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
김기덕 감독, 이지은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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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하면 예의 그 푹 눌러선 모자와 잠바 그리고 십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별로 돈을 들이지 않고 짧은 시일에 영화를 완성한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국외로 나가서 상을 몇 개 타오고 어쩌고 해도 나는 좀처럼 그의 영화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만든 영화는 학창시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외우듯이 제목만은 나도 모르게 외웠다.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시험 칠 일도 없는데, 다른 감독들의 작품은 두 개 정도만 연결시켜 기억함에 비해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악어> <섬>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마리아> <빈집> <해안선> 등이 내가 기억하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이중 본 영화는 <섬> 하나뿐이다. 그것도 다가 아닌 후반부 얼마쯤 말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섬>이란 작품은 풍경이 참 곱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일련의 행위는 기이하였다.

어쩌면 ‘신비로움’과 ‘기이함’ 그로 인해 그의 다른 작품들의 제목들도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나도 모르게 기억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한꺼번에 몽땅 빌려서 3박 4일 보아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TV에서 우연히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그의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제목은 <파란대문>이었다.

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 마을의 파란대문 속의 ‘새장 여인숙’에서 진아(이지은분)는 여인숙 아가씨로 몸을 팔며 살아간다. 혜미(이혜은분)와 현우(안재모분)는 새장 여인숙 부부의 아들과 딸이다.

진아는 손님이 없는 낮에는 주로 그림을 그리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는데 담벼락에 벽화를 그릴만큼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주인아저씨(장항선분), 마침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진아를 욕보인다.

주인집 아들 현우 또한, 누드모델이 되어달라고 떼를 써서 허락을 받은 후 나름대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는 진아에게 사정한다. “누나 한 번만, 우리 반에 나만 빼고 다 해봤단 말이야.” 마음씨 착한 진아는 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하다가 딱 한 번을 약속 받은 후 허락한다.

자칭 진아의 기둥서방인 험상 굳은 사나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돈을 뜯어갔고, 저녁마다 멀쩡한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방 있어요? 아가씨 있어요?’하며 진아를 찾아온다.

진아와 같은 또래인 혜미는 자기네 집이 아가씨가 있는 여인숙을 한다는 것에 지독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수돗간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 진아에게 갖은 모욕을 준다. 그러나 진아는 그 모든 모욕을 다 받아내면서 꿋꿋하게 혜미에게 다가가려 노력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가 세련되고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려니 진아에게 미안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관객인 나의 뻔한 생각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가슴 짠했던 것은 매춘 단속에 걸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한심한 자신의 신세에 울음을 삼키는 진아에게 주인아저씨 왈,
“울지 마라. 니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식구 다 먹고 산다.”

영화의 후반 진아는, 혜미의 동생 현우가 찍은 누드사진이 사기를 당하여 에로잡지에 실리면서 이를 본 기둥서방의 행패와 고교생을 농락했다는 혜미 엄마의 원망에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혜미의 도움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혜미는 진아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가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매일아침 세수를 하면서 싸우지 않아도 되었으나 그렇게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좀 아쉬웠다. 그러면 진아는 계속 그렇게 몸을 팔라는 말인가. 혜미는 진아가 몸을 판 돈으로 살아가고 또 공부를 하라는 말인가.

진아가 매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설정이 조금 아쉬웠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영화는 좀 이상을 꿈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진아가 너무 불쌍해서.

영화 <파란 대문>은 따스한 영화다. 나는 김기덕이 이렇게 따뜻한 남자인 줄 몰랐다. ‘나쁜 남자’ 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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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한국 가곡 8 (경음악)
Various Artists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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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보리밭'이라는, 초등시절의 동요와는 차원이 다른, 가곡이란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한 설렘은 아직도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다.

그렇게 '보리밭'을 시작으로 '동무생각', '사공의 노래', '떠나가는 배', '봄처녀' 등을 배웠다. 중학교 시절엔 도레미 자리도 제대로 몰라 이론시간이면 선생님의 진노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가곡을 부를 때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선생님은 한층 더 예술가연한 선생님이었다. 얼굴표정을 얄궂게 지으며 모든 신경을 배에다 집중하여 한 올 한 올 고음의 맑은 소리를 뽑아 올리셨다.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애잔하여서 막연하게나마 별리의 아픔은 저렇게 애를 끊는 듯하구나 싶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가 본격적으로 음악이란 것에 탐닉하였는데, 한국가곡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르였다. 당시 서울음반에서는 <특선한국가곡>이라는 시리즈를 내었다. 나는 그 테이프의 1번부터 6번까지를 몽땅 사서 듣고 또 들었다.

듣다가 공 테이프에 특별히 좋아하는 곡들만 엄선하여 복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때 내 나름으로 엄선한 가곡들을 들을 때 즐거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겨울이면 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또 해마다 봄이면 신록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곡의 가사와 멜로디에 항상 취해 살았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바리톤 오현명, 소프라노 김윤자 등등 성악가의 이름을 외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외운 이름들을 <봄맞이 한국 가곡의 밤>인가 하는 녹화방송에서 얼굴과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연결시켜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러다 어느 순간 엄정행은 '보리밭', 박인수는 '가고파', 백남옥은 '비목', 오현명은 '그 집 앞' 식으로 이 가수는 이 노래, 저 가수는 저 노래로 메뉴가 고정되는 것이 갑갑하였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이 TV에 나올 때면 이번에는 다른 곡 좀 부르겠지하고 기대를 하나, 항상 보면 '비목'을 부르곤 하였다. 성악이야말로 하나의 노래로 열 사람이 부르면 열 사람의 느낌이 다 다름을, 다른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기에 그만큼 듣는 재미가 솔솔할진대, 그런 다양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이었다. 정다운 가곡은 하나의 곡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왜 정다운 가곡은 저녁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딱 30분밖에 하지 않는지 때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90년대 초반부터 'FM 신작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기존에 들었던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고 신인들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기다림', '사비수', '님의 노래' 등등 신작가곡들은 나오는 족족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한 몇 년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곡을 듣지 못하다가 첫아이를 낳기 얼마 전 불교방송의 <차 한 잔의 선율>에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는 '사월의 노래'를 들었다. 오오, 그때의 그 감격이란. 목월 시에다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는 기억이 가물하나 소프라노 배행숙님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소프라노의 음색으로만 듣던 노래를 원곡보다 조금 느리게 해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나는 며칠을 걸려도 좋으니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를 틀어주십사 기대를 하며 녹음준비 완료하고 <정다운 가곡>을 들었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아무튼 나는 녹음을 하였다. 나는 그 '사월의 노래'에다 '님의 노래', '기다림' 등 몇 곡을 90분짜리 테이프에 반복 녹음하여 듣고 또 들으며 그 봄을 났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2002년의 봄 나는 또 다시 그 테이프를 찾아서 들으며 봄 한철을 이겨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가곡을 들려주고자 일부러 취침시간을 9시 30분으로 하였다.

"얘들아, 정다운 가곡 할 시간 되었다. 자러 가자."

얘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자는 척하는 시간은 단 10분도 따분하기 쉬운데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잠을 재우자 그런 심심함을 면할 수 있어서 좋다.

불을 끄고 가곡에 귀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정다운 가곡>이 끝나고 <당신의 밤과 음악> 시그널이 나오면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잠이 쏟아지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잘거림을 그만두고 잠을 청한다. 때로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의 밤과 음악>을 십분쯤 듣다가 잠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당신의 밤과 음악>은 또 얼마나 영혼을 스며드는 프로인가).

결론(?)은,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은 매우 좋은 프로이다. 연주음악이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지만 우리 가곡은 단 30분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야금야금 가는 것이 아쉽다. <정다운 가곡>이 30분이 아닌 한 시간쯤 하기를 비는 내 소원은 언제 이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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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험의 꿈 - 장순근 박사가 쓴 남극 탐험의 역사와 세종 기지 이야기 자연과 인간 2
장순근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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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극'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펭귄'이다. 그 펭귄은 한때 펭귄으로 분했던 개그맨 심형래씨의 뒤뚱거림과 오버랩되면서 녀석들을 생각할 때면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였다. 아, 다리가 짧아서 슬픈 짐승이여.

그런데 일전에 영화 '펭귄' 예고편에서 보니 펭귄의 뒤뚱거림은 육지에서만 그럴 뿐이지 바닷물에 들어가는 순간 그 날개로 훠이훠이 노를 저으며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닌가. 어머, 펭귄이 물속에서는 저렇게 날렵한 것이었네.

펭귄 다음으로 '남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킹 조지 섬'에 있다는 '세종기지'다.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외로움과 싸우며 세종기지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음은 가끔 남극일기 형식으로 소개되는 글들에서 보았기에 세종기지를 떠올리면 먼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 세종기지에서의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과, 남극이라는 눈과 얼음의 나라를 고향으로 하는 다양한 바다 생물들의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장순근 박사의 <남극탐험의 꿈>(사이언스 북스)이다.

남극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

세종기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한번 남극으로 가면 2,3년은 지나야 나올 수 있다는 얘기에 그곳이 감옥도 아닐진대 왜 그럴까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즉, 남극으로 한번 가는데 시간과 돈 그리고 육체적 피로가 만만찮았다.

우리나라에서 남극을 가자면 우선 서울에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혹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까지 간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경유해 '푼타아레나스' 아니면,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까지 가야 한다.

'푼타아레나스'나 '우수아이아'에서부터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 조지 섬으로 가야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가는 방법은 비행기와 배 두 가지가 있는데 비행기는 세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나 기상이변 등으로 회항하거나 불시착 등 위험요소가 많아 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그런데 이 배로 가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날씨가 순조로울 경우 '푼타아레나스'에서는 70시간 '우수아이아'에서는 50시간 정도면 킹 조지 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날씨가 나쁘면 100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100시간이라. 100나누기 24. 즉 날씨가 좋지 않으면 '4박5일' 자나깨나 배를 타고 가야 남극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완전한 뱃사람이 아니고 보통사람이 4박5일 동안 배를 타면 어떻게 되는가. 장순근 박사는 1994년 106시간 걸려 킹 조지 섬에서 '푼타아레나스'로 나온 적이 있는데 그 106시간 동안 멀미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남극에 한번 가자면 이처럼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들기에 쉽게 나오지 못하고 간 김에 꼬박 몇 년씩 고생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세종기지를 건설하고 남극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에는 그 세종기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이 풍성해 사진만으로도 남극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 위에 섬처럼 떠있는 빙하며, 순례의 길을 떠나는 듯 길게 늘어서서 행군하는 펭귄 떼의 행렬이며, 얼음물 속에 들어가 해양생물의 표본을 채집하는 과학자의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모습 등 남극은 동토였지만 그 속의 군상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잘 살고 있었다.

바야흐로 황사가 '난리 부르스'를 출 모양인데 깨끗한 공기가 그리워진다면 책 속에서나마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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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한국 가곡 1
Various Artists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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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보리밭'이라는, 초등시절의 동요와는 차원이 다른, 가곡이란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한 설렘은 아직도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다.

그렇게 '보리밭'을 시작으로 '동무생각', '사공의 노래', '떠나가는 배', '봄처녀' 등을 배웠다. 중학교 시절엔 도레미 자리도 제대로 몰라 이론시간이면 선생님의 진노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가곡을 부를 때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선생님은 한층 더 예술가연한 선생님이었다. 얼굴표정을 얄궂게 지으며 모든 신경을 배에다 집중하여 한 올 한 올 고음의 맑은 소리를 뽑아 올리셨다.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애잔하여서 막연하게나마 별리의 아픔은 저렇게 애를 끊는 듯하구나 싶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가 본격적으로 음악이란 것에 탐닉하였는데, 한국가곡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르였다. 당시 서울음반에서는 <특선한국가곡>이라는 시리즈를 내었다. 나는 그 테이프의 1번부터 6번까지를 몽땅 사서 듣고 또 들었다.

듣다가 공 테이프에 특별히 좋아하는 곡들만 엄선하여 복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때 내 나름으로 엄선한 가곡들을 들을 때 즐거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겨울이면 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또 해마다 봄이면 신록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곡의 가사와 멜로디에 항상 취해 살았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바리톤 오현명, 소프라노 김윤자 등등 성악가의 이름을 외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외운 이름들을 <봄맞이 한국 가곡의 밤>인가 하는 녹화방송에서 얼굴과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연결시켜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러다 어느 순간 엄정행은 '보리밭', 박인수는 '가고파', 백남옥은 '비목', 오현명은 '그 집 앞' 식으로 이 가수는 이 노래, 저 가수는 저 노래로 메뉴가 고정되는 것이 갑갑하였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이 TV에 나올 때면 이번에는 다른 곡 좀 부르겠지하고 기대를 하나, 항상 보면 '비목'을 부르곤 하였다. 성악이야말로 하나의 노래로 열 사람이 부르면 열 사람의 느낌이 다 다름을, 다른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기에 그만큼 듣는 재미가 솔솔할진대, 그런 다양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이었다. 정다운 가곡은 하나의 곡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왜 정다운 가곡은 저녁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딱 30분밖에 하지 않는지 때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90년대 초반부터 'FM 신작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기존에 들었던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고 신인들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기다림', '사비수', '님의 노래' 등등 신작가곡들은 나오는 족족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한 몇 년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곡을 듣지 못하다가 첫아이를 낳기 얼마 전 불교방송의 <차 한 잔의 선율>에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는 '사월의 노래'를 들었다. 오오, 그때의 그 감격이란. 목월 시에다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는 기억이 가물하나 소프라노 배행숙님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소프라노의 음색으로만 듣던 노래를 원곡보다 조금 느리게 해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나는 며칠을 걸려도 좋으니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를 틀어주십사 기대를 하며 녹음준비 완료하고 <정다운 가곡>을 들었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아무튼 나는 녹음을 하였다. 나는 그 '사월의 노래'에다 '님의 노래', '기다림' 등 몇 곡을 90분짜리 테이프에 반복 녹음하여 듣고 또 들으며 그 봄을 났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2002년의 봄 나는 또 다시 그 테이프를 찾아서 들으며 봄 한철을 이겨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가곡을 들려주고자 일부러 취침시간을 9시 30분으로 하였다.

"얘들아, 정다운 가곡 할 시간 되었다. 자러 가자."

얘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자는 척하는 시간은 단 10분도 따분하기 쉬운데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잠을 재우자 그런 심심함을 면할 수 있어서 좋다.

불을 끄고 가곡에 귀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정다운 가곡>이 끝나고 <당신의 밤과 음악> 시그널이 나오면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잠이 쏟아지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잘거림을 그만두고 잠을 청한다. 때로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의 밤과 음악>을 십분쯤 듣다가 잠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당신의 밤과 음악>은 또 얼마나 영혼을 스며드는 프로인가).

결론(?)은,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은 매우 좋은 프로이다. 연주음악이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지만 우리 가곡은 단 30분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야금야금 가는 것이 아쉽다. <정다운 가곡>이 30분이 아닌 한 시간쯤 하기를 비는 내 소원은 언제 이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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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2 - 초회한정판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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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혹은 검찰, 법원의 추억

사례1.
몇 해 전의 일이다. 운전 면허증을 찾으러 난생처음 경찰서라는 데를 가 보았다. 마침 내가 간 시간이 오후 1시쯤이었는데 모두를 점심을 먹으러가서 오지 않았는지 외근을 나갔는지 민원실(?)안에는 40대 중반의 경찰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면허증을 찾으러왔다고 하였고 그는 조금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냥 찾아주고 밥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자기가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라니 기분이 좀 그랬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 한분이 와서 또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였고 역시나 그 경찰관은 신경질적으로 기다리라고 하였다.

아저씨 또한 기다리면서 나와 같은 불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냥 좀 참아보자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경찰관 아저씨가 점심을 다 먹을 때가지 15분쯤 기다렸다.

경찰관 아저씨는 여유 있게 점심을 들고 이쑤시개로 마무리까지 하고는, 그제야 거만한 표정으로 다시 용건이 뭐냐고 물었다.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니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몇 초 걸리지 않아 면허증이 놓여있는 바구니에서 우리들 것을 찾아주었다. 그렇게 쉽게 내어 줄수 있는 것을 무안하게 자신이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게 하였다니. 물론 요즘은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례2.
친구는 급하게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채 받지 못하고 집을 비웠다. 그러자 집 주인은 한달 두 달....일년이 넘도록 방이 나가지 않았다며 전세금을 내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지 속을 썩다가 ‘전세금 반환 청구소송’인가가 있다고 하여 친구의 남편은 그것을 알아보려고 아는 형님이 근무하는 검찰청에 점심시간에 맞추어 자문을 구하러 갔었다.

난생처음 검찰청이란 데를 들어가 본 친구 남편 왈,

“와아, 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찰청이란 데를 갔는데 검찰청 복도를 지나가려니 지은 죄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검찰청 사람들 표정은 또 어찌나 과묵하고 무표정한지. 활짝 웃는 형님을 만나니 구세주를 만난 것 같더라니까.”

사례3.
소설가 이경자씨는 이혼을 하러 법원에 가서 법원 직원들의 태도에서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판사가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법원 직원은 마치 길 잃은 바보들을 대하는, 거의 ‘버르장머리’없게 느껴지는 언행으로 우리들을 대했다‘고 하였다. 이혼 법정 하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분위기가 떠오르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이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검찰을 주제로 한 영화 ‘공공의 적2’를 보러갔다. 무섭다고 집에 가자는 둘째를 과자로 포섭하고 엉덩이를 토닥여 잠을 재우고는 영화에 몰입하였다.

영화 속의 검사

영화 속의 검사는 멋있었다. 그들은 우리 시민들의 안전은 물론이고 각종 부정부패와 사회악을 소탕하기 위하여 토막 잠을 자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얼마나 듬직하고 믿음직한 모습인가.

서울지검 강력계 강철중(설경구분) 검사. 그는 고교동창인 뺀질이 한상우(정준호분)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명선 재단의 돈을 해외에 골프 장학생을 발굴한다는 빌미로 빼돌려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을 포착한다. TV화면 속에서는 늘 선 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이미지로 조명을 받지만 전직 이사장 이었던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그는 내적으로 악랄한 사람이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논리를 가진 한상우는 정계거물 까지 동원한 철저한 방해 공작도 모자라 아예 사람을 시켜 자신의 형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강철중 검사를 제거하려 한다.

현관문이 열렸다는 경비아저씨의 전언은 그들이 던진 미끼였는데,그런줄도 모르고 강철중 검사대신 수하의 젊은 직원인 석신(박상욱분)이 문을 잠그러 강검사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한편, 한상우의 지시를 받은 폭주족들은 석신이 강철중 검사인 줄 아고 그가 모는 차를 둘러싸면서 차 유리를 몽둥이로 깨부수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달리는 차로에서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석신으로서는 속수무책인데 차는 공교롭게도 난간을 들이받고 지하차로로 굴러 떨어진다.

너무도 어이없는 젊은 부하 직원의 죽음과 한상우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강철중 검사는 자신의 직속상관 부장검사를 찾아가서 울부짖는다.

“아무리 치~즈 해도 웃어지지가 않아요.”

정계의 거물급으로 나온 박근형(부총재)씨는 느글느글하고 유들유들한 개기름 쫙쫙 흐르는 국회의원 역을 어쩜 그리도 잘 소화하는지 경탄스러웠다. 또 영화 내내 한상우가 미웠는데 그렇다면 정준호씨 또한 연기를 잘 한 것인가.

설경구씨의 경우는, 똑똑한 검찰 연기 하느라 무지 힘들었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그는 똑똑하기보다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검사였다. 비록 화면이었지만 내가 대한민국 검사들을 떼거지로 본 것은 대통령과의 평검사 대 토론회에서였는데 강철중 검사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었기에 어쩜 현실과 영화를 구분 못하고 강철중 검사에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영화 속 검사가, 검찰청의 풍경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시민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발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그런 따뜻한 검찰 말이다. 경험속의 검찰과 영화 속 검찰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서글프지만 ‘나쁜 놈’은 물론이고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검찰 뿐이다.

강철중 같은 검사 현실에서 많이 볼 날은 언제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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