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 데이 - 할인행사
안톤 후쿠아 감독, 덴젤 워싱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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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레이닝 데이>를 보면 덴젤이 신참 형사 에단호크를 말그대로 트레이닝 시킨다면서

하루종일 이리저리 어찌나 숨차게 끌고 다니며 속사포를 쏴대는지

보는 저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에단 호크 또한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트레이너가 베테랑 형사라니까 처음에는 어쨋거나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시키는대로 최선을 다하다가 막판에가 가서야

'에이 쓰바, 오늘 하루 종일 너 따라 댕김서 얻은 결론은, 니 방법이 틀렸다는것을 안 것'이라면서

분해 하는데...

 

덴젤 워싱턴, 하여간 죽여주는(?)인간이었습니다. ^^

 

얼마전 '덴젤..'그 이름 하나만 보고 '인사이드맨'을 보게 되었습니다.

 

헐리웃 영화를 볼때면 흑인들은 늘 조연이기 쉬운데 덴젤은 그러한 것을 졸업한 몇 안되는 흑인중의

한사람이더군요.

모건 프리먼 아자씨와 그 연배의 또다른 어떤 흑인아자씨(이름을 까먹..)는 참으로 인간적인 느낌이 들고 윌스미스 역시 유쾌하면서 사람좋은 이미지인데

 

덴젤 이양반은 남자다운 매력이 물씬물씬 풍기는 그런 사람인것 같습니다.

믿음직하면서도 한 '칼있으마'하고 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색깔만 흑인이지 백인과 다름없나요)

 

아프리카 미인들은 최고로 검은 것이 가장 미인이라 ,일부러 검은물에다 세수를 하고

손발을 담그기도 한다던데 ...

인사이더맨에서는 검은 피부가 흰피부보다 훨씬 더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윌리엄 데포아자씨...어찌 그리 허여멀건지 저래가지고 범인잡겠나 싶었습니다.

반면 탱탱한 덴젤 아주 거침없이 범인을 상대하고 허를 찔러보기도 하고...ㅋㅋ..

 

지금은 꿈도 꿀수 없는지 모르지만 흑인이 주름잡는 세상도 미래 어느시절에는

오지 않을까요?

미국안의 사정이 얼마나 나쁜지 저는 알길 없지만 흑인분들 덴젤처럼 당당하게

 스스로를 개척하는 삶을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들 흰자위 휘번득이며

한 카리스마들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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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일반판 (dts)
최양일 감독, 기타노 다케시 외 출연 / 기타 (DVD)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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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모처럼 영화채널에서 일본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예전에도 드문드문 스치듯 몇 장면 보긴 했으나 , 그 스치듯 본 장면들이

너무 지독하여 처음부터 보기를 망설였는데 어제는 제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작품이라는

광고를 보고 작심을 하고 보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영화 증말 너무 징혀요.

 

나중에 자막올라가는 데 보니 원작은 아꾸다가와 수상작가인 역시 제일교포인

양석일씨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한 것이더군요.

 

소설 읽기를 접은지 너무 오래되어 양석일씨가 상탔다는 것만 단답형 시험문제

답하듯 기억하고 있었더랬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확 일었습니다.

 

김준평.

그는 고향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오사카로 가서 지독히도 돈버는 일에

열중합니다. 돈에 한이 맺혀도 그렇게 맺힌 인간은  듣도 보도 못한 아주 독종중의 독종이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색에 대한 집착도 강하여 이건 사랑이 아니라 숫제 강간의 연속이었고

워낙이 강한 인간이어서 그런지 자식들 구박도 엄청 하면서 줄줄이 자식수 늘이는 일은

월매나 좋아하는지

 

영화에 나오는 자식들만 합쳐도 축구팀 너끈히 만들고도 남을 듯 했습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매일 신단에다 한국말로 기도하기를 하느님 제발 저인간 좀 잡아가주소하며

지문이 마르게 염원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 나쁜 인간은 죽지도 않고 돈만 잘 버더군요.

 

죽은 첫째 부인의 아들이 건달이 되어 돌아와 '울엄마 당신인데 맞아죽었으니 그 한을 어이할꼬'

하면서 '그 아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그러니 집 한칸 살 돈이나 좀 주쇼.'하면서

델고온 애인이란 허구헌날 사랑놀음에 쩔며 어서  돈좀 쥐어서 쫓아내 주길 기다리는데

 

십원도 안 내 놓겠다고 해서 에라이 썅!

돈을 차곡차곡 넣어두고 신문으로 도배를 한 벽을 확 띁어서 만엔권 돈을  패대기 치면서

돈이 이렇게 만쿠만은 왜 한푼 못 주냐며 행패를 부리다가

 

하이고, 준평씨 맷집이 얼마나 좋은지 비가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영화화면으로 족히 십분은

엎어치고 매치고 구르고 떨어지고 던지고 부수고....니가 죽나 내가 죽나

둘중에 하나죽자하며 싸웠는데 ...결국은 준평씨 승!

 

건달아들 막판에 힘이 부쳐서..헥헥.. 도저히 젊은 혈기 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아부지'였습둥.ㅠㅠ..

 

아부지의 기세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헥헥 숨을 고르며 다시한번 역전을 생각하며 서있는데

주인공의 엄니가 만엔권 돈을 한다발 허리에 찔러주며 어서여기를 떠나라는데.....그 아들 그렇게

떠나서 1년(?)인가 후에 야쿠자 손에 죽고 말았다고..

 

한편, 갈수록 승승 장구 돈을 벌은 준평씨 물찬 제비처럼 날아갈듯한 기생과 사랑에 빠져

주인공 엄니 집 바로 앞에 집을 얻어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는데

그 꽃같던 여인은 2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실망하면서도 불가사이하게 사랑을 해 주었는데..

 

어느날 이 여인 불치병에 걸려 대소변을 받아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모진 인간이 이 불치병 걸린

여인에게는 월매나 헌신적인지 정말이지 눈꼴이 시다 못해 나중에는 기이한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러나, 긴병에 열부 없는지

 

어느핸가는 자신의 마눌겸 아픈여인 수발상대로 애 하나 딸린 여인을 맞아들였는데 복수혈전은  간병인겸 마눌겸인 이 새로온 여인이 확실히 해주었습니다.

즉, 준평은 자신의 딸이(친딸인가 아닌가는 확실히 모르겠음)죽자 충격을 받았는지

상가집을 줄초상이라도 치르듯 몽둥이 들고 사람들을 패다가 끼익-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었지요.

 

이때를 놓칠수 없는 간병인겸 마눌겸인 여인 먼저 시비를 걸어온 준평씨에게 '좋다 니 한번 맞아봐라'하며 물씬 패주고는 미리 빼돌려 놓은 돈을 들고 튀어버렸습니다.

 

드디어준평씨 죽는구나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재활 훈련을 얼마나 잘했는데 조금 절둑인다뿐 사채놀이 하며 돈벌이를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지요. 제때 돈안값는다고 야쿠자에게 1000만엔이나 주면서 채무자 쥑여달라는 부탁꺼정....(으슬으슬)

 

(참 그는 처음 어묵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는데 어묵장사가 사양길에 접어들자 주로 사채놀이를 하면서 돈을 갈쿠리로 끌었습니다. ㅋㅋ)

 

그래도 늙으니 마음이 약해지는지 장남인 주인공에게 자기밑에와서 일하며 예전에 빌린돈

갚으라는데 주인공이 거부하자 충격이었는지 그길로 전재산 들고 북한으로가서 북한정부에기부 하고 얼마를 살다 죽었다고. 가면 혼자갈것이지 가기 싫다는 막내아들, 대여섯 살 쯤 되어보이는 막내

아들 질질 끓고 가서 수족 처럼 부려 먹었다고...

 

1984년 그가 북한에 기부한 돈

: 자동차 다섯대, 트럭 두대, 돈 7000만엔(지금 싯가로 하면 도대체 월마여?)

그리고 기타등등 많았습니다.

 

죽을때 싸 갖고 갈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자식들과 친적아해들을 패 가면서

부려먹더니 벌기는 많이 벌었군요. 쩝...

 

.....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이냐?

몰르것씨유.

 

그러나 이 영화가 만약 에누리 없는 실화라면 그런 지독한 인간이 있었다. 주인공과 그 주변은 그 고통의 늪에서 증오를 불태우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회한에 대한 비망록을 품으로서 조금이라도 치유 받을수 있었으면...아니 차라리 그 인간을 걍 이해하고 넘어가자. 더이상 상처 덧내지 말자?

 

준평씨는 정도가 심했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그런 가장 조선에 많이 있었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키타노 다케시.

 

이 배우가 대단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도록 대단할줄 몰랐습니다. 아마 죽은 준평씨도 하늘에서

'캬아, 저양반 나보다 더 지랄같네 '하며 낄낄 할지도 모를일입니다.

아주, 악의 화신도 그런 화신 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 역할을 완벽히 소화한 만큼이나 돌아서서는 그 만큼 무당처럼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은 까먹었는데 일본의 무슨 영화제에서 이 영화에 상을 몽땅 휩쓸어주었다고 했는데

암암, 하먼이라..

 

.....

 

하여간 기회 되면 '피와뼈'이 영화 꼭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글구 저는 못 읽어 봤지만,

곧 읽어 볼거지만,

 

소설 '피와 뼈'도 꼭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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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평전 - 그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
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백선희 옮김 / 아침이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 <쿤둔(Kundun·감독 마틴 스콜시즈·1997)>은 14대 달라이라마의 탄생부터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모택동 정권을 피해 그의 나이 18세 때 말을 타고 인도 국경을 넘을 때까지의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티베트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오체투지'의 순례이다. 언젠가 TV에서 보니 어떤 부부가 오체투지로 산을 오르는데 화면에 나이가 40대로 나왔으나 우리나라 사람의 외양에 견주자니 60은 족히 되어 보였다. 앞니가 빠진 상태에서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그들을 본 나의 '속물근성'으로는 저렇게 힘들게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했으나, 그들의 그러한 변치 않는 신심이야말로 티베트 망명정부가 꿋꿋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돌아가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이 '라모'는 섭정 '레팅'에 의해 발견되었고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인가를 테스트하는 관문을 모두 통과하였다. 그리하여 '라모' 소년은 불과 5세의 나이에 '고귀한 존재'라는 뜻을 가진 티베트의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이 되었다.

그는 아이 특유의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였으나 점점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아 의젓한 쿤둔이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라는 세계정세 속에서 중국과 인접해 있던 티베트는 위태위태했으며 우려는 1957년 모택동의 침공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들이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나왔기에 쿤둔 또한 최대한 협조해 중국과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점령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마각을 드러냈고 쿤둔의 고뇌는 깊어갔다.

선하기 이를 데 없는 티베트인들은 무참히 살해되고, 감옥에 갇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나아가 쿤둔의 생명까지 위협받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참모들은 그에게 국외로의 망명을 진언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티베트사람들을 위험 속에 두고 저 혼자 갈 수 없다며 거부하였다. 그러나 쿤둔이라는 구심점이 살아있어야 독립도 하고 평화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듭되는 참모들의 간청에 1959년 18세 나이에 말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인도 국경에 닿았다.

험난한 여정에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 그를 보고 인도 국경 병사는 '당신 누구요?'하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아무 존재도 아닙니다."

실의와 자괴와 비통에 젖은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그로부터 이 사춘기 소년은 당시 자신의 나이를 몇 곱 절 뛰어넘는 세월이 흐른 후인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마침 이웃 아짐 집엘 갔다가 우연히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이 있어 펼쳐 보게 되었는데, 달라이 라마가 인도국경에 닿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본 장면이었다. 그 빛 바랜 사진 한 장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실적이면서도 찡하게 그 사진에 담겨진 아픔을 고스란히 재연 해 준 것이었다.

<쿤둔>은 유희의 차원으로서의 영화가 아닌 그 어떤 평화운동보다도 더 평화를 갈구하는 소망이 담긴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부끄럽게도 뒤늦게나마 티베트라는 나라와 달라이 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평화의 메시지가 전염병처럼 번져서 티베트의 해방은 물론 곳곳이 화약고인 이 세계에 평화의 바람을 일으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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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 지적 열정을 추구한 나의 삶, 나의 길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살다 죽는 것일까. 어떻게 살다가는 것이 가장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것일까. 이는 삶의 중간 중간 누구나 한번씩 품어보는 의문이다. 인생이란 무대는 누구에게나 단 한번 뿐이고, 단 한번 뿐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인간은 ‘빵’만으로도 살수 없지만 ‘정신’만으로도 살지 못한다. 게다가 오늘날은 어찌된 게 ‘정신’보다 ‘빵’에 더 비중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솔직한 현실이기도 하다. 마음의 양식의 부족에는 눈 하나 깜짝 안할 수 있지만 물질적 부족에는 견딜 수 없이 불안해 한다.

그런데 박이문 선생은 불문학 교수라는 안정된 직장에서 ‘정신’을 논하고 살아도 뭐라 말할 사람이 없겠건만, 서른이 넘어 그 ‘안정’을 박차고 과감히 철학을 공부하고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나는 영원히 해답이 없는 삶의, 그리고 모든 존재의 궁극적 의미에 목말라 있었다. 나의 근본적 문제는 지적인 것을 넘어서 아니 그 이전에 종교적인 것이었다. 만약 앎 자체, 앎의 투명성 자체만이 나의 실존적 문제였다면 나는 문학 대신에 수학에, 철학 대신에 자연과학에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물론 지적인 문제와 실존적인 문제는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보면 구체적인 한 인간에게 있어서 지적 가치와 실존적 의미는 서로 뗄 수 없는 역동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지적이고 실존적이라는 양면성을 띤 본능적 욕구’ 때문에 문학과 철학 그중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었다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미다스북스)은 이와 같은 박이문 선생의 시와 철학 사이를 헤맨 여정의 넋두리를 철학적 산문으로 기록한 책이다. 솔직히 나는 ‘철학’이라는 주제는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야 확실히 관심이 가 질 것 같은데 30대의 그는 철학을 위해 현실의 달콤한 안정을 버렸다.

내게 있어선 시 또한 소설이나 아름다운 산문에 비해 매력이 덜한 분야인데 박이문 선생은 70여 평생 그 ‘두 화두’에서 지칠 줄을 모르니 나의 무지가 쑥스럽다. 시인을 꿈꾼다는 넋두리를 그의 산문에서 많이 접했지만 5권씩이나 되는 시집의 존재는 정말 몰랐다. 때문에 철학자가 꿈꾼 시의 세계는 어떠한 것인지 조만간 그 궁금증을 풀어볼 생각이다.

'내가 택한 길은 지적 삶이다. 시인, 작가로서 인간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예술작품을 열정적으로 창조하는 강렬한 삶을 살고 싶었고, 사상가, 철학자로서 여태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궁극적 진리를 밝힘으로써 투명한 지적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사상가인 동시에 시인, 철학자인 동시에 문필가를 줄곧 꿈꾸어 왔다.'

그는 지적, 감성적 삶과 더불어 ‘도덕적으로 선한 삶’에의 추구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진리가 중요하지만,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지적으로 뛰어나다 해도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인간의 삶은 보람과는 거리가 멀리라. 그는 이 ‘지적 투명성’과 ‘감성적 열정’ 그리고 ‘도덕적 진실성’이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알맹이 셋을 평생 화두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20대를 일러 ‘우울한 허무주의자’로 30~40대는 ‘철학적 허무주의자’로 오늘의 그는 ‘행복한 허무주의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끝까지 따라붙는 ‘허무’의 정체는?

그것을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삶의 궁극이 허무이긴 하지만 ‘살아 있어 느끼고, 생각하고, 활동’하는 과정의 ‘행복’또한 부정할 수 없기에 마지막엔 ‘행복한 허무주의자’가 되었으리라.

'꽃이 진다고 해서 그 꽃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조만간 죽어 흙이 되고 벌레의 밥이 되게 마련이라고 해도 삶 일반, 특히 인간의 삶은 아름답고 귀하다. 아니 우리가 머지않아 사라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우리들의 삶은 보람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삶의 존엄성, 절대적 가치를 의식하고 삶에 대한 경외, 삶의 성스러움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삶은 해마다 재생되는 봄의 속삭임과는 대조되기에 이 계절에 느끼는 박이문 선생의 삶에 대한 고찰은 한결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이보다 더 달콤쌉싸름한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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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disc) - 할인행사
허진호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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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채널을 돌리다가 '봄날은 간다'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음악이라면서 틀어주었는데

참 좋더군요.

그래서 영화와 연결해서 함 듣고 싶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사랑의 생성, 발전, 소멸을 어쩜 그리도 훤히 꿰뚫고 있는지...

몇년전 극장에서 조카와 이 영화를 보고 난다음,

 

"너는 은수의 마음이 언제 변하기 시작했는지 아니?"

"몰라."

"'나 김치 못 담궈.' 이 말 했을때야. 그런데 상우는 그걸 눈치 못채고 못담구면

내가 담가준다며 철썩 들러 붙는 맨트라니."

 

조카는 상우의 편에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용서 할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저는 제발 여자들이여 은수처럼 좀 영악해져서 이불 덥고 징징

짜는것 좀 고만했으면 하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어제 다시 보니 상우가 불쌍하더군요.^^ 수색역에서 돌아간 영감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집에가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라는 외침은

할미보다 자신에게 한 말이더군요.

 

며칠전 서평에서  되도 안한 남자일 경우 '그 남자를 차버리'는 것에 동의했지만

전혀 상처없이 그 남자든, 그 여자든 차버리면 인간이 어떻게 성숙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상습적이고 회복불능의 상대라면 차 버려야 겠지만

은수는 얄밉지만 나름대로 현실을 직시해 어쩔수 없었으니

지구가 한바퀴 돌 만큼은 그리워하다 혹은 원망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실지론 다들 그러하지요?

 

그는, 그녀는 왜 나를 떠났을까? 뻔히 이유를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고 미련을

못버리고 끊임없이 곱씹고 극복의 방법으로 여러일을 하다가 스스로 깊어지고 결국은

시원하게 떠나 보낼수 있게 되겠지요.

 

아마 상우같은 사람은 한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다음짝을 만나서 좋은 남편, 아빠가

될것입니다. 물론 가끔씩 비가내리거나 벗꽃이 만발하면 문득 아프게 떠오르기도 하겠지만요.

 

은수의 입장에서 볼땐, 아, 그 백종학(?)씨, 은수가 상우를 꼬시듯 은수를 꼬시는

재주가 있더군요.^^ 은수로서는 당근 넘어갈밖에요.

이혼녀인 자신의 처지에서는 어느모로보나  백씨가 띵호아~~

 

조연으로 나온 문식아저씨와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은 택시기사친구도 역할 좋았어요.

고스톱 치는 신애 언니 인환아저씨등등 여러모로 꼼꼼하게 좋았습니다.

 

좋은 영화 만드는 감독은 대통령해도 잘 할것 같아요. ㅋㅋ..

 

허진호 감독의 정서가

상우에게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땅에는 수많은 상우들이 있겠지요.

 

아, 그 '상우들' 중에 한 인간이 과년(?)한 저의 조카들을 데불고 가주면....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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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5-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저도 참 좋아하는 감독이예요.
자기는 "쿨함" 보다 "신파"에 더 끌린데요. 저도......그렇답니다.^^

폭설 2006-05-0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감독은 뭐랄까, 인간적인것 같아요. kleinsusun 님 저는 '외출'도 괜찮았어요.
한번볼때는 브로크백이 그랬듯 좀 지루한 것 같기도 했는데요, 두번 보니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다만, 그 미적지근한 배드신이 좀 ...ㅋㅋㅋ 그런데 사진속의 흑인 아줌니는 뉘기래요? 그옆은 물론 님이겠죠?