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연인 SE - 무삭제 완전판
버나드 로즈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불멸의 연인이여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그대에게 잠시 내 마음을 전하려하오.
내일이 되어야 머물 곳을 알게 될 것 같구료.
그동안 부질없이 방황해야 했던 시간들... 왜 이리 아픈지.
다시 합칠 수만 있다면 이 고통 없으련만.
내가 있는 곳에 그대도 있어주오.
우리 이제 같이 참다운 인생을 사는 거요.

너무나 힘든 여행이구려. 이곳에 도착한 것이 새벽 4시.
밤중에 여행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극구 말렸지만
내겐 아무 소용이 없소.
도중에 마차가 진탕길에 빠지기도 하여 고생도 많았지만,
이제 당신을 만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료.
곧 당신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
오늘 중에는 만나게 되길 바라오. 당신을 만나야만 하오.

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오.
제발 기다려 주시오. 잠자리에 누워서도 오직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여.
때론 슬픈 추억.
때론 기쁜 추억.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래야 하오. 이제 잠시 눈을 붙여야겠소.
어제 오늘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며 울었는지
그대는 내 인생이며 나의 전부라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해 주시오.
영원히.

-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 전문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은 베토벤이 죽으면서 남긴 한 장의 유서로부터 전개된다.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이던 '쉰들러'는 베토벤이 남긴 "내 음악과 전 재산을 내 불멸의 연인에게 모두 상속하노라"라는 유서와 함께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연서를 접하고 그것을 제대로 전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느꼈다.

그리하여, 쉰들러는 편지의 수신지인 '칼스바드'의 '스완호텔'로 찾아가 호텔 주인에게 베토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주길 부탁하였다. 호텔 주인은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당시 베토벤의 행동이 너무도 광폭했기에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즉, 베토벤은 어떤 여성과 모일 그 호텔에 묵을 것을 약속하고 예약을 해놓았으나 예약한 날에 그는 오지 못하고 대신 편지만 보내왔다. 때문에 호텔 주인은 식사와 함께 베토벤의 편지를 쟁반에 끼워서 제시간에 도착한 여인에게 전했는데(조안나는 편지의 존재를 모름) 여인은 어쩐 일인지 편지를 받은 후 곧 호텔을 떠났다. 뒤늦게 도착한 베토벤은 그녀가 가버린 것에 대해 화를 내며 호텔 기물을 파손하며 난장을 저질렀다.

▲ 오르도디 백작부인과 베토벤.
ⓒ 콜럼비아픽처스
쉰들러는 이 호텔에서 '불멸의 연인'이 한 서명을 확보하여 베토벤 생전 연인이었던 백작 부인들을 찾아가 베토벤과의 사랑에 대한 고백을 들으며 필체 확인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백작부인들은 자신이 한때 베토벤의 연인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칼스바드의 호텔에는 간 적이 없으며 서명의 필체 또한 자신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중 오르도디 백작부인은 불멸의 연인은 쉰들러씨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니 내가 안다니 도대체 누구라는 말씀?

불멸의 연인은 동생의 아내

엉뚱하게도 베토벤이 그토록 잊을 수 없었던 '천사이자 전부이며 분신'이었던 여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 카스파의 아내이자 조카 칼의 엄마인 '조안나'였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카스파가 조안나를 좋아하기 전에 베토벤이 비공식적으로 조안나와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카스파와의 관계를 알면서도 중간에 끼어들어 강렬한 선생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조안나를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사랑의 도피 여행으로 삼각관계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이미 조안나가 베토벤의 아이를 임신(픽션인지 진짜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텔에서의 만남은 불발이 되고 조안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공식적인 애인인 카스파와 결혼하여 칼을 카스파의 아들로 만들었다. 한편 베토벤은 조안나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속마음과는 달리 남들 앞에서 조안나를 헐뜯고 증오하며 보냈다.

창녀 같은, 부도덕한 년이라며 거침없이 내뱉는가하면, 조안나는 남편 카스파가 폐병으로 일찍 죽자 6개월 만에 재혼을 하였는데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조카(아들?) 칼에 대한 양육권마저 빼앗았다. 그로 인해 조안나와 베토벤은 완전히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는데 칼에 대한 사랑은 아주 지극하였다.

그러나 귀가 먹은 상태에서 칼에게 피아노를 지도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이었다. 칼은 참다 참다 안 되어 콘서트를 앞두고 자살미수를 하여 조안나와 베토벤을 놀라게 하였다. 자살미수 후 칼은 엄마인 조안나의 집에 머물면서 그곳으로 찾아온 베토벤에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매몰차게 대하였다.

베토벤은 칼도 떠나고 귀도 들리지 않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가운데서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조안나는 베토벤을 증오하면서도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주회엘 갔다.

그리하여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서 들리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그토록 뜨거운 곡을 만든 베토벤을 그만 용서하기로 하였다. 베토벤 또한 합창 교향곡으로 그동안 자신에 대해 쏟아지던 무수한 억측과 조롱을 일시에 만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상태에서 조안나는 쉰들러의 방문을 받았고 칼스바드 호텔의 필적이 자신임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담담히 더 이상 베토벤에겐 미움도 원망도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무거운 숙제 하나를 마치게 된 쉰들러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조안나에게 내밀었다.

"이 편지의 주인은 당신인 것 같습니다."
"편지라니 무슨?"

쉰들러가 건네준 편지를, 오래 전에 읽었어야 할 그 편지를,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읽게 된 조안나는 통곡하였다. 자신은 버림받은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게리 올드만

▲ 작곡을 하다 조안나를 바라보는 베토벤.
ⓒ 콜럼비아픽처스
베토벤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은 베토벤 영혼 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베토벤보다 더 베토벤 같았다. 영화 말미에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의 제 2악장이 나직이 흐르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는 '불멸의 연인' 전문을 타고 흘렀다.

그 목소리는 폭풍우 때문에 칼스바드 호텔을 제 시간에 갈 수 없었던 베토벤의 애끓는 심정과 조안나를 향한 사랑의 전율을 절제된 음성으로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아마, 하늘의 베토벤 선생도 만족(?) 하지 않았을까.

정말이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폭탄머리' 베토벤 선생에 대한 선입견은 단지 선입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거칠게 행동했지만 속까지 거친 사람은 아니었다. 그 누구하고도 자신의 고독과 아픔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 화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니고 음악가에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고통을 주다니...

게리 올드만은 이런 베토벤의 아픔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베토벤 음악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한편으론 힘차고 열정적인 기상이 다 그의 성정(性情)에서 비롯되었음을 실감 있게 보여 주었다.

예전 베토벤을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 전문이 몹시 궁금하였는데 영화 <불멸의 연인>이 해결해 주었다. 전문을 접하고 보니, 베토벤 선생은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시인이기도 한 것 같다.

......때론 슬픈 추억. 때론 기쁜 추억.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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