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
김기덕 감독, 이지은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김기덕하면 예의 그 푹 눌러선 모자와 잠바 그리고 십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별로 돈을 들이지 않고 짧은 시일에 영화를 완성한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국외로 나가서 상을 몇 개 타오고 어쩌고 해도 나는 좀처럼 그의 영화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만든 영화는 학창시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외우듯이 제목만은 나도 모르게 외웠다.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시험 칠 일도 없는데, 다른 감독들의 작품은 두 개 정도만 연결시켜 기억함에 비해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악어> <섬>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마리아> <빈집> <해안선> 등이 내가 기억하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이중 본 영화는 <섬> 하나뿐이다. 그것도 다가 아닌 후반부 얼마쯤 말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섬>이란 작품은 풍경이 참 곱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일련의 행위는 기이하였다.

어쩌면 ‘신비로움’과 ‘기이함’ 그로 인해 그의 다른 작품들의 제목들도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나도 모르게 기억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한꺼번에 몽땅 빌려서 3박 4일 보아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TV에서 우연히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그의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제목은 <파란대문>이었다.

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 마을의 파란대문 속의 ‘새장 여인숙’에서 진아(이지은분)는 여인숙 아가씨로 몸을 팔며 살아간다. 혜미(이혜은분)와 현우(안재모분)는 새장 여인숙 부부의 아들과 딸이다.

진아는 손님이 없는 낮에는 주로 그림을 그리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는데 담벼락에 벽화를 그릴만큼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주인아저씨(장항선분), 마침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진아를 욕보인다.

주인집 아들 현우 또한, 누드모델이 되어달라고 떼를 써서 허락을 받은 후 나름대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는 진아에게 사정한다. “누나 한 번만, 우리 반에 나만 빼고 다 해봤단 말이야.” 마음씨 착한 진아는 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하다가 딱 한 번을 약속 받은 후 허락한다.

자칭 진아의 기둥서방인 험상 굳은 사나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돈을 뜯어갔고, 저녁마다 멀쩡한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방 있어요? 아가씨 있어요?’하며 진아를 찾아온다.

진아와 같은 또래인 혜미는 자기네 집이 아가씨가 있는 여인숙을 한다는 것에 지독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수돗간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 진아에게 갖은 모욕을 준다. 그러나 진아는 그 모든 모욕을 다 받아내면서 꿋꿋하게 혜미에게 다가가려 노력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가 세련되고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려니 진아에게 미안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관객인 나의 뻔한 생각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가슴 짠했던 것은 매춘 단속에 걸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한심한 자신의 신세에 울음을 삼키는 진아에게 주인아저씨 왈,
“울지 마라. 니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식구 다 먹고 산다.”

영화의 후반 진아는, 혜미의 동생 현우가 찍은 누드사진이 사기를 당하여 에로잡지에 실리면서 이를 본 기둥서방의 행패와 고교생을 농락했다는 혜미 엄마의 원망에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혜미의 도움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혜미는 진아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가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매일아침 세수를 하면서 싸우지 않아도 되었으나 그렇게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좀 아쉬웠다. 그러면 진아는 계속 그렇게 몸을 팔라는 말인가. 혜미는 진아가 몸을 판 돈으로 살아가고 또 공부를 하라는 말인가.

진아가 매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설정이 조금 아쉬웠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영화는 좀 이상을 꿈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진아가 너무 불쌍해서.

영화 <파란 대문>은 따스한 영화다. 나는 김기덕이 이렇게 따뜻한 남자인 줄 몰랐다. ‘나쁜 남자’ 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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