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경향시평'에서 동아대 정희준 교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착잡했다.  부산의 한 중학 2년생이 중간고사 성적 비관으로 20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는 것이었다. 성적이 오르면 스마트폰을 사 주겠다고 부모가 약속했는데 최선을 다해도 성적은 못 올리고 꾸지람만 들었다는 것이었다.

창졸간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학생은 그간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공부고 뭐고 이 세상에 내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성적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이 세상에 젊은이가 죽을 이유는 없다. 지난 10년, 해마다 200명 이상의 초중고생들이 스스로 삶을 버렸다면 그것은 이사회의 문제이고 부모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죄이다. 해마다 그러한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음에도 다들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세상불행이 나만 피해가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남의 아이 일이 곧 내 아이 일이고, 내 아이 또한 삶을 버릴 정도는 아니어도 그 9부 능선, 8부 능선에서 해매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시지탄이고 또 만시지탄이지만 제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버리는 일일랑은 더 이상 없게 이 사회와, 부모들이 마음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그런 과보에 이르지 않게 미리미리 첫 단추를 잘 꿰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 사랑의 세 단계

 결혼도 안 해 본 스님이 이번에는 자녀교육 지침서를 내었다. 전작 <스님의 주례사>가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가 새겨야 할 마음가짐을 다룬 것이라면, <엄마수업>(법륜, 한겨레 출판'휴')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결혼을 한 후, 육아는 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사랑은 단계별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성을 기울여서 보살펴 주었을 때의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에요. 둘째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셋째.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 - 본문 64쪽

법륜스님의 말처럼 유아기 때는 듬뿍 사랑을 주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주고, 성년이 되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 줄 수 있으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 스님은 먼저 부모 인생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먼저 스스로 자유롭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야 아이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될까를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식을 '심성'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심리가 안정' 되어 있어야 한다고. 경제력의 유무는 별 상관이 없고 무엇보다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자녀는 그 안에서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일견 쉬운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서른이 넘어도 애가 애를 키우는, 즉,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초보엄마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자가발전'이 되지 않아 육아는 '무조건' 힘든 것이라 생각하며 허우적대는 초보엄마들이 적지 않다.  

 사실, 남의 자식 키우는 일이 어렵지 자기자식 키우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서적 빈곤으로 또는 상대적 박탈감등으로 육아가 힘들다. 그러나 스님은 20평집을 10평으로 줄이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이에게는 엄마가 우주 그자체이고 가장 믿을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가 가장 원하는 시기인 3살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키우라고. 그것은 어려서 잘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은 나중에 정신적 질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릴 때는 돈 번다 뭐다해서 방치하다가 사춘기가 되어서 관심을 가진다고 나름대로 애쓰면, 그 때는 또, 관심을 간섭이나 억압으로 생각하여 저항하거나 튕겨나간다.

하므로, 사춘기나 성년에 자식 때문에 속 썩고 싶지 않으면 1차적으로 유아기 3년을 잘 돌봐주라.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특별히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모유 열심히 주고, 잘 자게 분위기 만들어 주고, 오전오후 산책 나가 콧바람 쉬어주고, 또래 엄마들과 차 한 잔에 수다 떨며 애들은 애들끼리 눈 맞추게 해주면 된다.(웃음)

그렇게 3년을 잘해주고 나면 애들 먼저 엄마가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우리나이로 4살, 어린이집 가면 된다. 처음 3년을 집에서 엄마와 또는 주변 아기들과 잘 논 아이들은 어린이집 적응도 잘한다. 

공무원의 경우 3년 육아휴직이 보장되나 현실은 대개 1년만 휴직하고 복직하던데 왜 법으로 보장하는 것을 찾아먹지 않는지. 일단 공무원들만이라도 확실히 3년씩 다 찾아먹어야 육아휴직이 사회전반으로 보편화 될 것이 아닌가. (새로운 서울시장은 1년 휴직하고 복귀하겠다는 직원 있으면 2년 더 하고 오라고 쫓아내기를! 돈 없어 안 된다면 집 평수 줄이거나 김치에 된장만 끓여먹더라도 애 더 돌보고 오라고 돌려보냈으면...^^)   

물질적 원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식을 남 보기에 좋은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얼굴 예쁘고, 신체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그런 아이를 원해요. 그래서 좋은 옷을 입히고 , 값비싼 음식을 먹이고, 과외를 시키고, 유학을 보내면서 부모 노릇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다 착각이에요. 아이들은 이러한 조건 없이도 부모의 사랑만 있다면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인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하더라도 부모의 따뜻한 품을 느끼며 자라지 못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 본문14쪽

지금 4,5십대 부모들은 대부분 자랄 때 부모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원조를 못 받았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최선의 환경을 구비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과하다보니 자식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의욕상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평소, 부잣집 자식이면 무조건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가만 들여다보니 부잣집 자식노릇하기도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돈이 있으니 과목마다 독선생 붙여주며 공부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본인이 원한다 해도 문제지만 만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힘들겠는가. 집이 망하라고 빌 수도 없고. 빈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면 내 아이에게만 한없는 원조를 함으로서 부모노릇 제대로 한다고 착각하지 말고 나눔을 실천함으로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 저절로 교육이 되는 게 아닐까. 반대로 '완득이'처럼 세상이 불평등하고 잔인함을 일찍 겪는 아이들에게는 이 사회가 나서서 그 부족분을 채워주고 도닥여주면 보다 큰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아무튼, 자신의 아이를 좋은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으면, 물질적 원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첫째도 둘째도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것.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남편을 이해하고 존중해야한다고. (남편이나 시모가 아기엄마에게 잘해야 됨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어떨까요?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겠지요?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불안해져요. 따라서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 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 본문 15쪽

엄마의 행복이 자식의 행복으로 연결되므로 스스로 행복한가? 지금 바로 점검.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가? 미워지려 할 때마다 바로바로 점검.(웃음) 사실 욕심을 버리고 내 자식이 예쁜 만큼 남의 자식도 예쁘고, 북한아이들이나 제 3세계 아이들에게도 진심어린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굳이 내 자식을 위하여 뭔가를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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