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교수의 지중해 문화기행 - 아름다운 문화 속의 매력적인 삶
이희수 지음 / 일빛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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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중해'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엷은 보라색 라벤더 꽃이 만발한 넓은 평원이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바다색을 말하는 '울트라 마린'과 남프랑스의 어떤 휴양지 혹은, 이탈리아 반도가 떠오른다.

이렇듯 막연히 프랑스 남쪽 혹은 이탈리아가 끼고 있는 바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지중해를 <이희수 교수의 지중해 문화기행>(일빛)을 통해 눈비비고 다시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지중해의 가장자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스페인이 감싸고 있었다.

저자는 이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을 하나하나 답사하여 그 각각의 아름다움을 청명한 사진과 함께 들려주고 보여주고 있다. 몇 줄 역사 지식으로 '지중해 문화의 찬란함'을 외웠던 것이 전부인 내게 그가 전해주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은 그 바다 빛깔만큼이나 신선했다.

저자는 먼저 터키를 언급했다. 터키는 대리석이 많이 나는 나라라서 거의 모든 유적들이 대리석으로 지어졌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 위용이 대단하였다. '신전'과 '원형극장'들은 그리스나 로마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터키에도 존재했으며 재질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그 모습들이 깔끔하고도 장엄했다.

터키 지도를 가만히 보니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지중해와 흑해가 만나는 지점이자 이스탄불과 터키 본토가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이희수 교수는 '북아프리카나 로마에서 실려 온 물품을 동방 상인들에게 건네는' 역할을 맡았던 이 지역의 빼어난 경관과 역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84번씩이나 방문하였다고. 아닌게아니라 사진에 실린 보스포러스의 경관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거지만 튤립의 고향 또한 터키라고 한다. 튤립하면 당연히 네덜란드가 떠오르는데 사실은 '랄레'라고 불리는 튤립은 '오스만 제국 초기부터 왕실의 상징이었고 터키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한다.

'튤립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 이스탄불에 주재하던 오스트리아 대사 오기에르 뷔스베크가 그 종자를 몰래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갖고 가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된 게 터키가 유럽에서 튤립을 수입하는 주요국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 피렌체의 '꽃의 성모 교회'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요레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책으로 그 전체 위용을 보니 대단했다. 이 두오모에서 '신곡'의 작가 단테도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두오모 뿐만 아니라 피렌체는 도시 전체의 지붕이 붉은색이어서 화려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135개의 뾰족 첨탑이 있는 밀라노의 두오모'는 저자의 말대로 '하얀 대리석의 맑고 깨끗한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인간의 역사는 따지고 보면 '건축의 역사'라고도 하던데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은 14세기 건축의 형태는 물론 거기에 담긴 종교적 분위기가 당시 역사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듯했다.

기타음악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기억된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의 역사와 영혼이 담긴 궁전이었다.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이었던 알함브라는 이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아 브딜'이 백성의 안전을 조건으로 '금화 3만 냥'과 함께 가톨릭 스페인에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유기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하게 학살당하고 추방당했다고 한다.

15세기의 어느 아랍시인은 그라나다와 알함브라를 일컫기를 '그라나다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빛나는 오리엔트 산 진주가 박혀있는 인류 최고의 보석'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알함브라를 차지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알함브라에 푹 빠진 나머지 '내 생애보다 더 귀한 궁전'이라며 이슬람 모스크를 헐어 가톨릭 성당을 짓는 것 외에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려 애썼다고 한다.

레바논은 그 옛날 페니키아 해상제국의 영화가 서린 곳이었으며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잠언시의 시인 '칼릴 지브란'의 나라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하면서까지 나라를 지키려 했던 콧대 높은 클레오파트라의 본향이면서 알렉산더 대왕이 세웠던 수많은 알렉산드리아의 출발점이자 구심점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 쪽 지중해 문명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저자의 사진술이 뛰어난 건지 풍경이 좋아서인지 (아니 둘 다였으리라)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중해 문화의 화려함과 다양함을 에누리없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지중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고 했는데 왜 아니랴. 이 책을 읽고 나서 지중해를 생각하며 눈을 감으니 그 짙푸른 바다 빛과 함께 지중해의 여러 나라가 한 바퀴 빙 돌며 파노라마가 되어 흘렀으며 그대로 그리움이 되었다. (후유, 나는 언제 지중해를 한번 가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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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를 차버려라
서은규 지음 / 예문당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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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젊은 날의 많은 시간 중,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 사람 중 소위 공식적으로 '연애'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한사람 '연애 중'이라는 친구를 만나면 부럽다기보다 자유를 차압당한 듯해 보여 홀가분한 나 자신에 새삼 만족하곤 했다.

다들 운명의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땅을 치긴 했어도 나름대로 희망은 있었다. 때 되면 나타나겠지. 내가 내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길과 내 길은 만나게 되어 우린 강물이 되어 흐르리라. 물론 지나고 보니 그 꿈은 말짱 '황'이었고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나는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튼 얼추 불혹인 우리 때는 그러했으나 요즘은 사뭇 다른 듯했다. 젊은 후배 하나는 연인이 없는 것을 한때 몹시 쓸쓸해 했다.

"연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삶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아? 공식적인 연인이 없다 해도 짝사랑 상대를 여럿 두고 저울질해 보는 것도 재밌잖아."
"내 친구 다섯 중 나만 애인이 없는디?"
"물론 그렇다면 좀 울적해 질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연애 하나도 부러워할 것 없다. 그녀들은 나름대로 연애란 것을 하면서 남성을 탐구한다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남자에 대한 탐구일 뿐이고, 연애가 길어지다 보면 탐구는 고사하고 길들여질 뿐이야. 한 남자에 길들여 지다니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남자가 있는데."

"위로가 될 듯도 하지만 노인네들은 역시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 '화이트 데이' 때 사탕 한 바구니 못 받고 지나치는 그 기분을 어찌 알겠어."
"물론 그 기분 모를 수도 있다만 한 남자를 알기 전에 어떤 종류의 남자들이 산재하는지 탐구해 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런 다음 그 중 내 타입은 어떤 남자인가를 알아야 결정적인 순간에 낚시를 하지.(웃음)"

남자? 곳곳이 지뢰밭

젊은 날의 나는 실질적인 연애 대신 연애소설을 많이 읽었으며 그 단계가 지나자 소위 정신과 의사들이 쓴 남녀의 심리에 관한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읽었다. <남자를 알아야 사랑이 자유롭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여자는 모른다>. 정말 우리 여자들은 남자를 너무 몰라. 남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풍족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남녀의 심리를 엿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연애'는 빛 좋은 개살구란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연애에 전부를 걸고 허덕이다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러한 결론도 과히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짝사랑도 벅찬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위로가 되기도.

서은규씨의 <그 남자를 차 버려라>(예문당)는 내가 그동안 봐왔던 연애지침서 혹은 남녀 심리를 다룬 책들 중 가장 '솔직'하고도 '직설적'이며 '설득력' 있는 책이었다. 사례에 나온 여성들과 비슷한 연령 때 혹은 선배라 할 수 있는 저자기에 마치 친한 친구나 언니가 충고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는 말 그대로 '차 버려야 할 남자들'의 목록이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빽빽하게 들어있다.

군대 간 남자: 지극하게 기다리면 제대한 그가 날 차고, 내가 차버리면 군 생활 내내 그가 운다. 왜 그럴까? 그러니 어떡해야 할까.

돈 안 쓰는 남자: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 생활하는 여자친구에게 빈대 붙어서 뜯어 먹을 대로 뜯어 먹으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이런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뜯겨야 하나. 저도 졸업하고 취직하면 보답해 주겠지? 천만에.

잠수 타는 남자: 너 없이는 못산다며 졸졸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어, '그래 좋다, 사귀자' 허락하면 얼마 안 가 시들시들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결국 연락 두절? 아니 저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내 마음 다 흔들어 놓고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지.

이 책에 의하면 이런 남자들,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 여자들은 이유를 모른 채 인내하며 기다리거나 눈물로 하 세월을 보내는데 저자는 그럴 필요 없는 이유를 직설적으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준다.

그런가 하면 절대 만남을 지속해서는 안 될 악질적인 남자들도 있었으니.

성실하지 못한 남자: 옛날 남자들에게 있어 구제불능 중독이라 하면 흔히 술과 도박이 주였으나 요즘은 그것 못지않게 '게임중독'도 한 몫을 하는 듯하다. 게임중독 자녀를 두었을 경우 전문가들은 우선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해보며 대화를 하면서 차차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애인일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위의 방법으로 접근해볼 필요는 있겠으나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데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물론, 술 도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웃이다.

폭력적인 남자: '모든 것을 떠나서, 두 번째 폭력에는 이별을 고하라.' 폭력적인 남자에 대한 서은규씨의 주문이다. 연인 사이에 폭력이라니.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게다가 분명 상습적 폭력임에도 폭력 후 손이 발이 되게 빌고 다정이 넘치는 것에 속아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이 많다니 놀랄 노자로다.

약자를 향한 폭력은 '재발'하기 쉽고 그 정도가 '가중'되기 쉬우므로 성질난다고 '탁자를 세차게 내리치거나 팔목을 확 잡아당기는' 남자를 연인으로 두고 있는 여성이 있다면 그의 거친 모습에 빠져들지 말고 싹수가 노란 것임을 알아차려야 하리라.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차버려야 할 남자들을 굴비처럼 엮어놓았다. 무뚝뚝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심한 남자', 효자라 착각하기 쉬운 '마마보이', 전 애인과 연락하는 남자, 성적으로 문제 있는 남자, 지극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의처증' 등 사랑의 길에는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그렇다고 아니 갈 수도 없고. 요는 극단적인 지뢰밭만 피하면 단점이 있더라도 서로의 장점으로 감싸면 행복해 질 수 있을 터. 저자가 연애에 빠진 여성들이 지뢰인가 아닌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사례들을 통해 손쉽게 예시해 주므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아하! 하고 '지뢰성' 남자를 저절로 '콕' 짚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깔끔하게 헤어지는 법'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았는데 간단했다. 구구 절절 설명하지 말고 간단하게 '우리 이제 헤어지자' 단 한 줄만 얘기하라고. 상대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한다면 경우에 따라 '이제까지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은 진심이야.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정도의 서비스를 보태라고.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난 남성들은 차버릴 남자들만 예시해주고 차버릴 여자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저자의 다음 숙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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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남자를 차버려라
    from 도서출판 예문당 2009-10-31 13:47 
    서은규의 여자만을 위한 통쾌한 연애지침서일에는 칼이면서 남자에겐 물같은 여자똑똑한 여자의 당당한 이별 통보!서은규 지음출간일 : 초판 1쇄 발행 2006년 2월 18일ISBN-10 : 8970015140 | ISBN-13 : 9788970015149쪽수 : 374쪽 | 무게 : 548g | 크기 : 152 * 225mm구매하기 : 인터파크(미리보기 제공) | 도서11번가 | YES24 | 알라딘 | 반디앤루니스책 소개이 책은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2006-04-14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설 2006-04-1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님.......마음껏 퍼가세요.^^ 되려 고맙습니다. 좋은 사월 보내세요.^^

kleinsusun 2006-04-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안녕하세요!^^ 님 리뷰 보고 이 책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글이 정말 솔직해요. 좀 거칠고 과격할 정도로 솔직하네요.ㅎㅎㅎ
또, 사례들도 외국 작가들이 쓴 책들과 달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공감이 되네요. 덕분에 이 책 알게되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앞으로 자주 놀러 올께요.폭설님^^

폭설 2006-05-0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없는 것이 허전하여 늦어지만 댓글을 답니다. ^^ 이책 많이 선전해 주세요.
글구, 이세상에는 왜 남자와 여자만 있는지 ...ㅋㅋ
그리고 그 두부류는 왜 서로들 좋아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인지..
어자피 만나야 될 운명이라면 상대방을 좀 알고 시작하는게 여러모로
현명하겠지요.^^

예문당 2009-10-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예문당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 블로그에 님의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저희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
 
4월 이야기 (CD + DVD) - [초특가판], Movie & Classic, Antonio Vivaldi - The Four Seasons / Concerto Grosso D minor
이와이 슈운지 감독, 마츠 다카코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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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네 계절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다 좋다. 그중에서 어느 계절이 제일 좋으냐고 묻는 것은 저마다 찬란한 네 계절에 대한 모독일수 있겠으나 그래도 기어이 하나 꼽으라면 ‘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봄의 월(月) 중에서 또 어느 달이 제일 좋으냐고 고르라면 보편적 예상(5월?)을 뒤 업고 ‘4월’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4월의 봄’ 들판에서 느껴지는 흙의 숨결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 흙을 뚫고 저마다 새록새록 돋아나는 초록들은 보고 또 봐도 늘 아찔하다.

영화 <4월 이야기>에는 그런 봄의 들판과 언덕, 그리고 공원에 초록이 충만하다. 그렇게 이제 막 피어오르는 계절과도 꼭 닮은 대학 신입생 ‘니레노 우즈키(마츠 다카코)’는 새로운 환경에서 설렘과 고독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교시절 대학시험 6개월을 앞둔 우즈키는, 짝사랑하던 밴드동아리 선배 ‘야마자키’가 도쿄에 있는 ‘무사시노'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선배는 무사시노대학 인근의 ‘무사시노도’라는 서점에서 일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은 그대로 그녀에게 향학열이 되어 불타올랐다. ‘열심히 공부하여 야마자키 선배와 같은 학교의 학생이 되자.’

무사시노 대학은 평소실력 대로라면 그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학교였는데 사랑이 준 노력이 ‘기적'을 불러낸 것이었다. 하여 그녀는 대학신입생의 봄을 홋카이도의 가족들과 헤어져 도쿄에서 홀로 학교를 다니며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도시인 도쿄에서 수줍음 많은 이‘촌녀’는 급우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질 성격이 못되었다. ‘사에코’라는 친구를 따라 낚시 동아리에도 들어봤지만 완전히 동화되어 화기애애해 질 수는 없었다. 때문에 우즈키는 햇살 좋은 4월의 많은 날들이 적적했으며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그 적막과 고독을 매워줄 단 하나의 빛은 야마자키 선배와 조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야마자키 선배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서점으로 매일처럼 출근하며 책 한권씩 샀다. 그러나 매번 다른 여학생이 계산대를 지킬 뿐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어느 날은 용기를 내어 선배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물었다.

선배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안 다음부터는 선배가 일하는 시간에 맞추어 서점엘 들렀다. 과연, 선배는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었다. 진즉에 그리 할 것을. 우즈키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잠재우며 아무 말도 못하고 책 한권을 사서 나왔다. ‘선배는 나를 모르고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날 서점을 들락거린 결과 어느 날 계산을 하다말고 선배는 홋카이도의 고등학교 이름을 대면서 ‘혹시?’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우즈키는 선배가 뒤늦게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아준 것이 너무 기뻤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점을 등지고 나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렸다. 선배는 손님들이 놓고 간 우산을 주려고 했으나 ‘시방’ 우즈키에게 비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쌩쌩 자전거 패달을 밟는데 그녀의 감정을 고조시키려는 듯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그대로 가다간 책이고 뭐고 홀딱 젖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어느 미술관 앞에서 비를 피하다가 마침 우산을 들고 나오던 신사에게 대뜸 부탁을 하였다.
“금방 돌아 올 테니 우산 잠시만 빌려주세요.”

우즈키는 맹렬한 속도로 달려 다시 서점 앞에 섰고 선배에게 우산을 빌려가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다. 여러 개의 우산들 속에서 선배는 그중 예뻐보이는 빨간 우산을 우즈키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 우산은 우산살이 조금 망가져 있었다. 때문에 다른 우산을 주겠다는 선배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빗소리에 기대어 그녀는 용기를 내었다.

“선배, 아직도 밴드활동하나요?”
“아니. 그런데 (내가 밴드 활동 했던 거) 어떻게 알지?"
“유명했으니까요!”
“거짓말.”

우즈키는 우산 돌려주러 다시 한번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까보다 더 신나게 빗줄기를 뚫고 달렸다. 사랑보다는 다른 그 무엇에 관심이 있어보이던 선배가 그녀의 마음을 읽어주고 동화되어 줄지는 의문이지만. 자고로, 지금 사랑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라면 첫사랑의 상대 혹은 짝사랑의 상대는 야마자키 선배처럼 그 방면의 선수(?)가 아닌 사람을 만나기를.

짝사랑 야마자키 선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는 했으나 우즈키의 다음 작업(?)이 성공할지 어떨지. 그러나 4월의 새순들이 점점 푸르러 무성한 초록이 되듯이 그녀의 짝사랑 또한 나름의 어떤 진전이 있을 터. 물론 그녀의 희망대로 되어지면 재미없으리라.

요즘은 첫사랑이 너무 빨라 초등시절이 그 시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영육이 어느 정도 성숙한 이십대의 처음 사랑을 첫사랑이라 부른다면 그 대상을 잘 고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첫사랑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는 그 후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다. 추억은 될지언정 상처받지 않는 첫사랑을 위하여 첫사랑의 상대를 고름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4월 이야기>는 사랑을 시작하는 첫 마음의 풋풋한 자세를 잘 그려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우즈키가 첫사랑의 상대를 아주 잘 고른(?) 것 같다. 그런 사람과 그렇게 시작한 사랑이라면 결과가 어떻게 ‘쫑’이 나든 추억은 될지언정 상처는 되지 않으리라.

지금 나름의 첫사랑에 설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이어가기에 앞서 남의 첫사랑 <4월 이야기>를 참고해 보는 것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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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경 - 한국 가곡집 [재발매]
윤용하 외, 김덕기 (Duc-ki Kim), 홍혜경, 파리 관현악 앙상블 (Ensemble / 워너뮤직(WEA)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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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프라노 홍혜경’의 독집음반 <홍혜경 한국 가곡집>(EMI)을 사게 되었다. 사고 보니 그것은 홍혜경의 첫 번째 한국 가곡집이었다. 홍혜경, 그녀에 관해서라면 외국을 주무대로 활발히 활동하는 소프라노의 한사람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어쩌다 라디오에서 단편적으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녀의 독집을 사서 반복해서 듣다보니 쉬지 않고 외국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사가 적힌 소책자에 실린 홍혜경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보니 그녀는 일찍부터 성악에 재능을 보여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장학생으로 공부하였다고 한다. 일찍부터 외국에 나가 발군의 기량을 닦아 여러 오페라 좌를 섭렵한 그였지만 우리가곡에 대한 사랑 또한 남달랐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삶을 외국에서 살아온 한 예술가로서, 이 곡들은 저에게 엄청난,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이 레코딩이 제가 어릴 적 불렀던 조국의 음악을 향한 커다란 회귀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가곡을 듣는 것과 외국에 살면서 한국가곡을 듣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악가로서 늘 외국노래에 파묻혀 살다가 문득 한국가곡이 불러보고 싶어지고 그리하여 한국가곡을 부르다 보면 때론 저절로 그 노래 가사들은 마디마디 그리움이 되어 맺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운 금강산> <보리밭> <그리워> <수선화> <가고파> <신 아리랑>…. 제목만으로도 짠해지는 느낌이다. 이 음반에는 홍혜경의 모국에 대한 그리움, 혹은 한국가곡에 대한 애착이 절절히 녹아있다.

목소리는 얼마나 고운지 서역 만 리 둔황 명사산의 명사십리 모래가 그리 고울까. 특히 <신 아리랑>은 클라이맥스가 좀 부족한 기존 아리랑의 단점을 아주 속 시원하게 끌어올려주어 참 좋아하던 곡이었고 그 가사를 온전히 알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이 음반을 통해 그 것을 이룰 수 있었다.

또, 나는 막연히 ‘신 아리랑’이라 해서 70, 80년대에 작곡된 곡인 줄 알았는데 작곡년도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신 아리랑>은 김동진 선생이 1942년에 양명문선생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었다.

첫 부분이 아리랑의 변주처럼 느껴지는 신 아리랑 버전이라면 후반부는 아리랑 원곡의 멜로디 그대로에다 후렴만 신 아리랑 버전이었다. 때문에 <신 아리랑>은 아리랑 본래의 느낌과 좀더 음악적으로 화려한 신 아리랑의 느낌이 공존하는 그런 노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싸리문 여잡고 기다리는가
기러기는 달밤을 줄져간다
모란꽃 필적에 정다웁게 만난 이
흰 국화 시들 듯 시들어도 안 오네
서산엔 달도 지고 홀로 안타까운데
가슴에 얽힌 정 풀어 볼 길 없어라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초가집 삼간을 저 산 밑에 짓고
흐르는 시내처럼 살아 볼까나.......(본래 아리랑 멜로디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신 아리랑>의 후렴부분 고음들이 너무 좋다. 이 밖에도 <고향의 노래> <그네> <그대 있음에> <사랑>등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제목만으로도 멜로디가 저절로 기억이 나는 그런 곡들로 채워져 있다. 아울러 홍혜경의 노래에서는 그만의 ‘아주’ 간절한 무엇이 느껴진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하는 우리가곡을 듣자면 왠지 눈물이 난다.

그리고 흐뭇한 것은 이 음반이 외국에서도 발매가 되는지, 소책자에는 가사가 우리말 외에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안되어 있는데, 우리가곡을 영어로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을 위하여 각 곡 마다 곡 소개를 해 놓았는데 그것을 읽으며 참고할 외국인들을 생각하자니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예를 들어 <그네>의 경우 ‘한복을 곱게 입은 소녀가 바람을 가르며 그네 타는 모습을 멋지게 묘사한 노래입니다’라고. <가고파>의 경우는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며 ‘근심걱정 없던 고향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고.

흔히 세계적 ‘가곡’이라하면 ‘독일가곡’이나 ‘이태리가곡’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언젠가는 ‘한국가곡’ 또한 그 못지않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발음으로 따지자면 독일어발음이나 한국어발음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요는 멜로디와 가사인데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한국가곡 또한 질적인 면에서는 위 두 나라 가곡들 못지않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홍혜경의 이 첫 번째 한국가곡집이 외국에서도 널리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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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 할인판
김대승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 <번지 점프를 하다> 포스터.
*
한편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의 백열등은 켜지고 사람들은 울다가 들킨 흔적을 재빠르게 수습하며 모두들 서둘러 일어났다. 마치 조금 늦게 나가면 손해라도 보는 듯이 우수수수 비상구 쪽으로 몰려나갔다.

나는 그 출몰객들을 보며 옆자리의 조카들에게 중얼거렸다. '도대체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인가 없는 사람들인가. 영화 끝나고 영화 자막 올라갈 때, 우르르 일어나는 사람들이 제일 싫더라' 그러자, 조카들은 '고모 또 시작이구나'했다.

'생각을 해봐라. 아까 영화 볼 때 중간중간 웃어넘긴 저들이 아닌가. 그리고 슬픈 대목에선 찔끔거리기도 하던데 그런 만큼 영화가 감동적이었다는 뜻이었을 텐데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 스텝들 자막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불을 켜대는 영화관 측도 문제야. 감정을 수습(?)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 아닌가베. 그리고 이 멋진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 처음 보는 이름 이더래도 한번 훝어 봐 줌이 예의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안 그런감?'

'고럼 고럼, 고모 말이 백 번 맞수다.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하니 군중 심리 상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 버리는 것 같애. 오늘은 고모 땜에 라스트를 장식(?)해야겠네.....' 우리들의 작은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리며, 공중에서 푸르른 숲과 강물 사이를 날아가는 기분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면서 그렇게 한편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는 끝나고 있었다.

'이제 나가자' 감동(?)적인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작은조카는 우리들을 재촉했다.'나가기 싫어 못 나갈 것 같아. 극장 문을 나서서 부딪히게 될 속세(?)가 싫어.' '나도 그래 흐흐흑....'
' 어휴, 언니랑 고모랑은 정말 영화 못 보겠어. 정말 주책 스러워. 빨리 일어들 나슈'

작은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들은 극장 문을 나섰다. 큰조카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나 또한 마음을 수습할 길 없었다. '아아, 여운이 너무 오래 갈 것 같아. 오우 노-!' 하던 큰조카는 '오늘 기분이다. 밥은 내가 쏜다! 가자! '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운 분식 점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인생이 늘 한편의 영화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한편의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처럼 어질어질(!)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현실은 건조한 사막 같아. 내 인생 그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는 것 같아. 아아, 환장할 이 청춘!'

얻어먹는 죄로 우리는 큰조카의 넋두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물론 백 프로 공감해주면서, 유쾌하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는 첫눈에 반한 두 연인 인우(이병헌분)와 태희(이은주분)의 슬픈 사랑에 환상적인 터치가 가미된 영화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플랫폼에서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오기로 한 태희는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로서 그들의 현세적 사랑은 짧게 끝난다.

제대하고 졸업하고 국어선생이 된 인우는 담임을 맡은 그의 반에서 '태희의 언어'로 말하고 '태희의 몸짓'으로 행동하는 현빈(여현수분)을 만나게 된다.

죽은 태희의 영혼이 살아 돌아 온 듯한 착각 속에서 자꾸만 현빈에게 빠져드는 인우를 두고 학교에서는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자자하고,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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