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친정에 갔다가 오늘 길이었다. 늘 그렇듯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맡겼는데, 마침 라디오에서는 교육에세이를 쓰신 어느 분이 좌뇌형 우뇌형을 설명해가며 '우리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비법'을 말하고 있었다. 왜 모든 결론은 '공부 잘하는'으로 귀결되냐며 찡그렸으나 다른 채널 돌리기 귀찮아 그냥 들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공부를 떠나 흥미로웠다. 즉 평소, 나는 좌뇌형일까 우뇌형일까 무척 궁금했으나 굳이 찾아보고 분석해보기 싫어 '궁금만'하고 있었더랬다. 그랬는데 마침 그 방송이 그것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즉, 우뇌형은 숲을 보는 형이라 전체를 보는 눈은 있으나 넓게 보는 만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대충 알기 때문에 아는 것도 많지만 잊어버리기도 잘하고 덜렁댄다고 하였다.

 

반면, 좌뇌형은 숲이 아닌 나무(부분)를 보는 형이라 꼼꼼하다고. 처음에는 배움의 효과를 내는데 더디나, 더디게 알지만 확실히 알고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형이기 때문에 갈수록 향상하는 형이라고 하였다.

 

즉, 비약이 심할 수 있겠으나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뇌는 숲을 볼 줄 아는 덜렁이, 좌뇌는 나무만 보는 꼼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좌뇌형은 계획한 바를 꼼꼼히 실천하나 우뇌형은 그러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가장 힘든 부모와 자녀의 조합은 좌뇌형의 꼼꼼한 엄마가 우뇌형 덜렁이 아이를 키울 때라고 하였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좌뇌형 엄마는 우뇌형 아이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왜 늘 말만 앞세우고 실천을 끝까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게 되는데 우뇌형은 태생이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책상에 10분을 못 앉아있는 형이라고. 그러니 꼼꼼한 엄마는 속이 터지고 우뇌형 아이는 우리 엄마 속상한 이유를 모르겠어라. 그러나 결과는 엄마의 힘이 강하니 꼼꼼하게 강압적으로 시키게 되고 10분도 못 앉아있는 아이는 아이고, 엄마 나죽소….

 

방송을 들으면서, 나는 우뇌형이구나 싶었다. 남편은 자신은 좌뇌형 같다고 했다. 덧붙여 첫째는 우뇌형, 둘째는 좌뇌형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만이 아니라 뒷좌석의 아이들에게도 솔깃하게 들렸는지 그 방송이 끝나자 바로 항의 들어왔다.

 

"봐라, 우뇌형은 10분도 못 앉아 있고 덜렁댄다잖아. 그런데 엄마는 두 시간을 공부하라니 말이 되나? 10분도 못 한다는데, 10분도. 엉?"

 

"아, 예~ 알겠심더. 그러면 이참에 엄마가 약속을 하나 하겠다. 그동안 우뇌형인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 공부(독서)하라고 한 것 미안하고 앞으로는 공부하라는 소리 하지 않겠다."

 

"진짜? 정말이제?"

"그래. 엄마는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공부하란 소리 별로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들렸단 말이지? 알았어.(끄덕끄덕)"

 

둘째도 뽀루퉁하게 거들었다.

 

"내 한테도 공부하라 하지마라."

"니는 왜? 니는 그런 말 좀 들어도 되는 것 아니가?"

 

둘째는 한글을 못 떼고 학교 가서 3년째 고행 중이다.

 

"그래도 하지마라."

"풉~. 알았다."

 

사실 그동안 밖에서도 실컷 놀고 집에 와서는 또 만화영화는 기본이고 <런닝맨> <1박2일> <남자의 자격> <위기탈출넘버원> <소비자고발> <개그콘서트> 등 하나 하나 맛을 들이더니 요새는 <해피투개더> <승승장구>까지 보는 것이 아닌가.

 

'보고 싶으면 봐야지 어쩌겠어.'

'자꾸 보게 되니까 습관이 되는 건 아닐까.'

 

두 생각 사이에서 늘 왔다갔다 하다가 보는 꼴이 유난히 거슬리면 '이제부터 오후 8시 이후로는 TV시청 금지' 선언을 하는데 약발 며칠 못 간다. 내가 (우뇌형이라) 지속적으로 그럴 수 없는 데다가 아이들이 "'위기탈출 넘버원'은 꼭 봐야지 조심할 거 아니냐"며 꼬시면 한 번은 안 돼 넘어가도 두 번 안 돼 할 수는 없다. 그냥 넘어간다. 시대가 이런데 막아서 될 일이냐 하면서…. 그러면 또 원칙이 와르르~~ 보는 김에 <소비자 고발>도 보고 <1박2일>도 보고… 도로아미타불.

 

벌금이라도 내야 공부 닦달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좌간 이제 내년이면 큰애도 중학생이 되니 그럭저럭 관계정립을 한번 새롭게 할 때도 되었겠다.

 

"공부하라는 소리 못 들어서 공부 안 할 일은 없겠지?"

"그럼, 10분을 못 앉아 있는 다잖아."

"공부하란 소리가 그렇게 효과없나?"

"그럼."

 

"알았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정말 알아서 해라. 오로지 공부,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TV 보는 것의 반의반의 반만큼 공부(독서) 좀 하라는 게 그렇게 들렸다면 할 말 없네. 반평균 까먹어서 반에 피해주는 일이 없도록 각자 알아서들…. 말로만 간섭 안 하겠다고 하면 작심삼일로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이참에 맹세할 게. 앞으로 공부하라 소리 하게 되면 100원 벌금 낼께."

 

"100원은 너무 적다."

"그러면 200원."

"그것도 너무 적다."

"그래, 그럼 엄마 스스로 결심을 굳건하게 하는 의미에서 500원 건다. 공부해라 소리 엄마 입에서 나오면 무조건 500원 청구해라. 사과의 말과 함께 즉시 주마."

"앗싸~."

 

어쩌면 벌금을 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전부터 생각한 것이었는데 마침 그날이 그날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나니 이내 속이 후련했다. 효과 없는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키는게 목적이었는데 되려 내가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이런줄도 모르고 혹시 덜렁 약속을 했다가 벌금만 잔뜩 무는 것은 아닌가 싶어 그동안 생각만 깨적깨적 했더랬다.

 

그러나 그렇게 '벌금'이라는 못을 박지 않고는 나도 모르게 '공부' 하란 소리를 습관적으로 할 것이기에 그러한 상징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필요했다. 더불어 아이들의 입장에선 잔소리 안 들어 일단 좋고, 대신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스스로 알아서? 기대는 금물. 그런 기대 안 하고 싶다. 공부가 좋고 책이 좋으면 내나 할 일.

 

하여간 일주일이 흐른 어제, 큰애는 한 건 올리려고 바람을 넣었다. 아, 오늘은 숙제가 많네 어쩌네 하면서 다가왔다.

 

"엄마, 공부할까, 할까? 응?"

 

나도 모르게 평소대로 '그래 해라'라고 하면 당장 말꼬리 잡고 벌금타령 할 꿍꿍이가 순간 보였다. 오호, 거기에 넘어 갈소냐.

 

"니 맘대로 하세요.^^"

"안 속네. 헤헤~"

 

아무튼 지금의 마음으론 앞으로도 쭉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좌뇌형이었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겠으나 우뇌형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극복가능한 공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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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 100m쯤 가면 바로 청수사인데, 괜히 오른쪽으로 꺾고 싶더라는...ㅋㅋ 하여, 한참을 둘러서 다른길로 들어갔다가 나올때는 저 계단으로 내려왔다.
 
청수사


소시지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청수사 (淸水寺,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에 보니 우리가 잔 곳은 정말이지 교토시내의 정중앙이었다. 길들이 바둑판처럼 정렬된 데다 건물들이 워낙 직각에다 높이마저 일률적이니 몸이 주눅 들고 현기증마저 났다. 거기다 자동차 소음이 '드르륵 드르륵' 쉴 새 없이 이어지니 차 소음을 특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 순간들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유황불 지옥보다 더 끔찍하군.'

그러나 그러한 중심을 한 30분쯤 걷다가 다행히 전통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옛 느낌이 나는 목조 주택들을 만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청수사 쪽으로 막연히 걷다가 그보다 먼저 있는 견인사를 만났고, 견인사를 나와 또 걷다보니 고대사가 나왔다. 고대사 앞에서는 찻집을 발견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오전 10시쯤이었는데도 찻집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아니 할매 할배들이 어쩐 일로 다가?' 의아한 느낌은 잠시이고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연세가 다들 70세 이상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 분들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단아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침부터 '마실'을 나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며 노년의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우리 얘기를 엿듣고는 '어머나, 옆에 사람들은 한국사람들 인가봐'하며 소곤거리기며 소녀처럼 웃기도 하였다. 또 다른 쪽 옆의 할머니는 혼자였는데 나중 온 할아버지와 합석을 하였는데 그것도 참 보기 좋았다. 

"자리가 없는데 좀 앉아도 될까요?"하니 "물론이지요. 하하 호호~~" 해가며 자연스레 마주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색한 침묵의 순간도 없이 소소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정겹게 말을 주고받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일본에서는 할머니들이 제일 안정 되어 보였다. 머리모양도 마음에 들고, 옷차림도 수수 깔끔하고, 무엇보다 얼굴표정들이 밝았다. 그에 비해 젊은이들은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간혹 보이는 것과 같은 과장된 모습들이 수시로 보였다. 

버스를 타면 쌍둥이처럼 쌍으로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진하게 머리를 염색하고 머리모양은 세팅 말다 나온 것처럼 과장되게 부풀려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뿐인가. 눈은 인형처럼 하고 손은 마녀처럼 하고 손 전화에는 화면이 안보일 정도로 볼록 스티커를 붙이고. 인형은 안거나 커다란 종이가방에 넣어 다니고, 괴이한 신발을 신고, 바지는 허리띠를 팬티보다 내려서 차고 다녔다.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의 경우, 한때는 흰색의 헐렁한 양말을 추운 겨울에도 발목 10센티 정도로 말고 다니는 게 유행이더니. 요새는 여름인데도 그 흰색이 검은색으로 바뀌어 여학생이란 여학생들은 모두 종아리 전체로, 이제는 반대로 다들 올려들 신고 있었다. 일종의 이열치열인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도 제멋이겠지만 혼자 산다면 몰라도 부모님이랑 같이 산다면 그 부모님들은 그러한 자녀를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친구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나는 솔직히 가슴이 답답~하였다.

"저렇게 하고 다니는 용기가 대단하지 않니?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남 눈 의식 하지 않고 저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어휴, 그래도 난 반댈세. 저렇게 분장을 하면 피부도 피부지만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저러한 모습들이 뭐에 대한 '반동'인지 일본 기성세대는 연구해야 된다고 봐(웃음)."

"저러다가도 때 되면 멈추지 않을까?"

"글쎄 멈출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야. 당사자들이야 만족스러운지 몰라도 난 왠지 가슴이 아파…."

아무튼, 만화 속 인물 같은 과장된 젊은이들의 모습에 놀라다 보니, 상대적으로 노후 보장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느긋한 모습이 유독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늙으면 어린애가 되고, 또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우울한, 그런 모습의 노인들이 아닌 여유롭게 여생을 관조하며 사는 듯한 모습인지라 인상적이었다.



  
관음의 미소
 
관음상

(우째 얘기가 옆길로...^^ 다시 돌아와) 냉커피를 마신 후, 고대사(古代寺, 고다이지)로 들어갔다.  관음상이 하도 크다 보니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부좌 틀고 앉아 약간 내리깐 눈매며 입매에서 온화한 불성이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빨려드는 매력이 있어, 저런 대형 불사도 때론 효험을 발휘하는구나 싶었다.^^ 특히나 불상이 흰색이 아닌 약간 아이보리 비슷한 빛깔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고대사란 절의 기원은 우리에겐 과히 유쾌할 리 없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기 위해 그의 부인이 지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고대사를 들렀다가 두어 바퀴 헛돌다 원래 목적지인 청수사에 도착했다.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청수사 대웅전의 낡은 지붕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지에 위치한 금각사 등과 달리 청수사는 높은 산허리에 있어 교토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수사에서 내려다보니 교토도 분지라서 그런지 대구랑 비슷한 느낌이 났다. 마치 대구의 '앞산공원'에 올라서 대구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구랑 닮았다. 그리고 청수사는 아마 교토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그렇게 속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수도가 잘 되었을까나.^^).

청수사를 돌아보고 난후 우린 교토박물관 쪽을 거처 교토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교토시내에서 청수사 까지 걸어서 왔는데 다시 걸어서 교토 역까지 가기로 했다.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으려 중간 중간 위치를 확인하면서 걸었다. 참으로 묘한 것이 걸어보니 길이 자연스레 익혀졌다. 타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무조건 그 도시를 일단 걸어보고 볼일이다.





  
섬세한 줄서기~
 
공예품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10여 분 만에 훌쩍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아무리 눈썰미가 있어도 지나친 길에 뭐가 있었는지 아무 생각 없기 쉽다. 그에 반해 걸으니, 시야가 단번에 훤해졌다. 그리고 지도를 보는 눈도 생기고 한번 걸은 길은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이 되었다. 

수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교토시내 번화가에서 청수사~교토박물관~ 교토역의 그 길이 눈에 선하고 구석구석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지점들마저 기억이 난다. 예전 여행 때는 택시 타고 훌쩍 다녔기에 가는 노정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도 '금각사'하면 금박의 외벽만 생각나고 '은각사' 하면 미로정원밖에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웃음).

그런데 이번의 경우 걸었더니 가는 노정의 햇살까지, 어느 집 담벼락 노송의 푸르름까지 생생하게 기억났다. 고로, 앞으로 남의 나라 도시를 여행 할 때는 되도록 많이 걸어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걷는 자에게 추억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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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항구, 물결은 잔잔하니 맑았고 하늘도 바다도 넉넉했다.)

 
입국심사관에게 그렇게 두 시간여 시달리다 겨우 빠져나와 시모노세키 역에 도착해 보니 이미 시각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단 히로시마로 가기로 하고, 친구가 여름철 할인티켓인   

청춘(세이슌)티켓'을 한번 이용해 보자고 하였다.

 

"우린 중년이지 청춘이 아니잖아. 가능할까?"

"그 청춘이 그 청춘이 아니여. 피 끓는 청춘들처럼 여러 번 갈아타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면 누구나 청춘이라는 의미의 청춘이야."

"그래? 그럼 일단 한 번 물어보자."

 

과연 일본의 '청춘티켓'(11500엔으로 5일 이용가능. 우린 둘이 사용했으므로 3일째 되는 날 한사람은 별도의 보통 티켓을 끊음)은 그러했다. 고속열차에 비해선 시간이 배로 걸리고 히로시마까지 오는데 네댓 번 갈아타야 했으나 급할 것 없는 우리로서는 불만사항이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무궁화호처럼 적당한 속력으로 달려주니 창밖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딱 좋았다. NHK에서 일본철도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여 지던 그런 풍경들이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때론 1시간, 혹은 40분, 50분 마다 한 번씩 갈아타게 되니 그때마다 바르게 탔는지 내렸는지 긴장감이 일었고,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이었다. 다들 무슨 사연으로 오고 가는지.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하루에 지나지 않는지.

 

히로시마 역 안내소... 호텔 예약까지?

 

원래는 역 안내소 따위 들어갈 생각일랑 없었다. 어느 역, 어느 터미널에나 다 있는 그림으로 된 유적 안내도를 보면서 동으로, 서로 아무 곳이나 땡기는 명승지에다 발자국 찍고 역시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호텔이나 들어서 묵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국심사 실랑이할 때 역 안내소를 한 번 언급하고 나니 갑자기 그곳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묻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 때는 이미 오후 네 시를 넘었기에 볼거리보다 잘 곳이 더 급하기도 하였다.

  

"안녕하세요? 역 근처에 싼 호텔 없을까요?"

"가격은 얼마 정도를 예상하시는지요?"

"보통 얼마 정도로 있어요?"

"싼 곳부터 비싼 곳 까지 다 있어요.^^"

 

그러면서 안내소 직원이 보여준 홍보지에는 얼추 80여 개가 넘는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장 역 주변 호텔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역 안내소 책자에 등록된 호텔 주소가 그렇게 많다니, 혹시나 하며 걱정했던 풍찬노숙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가장 싼 호텔은 얼마예요?"

"가장 싼 곳은 00호스텔인데 한 사람당 2900엔입니다."

"(무척 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싼 곳은 없나요?"

"있기는 하지만 유스호스텔은 역에서 멀고 방과 화장실과 욕실이 다 공용이라...."

"알겠어요. 2900엔 그곳으로 할게요."

"아, 이곳도 욕실은 공용이네요."

"괜찮습니다."

 

안내소 직원은 바로 2900엔 하는 호텔로 전화를 걸어서 방이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방은 물론 있었다. 그는 한국여성 2명이 곧 갈 것이라고 말한 후 지도를 펴서 00호스텔은 10분 거리에 있다며 형광 팬으로 우리가 찾아갈 길에다 선을 그어주었다.   

 

00호스텔은 한 번 짧게 해맨 후 바로 찾았다. 우리네 대학촌의 빌라 한 동 정도의 건물인데 깔끔하고 정갈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니 역과는 달리 100엔이 올랐고 세금도 있어 한 사람 당 3200엔 이라고 하였다. '아, 그러냐'고 하면서 좋다고 하였다.

 

그렇게 첫날은 여느 호텔보다는 좀 좁았으나 다다미방에서 보송보송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잤다. 원래 생각은 아무리 적게 주어도 한 사람 당 5,6천 엔(7~8만원) 정도는 주어야 하루를 묵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둘이 합해서 그렇다니 의외였다.

 

수년 전 한 지인은 일본여행 갔다가 하룻밤 방값으로 우리 돈 35만 원을 지불하고는 아까워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하룻밤에 35만 원이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아까웠던 기억이 있기에, 그때보다 몇 년이 더 흘렀으니 방값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겪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가만 보니 일본은 물가가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오른 것이었다. 버스, 지하철, 라면, 우동, 맥주, 책, 시디 등등 다 옛날 그대로였다.

 

하여간 둘이 하룻밤 숙박료 6400엔 정도야 너끈히 감당하겠고. 다음 숙박지가 될 교토나 오사카의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더 비싸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어인 행운인지 더 싸게 묵을 수 있었다.

 

특히 다른 점은 히로시마 역 안내소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방이 있나 없나 알아봐주고, 가도 되냐 안 되냐 타진 해주기만 했다. 그런데, 교토와 오사카 역 안내소에서는 직접 전화문의는 물론 예약까지 해주었다. 나는 혹시나 호텔을 못 찾을 것을 대비해,

 

"위치만 알려주시면 직접 가서 예약할게요."

"아니 예약은 여기서 해야 합니다."

"아니 왜죠?"

"여기서 예약을 하면 가격이 할인 됩니다. 직접 가서 하시면 조금 더 비싸요."

"어머, 그래요?"

"네. 여기서 예약을 하면 예약확인서를 드리는데 그걸 호텔 프런트에 주고 돈을 지불하세요."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 3일 밤을 나는 동안 낸 숙박비는 다음과 같다.

 

첫날 히로시마 역 근처 00호스텔: 6400엔(당시 환율로 약 8만6000원)

둘째 날 교토 시내 00호텔: 5250엔(약 7만 원)

셋째 날 오사카 시내 00호텔: 4600엔(약 6만 원)

 








  
7만 원 짜리 방 치고는 대만족~

교토호텔





 




결론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대중적 국제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닌 한, 일본의 경우, 빈방은 즐비한 듯하다. 그리고 아무리 싸도 관광안내소에 등록된 호텔들은 기본은 한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청결의 정도 등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안내소 책자에 오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 가기 전, 일본여행을 자주한 친구에게 호텔 예약 없이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냐물으니 자기는 한 번도 예약을 하지 않고 간적이 없다며 걱정스러워 했다. 반대로 인도, 티벳 등 여행 경험이 풍부한 함께 간 친구는 "미리 정해 놓고 가면 재미없어, 가면 다 돼"라며 태평했었다.

 

뭐, 나 또한 예약 같은 건 지루하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기는 가는데, 혹시나 역에서 박스 덮고 자야 되는 건 아닌가, 긴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무탈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비슷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구와 나의 경우이고 다른 이들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시길.)

 

아무튼, 일본의 경우 역 관광안내소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호텔 예약까지 해 준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에 있었던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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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11-1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친절하군요!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할인된다고 알려주다니 고마운걸요. 잘 보았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2011-11-16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이란 늘 얘기치 않는 일이 벌어지는 법. 무려 14년만의 일본 크루즈 여행. 발단은 일본 도착지 주소 때문이었다. 묵을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도착지 주소가 따로 없었다. 

하여, 비워 둘 수는 없고 해서, 오래 전 알았던(지금은 소식이 끊긴) 지인의 집주소를 적을까, 한때 알바 했던 곳의 주소를 적을까 고민하다 알바 했던 곳의 주소가 쉬워서 그곳을 적었다. 양국은 3개월 무비자 협정도 맺은 사이이니 주소는 그냥 형식적으로 적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헉!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친구와 내가 적은 주소지가 신쥬꾸(新宿) 모 커피숍이었기에 그들은 자연스레 돈 벌러 가는 것이려니 의심한 것이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나 싶더니, 아닌 게 아니라, 한쪽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갑자기 당황이 되면서 이거이거, 간(?)도 못보고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늘이 노래졌다.(웃음) 

'모처럼 용기를 내어서 왔는데 이게 뭐람, 정말이지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우린 별 뾰족한 수 없이 그들이 가리키는 별도의 의자에 앉았다. 그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우리처지가 딱해보였던지 단체여행 가이드 한사람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사연을 듣더니.

"다른 사람들 심사 마치고 제일 나중에 할 겁니다. 일본은 주소를 중요시 합니다. 여행 가시는 도시의 호텔주소를 적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되었을 텐데..."

"그러니까, 불법 취업이 아님을 설명하면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한 시간여 후,  모든 사람들의 입국심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심문 아닌 심문이 시작되었다.

"왜 이 주소를 적었나요?"

"아는 주소가 이것밖에 없어서 단지 적었을 뿐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이해 안 됩니다."

"(웃으며) 이해하세요. 정말입니다! 옛날 유학시절 알바 하던 곳으로,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칸을 비워 둘 수 없어 썼을 뿐입니다."

믿어라, 못 믿겠다, 실랑이 하다가 귀국 예약권을 보여주었더니, 왜 주소는 도쿄라 쓰고 돌아가는 것은 오사카냐고 또 따졌다. 

"도쿄에 갔다가 최종적으로 오사카에서 귀국하지 말란 법이 있나요?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갑자기 도쿄에 대한 흥미가 삭 가시는 군요."

"아무튼, 우리는 납득이 안 됩니다."

"믿어주세요. 취업이 웬 말입니까. 14년만에 여행 한번 하겠다고 모처럼 마음을 먹었는데... 오해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사실이 아니니 믿어주세요."

그들로서는 뭔가 한건 잡았다 싶었는데 영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혼란스러운가 보았다. 수시로 사무실을 들락날락 안에 있는 사람들과 상의 해가며 추가로 묻고 또 물었다. 그래서 왜 똑같은 말 자꾸 묻느냐, 몇 번이냐 말해야 되냐 하다가, 옳거니, 그래 마음껏 물어라로 전략을 바꿨다. 그들이 자꾸 다각도로 묻는 것은 나의 말속에서 거짓말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정말 불법 취업이었다면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질문공세를 받았다면 중간에 눈동자가 흔들리며 인정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사관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눈동자를 뚫어지게 살피며 물었기에 나 또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질문을 하다하다 그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 까지 시시콜콜 물었고 나는 허참,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냐며 대답했다.

"여행 일정을 다 말해 보세요."

"원래는 별다른 일정 없이 발길 닫는 대로 즉흥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것이었지만 굳이 그렇게 물으니 할 수 없이 일정을 정할게요. 일단 지금 이곳을 나가게 된다면 역에 가서 청춘 열차 티켓(여름 할인 티켓)을 끊을 겁니다. 그리고 몇 번의 갈아탐 후 히로시마 역에 도착해서 역 안내소에서 묵을 곳을 안내 받아 숙소에 짐을 부리고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갈 겁니다."

"히로시마 공원에는 왜 가죠?"

"알다시피 후쿠시마 지진해일로 원전사고의 위험이 얼마나 인류 모두에게 당면한 난제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한 고통을 이미 경험한 히로시마 사람들의 아픔을 평화공원의 원폭 돔 등을 보면서 느껴보고요. 또,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나려면 세계시민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할까 등 인류의 미래와 원자력에 대해 두루두루 생각해보고 싶습니다(일부러 거창하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정말 놀라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고요. 일본이 잘 극복하면 다른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핵 없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현 상황의 나아 갈 길에 대해 보다 진실을 말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좌우지간 일본사람들 힘내시고. 후쿠시마 사람들도 힘내시고..." 

"일본 사람들 힘내라는 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보내주든가.)"

"(그것과 이것은 별개 임, 착각하지 마쇼.)"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무역전시관. 상공 700미터에서 폭탄이 수직강하했다고.)
 


그렇게 히로시마 이후의 여행지도 말로 미리 갔다. 오카야마는 내릴까 우쩔까 고민이고, 고베 찍고, 돗토리 현 찍고, 교토에 가서 일박하고, 나라 갔다가 오사카로 와서 다시 일박한 다음 도톰보리 가서 푸짐하게 먹고 오사카 항구에 도착하면 되겠지요? 

아무튼 그런 식의 개괄과 별의별 구차한 질문과 대답을 다하다가 심사관이 사무실로 상의 하러간 막간을 이용하여 우리를 지키고 있던 젊은 직원과 잠시 수다를 떨었다. 한국드라마나 한류가수 좋아하느냐, 정말 인기 있느냐 물었다. 그는 카라가 소녀시대보다 더 인기 있다고 하였다. 자신도 카라 쪽이 더 좋다고.

나는, 지금 한국에서는 '현빈'이 최고로 인기 있는 배우인데 일본 아줌마들이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 궁금하다며 나중에 <시크릿 가든> 방영되면 꼭 보라며 추천했다. 그 직원은 문근영, 장근석이라면 몰라도 현빈은 아직 듣보잡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명동과 제주도에 가봤다는 얘기를 하였다(굳이 그 직원과 얘기를 한 이유는 취업 아닌 여행이 목적인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심야 우등 고속은 무섭나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고 시설도 좋습니다."

"여차하면 호텔 대신 심야고속도 한번쯤 이용할까 합니다."

"그것도 괜찮지요. 되도록 돈은 적게 의미는 깊은 그런 여행을 하고 싶은 거군요."

"바로 그거예요. 저, 저 높은 사람에게 얘기 좀 해줘요."(웃음)

 


(히로시마 라면은 너무 짜, 아우, 소태!  계란덮밥은 부더럽고 맛이 좋아~~)
   

다시 나온 심사관이랑 몇 번이나 더 했던 말 또 하며 옥신각신하다 이윽고, 결론은 해피엔딩. 하다하다 안 되어 마지막으로 가방을 열어 두 권의 책과 책 크기 만 한 일기장을 보여 주었다. 두 권의 책은 다름 아닌, <황하에서 천산까지>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였다. 두 책은 다행히 사진이 있어서 그들이 한글을 몰라도 내 설명을 수긍하기 쉬웠다. 

"이것 보세요. 취업하러 가는 사람의 가방이 이렇게 가볍겠어요? 그리고 책을 이렇게 넣어갈까요? <기생충...>은 재미를 위해, <황하는...>는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 넣었습니다. 최근 산 책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일기장 보세요. '2011년 7월 23일'이라고 진하고 크게 써져 있죠? 어젯밤 배에서 잠이 안 와 로비에서 쓴 것입니다. (대 여섯 장 되는 일기를 넘기며, 웃으며) 번역해 읽어 드릴까요?"

"......."

그제야 할 수 없다는 듯, 심사관은 젊은 직원들에게 지문 찍는 것 도와주라 시켰고. 우리는 재일 교포들의 그 한 많은 투쟁의 사연이 담긴 지문을 얼씨구나 찍어서 송구했고 씁쓸했다. 물품 검사 등 최종 심사가 끝난 후, 카라가 좋다던 직원은 건물 밖으로 까지 걸어 나와 시모노세키역의 위치를 알려주며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었다. 

 
(각종 안내책자와 지도 청춘티켓)



휴~~. 안도의 심호흡을 한 다음 친구와 나는 '에잇~!'하며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씩씩거리며 갖은 욕*&%$#y@#$%^&*@#$%^&$*%&#$......을 다했다. 한편으론 이 떫은 기분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될까 하며 씁쓸히 웃었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에 다음에는 여행 첫날 하루정도는 예약호텔에서 잠을 자자고. 

가끔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서 입국심사에서 난리 났네, 어쨌네 읽은 기억은 있지만 내가 설마 그런 경험을 할 줄이야~!^^ 

 
( 지난 7월 23~28일 사이에 있었던 일본 여행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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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11-0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인걸요. 여행 일정 동안의 이야기도 올려주세요.^^

폭설 2011-11-07 17:55   좋아요 0 | URL
ㅋㅋ..^^ 가을이군요.^^ 단풍이 무척 아릅답군요. 이렇게 계절이 자꾸자꾸
가니 좋아요. 괜히 붙잡고 싶은 마음도 생기면서~~
 
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경향시평'에서 동아대 정희준 교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착잡했다.  부산의 한 중학 2년생이 중간고사 성적 비관으로 20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는 것이었다. 성적이 오르면 스마트폰을 사 주겠다고 부모가 약속했는데 최선을 다해도 성적은 못 올리고 꾸지람만 들었다는 것이었다.

창졸간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학생은 그간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공부고 뭐고 이 세상에 내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성적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이 세상에 젊은이가 죽을 이유는 없다. 지난 10년, 해마다 200명 이상의 초중고생들이 스스로 삶을 버렸다면 그것은 이사회의 문제이고 부모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죄이다. 해마다 그러한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음에도 다들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세상불행이 나만 피해가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남의 아이 일이 곧 내 아이 일이고, 내 아이 또한 삶을 버릴 정도는 아니어도 그 9부 능선, 8부 능선에서 해매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시지탄이고 또 만시지탄이지만 제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버리는 일일랑은 더 이상 없게 이 사회와, 부모들이 마음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그런 과보에 이르지 않게 미리미리 첫 단추를 잘 꿰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 사랑의 세 단계

 결혼도 안 해 본 스님이 이번에는 자녀교육 지침서를 내었다. 전작 <스님의 주례사>가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가 새겨야 할 마음가짐을 다룬 것이라면, <엄마수업>(법륜, 한겨레 출판'휴')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결혼을 한 후, 육아는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사랑은 단계별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성을 기울여서 보살펴 주었을 때의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에요. 둘째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셋째.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 - 본문 64쪽

법륜스님의 말처럼 유아기 때는 듬뿍 사랑을 주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주고, 성년이 되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 줄 수 있으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 스님은 먼저 부모 인생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먼저 스스로 자유롭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야 아이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될까를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식을 '심성'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심리가 안정' 되어 있어야 한다고. 경제력의 유무는 별 상관이 없고 무엇보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자녀는 그 안에서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일견 쉬운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서른이 넘어도 애가 애를 키우는, 즉,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초보엄마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자가발전'이 되지 않아 육아는 '무조건' 힘든 것이라 생각하며 허우적대는 초보엄마들이 적지 않다.  

 사실, 남의 자식 키우는 일이 어렵지 자기자식 키우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서적 빈곤으로 또는 상대적 박탈감등으로 육아가 힘들다. 그러나 스님은 20평집을 10평으로 줄이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이에게는 엄마가 우주 그자체이고 가장 믿을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가 가장 원하는 시기인 3살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키우라고. 그것은 어려서 잘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은 나중에 정신적 질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릴 때는 돈 번다 뭐다해서 방치하다가 사춘기가 되어서 관심을 가진다고 나름대로 애쓰면, 그 때는 또, 관심을 간섭이나 억압으로 생각하여 저항하거나 튕겨나간다.

하므로, 사춘기나 성년에 자식 때문에 속 썩고 싶지 않으면 1차적으로 유아기 3년을 잘 돌봐주라.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특별히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모유 열심히 주고, 잘 자게 분위기 만들어 주고, 오전오후 산책 나가 콧바람 쉬어주고, 또래 엄마들과 차 한 잔에 수다 떨며 애들은 애들끼리 눈 맞추게 해주면 된다.(웃음)

그렇게 3년을 잘해주고 나면 애들 먼저 엄마가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우리나이로 4살, 어린이집 가면 된다. 처음 3년을 집에서 엄마와 또는 주변 아기들과 잘 논 아이들은 어린이집 적응도 잘한다. 

공무원의 경우 3년 육아휴직이 보장되나 현실은 대개 1년만 휴직하고 복직하던데 왜 법으로 보장하는 것을 찾아먹지 않는지. 일단 공무원들만이라도 확실히 3년씩 다 찾아먹어야 육아휴직이 사회전반으로 보편화 될 것이 아닌가. (새로운 서울시장은 1년 휴직하고 복귀하겠다는 직원 있으면 2년 더 하고 오라고 쫓아내기를! 돈 없어 안 된다면 집 평수 줄이거나 김치에 된장만 끓여먹더라도 애 더 돌보고 오라고 돌려보냈으면...^^)   

물질적 원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식을 남 보기에 좋은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얼굴 예쁘고, 신체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그런 아이를 원해요. 그래서 좋은 옷을 입히고 , 값비싼 음식을 먹이고, 과외를 시키고, 유학을 보내면서 부모 노릇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다 착각이에요. 아이들은 이러한 조건 없이도 부모의 사랑만 있다면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인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하더라도 부모의 따뜻한 품을 느끼며 자라지 못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 본문14쪽

지금 4,5십대 부모들은 대부분 자랄 때 부모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원조를 못 받았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최선의 환경을 구비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과하다보니 자식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의욕상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평소, 부잣집 자식이면 무조건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가만 들여다보니 부잣집 자식노릇하기도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돈이 있으니 과목마다 독선생 붙여주며 공부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본인이 원한다 해도 문제지만 만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힘들겠는가. 집이 망하라고 빌 수도 없고. 빈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면 내 아이에게만 한없는 원조를 함으로서 부모노릇 제대로 한다고 착각하지 말고 나눔을 실천함으로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 저절로 교육이 되는 게 아닐까. 반대로 '완득이'처럼 세상이 불평등하고 잔인함을 일찍 겪는 아이들에게는 이 사회가 나서서 그 부족분을 채워주고 도닥여주면 보다 큰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아무튼, 자신의 아이를 좋은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으면, 물질적 원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첫째도 둘째도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것.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남편을 이해하고 존중해야한다고. (남편이나 시모가 아기엄마에게 잘해야 됨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어떨까요?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겠지요?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불안해져요. 따라서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 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 본문 15쪽

엄마의 행복이 자식의 행복으로 연결되므로 스스로 행복한가? 지금 바로 점검.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가? 미워지려 할 때마다 바로바로 점검.(웃음) 사실 욕심을 버리고 내 자식이 예쁜 만큼 남의 자식도 예쁘고, 북한아이들이나 제 3세계 아이들에게도 진심어린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굳이 내 자식을 위하여 뭔가를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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