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야 하니 달팽이 과학동화 1
심조원 글, 김용철 그림 / 보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독서'라는 게 뭔지 모르다가 6학년 2학기 겨울방학을 앞두고 겨우 동화책을 손에 들 수 있었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내 짝과 주변의 친구들이 동화책을 빌려서 공부 시간에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선생님 눈치를 보며 읽곤 하였다.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했는데, 그때 난생 처음 읽게 된 동화책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지금도 책제목과 읽었을 때의 느낌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는데 그것은 '대도둑 호첸 풀르츠'였다. 그 다음 소공자, 소공녀, 하이디 등을 읽었는데 다 합치니 그래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남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적은 양이었지만 내 내면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별로 '약이 되는 동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불행한 현실을 의지로서 개척해나갈 생각보다 동화같은 황당한 꿈만 꾸며 우연이나 요행을 바란 적도 많았으니.)

이런 유년을 가졌다면 아이만큼은 엄마의 유년처럼 황량하게 만들지 않겠다며 책으로 아이방을 도배할 법도 한데 어쩌다 보니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책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책을 보며 가만히 있는 것 보다 저지레하며 움직이는 것이 (서너 살 아이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전집으로 사는 (그림)동화책은 적게는 3,4십만 원에서 많게는 1백만 원을 호가하는 줄로 알고 지레 겁을 먹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아이 책을 사느니 내가 책을 사서 보고 저력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큰애가 네 살 때까지 갖게 된 책은 내 책 사러 서점 따라가서 어쩌다 하나씩 사게 된 동·식물 그림이나 비행기 자동차 따위가 그려진 책이 전부였다. 물론 내심 다섯 살이 되면 동화책을 사주어야지 하는 생각은 했다.

▲ 달팽이과학동화 1권 - 곤충의 신호 나랑 같이 놀자
그러나 막상 다섯 살이 되자 사주긴 사주어야 되는데 무엇을 사줄까 찾아보려니 귀찮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운명'의 <달팽이 과학동화> 전집을 보게 되었다.

"어머나, 이거는 못 보던 책인데 새로 샀나봐요?"
"네, 새로 샀어요. 나는 이 책을 보면 글도 글이지만, 글 쓴 사람보다 그림그린 사람이 더 우러러 보여요."

뭣이라고라? 그림에 대해서 많이 모르지만 그림을 좋아하던 나였던 지라 "그래요?"하며 그림을 살펴보았다. 어머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작가마다 개성이 있어 다들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네를 통해 처음 수련을 알았지만 지금은 내 결혼기념으로 그려준 친구의 양수리 수련이 더 멋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구 유명 명작동화들의 그림도 보기에 좋았지만, 우리나라의 동식물과 곤충 그리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달팽이 과학동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좋은 책을 보면, "도대체 누가 이 책을?"하며 펴낸 곳을 보게 되는데 재생지를 사용하는 '보리 출판사'가 아닌가. 기획 윤구병이라. 허걱! 눈동자가 커지면서 "심봤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윤구병 선생에 대해서는, <잡초는 없다>를 통해 선생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의 한량 없음을 쩌릿쩌릿하게 느꼈던 바, 그런 분이 기획을 했다면 더 이상 따져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몇 권 즉석에서 읽어보니 그림이고 내용이고 다 좋았다.

"그러면 이 좋은 책을 다 얼마에 샀죠?"
"40권에 17만원이에요."

가격까지 만족이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그 가격에 팔아도 출판사는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오지랖 넓은 생각은 그만 하고 주변에 이 책의 좋음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답하기로 했다.

달팽이 과학동화는 이름 그대로 과학 동화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속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동물과 식물 곤충들의 세계를 재미와 감동으로 엮은 책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과학과 자연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는' 요술같은 책이다.

더욱 유익한 것은, 맨 뒷장의 '엄마 아빠와 함께 보세요'라는 페이지는 부모인 우리들의 눈까지 틔워 준다. 예를 들어 여러 곤충들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볼 때면 그저 작은 미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리 야무질 수가!"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아이 공부 이전에 내 공부까지 된다.

쇠뿔도 단김에? 나는 당장 전화번호를 물어서 주문을 하였다. 서점도 급하기는. 다음 날로 바로 택배가 왔다. 방에 40권을 풀어헤쳐 놓으니 부자가 된 느낌에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아이의 책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 동화책을 보지 못하고 자란 안타까움을 가진 나의 책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린이집에 간 아이가 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책들을 번호가 많은 것부터 차곡차곡 다시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1,2권만 내놓고 나머지는 베란다 창고에 넣었다. 그것을 아이에게 한 주가 마무리되는 매주 금요일마다 두 권씩 내주기로 하였다.

지난 5월부터 그렇게 했는데 지금 20권까지 나왔다. 새 책을 꺼낼 때마다 나는 매번 꿀단지에서 맛있는 엿을 꺼낼 때처럼 이번엔 어떤 내용일까 사뭇 설레인다. 물론 매번 감동한다. 한 스무 권쯤 읽다보니 개중에 특별히 좋은 것이 생기는데 아이와 나의 기호가 조금씩 다르다는 게 재미있다.

아이는 장난스럽거나 도깨비, 늑대, 여우 등 성격파 배우들이 나오는 책을 좋아하였다. 반면 나는 곤충들의 부성애 모성애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오거나 한 폭의 수채화 같이 시원하고 고운 그림이 있는 책이 좋았다.

달팽이 과학동화 덕분에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좋은 엄마가 된다. 아이는 금요일마다 두 권의 책을 받아들고 만족 그 이상의 만족을 느끼며 자신의 책꽂이에 책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다.

이번 장마기간에는 "엄마, 비오는 데도 내 책 사러 갔나?"하며 고마워 하였다. 부디 마지막 권을 꺼낼 때까지 꿀단지가 발각되지 않아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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