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2disc) - 할인행사
박광현 감독, 정재영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추석, 오빠네로 명절을 쇠러 온 엄마에게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볼 것을 제안하였다. 내가 ‘극장’이라는 말을 꺼내자 오빠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일축했으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극장에 가 본 20년 전에도 나의 제안을 엄마가 받아들였듯이 이번 또한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마는 오빠가 안 간다고 하니 오빠보다 훨씬 더 늙은 당신이 갈 곳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하신 건지 안 간다고 우겼다.

해서 나는 ‘커다란 멧돼지’ 운운하며 엄마를 꼬셨고 엄마는 ‘그 골치 덩어리 멧돼지가 나온다면 한 번 볼만 하지 않을까’ 가늠해 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향 뒷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먹을 것이 궁한 멧돼지들이 출몰하여 애써 가꾼 고구마며 콩 등을 무자비하게 서리해 가곤 하였다.

엄마에게 들은 멧돼지의 집짓는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워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얘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즉, 멧돼지는 집을 얼마나 튼튼하게 짓는지 그 억센 이빨로 저돌적으로 구덩이를 판 다음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평평한 지붕을 만드는데 워낙 단단하게 엮기 때문에 사람이 밝아도 구덩이가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멧돼지가 보여준 최대의 ‘쇼쇼쇼’는 작은 언니에게서 들었다. 언젠가의 추석, 버스에서 내려 얼마간 걸어가야 하는 내 고향 길 언저리에서였다. 작은 언니와 조카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다 문득 마침 냇가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물을 먹고 산비탈을 올라가던 너댓 마리의 멧돼지 어미와 그 새끼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멧돼지가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작은 언니는 멧돼지를 보자마자 온몸이 쭈뼛하면서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하였다. 이 일을 어이할까나.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올라가라 주문을 외우면서도 혹시나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돌진해 온다면 아아…. 다행히 멧돼지들은 물을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뒤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사라졌다고 하였다.

아무튼 우리 가족에게 있어 멧돼지는 흥미로우면서도 곡식을 갉아먹는 ‘웬수’였다. 그러나 영화에서 멧돼지를 본다면 ‘그 웬수’가 왠지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극장 가본 지 30년이 넘었다는 올케 언니 또한 멧돼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조카들 또한 흥미진진해 하였다. 해서 우루루 떼거지로 <웰컴 투 동막골>을 보러갔다.

영화는 과연 엄마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고 엄마가 살아왔던 익숙한 지난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사라진, 80년대까지도 우리 집에 있었던 ‘디딜방아’며, ‘콩밭메기’, 그리고 ‘메밀밭 풍경’에다 쌍둥이 할아버지들의 소리까지 엄마에겐 너무도 익숙하고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흰 무명 치마저고리’며 ‘초가집’, ‘가마솥 뚜껑 뒤집어서 부치는 전’ 등은 엄마에게 ‘타임머신’을 탄 듯한 착각을 선사해 주는 지난 시절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않고도 힘찬 멧돼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이 걸작이었다.

“엄마, 정말 멧돼지 나오제?”
“그래, 정말 볼만 하더라.”
“그리고, 극장 너무 좋아졌제?”
“그래, 옛날 그 극장보다 좁기는 하다만 의자도 푹신하고 좋네.”

“엄마, 다음에 또 이런 영화 하면 보러 올래?”
“한 번 봤으면 됐지 뭘 다시 와. 한 번 본 걸로 됐다.”

엄마 나이 올해 일흔 아홉. 누가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 한 편 더 찍어주면 엄마랑 다시 한 번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날이 와 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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