었다. 알고 보니 유시민이 직접 쓴 여행기가 아니라 영국의 한 출판사의 <제노포브스 가이드>시리즈를 편역한 것이었다.

유시민에 의하면, 출판사로부터 여행서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다룬 이 시리즈에 반해서, 자신이 여행기를 직접 쓰는 것보다 이 책을 편역하는 것이 더 독자에게 이로우리라 생각하였다고 했다. 정말이지 몇 쪽 읽지 않아서 이 책의 진가가 느껴졌다.

이 책의 시각은 그 동안 서구 문명에 대한 내 사대주의적 생각과는 너무도 달랐다. 장점과 단점은 보는 각도에 따라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또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서구 문명 혹은 문화에 대해서 무조건 좋게만 생각하고 동경했다.

<제노포브스 가이드>의 저자들은 그 나라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부 고발자'이거나 '후천적 인사이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찌나 지독한지 나무랄 데 없는 장점조차도 단점으로 꼬아서 신랄하게 냉소했다. 때론 너무하다 싶어 읽는 내 마음에 동정이 일어날 정도였다. 물론, 사대주의자의 내면에 흐르던 열등감을 치유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약이었다.

유럽 사람은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같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치 한국, 일본, 중국이 한자 문화권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많듯이 말이다. 그 다름이 너무 재미있었다.

악수만 해도 그렇다. 영국 사람들은 함부로 손을 내밀지 않고 악수를 할 때에는 손을 살짝 잡았나 싶을 때 금방 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불쾌해진다나. 반면 독일 사람들은 악수하는데 손을 아끼지 않으며 마음껏 쥐고 흔들며 호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유럽 국가들의 적은 인구였다. 영국은 4천8백만. 덴마크는 5백만, 스위스 7백만, 오스트리아 8백만, 스웨덴은 8백50만, 히딩크의 네덜란드는 1천5백만, 스페인은 3천9백만, 프랑스 5천8백, 독일은 8천백만 등이라고 하였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국제 사회에 이름을 떨치는 나라들이니 못되어도 다들 오천에서 1억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독일이 우리보다 좀 많을 뿐이었다.

<유럽 문화이야기1, 2>뿐만 아니라, <제노포브스 가이드> 시리즈 즉, 신대륙, 일본, 동유럽 문화 이야기까지 모두 다 읽으면 그야말로 '안방에서 세계 여행' 하는 기분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혹여 그동안 서구 문화에 대해서 나처럼 사대주의적 시각을 가졌다면 이책은 그 시각을 '상대주의적'으로 교정해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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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찾는 우리꽃 - 봄
김태정 지음 / 현암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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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해마다 봄이 되고, 그리하여 오고 가는 길섶에서 새싹이 돋고 자라서 작은 꽃망울들을 피우면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내 너의 이름은 모르나 그냥 좋다. '그냥 좋아하면 되었지 귀에 익숙지 않은 너의 이름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하며 꽃들에게 무언의 인사를 건네곤 하였다. 그러나 이름이 어렵기로 말하자면 원산지가 대부분 서양인 서양화초들의 이름이 더 어려웠다. 다른 나라 화초들의 익숙지 않는 이름들을 외우다보니 우리 나라 꽃 이름을 외우는 일은 훨씬 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 꽃 책을 샀다.

김태정 박사의 계절별로 나뉘어 놓은 <쉽게 찾는 우리 꽃-현암사> 3권은 한 손에 잡고도 펼칠 수 있게 책의 가로 길이가 좁다. 때문에 들이나 길섶에서 왼손에는 책을 펼쳐들고 오른손으로는 풀이나 꽃을 살피고 하면서 보기에 딱 좋다.

보다 보니,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눈에 익숙한 꽃들이 많았다. 어릴 때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며 수도 없이 본 꽃들. 그러나 한번도 그 이름을 알고자 애썼던 기억은 없다. 다만 아련하게 참 예쁘구나 생각했던 기억은 아직도 손에 잡힐 듯 남아있다. 그러한 추억의 꽃들을 이제는 그 이름 하나하나 여유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을 맨 처음 알게 된 것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였다. 무슨 시였는지는 잊어버렸는데, 암튼 그 시를 읽고 나서 패랭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날이 온 것이다. 책을 펼쳐 패랭이꽃을 찾아보니 과연 패랭이꽃은 시인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예뻤다.

'며느리밑씻개'는 내가 며느리다 보니 그리고 그 이름이 하도 웃기기에 평소 궁금해하던 풀이었는데, 아, 그것은 웃고 넘어갈 풀이 아니었다.

분포지를 보니 '각 곳의 산과 들, 낮은 곳 집 근처 울타리나 길가 풀밭'이라고 되어있었다. 그 옛날 들과 산에서 일하다가 끄응 신호가 오면 급한 김에 쓸 수도 있는 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 아니었다.

며느리 밑씻개는 삼각형의 잎에 꽃은 메밀꽃 모양인데 잎 가장자리와 줄기에는 작은 가시들이 촘촘히 나 있었다. 그것으로 뒤처리를 하다가는 정말이지 피 보는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뭉뚱그려 들국화라 생각했던 것들도 알고 보니 잎과 색, 꽃 모양에 따라 다들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해국, 개망초라고. 그러나 또 세분되어서 구절초도 모양과 분포지에 따라 '낙동구절초'와 '바위구절초'로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쑥부쟁이 또한 '가는 쑥부쟁이'와 '개 쑥부쟁이' 갯 쑥부쟁이' 그리고 개미취도 '벌 개미취'라는 게 별도로 있었다. 그 옛날의 조상들은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냥 들국화라고만 하지 저마다 특징을 살려서 이름을 지어 주다니 그 정성이 놀라웠다.

보고, 또, 봐도 책을 덮으면 그만 어떤 것이 쑥부쟁이였고 어떤 것이 구절초였는지 가물가물해졌다. 천상 가을이 되어 들로 산으로 그들이 지천을 이룰 때 그 때 그들의 몸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면서 관찰해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찾는 우리 꽃>은 전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책이 한 손에 들어가기 알맞게 좁다. 봄, 여름이 각각 한 권이고 가을 겨울이 합쳐서 한 권이다.

지금은 봄이니 '봄' 권을 들고 들이나 공원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아하, 이것이 냉이꽃이로군' '냉이로 된장국은 끓여먹어 봤어도 냉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비꽃, 봄맞이꽃, 괭이밥, 별꽃, 씀바귀, 꽃다지, 민들레 등등 무심히 보아왔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 김태정 박사의 열정이 놀랍다. 그는 아무래도 고산 김정호의 피(?)를 이어 받았지 싶다. 학창시절, 국사 책에서 '대동여지도는 김정호'라고만 외워서 시험문제를 맞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양반이 지도를 그리려고 삼천리를 단 '두발'로 누비고, 또, 누볐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런 인물은 역사책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김태정 박사야말로 살아있는 김정호다. 제도권 박사 하나도 부럽지 않고 박사라는 말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쉽게 찾는 우리나물> <쉽게 찾는 우리약초>등도 책꽂이에 꽃아 두면 두고 두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소설이나 에세이 등은 한번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아두면 바로 관속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로 두 번 보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하면 김태정 박사의 꽃 시리즈는 두고두고 다시 넘기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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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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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수적이다. 매달 말이면 각종 세금에다 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등 먹는 것과는 별도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기십만원이다.

 
ⓒ 위즈덤하우스
거기다 식비를 보태면 맛있는 반찬 별로 못 먹어보고도 백만원은 아주 기본으로 들어간다. 내 경우, 월급날이 돌아오기 전에 언제나 통장잔고가 바닥나서 카드를 긁게 된다. 카드를 긁으면서, 아아, 다음달에는 정말이지 가불인생 되지 말아야지 맹서를 하지만 어째 월급이 좀 많다 싶으면 또 반드시 유치원비니 자동차세니 하는 것들이 날아온다.

때문에 또, 어쩔수 없이 카드로 좀 살아야 다음달 월급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한번 가불인생이 되고 나니 좀처럼 그 것을 예전처럼 돌리기가 쉽지 않다. 한번 씀씀이가 커지고 나면 정말이지 고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쌀이며 기타 부식이나 양념거리 등을 시댁으로부터 공수 받는데도 늘 쪼들리는 생활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놈의 신용카드가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과감히 카드를 정리하고 싶지만 '소득공제' 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지고 혹시 유사시에 돈이 없으면? 하면서 지갑에서 쉬이 빼질 못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나의 이 미련을 일거에 날려 줄 구원의 선생님을 만났으니. 뭣시라?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고?

신용카드를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이왕 쓰는 것 소득공제나 하면서 쓰고 또 썼는데 저자는 나의 이런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해 주었다. '신용카드로 소득공제 받는다지만 연봉 5,6천의 고액 소득자가 아니면 실질적인 혜택이 별로 없다'나.

원고료만 받으면 백화점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쇼핑 중독자였던 방송작가 강서재씨는 직장생활 5년에 통장잔고가 달랑 700만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온전한 그녀의 재산이 아니었다.

밀린 국제전화비 350만원에다 200만원에 육박하는 카드 값 등을 모두 청산하고 나니 잔고가 제로였다. 즉 직장생활 5년에 통장잔고가 0인 삶을 그녀는 살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방년 27세에 '이럴수는 없는기라' 개과 천선하여 1억 모으기에 도전한다.

자기가 무슨 탤런트도 아니면서 한달 의상비 100만에다 피부관리비 30만원씩 쓰던 그녀는 월급 220만원에서 160만원씩 뭉텅 떼어 저금하기로 결심하였다. 너무 과한 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많은데 그녀는 그동안 너무도 원없이 쓰던 그 정열로 이번엔 원없이 모으기에 돌입하였다.

물론 성공적으로 일년을 보냈다. 그뿐인가. 그 다음해엔 일을 늘려서 월급이 400만 원이나 되도록 불철주야 일을 해 한달에 300만 원씩 저금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하여 삼년 허리띠를 졸라매니 어느새 통장에는 '억!' 소리가 났다고. 그리고 이제는 10억 목표에 도전중이라나.

물론 싱글인 저자는 딸린 식솔이 없으니 보통 사람보다는 모으기 쉬웠을 것이다. 나는 억은 고사하고 1000만원이라도 한번 모아보는 게 소원인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

1억 모으기에 도전하면서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젊은날의 한 시절을 가열차게 보낸 세월 속에서 돈보다 더 진기한 것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즉, 돈 만이 아닌 '돈'과 '인생' 그리고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고.

주식? 부동산? 무슨무슨 신탁? 아이구 머리아파 난 그런 것 몰라 할 사람들이 하면 가장 좋을 저축법인 것 같다, 그녀의 저축 비법은. 일단 저돌적으로 목표액을 정하고 다달이 꼬박꼬박 붓는다, 실시! 나는 내 형편에 맞게 우선 한 300만원부터 시작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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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채수동.고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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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십대 초반, 커피숍에서 두 달인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그 커피숍 벽에는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있었고 구석에는 피아노 그리고 음악은 항상 클래식만 흘러나오게 하는 그런 집이었다.

그림과 피아노와 음악 빼놓고는 모든 것이 후져서 손님들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그러나 자칭 예술가연하는 사람들은 그러하기 때문에 시내를 나오면 주로 그 커피숍을 이용하는 듯했다.

그렇게 이따금씩 납시는 손님중에 미술을 하던 분이 한사람 있었다. 그 손님은 언제나 막노동 하다 온 것 같은 입성에다 어깨선까지 내려온 긴머리를 휘날리며 이따금씩 그 커피숍을 찾았다. 그는 프림이 듬북 들어가 구수한 맥심이라 소문 났으나 실은 맥스웰 하우스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그러던 그 손님이 어느날은 무슨 말끝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내게 던져주었다. 그렇잖아도 당시 나는 인생이 뭔지 황망해 하고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한 만큼 그는 해답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였다.

그는 '인생은 운명인가, 아니면 의지의 표상인가.'그걸 모르겠다며 웃으면서 그것을 연구중(?)이라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듣는순간 '운명'과 '의지의 표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소주라도 한잔 들이킨 듯 '캬아!' 탄성이 나왔다.

운명론에 기울어 있던 나는 '의지의 표상'이라는 말이 너무도 신선하였다. 물론 그 말은 그 화가의 말이 아니고 어느 철학자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말을 때 마침 내게 들려 주어서 무수한 낱말 들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인생이란?' 이라고 하면 항상 '운명'과 '의지의 표상'이라는 두 상반된 어휘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삼십 중반을 넘어선 두아이의 엄마인 현재, 나는 그져 두 나비를 부활시키려는 애벌레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차피 공수레 공수거이니 아득바득 살 필요가 있나. 또, 원래 치열하지 못한 성격이니 남들처럼 뭔가 특별한 것을 이룬다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니 인생이니 뭐니 고민하지 말고 그냥 대충 살다가 죽지뭐,였다.

그러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와의 전화에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각자 독서경험을 얘기하던 중 친구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사실 이책은 한꺼번에 다 읽는 것이 아니고 매일 조금씩 명상하듯 읽어야 하는 책인데 나도 모르게 책에 몰입 하다보니 이틀 동안 천 이백 여 페이지를 다 읽어버렸다. 강력 추천한다."

그렇지 않아도 제목은 듣고 있었으나 살 생각 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강한 어조에 끌려 당장 주문을 하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일년 365일, 즉 새해 1월 1일부터 12월 31까지 매일 그 날짜에 해당하는 분량을 읽고 명상하라는 듯 일기처럼 월, 일을 표시해 두었다.

하루에 한 두장씩 읽어서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면 그 책의 마지막을 여행할 수 있게 엮어져 있다. 물론 글이 무한정 땡기면 친구처럼 몇 일 만에 완주를 하고 다시 조금씩 음미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로 나뉘어 놓은 읽을거리에는 톨스토이 자신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지성들의 사상과 종교, 예술관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그야말로 이 한권의 책에서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쇼펜하워, 탈무드, 노자, 공자, 괴테, 파스칼등등 동서양의 모든 사상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그 많은 사상가들의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엮느라 톨스토이는 장장 이책을 만드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하였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톨스토이는 인생의 의의를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처럼 물질적 풍요와 기아가 공존하고 끊임없는 전쟁의 욕망속에서, 톨스토이의 선한 삶에의 의지야 말로 우리모두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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