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자정 넘어 영화채널을 돌리다가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 쬐는 날의 결혼식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채널로 한바퀴 돌았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순전히 햇살 때문이었다. 때가 겨울이어서 그런가 그리고 깜깜한 한밤에 느껴보는 햇살이어서 그런가 그 햇볕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또 제목이 무엇일까 하며 제목이 뜨기를 기다리는데 악단에 맞춰 중년의 아줌마가 멋들어진 노래를 부르는 상단에 보니 ‘대부’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그 ‘대부’란 말인가? 딴 ‘대부’도 있었나. '대부‘는 옛날 영화라던데 저 영화는 너무 세련되었구나.
무엇보다 결혼식 장면과 내가 들어오던 ‘대부’영화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콧수염에다 쉰 목소리 사내의 하는 이력이 꼭 전설의 그 ‘대부’일 것도 같았다. 보다 보니 확실히 그 ‘대부’가 맞았다.
고등학교시절 영화음악모음 테이프를 들으면 ‘대부’의 음악이 빠지지 않았는데 그 ‘대부’를 살아생전 보게 되다니. 영화 ‘대부’를 보니 익히 듣던 영화음악은 대부의 고향 시실리 언덕을 내 달릴 때 주로 나왔다. 그 옛날 음악만 들을 때는 그냥 저냥 듣던 곡이었는데 영상이 겹치니 비로소 그 음악이 온전해졌고 느낌이 새로웠으며 그리고, 뭔가 한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의 영화배우들이 괜찮은 영화를 얘기하라면 ‘대부’를 꼽는 것을 많이 보았고 또 괜찮은 영화인으로 대부에 출연한 '알파치노' 혹은 '말론 브란도'를 언급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아무개씨는 한국의 말론 브란도. 혹은 알파치노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싶어요등 그 둘은 남자 배우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배우들로 보였다.
여기서 나의 무지를 살짝 고백하면 흔히들 ‘대부’를 이야기할 때 알파치노를 먼저 언급하기에 나는 ‘대부’를 보면서 콧수염에다 쉰 목소리를 내는 분이 알파치노 인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보니 쉰 목소리 남자의 아들이 알파치노였다.
나의 이런 무지를 한때 영화광이었다는 친구에게 얘기하니, “그럼 너는 ‘여인의 향기’에서 장미꽃 입에 물고 춤추던 남자가 알파치노인 줄도 몰랐겠네.” 하는 것이었다. “와 아니라예 모르고 봤십니더. 후후.” 때문에 이제는 ‘알파치노’를 아는 상태에서 ‘여인의 향기’를 다시보고 싶은데 동네 비디오가게엔 ‘여인의 향기’가 보이지 않아서 쓸쓸...
아무튼 ‘대부1’을 영화 채널에서 보고 비디오가게에서 2편은 없어서 못보고 3편을 빌려 보게 되었다. ‘대부1’에서 그토록 젊던 알파치노는 ‘대부3’에서는 ‘대부1의 아버지(말론 브란도)만큼이나 늙어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쉬어 있었다.
아버지대부가 말년에 큰 아들을 앞세우고 부귀도 영화도 허무하게 집안 정원에서 쓸쓸히 홀로 죽었듯이 아들대부 또한 지병이었던 당뇨가 발작했는지 햇살 가득한 정원의 조그만 의자에서 맥없이 쓰러져 쓸쓸히 죽어갔다.
젊은 날, ‘왕비열전전집’을 다 읽고 난 후 조선의 왕들에 대한 일관된 느낌은 ‘권불 십년’과 ‘화무십일홍’이었다. 그토록 떵떵거리던 권세도 세월과 더불으니 결국은 공수래 공수거일뿐이었다. ‘대부’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그렇게 쓸쓸히 죽어갈 뿐인 것을.
‘대부3’에서 알파치노는, 자신은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평생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나고 보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고 또 잃었다고. 자기 대신 적의 총탄을 맞은 딸을 부여잡고 통곡하던 모습은 대단했다. ‘싸나이’가 저토록 울 수도 있구나... 역시 인간은 선(善)을 매개로 먹고, 살다, 그리고 가야하는 것을. 마피아란 권력의 종말은 허망했다.
하여간 지난 연말은 말로만 듣던 ‘대부’를 보게 되어 무척 기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