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2disc) - 할인행사
박광현 감독, 정재영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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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오빠네로 명절을 쇠러 온 엄마에게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볼 것을 제안하였다. 내가 ‘극장’이라는 말을 꺼내자 오빠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일축했으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극장에 가 본 20년 전에도 나의 제안을 엄마가 받아들였듯이 이번 또한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마는 오빠가 안 간다고 하니 오빠보다 훨씬 더 늙은 당신이 갈 곳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하신 건지 안 간다고 우겼다.

해서 나는 ‘커다란 멧돼지’ 운운하며 엄마를 꼬셨고 엄마는 ‘그 골치 덩어리 멧돼지가 나온다면 한 번 볼만 하지 않을까’ 가늠해 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향 뒷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먹을 것이 궁한 멧돼지들이 출몰하여 애써 가꾼 고구마며 콩 등을 무자비하게 서리해 가곤 하였다.

엄마에게 들은 멧돼지의 집짓는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워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얘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즉, 멧돼지는 집을 얼마나 튼튼하게 짓는지 그 억센 이빨로 저돌적으로 구덩이를 판 다음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평평한 지붕을 만드는데 워낙 단단하게 엮기 때문에 사람이 밝아도 구덩이가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멧돼지가 보여준 최대의 ‘쇼쇼쇼’는 작은 언니에게서 들었다. 언젠가의 추석, 버스에서 내려 얼마간 걸어가야 하는 내 고향 길 언저리에서였다. 작은 언니와 조카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다 문득 마침 냇가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물을 먹고 산비탈을 올라가던 너댓 마리의 멧돼지 어미와 그 새끼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멧돼지가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작은 언니는 멧돼지를 보자마자 온몸이 쭈뼛하면서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하였다. 이 일을 어이할까나.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올라가라 주문을 외우면서도 혹시나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돌진해 온다면 아아…. 다행히 멧돼지들은 물을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뒤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사라졌다고 하였다.

아무튼 우리 가족에게 있어 멧돼지는 흥미로우면서도 곡식을 갉아먹는 ‘웬수’였다. 그러나 영화에서 멧돼지를 본다면 ‘그 웬수’가 왠지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극장 가본 지 30년이 넘었다는 올케 언니 또한 멧돼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조카들 또한 흥미진진해 하였다. 해서 우루루 떼거지로 <웰컴 투 동막골>을 보러갔다.

영화는 과연 엄마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고 엄마가 살아왔던 익숙한 지난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사라진, 80년대까지도 우리 집에 있었던 ‘디딜방아’며, ‘콩밭메기’, 그리고 ‘메밀밭 풍경’에다 쌍둥이 할아버지들의 소리까지 엄마에겐 너무도 익숙하고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흰 무명 치마저고리’며 ‘초가집’, ‘가마솥 뚜껑 뒤집어서 부치는 전’ 등은 엄마에게 ‘타임머신’을 탄 듯한 착각을 선사해 주는 지난 시절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않고도 힘찬 멧돼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이 걸작이었다.

“엄마, 정말 멧돼지 나오제?”
“그래, 정말 볼만 하더라.”
“그리고, 극장 너무 좋아졌제?”
“그래, 옛날 그 극장보다 좁기는 하다만 의자도 푹신하고 좋네.”

“엄마, 다음에 또 이런 영화 하면 보러 올래?”
“한 번 봤으면 됐지 뭘 다시 와. 한 번 본 걸로 됐다.”

엄마 나이 올해 일흔 아홉. 누가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 한 편 더 찍어주면 엄마랑 다시 한 번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날이 와 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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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박스세트 (2disc) - [할인행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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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영화 <외출>이 개봉될 즈음, 정확히 언제 개봉되는지 그리고 첫 번 상영은 몇 시인지 궁금하여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의 극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극장 아저씨가 말하기를.

"손님, <외출>은 내일부터 합니다만 그보다 오늘이 <비포 선셋> 마지막 날인데 영화가 너무 좋습니다. 꼭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좀…."
"그러면 이따가 저녁시간에라도 꼭 와서 보십시오. 영화가 괜찮은데 별 주목을 못 받고 간판을 내리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예, 가능한 보도록 노력해 볼게요."

물론 내 마지막 대답은 건성이었다. <비포 선셋>이라, 순간 '선 라잇 선 셋'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그 노래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물론 관련이야 없겠지만 이름이 비슷하니 자꾸 연관지어졌다. 그리고 내가 '선 라잇 선 셋'이라는 노래에 그리 흥미가 없으니 도매금으로 <비포 선 셋>도 그냥 그랬다.

다만 무시하고 지나자니 극장아저씨가 강력 추천한 것이 뭔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외출>도 보러 갈 것처럼 말해놓고 딴 데 가서 보는 등(물론 <외출>을 두 번 보는 바람에 나중에 다시 가 보기는 했지만) <비포 선 셋>만 생각하면 극장아저씨의 선의를 무시한 나 자신이 떠올라 외면하고 싶었다.

그 후, 지인에게 무슨 얘기 끝엔가, 얼마 전 극장 아저씨가 <비포 선 셋>이라는 영화를 권했는데 당기지 않아서 그냥 보지 않았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지인은 <비포 선 셋>과 관련된 내 모르는 정보를 또 하나 알려주었다.

"그거 옛날에 나온 영화 <비포 선 라이즈>의 후속편이야."
"그래?"
"<비포 선 라이즈>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비포 선 셋>에도 나온대."
"속편까지 찍을 정도라면 꽤 재미있었던 영화였나 보네."

순간 어떤 영화일까 살짝 궁금증이 일기는 했으나 이미 극장 간판에서 사라진 영화인지라 미련을 가져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튼 <비포 선셋>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는데 며칠 전 우연히 새벽 유선방송에서 <비포 선 라이즈>라는 제목을 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조금 보다 내가 모르는 배우가 나옴을 확인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나 위에 언급한 일화가 있기에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이국적 풍경 속을 쉴 새 없이 재잘대며 걸어가는 두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음, 이 영화 보통영화가 아닌가봐 하는 인상을 받았고 그리고 바로 빠져들었다. 이런 좋은 영화를 나는 왜 듣도 보도 못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비포 선 셋>을 극장에서 봐둘 것을.

<비포 선 라이즈>

▲ <비포 선 라이즈> 영화 포스터
ⓒ 캐슬 락 엔터테인먼트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으면서 쉴 새 없이 열어가는 그들의 웃음과 대화는 나에게 회한처럼 다가왔다. 맞아, 내 젊은 날 해보고 싶은 게 바로 저런 거였어. 제시와 셀린느, 스물 셋 그들은 그 나이에 어울리게 이성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확장해 가는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문득 나는 그 나이에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더듬어보니 이런저런 호기심과 '나'라는 빈 그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은 많이 했어도 영화의 그들처럼 밝지도 못하고 넓게 살아가지도 못 했다.

이웃나라가 이웃 동네 같은 유럽의 특수성을 축복 삼으며 유럽횡단열차를 타고 방학 때마다 이런저런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듣노라면 마음의 크기가 저절로 한량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순간'은 또 얼마나 햇살 같을까.

끊임없이 얘기꽃을 피우며 또, 서로에게 경도되는 것을 확인하며 해뜨기 전까지 충실히 보내자던 두 젊은이들의 꿈같은 밤이 지나고.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프시코드 연주가 흘러나오는 어느 길가에서 그들은 각자의 눈을 카메라 렌즈로 하여 서로의 모습을 가슴 깊이 찍었다.

이윽고, 셀린느가 타고 떠날 파리행 플랫폼에서 이별이 아쉬운 두 주인공은 6개월 후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한 사람은 공항으로 또 한 사람은 파리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각자 지난밤의 추억을 떠올렸고 영화는 그들이 지난밤 거닐고 앉았던 추억의 장소들을 하나하나 비춰주었다. 두 젊은이가 없는 그 풍경들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검색해 보니 <비포 선 라이즈>는 95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나와 있는데 내겐 어찌 이리 금시초문일 수가. 해서 기억을 더듬어 95년 나의 삶을 반추해보니 그때 내가 본 외국영화로는 <포레스트 검프> 딱 한 편이 기억났다. '세로자막' 읽기 싫어 외국영화 보기 싫어했는데 손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비포 선 셋>

다음날 사소한 일상들을 모두 접고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달랑 하나 밖에 없는 <비포 선 셋>을 빌려왔다. '감독과 배우들이 9년만에 다시 만나서 보름 동안 해질녘에만 찍은 영화'라기에 더더욱 기대가 크고 궁금하였다.

셀린느를 '몰래 바라보곤 하던' 청년 제시는 유명작가가 되어서 책 홍보 차 파리의 한 서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책을 읽었는지라 셀린느 또한 서점 한 귀퉁이에서 만감을 가슴에 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둘 다 늙었구나. 다음 작품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던 제시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셀린느를 발견하였다.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조금 어색한 가운데 예전에 그랬듯이 일단은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조금은 덥게 느껴지는 거리를 여리게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두 사람은 내쳐 걸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들릴 듯 말 듯한 그 은은한 발걸음이 거듭될수록 9년의 거리감은 점점 메워졌고,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그들은 그 옛날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말들을 쏟아냈다.

"그날을 쉬이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책으로 썼어. 그리고 작가가 되면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러나 재회의 미소 끝에는 9년이라는 세월이 가져다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회한 같은 쓸쓸함이 그들의 주름과 함께 오버랩 되었다.

"결혼 했다면서?"
"응, 4살 된 아이가 있어."

▲ <비포 선셋>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비혼들이야 어쩐지 모르겠지만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 이 두 마디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이 한눈에 이해가 될 것이다. 결혼생활을 얘기하는 제시의 표정에서 미국사람들은 자식은 아랑곳없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지와는 얼마의 간극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사람들(서양인들) 또한 '자식 때문에 산다는' 핑계는 뭐랄까 인간적이었다.

6개월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제시는 지켰으나 셀린느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마침 그날이라 갈 수 없었다. 9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제시를 잊지는 않았지만. 제시와의 만남은 현실이 될 수 없기에 셀린느는 재미없는 프랑스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현재는 전선기자인 남자친구가 있긴 하나 전쟁기자라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있으나마나한 친구였고 그녀는 몹시 외로웠다.

한편, 제시는 역시 줄곧 셀린느를 잊은 적이 없다 해도 결혼과 아이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때문에 제시는 더 이상의 진전없이 '너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아'라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할 수 있는 부탁이란 노래 한 곡 들려 달라는 것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셀린느의 집에서 제시는 그녀가 작곡했다는 몇 곡의 노래 중 한 곡을 듣게 되었다. 제시가 9년 전의 사랑을 한 권의 책으로 추억했다면 셀린느는 한 곡의 노래로 추억하였다.

"왈츠 한 곡 들어봐요/그냥 문득 떠오른 노래/왈츠 한 곡 들어봐요/하룻밤 사랑의 노래…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어/그날 밤의 연인이 되고 싶어/어리석은 꿈일지라도/하지만 내겐 소중한 당신/그런 사랑 처음이었죠/단 하룻밤의 사랑 나의 제시…."

영화를 떠나 실제로 에단 호크가 책을 내었고 줄리 델피가 영화 마지막에 기타 치며 부르는 왈츠노래를 직접 작곡했다는 것 또한 너무 신선했다. 영화 속 제시와 셀린느도 아름다웠지만 실지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도 그에 못지않게 내겐 매력적이었다.

영화를 본 후의 여진(餘震)...

아무튼 <비포 선 라이즈>와 <비포 선 셋>은 내겐 너무 멋진 영화였다. 영화를 많이 보며 살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동안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영화였고 느낌이 오래 갈 영화였다.

<비포 선셋>을 연거푸 두 번 본 후, 둘째의 학원시간이라 밖으로 나오니 아파트 마당에 동네 '아짐'들이 벤치에 앉아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동작 그만'을 주문하며 위의 두 영화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만 이 영화에 혼이 나갔는지 아니면 남들도 다 그랬는지 궁금하였다.

"어제 새벽에 <비포 선 라이즈>를 보고 방금 <비포 선 셋>을 보고 나왔는데 아아, 이 속세가 도무지 접속되질 않아.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흑흑(?)."
"아니, 그 영화가 언젯적 영화인데 이제 와서 난리야. 하여간 뒷북은. 물론 후속편은 못 봤지만. 좀 지루하던데. 나는 하룻밤의 사랑이니 삼일간의 사랑이니 하면서 시각을 다투는 영화는 싫어."
"지루하다니? 그런 섭섭한 말이 어디 있어?"
"내 맘이여."

'아줌마' 넷 중 둘은 보고 둘은 못 본 영화였다. 저녁엔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음, 그 영화 보지는 않았지만 옛날에 나왔다는 것은 알지. 여자주인공으로 '화이트'의 줄리델피가 나오잖아. 하여간 진짜 영화가 괜찮은지 너가 황당한 건지 함 봐야겠군" 한다.

자칭 영화광인 구미에 사는 중학교 동창에게 역시 물으니, "응, 알지. 나 옛날에 그 영화 극장에서 봤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다 선남선녀지. <비포 선셋>이 나왔다는 것도 신문에서 보긴 했지. 그래 한 번 보지 뭐, 옛날엔 극장에서 하는 영화 중 안 본 영화가 없었지만 결혼하곤 땡이었다" 한다.

어디선가 읽으니. 남자 주인공 에단 호크가 말하기를, 40대 50대의 제시와 셀린느도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던가. 내 말이 그 말이라. 20대의 제시와 셀린느도 좋았지만 30대의 그들도 보기 좋았다. 일상의 삶이 주는 회한과 쓸쓸함까지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그들의 사랑까지도. 그 이마의 주름살과 건조한 피부까지도.

설사 40대의 그들이 삶에 지쳐 더 주름지고 포악해진다 해도 보고 싶다. 아니, 그들은 더 고양되어 나타날 것이다. 때문에 40대의 제시와 셀린느를 만났을 때 내 자신이 초라하지 않도록 나도 뭔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편에 이 정도면 중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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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신작가곡 : 아름다운 순수 창작 가곡집 - KBS FM 한국의 신작가곡 시리즈 1
Various Artists 노래 / 이엔이미디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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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KBS 1FM <정다운 가곡>에서 들려주던 바리톤 김진섭의 '귀천'을 듣고 난 후 한 번 더 듣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미 한번 들려주었기에 또 언제 틀어줄는지. 언제일지도 모르는 날을 기다리자니 아쉽고도 아쉬웠다.

불을 끄고 조용한 가운데서 듣는, 저음으로 느리고 나직이 그러나 온 어둠을 삼킬 듯한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는 경건하고도 경건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 말하리라.

그동안 아이들 때문에 CD나 테이프를 듣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뭐 좀 들으려고 테이프를 넣으면 녀석들이 마구 눌러 대거나 테이프 필름을 뽑아서 못 쓰게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CD 또한 CD를 갖고 놀다가 긁어놓아서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예 틀지 않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그랬는데, 김진섭의 '귀천'을 들은 후 반복해서 자꾸 듣고 싶다는 욕망이 꺼지질 않았는데, 마침 <정다운 가곡>에서는 'FM 신작 가곡집'이 나왔다며 선전을 하기에 얼른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후, CD를 받자마자 솔숲에서 솔향기를 들이키듯 연거푸 '귀천'만 반복해서 청취했다. 반복해서 원 없이 들으니 마음의 배가 좀 불러 오는 것 같았다. 해서 이번에는 여유를 갖고 처음부터 차곡차곡 들었다.

'압해도'라는 섬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것일까.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 서해바다 그 푸른 꿈 지나 / 언제나 그리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 창밖엔 밤새도록 우리를 부르는 소리 / 친구여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날은 /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평소 많이 듣던 노래지만 가사를 앞에 두고 눈으로 읽으며 들으니 느낌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막연히 제목을 '전라도 땅'이라고 알고 있었던 노래는 알고 보니 정공채 시인의 '섬진강'이었다.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 전속인줄 알았는데 정공채 시인의 '섬진강'도 가히 걸작이었으며 거기다 음률을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산두고 숲을 두고 복사꽃 피는 마을도 돌아 / 인정도 고운 전라도 땅 / 그 들판 비단결 굽이굽이 감돌며 / 하늘에 흰 구름 누비듯 흰 구름 누비듯 / 흘러 흘러 남으로 가는 고운 섬진강 / 내 마음 내 사랑 이 강물 / 물빛 되어 당신을 당신을 떠올리네…

'상주 함창 맑은 물에'는 주로 남자 성악가의 목소리로 많이 들었는데 소프라노 양혜정의 목소리로 들으니 그 느낌이 또 확 달랐다. 성량이 얼마나 풍부한지 그리고 얼마나 노래를 새침하게 잘 부르는지 상추 씻는 아가씨에게 홀딱 반한 총각의 마음은 물론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거는 아가씨의 도도함을 유쾌하게 잘 그려주었다.

상주 함창 맑은 물에 상추 씻는 저 아가씨 / 상추 잎은 내가 씻어 줄게 우리부모 섬겨주소 / 길가는 저 총각아 그런 말 하지 마오 / 언제 봤던 님이라고 당신 부모 섬기겠소 / 누구는 나면부터 구면이던가 아까는 초면이고 지금은 구면이지…

가곡은 무엇보다 '시'와 '음악'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에 좋다. 시는 시 자체로도 존재의의가 있겠지만 음악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할까. 그것도 아주 멋지고 세련되고 감동적으로. 나의 경우 시에서는 좀처럼 감흥을 느낄 수가 없는데 그 시에 가곡의 음률을 깔아주면 시가 달라 보인다.

그러한 작업을 해주는, 시에다 음악이라는 옷을 입혀주어 시와 음악을 함께 살리는 신작가곡을 작곡하는 사람들이 너무 존경스럽다. 그리고 그것을 우아하게 불러주는 수많은 성악가들 또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가곡반주의 마력이다. 반주가 얼마나 화려한지. 88개 건반 전체를 휩쓰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전혀 소란스럽지 않고 우아하고 묵직하게 넘실넘실, 반주라는 포지션을 잃지 않는가 하면 때로는 숭어와 망둥이가 힘을 합쳐(?) 숨 가쁘게 건반을 튕겨도 못 따라잡을 폭풍 같은 반주로 열정적인 피아노 소나타의 느낌을 준다. 가곡의 기본 뼈대(멜로디)는 뼈대대로 편곡은 편곡대로 멋지다.

CD 겉표지에 보니 'KBS FM 한국의 신작가곡 시리즈 1'이라고 되어 있다. 벌써부터 시리즈 2, 3, 4…가 기대된다. 과연 어떤 노래들로 채워질거나. 기다림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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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시베리아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줄리아 오몬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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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영화채널에서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작품성이랄까 그런 것 보다 우선적으로 주인공들의 매력을 따지는 내 선입견 때문에 볼까 말까 망설이다 보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 너무 강해보이는 이미지와 아무런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땜시 갈등했었다. 봐?, 말어?
남자 주인공: 아니, 여주인공은 너무 괄괄하게 생겨서 탈이구만 남자 주인공은 왜 또 저렇게 귀엽게 생겼다니.

아무튼 볼까 말까 망설이는 가운데 영화는 계속 진도를 나갔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계속달리기에 나도 모르게 그 흐름을 타게 되었다.

영화는 여주인공 '제인 칼라한'이 사관학교에 진학한 자신의 아들 엔드류에게 그의 출생의 비밀을 편지로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인의 양부는 시베리아의 나무를 벌목하는 기계를 개발하였는데 제인은 그 기계를 파는 로비스트였다.

제인이 설득해야 될 사람은 사관학교 교장선생인 레들로프 장군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에게 벌목기계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인은 양부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레들로프 장군에게 접근했고 장군은 뒤늦게 찾아온 춘정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당신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면 벌목기계? 고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이미 세상사에 찌들고 찌들린 제인은 레들로프 장군과 적당히 타협하며 벌목기계를 팔아먹고 안녕을 고하면 간단히 끝날 여정이었으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만난 사관생도 톨스토이 때문에 갈등하였다. 스무 살 나이어린 청춘이라면 충분히 품어 볼 수 있는 마음이라 생각하며 그의 눈빛을 무시하려해도 점점 자신도 그에게 경도됨을 느꼈다.

한편, 톨스토이는 어느 무도회에서 제인과 짝이 되어 춤을 춘 친구 폴리옙스키가 제인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자 분노한 나머지 그에게 펜싱결투를 신청하였다.

결과는, 톨스토이 가슴에 피가 흘렀고 친구들은 그제야 톨스토이의 제인을 향한 마음이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의 조력자가 되었다.

아픈 가슴을 붕대로 감고 침상에 누워 한심해진 자신을 탓하며 상관에게 자퇴를 얘기하는데 상관이 들어주지 않자 톨스토이는 스스로 자퇴서를 썼다. 친구 폴리옙스키는 제인에게 톨스토이가 다치게 된 정황을 얘기하며 자퇴를 하지 못하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제인은, 톨스토이에게 있어 사관학교는 홀어머니와 가정부와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살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자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에 능숙하게 설득을 하였다. 제인의 사랑을 확인한 톨스토이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나 사단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레들로프 장군의 매력

제인이 톨스토이에게 줄 사진을 핑계로 처음 장군을 만나러 갔을 때 레들로프 장군은 제인이 미국인인 것을 알자 우선 제인에게 프랑스어가 되냐고 물었다. 노. 그러면 독일어는? 노. 그러면 할 수 없이 자신의 짧은 영어로 대화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구하며 부하에게 영어사전 부탁하였다. 다방면의 외국어에 능통한 그 교양이라니.

제인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 또한 걸작이었다. 러시아 인들이 다 그런 식으로 청혼을 하는지 장군만의 독특한 방식인지 아무튼 레들로프 장군의 청혼은 아주 멋있었다. 기차에서 망가뜨린 부채건으로 제인의 거처를 향하던 톨스토이에게 장군은 마침 잘 됐다며 자신은 영어가 서투르니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때되면 읽어달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제인의 집에 도착한 레들로프 장군. 정중한 인사 후 프러포즈는 시작되었다. 우선 제인에게 액자에 담긴 자신의 부모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톨스토이에게는 연서를 주고 자신은 피아노 악보를 꺼내더니만 손수 피아노를 연주할 태세였다. 즉, 자신의 연주에 맞추어 연서를 읽으라는 것이었다. 편지는 또 얼마나 낭만적인지.

톨스토이는 차분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장군보다 훨씬 좋은 영어발음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잘 읽어가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엉뚱하게 창작하여 읽는 바람에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인상적인 청혼이었다.

'내 삶의 중대한 결정을 위해 여기에 달려왔나니/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사랑은 홍역 같은 것 /뒤늦게 찾아온 홍역은 더 뜨거운 열병/ 이 시는 바로 나의 마음이요/사랑과 전쟁에 자격은 없다고 하오/전 지금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오.....'

러시아인의 교양과 문화

이 영화의 감독인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무려 12년이나 걸쳐서 완성하였다고 하였다. 제작비 580억, 5천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꼬박 1년을 찍었다고 하였다. 사관생도로 분한 엑스트라들에게는 실지 사관생도의 느낌을 얻도록 하기위해 늘 사관생도 옷을 입고 있도록 주문하였다고도.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사관학교 졸업식 때의 사기는 진짜 보다 더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관생도들이 얼음위에서 웃통을 벗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싸우는 장면이었다. 아니,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춥겠구만 윗옷을 벗고 싸우게 하다니. 이열 종대로 길게 마주보고 서서 무지막지하게 치고받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도록.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러시아 전통중의 하나라나. 동토의 왕국에서는 모름지기 호연지기 기르는 일 또한 특별했다.

그리고 사관생도들이 황제를 위하여 오페라를 준비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러시아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이 각박하여 좀 변했나 모르겠지만 예전엔 러시아사람들의 주된 취미가 독서와 음악 감상이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술도 다들 '한 술'씩 하고.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이지만 러시아인들의 품격 같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사람의 정서가 느껴지고 프랑스 영화를 보면 프랑스인의 독특한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는데, 러시아 영화를 보니 러시아만의 어떤 분위기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동토와는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자작나무의 정기(?)를 너무 많이 받았나, 그들의 마음은 시베리아 원시림처럼 수려하고, 풍성하고, 여유로운 듯했다.

어긋나는 사랑의 결말

레들로프 장군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연서를 읽어주다가 끝에 가서 산통을 깬 것까지는 너그러이 넘어 갔으나,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오페라에서 제인과 함께한 자신을 질투한 나머지 첼로 활로 내려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벌로 톨스토이는 황제를 해하려 했다는 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죄를 뒤집어썼다. 제인은 자신의 실수로 톨스토이의 인생이 좌초한 것에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시베리아에서 톨스토이를 만나기를 갈망했으나 그는 이미 가정을 이루었는지라 아프게 돌아섰다. 때문에, 사실은 20년 전 나눈 단 한번 사랑의 결정인 엔드류에 대한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대로 떠나는 제인의 마차만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못다 한 얘기는 언젠가 엔드류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서 알려주리라. 아무튼 이 영화는 2시간 40분이라는 긴 여정동안 사랑얘기도 한몫 하지만, 사랑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나라의 면면을 보여주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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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1972) - [할인행사]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연말, 자정 넘어 영화채널을 돌리다가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 쬐는 날의 결혼식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채널로 한바퀴 돌았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순전히 햇살 때문이었다. 때가 겨울이어서 그런가 그리고 깜깜한 한밤에 느껴보는 햇살이어서 그런가 그 햇볕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또 제목이 무엇일까 하며 제목이 뜨기를 기다리는데 악단에 맞춰 중년의 아줌마가 멋들어진 노래를 부르는 상단에 보니 ‘대부’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그 ‘대부’란 말인가? 딴 ‘대부’도 있었나. '대부‘는 옛날 영화라던데 저 영화는 너무 세련되었구나.

무엇보다 결혼식 장면과 내가 들어오던 ‘대부’영화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콧수염에다 쉰 목소리 사내의 하는 이력이 꼭 전설의 그 ‘대부’일 것도 같았다. 보다 보니 확실히 그 ‘대부’가 맞았다.

고등학교시절 영화음악모음 테이프를 들으면 ‘대부’의 음악이 빠지지 않았는데 그 ‘대부’를 살아생전 보게 되다니. 영화 ‘대부’를 보니 익히 듣던 영화음악은 대부의 고향 시실리 언덕을 내 달릴 때 주로 나왔다. 그 옛날 음악만 들을 때는 그냥 저냥 듣던 곡이었는데 영상이 겹치니 비로소 그 음악이 온전해졌고 느낌이 새로웠으며 그리고, 뭔가 한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의 영화배우들이 괜찮은 영화를 얘기하라면 ‘대부’를 꼽는 것을 많이 보았고 또 괜찮은 영화인으로 대부에 출연한 '알파치노' 혹은 '말론 브란도'를 언급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아무개씨는 한국의 말론 브란도. 혹은 알파치노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싶어요등 그 둘은 남자 배우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배우들로 보였다.

여기서 나의 무지를 살짝 고백하면 흔히들 ‘대부’를 이야기할 때 알파치노를 먼저 언급하기에 나는 ‘대부’를 보면서 콧수염에다 쉰 목소리를 내는 분이 알파치노 인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보니 쉰 목소리 남자의 아들이 알파치노였다.

나의 이런 무지를 한때 영화광이었다는 친구에게 얘기하니, “그럼 너는 ‘여인의 향기’에서 장미꽃 입에 물고 춤추던 남자가 알파치노인 줄도 몰랐겠네.” 하는 것이었다. “와 아니라예 모르고 봤십니더. 후후.” 때문에 이제는 ‘알파치노’를 아는 상태에서 ‘여인의 향기’를 다시보고 싶은데 동네 비디오가게엔 ‘여인의 향기’가 보이지 않아서 쓸쓸...

아무튼 ‘대부1’을 영화 채널에서 보고 비디오가게에서 2편은 없어서 못보고 3편을 빌려 보게 되었다. ‘대부1’에서 그토록 젊던 알파치노는 ‘대부3’에서는 ‘대부1의 아버지(말론 브란도)만큼이나 늙어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쉬어 있었다.

아버지대부가 말년에 큰 아들을 앞세우고 부귀도 영화도 허무하게 집안 정원에서 쓸쓸히 홀로 죽었듯이 아들대부 또한 지병이었던 당뇨가 발작했는지 햇살 가득한 정원의 조그만 의자에서 맥없이 쓰러져 쓸쓸히 죽어갔다.

젊은 날, ‘왕비열전전집’을 다 읽고 난 후 조선의 왕들에 대한 일관된 느낌은 ‘권불 십년’과 ‘화무십일홍’이었다. 그토록 떵떵거리던 권세도 세월과 더불으니 결국은 공수래 공수거일뿐이었다. ‘대부’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그렇게 쓸쓸히 죽어갈 뿐인 것을.

‘대부3’에서 알파치노는,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평생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나고 보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고 또 잃었다고. 자기 대신 적의 총탄을 맞은 딸을 부여잡고 통곡하던 모습은 대단했다. ‘싸나이’가 저토록 울 수도 있구나... 역시 인간은 선(善)을 매개로 먹고, 살다, 그리고 가야하는 것을. 마피아란 권력의 종말은 허망했다.

하여간 지난 연말은 말로만 듣던 ‘대부’를 보게 되어 무척 기뻤다.
......................

 

'대부'는 어떤 영화?

'대부'는 마리오 푸조라는 미국작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만든 갱영화이다. ‘대부1’는 1973년 그리고 ‘대부2’는 1975년 각각 아카데미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대부1’은 돈 꼴레오네(말론브란도)의 쇠락과 아들 마이클 꼴레오네(알파치노)의 부상을 암시하면서 끝이 났는데, 내가 보지 못한 ‘대부2’에는 젊은 날의 돈 꼴레오네의 여정을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하였다고.

제 3부는 1990년에 만들어졌는데 젊은 날의 알파치노를 보고 2부를 건너뛰고 바로 3부를 봐서 그런가 영화의 내용을 떠나 돈 꼴레오네처럼 늙어버린 마이클 꼴레오네의 모습이 허망했다.

그 풋풋하던 마이클이 결국은 아버지처럼 살고 만 것이 나는 못내 억울했다. 그에 비하면 그의 아들은 현명했다.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무시하고 끝내 성악을 지켰는데 그는 늙어도 할아버지럼, 아버지처럼 회한에 젖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대부는 멋진 영화였다. ‘대부2’를 보는 것이 올해 내 작은 소원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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