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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올라 100m쯤 가면 바로 청수사인데, 괜히 오른쪽으로 꺾고 싶더라는...ㅋㅋ 하여, 한참을 둘러서 다른길로 들어갔다가 나올때는 저 계단으로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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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청수사 (淸水寺,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에 보니 우리가 잔 곳은 정말이지 교토시내의 정중앙이었다. 길들이 바둑판처럼 정렬된 데다 건물들이 워낙 직각에다 높이마저 일률적이니 몸이 주눅 들고 현기증마저 났다. 거기다 자동차 소음이 '드르륵 드르륵' 쉴 새 없이 이어지니 차 소음을 특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 순간들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유황불 지옥보다 더 끔찍하군.'
그러나 그러한 중심을 한 30분쯤 걷다가 다행히 전통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옛 느낌이 나는 목조 주택들을 만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청수사 쪽으로 막연히 걷다가 그보다 먼저 있는 견인사를 만났고, 견인사를 나와 또 걷다보니 고대사가 나왔다. 고대사 앞에서는 찻집을 발견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오전 10시쯤이었는데도 찻집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아니 할매 할배들이 어쩐 일로 다가?' 의아한 느낌은 잠시이고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연세가 다들 70세 이상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 분들이었다. 수수하면서도 단아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침부터 '마실'을 나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며 노년의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우리 얘기를 엿듣고는 '어머나, 옆에 사람들은 한국사람들 인가봐'하며 소곤거리기며 소녀처럼 웃기도 하였다. 또 다른 쪽 옆의 할머니는 혼자였는데 나중 온 할아버지와 합석을 하였는데 그것도 참 보기 좋았다.
"자리가 없는데 좀 앉아도 될까요?"하니 "물론이지요. 하하 호호~~" 해가며 자연스레 마주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색한 침묵의 순간도 없이 소소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정겹게 말을 주고받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일본에서는 할머니들이 제일 안정 되어 보였다. 머리모양도 마음에 들고, 옷차림도 수수 깔끔하고, 무엇보다 얼굴표정들이 밝았다. 그에 비해 젊은이들은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간혹 보이는 것과 같은 과장된 모습들이 수시로 보였다.
버스를 타면 쌍둥이처럼 쌍으로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진하게 머리를 염색하고 머리모양은 세팅 말다 나온 것처럼 과장되게 부풀려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뿐인가. 눈은 인형처럼 하고 손은 마녀처럼 하고 손 전화에는 화면이 안보일 정도로 볼록 스티커를 붙이고. 인형은 안거나 커다란 종이가방에 넣어 다니고, 괴이한 신발을 신고, 바지는 허리띠를 팬티보다 내려서 차고 다녔다.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의 경우, 한때는 흰색의 헐렁한 양말을 추운 겨울에도 발목 10센티 정도로 말고 다니는 게 유행이더니. 요새는 여름인데도 그 흰색이 검은색으로 바뀌어 여학생이란 여학생들은 모두 종아리 전체로, 이제는 반대로 다들 올려들 신고 있었다. 일종의 이열치열인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도 제멋이겠지만 혼자 산다면 몰라도 부모님이랑 같이 산다면 그 부모님들은 그러한 자녀를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친구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나는 솔직히 가슴이 답답~하였다.
"저렇게 하고 다니는 용기가 대단하지 않니?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남 눈 의식 하지 않고 저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어휴, 그래도 난 반댈세. 저렇게 분장을 하면 피부도 피부지만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저러한 모습들이 뭐에 대한 '반동'인지 일본 기성세대는 연구해야 된다고 봐(웃음)."
"저러다가도 때 되면 멈추지 않을까?"
"글쎄 멈출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야. 당사자들이야 만족스러운지 몰라도 난 왠지 가슴이 아파…."
아무튼, 만화 속 인물 같은 과장된 젊은이들의 모습에 놀라다 보니, 상대적으로 노후 보장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느긋한 모습이 유독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늙으면 어린애가 되고, 또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우울한, 그런 모습의 노인들이 아닌 여유롭게 여생을 관조하며 사는 듯한 모습인지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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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째 얘기가 옆길로...^^ 다시 돌아와) 냉커피를 마신 후, 고대사(古代寺, 고다이지)로 들어갔다. 관음상이 하도 크다 보니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부좌 틀고 앉아 약간 내리깐 눈매며 입매에서 온화한 불성이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빨려드는 매력이 있어, 저런 대형 불사도 때론 효험을 발휘하는구나 싶었다.^^ 특히나 불상이 흰색이 아닌 약간 아이보리 비슷한 빛깔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고대사란 절의 기원은 우리에겐 과히 유쾌할 리 없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기 위해 그의 부인이 지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고대사를 들렀다가 두어 바퀴 헛돌다 원래 목적지인 청수사에 도착했다.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청수사 대웅전의 낡은 지붕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지에 위치한 금각사 등과 달리 청수사는 높은 산허리에 있어 교토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청수사에서 내려다보니 교토도 분지라서 그런지 대구랑 비슷한 느낌이 났다. 마치 대구의 '앞산공원'에 올라서 대구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구랑 닮았다. 그리고 청수사는 아마 교토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그렇게 속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수도가 잘 되었을까나.^^).
청수사를 돌아보고 난후 우린 교토박물관 쪽을 거처 교토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교토시내에서 청수사 까지 걸어서 왔는데 다시 걸어서 교토 역까지 가기로 했다.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으려 중간 중간 위치를 확인하면서 걸었다. 참으로 묘한 것이 걸어보니 길이 자연스레 익혀졌다. 타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무조건 그 도시를 일단 걸어보고 볼일이다.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10여 분 만에 훌쩍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아무리 눈썰미가 있어도 지나친 길에 뭐가 있었는지 아무 생각 없기 쉽다. 그에 반해 걸으니, 시야가 단번에 훤해졌다. 그리고 지도를 보는 눈도 생기고 한번 걸은 길은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이 되었다.
수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교토시내 번화가에서 청수사~교토박물관~ 교토역의 그 길이 눈에 선하고 구석구석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지점들마저 기억이 난다. 예전 여행 때는 택시 타고 훌쩍 다녔기에 가는 노정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도 '금각사'하면 금박의 외벽만 생각나고 '은각사' 하면 미로정원밖에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웃음).
그런데 이번의 경우 걸었더니 가는 노정의 햇살까지, 어느 집 담벼락 노송의 푸르름까지 생생하게 기억났다. 고로, 앞으로 남의 나라 도시를 여행 할 때는 되도록 많이 걸어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걷는 자에게 추억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