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롯의 전설 - 아웃케이스 없음
제리 주커 감독, 숀 코너리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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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출신 영화배우 ‘줄리아 오몬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통해서였다. 그녀에 대한 첫 느낌은 매력이라곤 약에 쓸래도 찾을 수 없다였다. 그러나 그 영화를 다 보고나니, 여성스러운 매력은 없었지만 어떤 강인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그러다 ‘리처드 기어’를 찾아 <카멜롯의 전설>을 보게 되었다. 휙휙 칼 솜씨를 자랑하던 떠돌이 기사 ‘란슬롯’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그 상대 ‘기네비아 공주’역으로 ‘줄리아 오몬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머, 공주로 나오니 제법 예쁘기도 하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 비해서 다소 여성적이 매력이 풍긴다는 것이었지 다른 헐리웃 배우들에 비하면 그녀는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그런데 ‘사브리나’ 에서는 뭔가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번창한 기업 회장의 운전기사의 딸인 ‘사브리나’는 존재감도 없이 살았는데, 주인마님의 배려로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 후 몰라보게 아름다워져서 그 집 바람둥이 둘째아들의 바람의 종착역이 되었다? 그뿐인가 사업밖에 모르던 큰아들 ‘라이너스(해리슨 포드)’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다고?

‘그러면 정말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예쁘게 나오겠군.’

해서, 기대를 하고 ‘사브리나’를 보았다. 그러나 웬걸 내 눈에는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2년 동안 파리에서 사진공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기차역 플랫폼에 내려 택시를 잡으려는 그녀를 바람둥이 둘째아들 데이빗은 자기네 집 운전기사의 딸인 줄도 모르고 뿅 가는데 내가 볼 땐 별로였다. 오히려 2년 전 운전기사의 딸로만 존재할 때의 그 수수하던 모습이 더 낳았다.

‘어찌 저 여인이 아름다움의 대명사 ’사브리나‘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가.’

내친김에 <가을의 전설>에 또 그녀가 나왔다기에, 세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니 기대해도 되겠지 생각했다. 과연 <가을의 전설>에서는 기존에 봐왔던 모습 중에서 가장 예뻤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얼굴이 아닌 머릿결에서 나왔다. 보통보다 훨씬 긴, 말 그대로 삼단 같은 머릿단을 휘날렸는데 그 물결치던 웨이브와는 달리 그녀의 극중 팔자가 너무도 기구해서 슬펐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브리엘 번’ 때문에 빌려본 <센스 오브 스노우>에 아, 또 그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아름다움을 흉내 낼 생각이 추호도 없는 듯 가발임이 분명한 단발머리를 뒤집어쓰고 세수하고 로션도 안 바른 듯 건조하게 나왔다.

‘아니, 내가 이 여자를 또 봐 줘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멋쟁이 가브리엘 번의 상대역으로?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이 영화에서 그린란드 사냥꾼 어머니와 미국인의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눈(雪)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과학자 ‘스밀라’로 등장하였다.

그린란드의 얼음벌판 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스밀라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회의 삶과 사람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그린란드의 눈과 얼음, 카약 등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던 중 유일한 친구였던 같은 아파트의 어린 소년 ‘이사야’의 죽음에서, 옥상 가장자리로 걸어간 이사야의 눈 위 발자국의 형태를 보고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직감한다. 스밀라는 타살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사야’의 또 다른 친구였던 수리공(가브리엘 번)으로부터 위기의 순간마다 도움을 받으며 의혹을 풀어갔다.

‘이사야’를 죽게 만든 과학자 집단의 음모로 한겨울 배위에서 타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얼음물을 가르고 빠져나온 그녀를 수리공은 구해주었는데, 그로인해 마음이 열렸는지 그녀는 자신의 내면 한 자락을 그에게 풀었다.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수학밖에 없어요. 눈, 얼음, 숫자.... 내게 숫자는 인간사와 다름없어요. 완전하고 양수인 자연수는 어린아이와 같아요.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변하고 아이도 동경심을 갖죠. 동경을 나타내는 수학적 표현이 무언지 알아요? 음수예요.

뭔가를 잃은 허전함을 형식화 한거죠. 아이들은 이 공간들과 돌, 사람들, 숫자 사이에서 분수를 만들어내죠. 하지만 영원히 멈추진 않아요. 인간은 숫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숫자는 지평선을 향하는 대평원의 풍경화예요. 그린란드처럼. 난 그것 없인 못살아요. 감옥엔 못가요.>

촌스런 단발머리에다 아무런 꾸밈없는 그녀였지만 위의 얘기를 할 때의 줄리아 오몬드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그 앞에 앉아서 얘기를 듣던 수리공(가브리엘 번)또한 뿅 가다 못해 그녀가 얘기를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한마디 내 던졌다.

“키스해도 될까요?(can I kiss you?)”

그랬다. <센스 오브 스노우>를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녀에 대한 나의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헐리웃 연예가 소식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그런 배우가 아니었다. 그런 배우들과는 무언가 색깔이 다른데 같이 비교를 하고 그녀를 깎아 내렸다니. 물론 내가 깎아 내린 것은 그녀의 ‘연기’가 아니라 ‘생김’이었지만.

이젠 외모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다 뿐인가, 그녀는 그냥 믿어도 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그녀의 영화들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녀가 선택하는 영화는 보고 나면 뭔가가 남아도 남을 것 같다. (위 영화들 보다 나중작인 <데브라 윙거를찾아서>와 <에니멀 팜>은 아쉽게도 우리 동네 비디오 가게에는 없었다.)

.......
줄리아 오몬드, 그녀는 지금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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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SE - 무삭제 완전판
버나드 로즈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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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이여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그대에게 잠시 내 마음을 전하려하오.
내일이 되어야 머물 곳을 알게 될 것 같구료.
그동안 부질없이 방황해야 했던 시간들... 왜 이리 아픈지.
다시 합칠 수만 있다면 이 고통 없으련만.
내가 있는 곳에 그대도 있어주오.
우리 이제 같이 참다운 인생을 사는 거요.

너무나 힘든 여행이구려. 이곳에 도착한 것이 새벽 4시.
밤중에 여행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극구 말렸지만
내겐 아무 소용이 없소.
도중에 마차가 진탕길에 빠지기도 하여 고생도 많았지만,
이제 당신을 만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료.
곧 당신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
오늘 중에는 만나게 되길 바라오. 당신을 만나야만 하오.

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오.
제발 기다려 주시오. 잠자리에 누워서도 오직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여.
때론 슬픈 추억.
때론 기쁜 추억.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래야 하오. 이제 잠시 눈을 붙여야겠소.
어제 오늘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며 울었는지
그대는 내 인생이며 나의 전부라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해 주시오.
영원히.

-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 전문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은 베토벤이 죽으면서 남긴 한 장의 유서로부터 전개된다.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이던 '쉰들러'는 베토벤이 남긴 "내 음악과 전 재산을 내 불멸의 연인에게 모두 상속하노라"라는 유서와 함께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연서를 접하고 그것을 제대로 전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느꼈다.

그리하여, 쉰들러는 편지의 수신지인 '칼스바드'의 '스완호텔'로 찾아가 호텔 주인에게 베토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주길 부탁하였다. 호텔 주인은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당시 베토벤의 행동이 너무도 광폭했기에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즉, 베토벤은 어떤 여성과 모일 그 호텔에 묵을 것을 약속하고 예약을 해놓았으나 예약한 날에 그는 오지 못하고 대신 편지만 보내왔다. 때문에 호텔 주인은 식사와 함께 베토벤의 편지를 쟁반에 끼워서 제시간에 도착한 여인에게 전했는데(조안나는 편지의 존재를 모름) 여인은 어쩐 일인지 편지를 받은 후 곧 호텔을 떠났다. 뒤늦게 도착한 베토벤은 그녀가 가버린 것에 대해 화를 내며 호텔 기물을 파손하며 난장을 저질렀다.

▲ 오르도디 백작부인과 베토벤.
ⓒ 콜럼비아픽처스
쉰들러는 이 호텔에서 '불멸의 연인'이 한 서명을 확보하여 베토벤 생전 연인이었던 백작 부인들을 찾아가 베토벤과의 사랑에 대한 고백을 들으며 필체 확인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백작부인들은 자신이 한때 베토벤의 연인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칼스바드의 호텔에는 간 적이 없으며 서명의 필체 또한 자신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중 오르도디 백작부인은 불멸의 연인은 쉰들러씨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니 내가 안다니 도대체 누구라는 말씀?

불멸의 연인은 동생의 아내

엉뚱하게도 베토벤이 그토록 잊을 수 없었던 '천사이자 전부이며 분신'이었던 여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 카스파의 아내이자 조카 칼의 엄마인 '조안나'였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카스파가 조안나를 좋아하기 전에 베토벤이 비공식적으로 조안나와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카스파와의 관계를 알면서도 중간에 끼어들어 강렬한 선생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조안나를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사랑의 도피 여행으로 삼각관계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이미 조안나가 베토벤의 아이를 임신(픽션인지 진짜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텔에서의 만남은 불발이 되고 조안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공식적인 애인인 카스파와 결혼하여 칼을 카스파의 아들로 만들었다. 한편 베토벤은 조안나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속마음과는 달리 남들 앞에서 조안나를 헐뜯고 증오하며 보냈다.

창녀 같은, 부도덕한 년이라며 거침없이 내뱉는가하면, 조안나는 남편 카스파가 폐병으로 일찍 죽자 6개월 만에 재혼을 하였는데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조카(아들?) 칼에 대한 양육권마저 빼앗았다. 그로 인해 조안나와 베토벤은 완전히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는데 칼에 대한 사랑은 아주 지극하였다.

그러나 귀가 먹은 상태에서 칼에게 피아노를 지도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이었다. 칼은 참다 참다 안 되어 콘서트를 앞두고 자살미수를 하여 조안나와 베토벤을 놀라게 하였다. 자살미수 후 칼은 엄마인 조안나의 집에 머물면서 그곳으로 찾아온 베토벤에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매몰차게 대하였다.

베토벤은 칼도 떠나고 귀도 들리지 않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가운데서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조안나는 베토벤을 증오하면서도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주회엘 갔다.

그리하여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서 들리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그토록 뜨거운 곡을 만든 베토벤을 그만 용서하기로 하였다. 베토벤 또한 합창 교향곡으로 그동안 자신에 대해 쏟아지던 무수한 억측과 조롱을 일시에 만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상태에서 조안나는 쉰들러의 방문을 받았고 칼스바드 호텔의 필적이 자신임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담담히 더 이상 베토벤에겐 미움도 원망도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무거운 숙제 하나를 마치게 된 쉰들러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조안나에게 내밀었다.

"이 편지의 주인은 당신인 것 같습니다."
"편지라니 무슨?"

쉰들러가 건네준 편지를, 오래 전에 읽었어야 할 그 편지를,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읽게 된 조안나는 통곡하였다. 자신은 버림받은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게리 올드만

▲ 작곡을 하다 조안나를 바라보는 베토벤.
ⓒ 콜럼비아픽처스
베토벤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은 베토벤 영혼 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베토벤보다 더 베토벤 같았다. 영화 말미에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의 제 2악장이 나직이 흐르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는 '불멸의 연인' 전문을 타고 흘렀다.

그 목소리는 폭풍우 때문에 칼스바드 호텔을 제 시간에 갈 수 없었던 베토벤의 애끓는 심정과 조안나를 향한 사랑의 전율을 절제된 음성으로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아마, 하늘의 베토벤 선생도 만족(?) 하지 않았을까.

정말이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폭탄머리' 베토벤 선생에 대한 선입견은 단지 선입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거칠게 행동했지만 속까지 거친 사람은 아니었다. 그 누구하고도 자신의 고독과 아픔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 화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니고 음악가에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고통을 주다니...

게리 올드만은 이런 베토벤의 아픔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베토벤 음악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한편으론 힘차고 열정적인 기상이 다 그의 성정(性情)에서 비롯되었음을 실감 있게 보여 주었다.

예전 베토벤을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 전문이 몹시 궁금하였는데 영화 <불멸의 연인>이 해결해 주었다. 전문을 접하고 보니, 베토벤 선생은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것 같다.

......때론 슬픈 추억. 때론 기쁜 추억.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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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 김광석 Best
김광석 노래 / 이엠아이(EMI)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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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유치원 졸업을 하게 되어 선생님들 선물을 사러 갔다. 늘 하던 대로 무난하게 책이나 살까 하다가 분위기를 좀 바꿔보기로 하였다. 하여 대안으로 산 것이 '김광석best'였다. 포장을 하면서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살펴보자니 새삼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사랑했지만'을 통해서였다. 어느 해 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벚꽃이 흐드러지던 4월의 밤. 벚꽃 길을 함께 걷던 네 명의 여자 중 사랑에 빠져있던 한 친구가 그의 노래를 언급했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알고들 있니?"

나머지 세 여자는 '글쎄….'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 노래 아주 좋아' 하면서 혼자 나직이 불렀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지./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버려/ 때론 눈물도…….'

"사랑에 빠지면 좋은 노래도 먼저 알게 되나 보지?"

그 후 어느 밤 라디오에서 '사랑했지만'을 오리지널로 들을 수 있었다. 이 노래를 처음 언급해준 친구의 말대로 '사랑했지만'은 정말 매력적인 노래였다. 가사도, 멜로디도, 그의 목소리도 삼박자가 조화로워 어디 한군데 나무랄 때가 없었다.

나는 공테이프 하나에 '사랑했지만'을 녹음하여 듣고 또 들었다. 사랑의 실체에 빠지기보다 '사랑노래'에 빠지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신났다.

'이등병의 편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 아일랜드 민요를 들었을 때와 같은 짠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하모니카의 애조 띤 울림과 함께 시작되는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은 훈련소는 아니지만 집 떠나와 객지 생활하던 내 유랑인생이 겹쳐져 무척 공감이 갔다.

멜로디가 어쩌면 그리도 매력적인지. '도레미미 솔미레도 레레레도 레도레….'이런 단순한 계이름에 음표 길이를 적당히 늘이고 줄여 마법의 멜로디가 나온 것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잠결에서였다. 한때 근무하던 직장에서 당직 업무를 끝내고 숙소에서 자면서 선잠을 잤는지 잠결에도 음악이 들렸다. 어느 방에서 흘러나오는지. 그중 어떤 한 노래가 특히 듣기에 좋았다. 그 노래가 절정을 향하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라고 한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몽유병 환자처럼 자다 말고 음악 소리가 나던 곳으로 당장 저벅저벅 걸어갔다.

"노래 제목이 뭣이오? 참 좋아서 자다가 깼소."
"김광석의 노래들인데 무슨 노래에서 '뻑' 갔다는 것인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라고 한 노래 말이오."
"아, 그 노래요? '이등병의 편지'입니다."
"되감아서 다시 한번 들려 주시오. 아니, 두 번 세 번."

그날 이후 나는 김광석의 테이프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듣다 보니 그의 모든 노래들이 다 좋았다.

콘서트 한번 못 간 것 후회스러워

'사랑했지만'을 좋아하던 시절 김광석의 콘서트 포스트를 보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 다음으로 미루면서 지금 안 봐도 나중에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가 그렇게 빨리 가버릴 줄이야.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의 고독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전에는 '아,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고' 하면서 그저 즐기고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가버리고 나자 공감을 자아내던 노래들은 다 그의 '고독'의 대가였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김광석은 그렇게 가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그가 그렇게 일찍 가버려서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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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보고 싶은 세계 명작 동화
삐아제어린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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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책이란 것을 읽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요즘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하여 1살, 2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단계별로 별의별 책을 다 선물받지만 내 어린 날 책 구경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여남은 권 읽자 더 이상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뭔가 아쉬워지면서 중학교 들어가서도 학교 도서관을 찾고 해야 될 텐데 그러지 못했다. 동화책을 처음 접해 짧은 시간에 여남은 권을 읽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이 묵었다'는 만족감이 일었었다, 참내.

그때 우리들이 주로 읽었던 책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 <검은말 이야기> <소공녀> <소공자> <왕자와 거지> <빨간 머리 앤>등이었다. 요즘 견지에서 보면 '약이 되기보다 독이 되기' 쉬운 동화들일수도 있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류의 책들이 어느 정도 내 심리에 영향을 미친것도 같다, 물론 '독' 까지는 아니겠으나.

그런 빈약한 어린 날을 보냈던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니. 그 때 그 '결핍'이 뒤늦게 '욕구'가 되어 빛을 발하다니 인생의 진행 경로는 알 수가 없어라. 또, 배꼽 잡을 증세는 뜬금없이 그 옛날에 못 읽었던 세계명작 동화나 위인전 시리즈를 내 나이 마흔 즈음에 불현듯
한꺼번에 왕창 쌓아두고 읽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이미 인생의 불혹이니 약이니 독이니 따질 필요도 없을 터이고, 다만 너무 궁금해 미치겠는 것이다. 제목은 알되 읽어보지 못한 동화가 너무 많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그 동화들을 구할까 궁리중이다.

내 돈으로 사기보다 아이를 중학생으로 올려 보내는 집을 수소문해 헐값에 왕창 처분해줍쇼 청을 넣고 싶은데 잘 만나질지 의문이다.

겸사겸사 '자리끼'로 아이에게 해주던 이야기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초등생이 되는 첫째아이는, 어릴 때는 하나의 얘기로 수십 번 우려먹어도 재미있다고 했는데 요새는 서너 번 들으면 이미 다 아는 얘기라며 새로운 것을 주문한다.

해서 도랑치고 가재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얘기해 줄때는 나름의 상상력으로 각색하여 전혀 다른 얘기가 될 터이지만.

'아무튼 위인전과 명작동화여, 조만간 당신들을 만나러 갑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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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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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대중목욕탕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의 나만의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다름 아닌 졸도(?)사건 때문이다. 목욕탕에 가면 밥을 먹고 가도 기운이 딸릴 것인데 내가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벌인 그 두 번의 경우 모두 아침을 굶고 갔었다.

그런 상태에서 본전을 뺀답시고 더운 공기에 숨이 가쁘면서도 두 어 시간을 버텼는데, 마무리하고 옷장 앞에서 열쇠를 꽂다가 쓰러졌다. 그러고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분? 30분? 나중에 나를 발견한 한 아주머니의 놀란 목소리에 잃었던 의식이 희미하게 되돌아오면서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오던 그 찰나.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에는 내가 '유체 이탈'을 한 듯 허공에서 쓰러진 나와 근심스런 얼굴의 아주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의식이 조금 더 돌아오자 허공의 나는 어느새 내려와 쓰러진 나와 오버랩 되었고, 아주머니는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는 상태를 인지하면서 확실히 의식이 깼다.

재미있는 것은 그 짧은 몽롱한 순간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내가 기운 없어 쓰러졌지만 쓰러진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고 '평온'했다.

나를 발견한 아주머니는 걱정스런 얼굴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으나, 혹시나 해서 일어나서 이리저리 걸어보니 약간의 기운 없음 빼고는 괜찮았다. 그 후로도 목욕탕에서 그런 장면을 한 번 더 연출했다. 물론 '죽음'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경험하고 싶지 않아 목욕탕 발걸음을 끊었다.

대신 죽고 난 다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것은 아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아프면서 죽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은 '잘 죽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픔 같은 것 없이 조용히 죽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좀 선하게 살면 조용히 죽을 수 있을까. 운동을 좀 열심히 하면 역시 조용히 갈수 있을까. 마음에 한점 미련 없이 원 없이 살다 가면 깔끔한 종말을 맞을 수 있을까. 명상을 오래하면 더 이상 미련을 남길 수 없는 순간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까.

그런데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삶을 긍정하며 끝까지 의연하게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베스트셀러라는 것 때문에 뒤늦게 만나게 된 분이었다. 모리 슈워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정열적인 춤추기를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 맺기를 좋아하던 모리 교수는 78세의 어느 날 어쩔 수 없는 노환도 아니고 인생의 막바지에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그는 의사로부터 자신의 병명을 듣고 난 다음 자신의 처지완 달리 이세상이 아무런 동요 없이 잘 돌아가는 것에 새삼 깜짝 놀았다.

담당의사는 2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했지만 모리 교수는 자신의 삶이 그보다 더 짧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자문했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인기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그의 옛 제자 '미치 앨봄'은 우연히 TV 토크쇼에서 죽어가는 스승의 의연한 자세를 보았고 16년 만에 은사를 찾았다. 16년이라는 시간적 괴리도 잊은 듯 은사는 어제처럼 그를 기억해 주었고, 당신 삶의 마지막 프로젝트에 미치가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미치는 모리 교수의 서재에서 '나홀로'수강생이 되었고 매주 화요일 그와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만남은 14회로 끝이 났는데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모리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홀로' 제자에게 질문하였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미치는 그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그러니 그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64쪽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75쪽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155쪽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165쪽


모리 슈워츠 교수는 두 번의 장례식을 가졌다. 한번은 '살아있는 장례식' 그리고 또 한번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맞이하는 장례식을 가졌다. 그는 아직 덜 아프고 사랑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때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렀다. 보내는 사람들도 떠나는 사람도 완벽하게 '회포'를 풀 수 있는 그런 장례식을.

우리는 매일매일 살고 있지만 실은 매일매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 죽음이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것에는 감사하나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 전의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정신적, 육체적 모두 고통으로 끝날 수도 있고, 반대로 소풍가듯 가볍게 떠날 수도 있다.

삶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영육 모두 후회 없이 소풍가듯 떠나기 위해 현재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물어보나마나 결론은 뻔한데 욕망에 찌든 인간사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모리교수는 그 외면에 깔끔한 쐐기를 밖아 주고 떠났다. 제발 비본질적인 것에서 헤매지 말고 참된 삶을 살다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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